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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26
나의 우상은 누구인가[빌2:5-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106  
개성과 멋으로 톡톡 튀는 신세대들에게도 우상은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우상은 김건모나 마이클 잭슨과 같은 연예인 또는 현주엽이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스포츠인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청소년들은 이들 매스컴을 통해서 잘 알려진 인기인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많이 모방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보상심리랄까요? 동질의식이랄까요? 뭐 그런 것들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의 모방심리는 사실 일시적인 통과의례 즉 성장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청소년들의 인격형성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준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험 있는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위인전이나 고전 같은 서적들을 많이 읽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고전이나 위인전을 통해서 청소년들이 건전한 사고와 인격을 형성할 수 있고, 모방하고 싶은 존경하는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힘쓰고 있던 김구 선생도 아들에게 보내는 유서와 같은 서신에서 "동서와 고금의 허다한 위인 중에서 가장 숭배할 만한 분을 택하여 스승으로 섬기라." 고 권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자동차의 왕이라고 불리는 헨리 포드를 어린 시절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대량생산, 박리다매, 생산라인 자동화, 사원복지시설증대, 전 사원 경영주화 등을 통해서 사회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사원과 고객을 우선하는 포드의 생활철학에서 나온 것들이 였습니다. 미국 디트로이트 시에 가면 헨리 포드 박물관이 있습니다. 저는 포드를 좋아한 나머지 자동차로 하루 종일을 걸리는 곳에 있는 이곳 박물관을 두 번이나 구경했습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가운데 [큰 바위 얼굴]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에 의하면, 어니스트란 이름의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산마루에 우뚝선 큰 바위 얼굴에 얽힌 전설을 전해 듣게 됩니다. 장차 이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소년은 그 때부터 큰 바위를 열심히 바라보며 마을의 영웅을 기다렸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년은 마을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이라고 굳게 믿었던 성공한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는 사업가도 군인도 정치가도 시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큰 바위 얼굴이 아니 였습니다.
소년에게는 선생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의 선생님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큰 바위 얼굴이었습니다. 소년은 하루의 일이 끝나면, 몇 시간이고 그 바위를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 큰 얼굴이 자기를 알아보고, 자기를 격려하는 친절한 미소를 보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소년은 큰 바위를 쳐다보며 사색에 잠기고 큰 바위와 같은 훌륭한 인물을 기다리는 사이에 배우지 아니한 지혜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로,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목사로, 인자하고 장엄한 얼굴의 소유자로, 서서히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큰 바위의 인자하고 장엄한 얼굴을 바라보며 성장한 소년은 나이 들어 백발의 노인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에게서 큰 바위에 관한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았습니다. 위대한 시인을 포함해서 마을 사람들은 그가 바로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의 소유자란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던 것입니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사모하던 큰 바위 얼굴로 닮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큰 바위 얼굴이 된 어니스트는 아직도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 같은 용모를 가지고 쉬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이, 제 삼의 어니스트가 계속해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상징이나 추종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를 닮아 가기를 힘씁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모방의 본능이 있어서 배우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학습행동(Learning Behaviour)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모방의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교제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서로 닮아 가는 형태도 있습니다.
수년 전 중앙일보 [분수대]에 의하면, 신혼부부의 얼굴은 우연히 서로 닮은 경우는 있지만, 그 확률이 높지 않는 반면에 25년을 같이 살아온 초로의 부부들은 서로 얼굴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실험 결과가 미국 미시간 대학 심리학 연구팀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합니다. 부부가 평생을 두고 가까이 에서 함께 웃고 울다가 보면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의대 심리학자 폴 에크먼 교수는 사람의 얼굴에서 감정 표현을 그대로 옮겨주는 일 백 가지의 근육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이들 근육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며 그 때마다 근육 속의 혈관은 일정량의 혈액을 통과시킨다고 합니다. 행복한 부부일수록 그런 감정 표현이 특히 왕성해 닮는 확률이 높답니다.
오늘 저는 사도 바울의 우상이며, 우리 믿는 자들 모두의 우상인 예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닮아야 할 대상은 바로 이 분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내용으로 예수의 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생활철학이라고 할까요, 하나님께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예수의 삶의 진지한 태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닮아야 할 우상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크게 두 가지 사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자기 부정'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자기 낮춤'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또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란 신분도 버리시고, 신으로서 가지는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인간들과 같이 낮아 지셨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형에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은 보다 옳은 일에, 보다 큰 일에, 보다 소중한 일에, 보다 가치 있는 일에, 비록 돈과 명예와 지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어리석고 무능하고 힘없어 보였을지라도,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는 가장 확실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 분의 생애가 감동적인 것은 그 분이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눈물과 고통과 목마름과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으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이미 버린 분이 였습니다. 표준번역성경에 보면,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되셨습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러한 행동은 천사장 루시퍼가 취했던 행동과는 매우 다른 것이 였습니다. 루시퍼는 교만하여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자신의 보좌를 높이며,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겠다(사 14:13-14)고 허풍을 떨다 귀신들의 대장인 마귀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겸손한 행동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취했던 행동과는 매우 다른 것이 였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을 받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의 열매를 먹고, 눈이 밝아져 선악을 분별하는 하나님과 같이되고자 했습니다(창 3:5-6).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알아 낸 것은 수치심과 불안과 죄의식뿐이 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어떠했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선생으로서의 신분도 버리셨습니다. 이런 예수의 행동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며, 민중의 지배자들이 였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서기관과 제사장들은 비웃고 저주했습니다. 시기하며 질투했습니다. 비방하며 훼방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하신 예수를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옳은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류를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다 큰 일을 위해서 자신의 결정권을 포기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선택권을 포기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 전날 밤에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힘겹게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십자가에 처형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도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그 다음 날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빌라도 총독 앞에 선 예수는 대담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들을 화목 시키시기 위해서, 인간답지 못한 생활에서 벗어나 참 진리 안에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 예수는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충성한 예수를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의로운 일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린 예수를 하나님은 다시 살리셨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무덤 속에 놓아두지 않으셨습니다. 시체 썩어 냄새나는 무덤에 놓아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은 죽였으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본 받아야 할 분은 연예인도 아닙니다. 위인들도 아닙니다. 우리가 참으로 본 받아야 할 스승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순종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삶의 소망을 주신 예수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겸손과 순종을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이나 물질의 풍요보다는 보다 큰 일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암흑 같은 세상에서 빛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무덤 같은 세상에서 생명력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우상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영웅이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진정으로 사모했을 때 인간에게 배우지 아니한 지혜를 얻고, 고매한 인격과 인품의 소유자가 된 것처럼, 우리 모두가 예수를 사모하고 닮고자 할 때에 제 이, 제 삼의 사도 바울과 같은 인물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때문에 출세하시고, 예수 때문에 성공하시고, 예수 때문에 건강하시고, 예수 때문에 만사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