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의 두 과들에서, 20세기 초기이후의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의 역사와 특징들을 각각 살펴보았다. 이 과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관해서 개략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제임스 드포레스트 멀치(James DeForest
Murch)가 우파들(Rightists), 중도파들(Centrists), 좌파들(Leftists)로 언급한,
그리스도의 교회들,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19-20세기에
번영했던 환원운동에서 자란 세 가지 주요 그룹들이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은 "환원운동"으로부터 그들의 출발을 일관되게 말한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스톤-캠벨 운동"이란 말을 선호한다. 로렌스 킨(Lawrence
Keene) 박사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른 두 그룹들이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의 원리로써 "환원"의 개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세기에 존재했던 어떤 이상적인 교회를 반드시 환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나의 연합운동으로 그들의 운동을 보려는데 훨씬 더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교회에
대한 다른 견해를 취한다.<Keene.>
철학적 관점
앞 과에서 언급했듯이, 17세기는 인문주의와 이성주의가 유럽신학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독일 학교들에서 "고등비평"으로 알려진 성경연구방식이
발달하였는데, 유럽은 물론 미국 모두에서 기독교 학계에 깊은 영향을 갖게되었다.
18세기에 유럽에서 번성한 운동이 19-20세기에는 미국에서 성장하였다.
"고등비평"은 성경말씀의 확실성과 신뢰성에 도전했던
성경연구방식이었다. 다른 한편, "하등비평"은 성경말씀의 원 본문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비평하는, 학자들 편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시도였다. 그러므로, 하등비평은
가능한 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원문의 발전으로 귀착되었고, 고등비평은 성경말씀의
저자와 정확성과 신뢰성을 종종 의심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환원운동이나 스톤-캠벨 운동과 연관된 대부분의 대학들과
대학교들은 이성주의 운동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고, 종종 "현대신학"(modernism)으로
언급된 영향력은 학교들에 슬며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결과로써 이들 대부분의
학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이나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손을 잡게 되었다. 매우 영향력이 컸던 몇몇 학교들로는 베다니(Bethany)
대학, 버틀러(Butler) 대학교, 유레카(Eureka) 대학, 드레이크(Drake) 대학교, 필립스(Phillips)
대학교, 그리고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들이다. 이 모든 대학들과 다른 대학들도
이후 좌파들인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연관을 맺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진보주의"대 "보수주의"에
대한 논쟁, 특히 이 고등비평의 분야에서의 논쟁은 일촉즉발의 이슈가 되었다. 켄터키주
렉싱톤의 성경대학(College of the Bible)의 J. W. 맥가비(McGarvey)는 보수주의를
지키는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성경말씀의 영감성과 신뢰성을 지킨 많은 글들과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고등비평의 진보신학을 공격하였고, 수많은 교회들을
보호하기 위해 흐름을 저지시켰다.
성경말씀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앞 과에서 살펴보았듯이,
개리슨(Garrison)과 디그루트(DeGroot)가 성경말씀에의 "새로운 견해"로
언급했던 것의 일부분이다. 이 "새로운 견해"는 스톤-캠벨 운동 내의 다양한
개인들과 그룹들에 의해서 수용되어지게 되었을 때에, 보이지 않는 쐐기가 환원운동
내에서 분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환원운동의 다른 그룹들에서
분리된 것이 환원운동 내에서 생긴 최초의 보이는 분열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했던
다른 문제들은 흉측한 머리를 키울 준비를 갖춘 잠재적 거인으로써 누어 있었다.
커지는 분열
우리가 보았듯이, 1906년은 최초로 주요 분리가 일어난 해를
표시한다. 이 시점으로부터 계속해서 19세기에 시작된 진보주의의 쐐기가 이미 시작된
틈을 더 벌려놓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서 수 차례에 걸쳐 제시했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한번에 아주 오랫동안 신실하게 남아있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한 세대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만다.
"중도파들"과 "좌파들" 사이에 차이점들의
간격이 커지는 이 시기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커지는 분열을 메워보려고 하였다.
국제 컨벤션은 20세기 초경에 시작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친교와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 컨벤션의 성격과 역할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하부기관들이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컨벤션은 점점 정책을 결정하는
단체로 커지고 말았다. 킨은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 . . 그 당시 제자들의 운동의 진보주의적인 (그들의 관점에서)
경향들 때문에, 1927년, 오하이오주 캔톤(Canton)의 대형 그리스도인 교회의 목회자였던
P. H. 웰쉬머(Welshimer)가 오하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크리스천 스탠다드}(Christian
Standard)와 함께, 그리스도인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별도의 매년 열리는 집회인,
북미주 크리스천 컨벤션"(North American Christian Convention)의 조직을 도왔다.<Ibid.>
따라서, 모든 실천적 목적들을 위해서 또 다른 분열이 환원운동
내에서 발전하였다. 분열시기를 1950년대로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시기는 마음이
불편해서 제자들의 운동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던 교회들을 위한 실제적인 주소록이
편찬되었을 때였다. 이 때는 또 제자들이 교회들의 구조를 개혁하는데 관심을 기울리던
시기였으며, 많은 교회들이 환원운동의 이 두 분파들 가운데 어느 한 곳에 소속할
것을 요구받던 시기였다. 또 많은 법적 소송들이 1950년대에 교회당 건물들의 지배권을
얻거나 건물들의 법적 통제를 유지할 법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법원에 신청되었다.
따라서 "중도파들"이 "좌파들"로부터 실제적인 분리를 표명하거나
공고히 한 시기로써 1927년이나 1950년대 중의 한 가지나 또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하기 위한 합법적인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열에는 언제나 일정기간동안
그것이 발전되는 과정들이 실재하기 마련이어서, 특정한 날짜를 언제나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다.
운동의 진보
1906년의 분열이후 처음 25년 또는 그 이상동안, 그리스도의
제자들 또는 "좌파들"의 성장은 독립 그리스도인들의 것과 결합되어있었다.
왜냐하면, 명백한 분열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분열이후에도 양 그룹들과
어떤 공식적인 관계나 또는 어느 정도의 친교를 유지하려했던 교회들이 양 그룹 모두에
있었다.
제자들의 성장패턴은, 킨(Keene)의 연구에 의하면,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의 것에 비슷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것에 더 비슷하였다.
그는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이 북부중앙 주(州)들에서 더 강한 반면,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남부에서 가장 강하다"<Ibid.>고
말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1906년의 분열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남부에서 더
강하였는데, 아마도 {가스펠 애드보케이트}(Gospel Advocate)의 영향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편, 독립 그리스도인들과 제자들은, 십중팔구 {크리스천 스탠다드}(Christian
Standard)의 영향력 때문에, 북부와 북부중앙 지역에서
더 강하였다.
필자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계들을 비교해 보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 그룹들 가운데서 가장 큰 대략 150만 명 정도이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대략 110만 명 정도인 반면, 독립 그리스도인들이 대략 100만 명 정도이다."<Ibid.>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교인이 감소해왔고,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지난 4-5년 동안에 대략 40만 명 정도가 감소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독립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그들을 구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몇 가지 측면들은 분명하게 되었다. "좌파들"이란
멀치의 말은 더 진보적인 신학의 수용이라는 주요 측면들 가운데 하나를 설명한다.
모든 제자들을 진보주의자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지도층이나
목회자들에서 있어서 진보신학은 아주 분명하다. 제자들은 교인들이 그들 스스로
성경말씀을 해석할 충분한 자유를 허락한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의
무오설, 침례의 우선성, 성경말씀의 기적적인 측면들을 수용하지 않는다. 몇몇 제자들에
의해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은 의문시되거나 부정된다.
여성의 역할에 관해서는 견해차가 크다. 킨은 그의 연구에서
"제자들 사이에서, 목사들의 10퍼센트 정도가 여성들이다. 그리고 제자들 사이의
대학원대학에서 그 비율은 대학원 대학에 따라서는 30-50퍼센트 정도로 높다."<Ibid.>고
평가한다. 침례의 성격이나 전에 다니던 교파에 관계없이 회원으로 받아드리는 개방
회원제는 제자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시행된다. 성만찬은 제한 없이 주중의 아무 날에나
시행된다. 그러나 다른 두 그룹들은 주의 날, 즉 일요일을 성만찬을 시행할 적절한
시간으로 간주한다. "제자들의 예배는 의식적인 면에서 매우 예전적이며, 감정적인
면에서는 차거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자들 사이에서도 성장하는 교회들은 예외이다.
그들은 훨씬 더 뜨겁고 감정적인 경향이 있다."<Ibid.>
많은 제자들의 교회들 사이에서 목사들은 규칙적으로 강단에서 예복들을 착용하며,
예배는 감정이나 느낌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조직들과 교육
앞에서 몇 번에 걸쳐 국제 컨벤션과 환원운동에 미친 그것의
충격에 관해서 논의하였다. 조직의 중앙집중화는 스톤-캠벨 운동이나 환원운동에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1849년에 미주 크리스천 선교사 공회(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Society)가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캠벨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대표자를 보냈다. 캠벨은 초대회장으로 뽑혔고, 공회 설립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나중에 그것은 연합 크리스천 선교사 공회(United Christian Missionary Society)가
되었고, 인디아나주 인디아나 폴리스 시에 위치하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국제 컨벤션은 거의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그것이 교회들 개개의 삶에 영향을 준 정책결정을 할 때까지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 설교와 교육 학기에 더해서, 그것은 지난 20년 간 정책을
결정하는 컨벤션으로 등장하였다. 지금은 그것을 총회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한해 걸러 한번씩 소집되어, 신학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슈들에 관한 결의안들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이것들은 총대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매 교회는 두 명의 총대들을
참석시킬 권한이 있고, 큰 교회들은 교인수에 비례해서 더 많은 수의 총대들을 참석시킬
수 있다.<Ibid.>
이러한 결정들이 교회들을 반드시 속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총대들의 진술된 의견을 가리킨다. 총회에 부가해서, 한해 걸러 한번씩
모이는 지방회들이 있다. 따라서 매년마다 어떤 형태로든 총회가 열린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통합을 목적으로 회중교회(Congregational)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와 대화를 해오고 있다. 1950년대
이후 교회연합운동(Ecumenical Movement)은 제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만약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상기한 두 그룹들 가운데 어느 하나와 정말 통합한다면, 환원운동에의 그들의
정체성은 사라진다는 것이 필자도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이미 지적하였듯이,
제자들은 이미 현재의 환원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현재 동의하는 환원운동의
유일한 주요 개념은 연합의 개념이며, 그들의 연합개념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이나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 사이에서 견지되고 있는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교육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제자들이 강조하는 교육의 두 가지 측면들은, 첫째,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두가 그들의 교인들을 위해서 일반대학들(liberal arts colleges)이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는 교육철학을 견지해오고 있으며, 둘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성주의와 현대주의가 학교들의 교육과정에 침투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지고
환원운동의 주요 대학들과 대학교들을 이끌고 갈 수 있었다. 앞 부분에서 몇 개의
주요 학교들을 열거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독서하는 사람들이다. 킨 박사의 연구는
그들의 독서가 신앙적이기보다는 세속적인 주제들을 더 많이 따라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 . 목회자들과 장로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신앙서적들을
구독하는가를 물었다.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들과 장로들은 다른 두 그룹들이 하는
것보다 두 배나 많이 구독하였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다른 두 그룹들은 비신앙
서적들을 더 많이 구독하였다. 물론 구독과 독서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 지도자들은 더 많은 신앙 신앙자료들을 읽는 경향이 있다.<Ibid.>
제 10과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비록 그것들이 조직상으로
교회들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신앙지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매우 많은 수의 신앙지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좌파들" 사이에서 발행되는 주요 저널에는 {제자들}(The
Disciples)이 있다. {제자들}은 크리스천 출판위원회(Christian
Board of Publication)가 세인트루이스에서 발행하는 완전 칼라판 전문 월간지이다.
오늘날의 많은 좀더 예전적인 교회들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매우 선교지향적이지 않다. 그들 가운데는 선교위원회들이 있다. 그렇지만, 선교의
강조는 그들의 좀더 보수적인 환원운동 그룹들에서 갖고 있는 것만큼 열정적이지
않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선교사역을, 연합 크리스천 선교사 공회(United
Christian Missionary Society)로 일찍이 알려진, 선교위원회(Board of Missions)를
통해서 행한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독립 그리스도인 교회들이
하는 것만큼 동일하게 "환원"에 헌신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더 이상 환원운동을 말하지 않고,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것을 "스톤-캠벨
운동"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 제자들 내에도 여전히 환원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 많은 상당수의 "평신도들"이 환원개념에 여전히 헌신하고 있다는
것이 본인의 직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교회의 지성을 갖춘 지도자들은 그것에 헌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연합에 헌신한다. 그리고 지난 10-15년 간 그들이 중요하게
추진했던 것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와의 연합 또는 통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를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대체로 그들과 동일한 미국내의 교단으로
본다.<Ibid.>
한편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다른 편에서는 독립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에 이들 첨예한 다른 철학적 차이점들 때문에, 필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들 자신들과 환원운동으로 언급해왔던 나머지 그룹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지속적으로 넓혀갈 것이라고 믿는다.
결론
이 과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환원운동의 가장 진보적인
경향들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독일 진보신학의 유입은 제자들의 교회 학자들에
의해서 폭넓게 수용되었다. 이러한 결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더 진보적인 신학을
발전시켰고, 환원운동의 "좌파들"로 언급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제자들은 신약성경기독교에로의 복귀나 환원보다는 연합이나
통합 쪽을 더 크게 선호하였다. 제자들과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와의 통합운동들이
진행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통합이 이루어진다든지, 또는 이루어지는 때에는
스톤-캠벨 운동으로부터 발생한 다른 그룹들과의 정체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토의 문제들
1. 무엇이 환원운동을 향한 제자들 운동 내의 지도자들의
지배적인 태도인가?
2. 총체적으로 환원운동과 개별적으로 제자들에게 끼치는
국제 컨벤션의 중요성과 함의들을 논의하시오.
3. 무엇인 교육을 향한 제자들 운동의 지배적인 태도인가?
4. 어떤 요인들이 제자들과 독립 그리스도인 교회들 간에
결정적인 분리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5. 그리스도의 교회들, 독립 그리스도인 교회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비교하고 대조하시오.
Morris M. Womack, Thirteen
Lessons on Restoration History(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88), pp. 135-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