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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교제(敎弟)는 교파 중에서 두어 단체기관에서
수양하고, 국내각(國內各)와 국외 일본동경 횡빈(橫濱)등지에 21여성상을 교역하다가
신약교회인 그리스도의 교회환원운동의 선교부 지. 쩨. 치에스와 쬰. 쩨. 힐 양인(兩人)이
내한하야 선교초에 신학교를 설립하고 수양(修養)하는 즉시로 입학하야 졸업기한인
4개년 수업을 제1회로 마치고, 그리스도의 교회환원운동의 역사(役事)를 6-7년간
하는 중 일본제정하(日本帝政下), 소위 대동아전쟁과 아울러 신궁(神宮)참배문제로
박해 중에서 8.15해방의 축복을 밧고, 비약적으로 기독교통일운동을 하였섰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계는 일본대마신(大麻神)에게 배복(拜服)함으로인하야 사(死)한 심령이라.
그러한지 무감각하야 일인(一人)도 상응(相應)치안코 다만 신궁불참배한 교역자만
상응하여 우리 신학교에 입학하야 수양기(修養期)에 의외(意外)에도 6.25사변과 1.4후퇴로
인하야 우리 신학교도 동결(凍結)상태에 있었다가 1952년 춘기(春期)에 복구로 개강을
하는 동시에 교제(敎弟)가 목회학과정을 교수(敎授)하는 입장에서 듸모데전후, 듸도서의
목회서신을 기본으로 하여 국내외에 각목회학을 수집(蒐集)하야 그리스도의 교회와
교리와 초대교회의 목회의 차이점만 수정하고 기타(其他)에도 가감편집하야 교수하게된바
불충분한점도 불무(不無)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적으로 허락이 있는 대로 불원한
장래에 충분한 목회학을 저작하랴 하노라.
주후 1952년 춘계(春季) 저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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