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과 제언(1 

조동호 목사


 선언

과거 수년간 교계와 특히 이 미주 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과 기독교 세계의 현 상황을 상식적인 지식으로 판단해 볼 때, 우리 자신의 안목으로 살피고, 하나님의 잣대(Divine Standard)로 직접 모든 것을 즉시 측량하며, 이 표준만이 우리 자신이 따라야 할 하나님이 정한 한도임을 인지하며, 이 표준에 의해서만 판단 받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이 때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어느 누구도 형제로부터 판단 받을 수 없고, 형제를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해명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의무 지우고 있고, 또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위적인 해석에 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속박 받아야 할 동등한 의무아래 있다고 생각하며, 분명한 법조문을 명백하게 위반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자기 형제를 판단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그와 같은 모든 판단은 그리스도의 법을 분명하게 위반하는 것이고, 그분의 특권을 찬탈하는 것이며, 그분의 백성들의 권리와 자유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 같은 일에 조심해야 하며, 이런 성격의 일들을 멀리해야 한다. 또한 그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자신이 같은 잘못을 해서도 안 되며, 그 일을 행하는 자들로 더불어 기뻐해서도 안 된다. 또한 우리는 비통한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번진 신앙논쟁의 해독성과 해악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고, 심한 파당분쟁과 다툼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에 이 싸움이 멈추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든 교회의 형제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의 온 교회에 일치와 화목과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는 법안들을 추천하여 채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파당분쟁들의 견해 차이와 증오심, 인간 견해들의 변질되기 쉬운 불확실성과 잡음이 계속 일고 있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단순한 말씀에서가 아니면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발견할 수 있고, 형제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이 바람직한 안식에 대해서 철저하게 실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과 형제들을 위한 우리의 희망은 인간의 견해와 사람들의 고안(考案)이 어떤 권위를 지니거나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지 못하도록 배척하고, 더 이상의 투쟁이 없도록 영원히 싸움을 멈추며, 본래의 표준에로 돌아가 그것을 튼튼하게 잡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우리의 규범으로 삼으며, 우리를 모든 진리에로 인도할 수 있는 성령을 우리의 스승과 인도자로 삼으며, 말씀대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구원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들 사이에 평화가 있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하며, 거룩함에 이르게 될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Ⅰ. 우리는 워싱톤군(郡) 그리스도인 협의회(Christian Association)란 명칭아래 신앙적인 협의회를 결성한다. 이 조직의 유일한 목적은 단순한 복음적 기독교를 장려하고 인간의 견해와 사람의 고안으로 혼합되어 버린 모든 상태에서 벗어나는데 있다.

Ⅱ. 각 회원은, 기금조성을 목적으로, 능력에 따라 기쁘고 너그럽게 정해진 금액을 반기별로 납부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명백히 계시되고 명령된 교리와 예배와 징계와 치리의 모든 형태를 실천에 옮기는 순수 복음 사역을 지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Ⅲ. 본 협의회(Society)는 유사한 협의회들의 설립을 장려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며,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적절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또한 이 목적을 위해, 신청이 있을 경우, 동일하고 바람직하며 중요한 목적들을 위해 연합하고자 하는 단체들과 소통하고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Ⅳ. 본 협의회는 결코 스스로를 하나의 교회조직(a Church)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러한 협의회에 고유한 권한을 스스로에게 전혀 부여하지도 않는다. 또한 회원들 역시 스스로를 그런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교회 협의회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연합한 것으로 전혀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단지 교회 개혁을 위한 자발적 옹호자들로서, 또 평화롭고 질서 있는 방식으로, 어떤 합법적인 목적, 즉 명분이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자신들의 시간과 조언과 재산을 처분할 목적으로, 기꺼이 연합하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여된 권한만을 가진 자들로 간주할 뿐이다.

Ⅴ. 본 협의회는 단순한 복음적 기독교를 장려할 목적만으로 설립되었으며, 대화와 교리, 열정과 근면함에서 원래의 기준에 명백히 부합함을 보여주고, 성경에 명확히 명시된 단순한 본래 형태의 기독교를 실천에 옮기며, “주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는 명시적 표현이든지 혹은 승인된 전례(前例)에 의해서든지” 명시적으로 제시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리스도인의 교회의 헌법, 신앙, 혹은 예배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고, 인간의 권위나 사적인 의견, 혹은 인간의 고안들의 어떤 것이나 혹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의무의 문제로써 어떤 것도 주입시키려 하지 않는 목회자들에 한해서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지지하고 후원할 것이다.

Ⅵ. 총무와 회계를 포함하여 도덕적 성품이 흠잡을 데 없는 21명의 상임위원회를 매년 선출하여 협의회의 이익을 감독하고 업무를 처리하도록 한다. 그리고 전술한 위원회는 협의회가 사전에 결정한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협의회의 설립 목적 전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 구성원들을 대표하여 그 이름으로 행동하고 수행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 받으며, 협의회의 기존 결정에 규정되지 않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해당 위원회는 그 목적을 위해 특별 회의를 소집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Ⅶ. 본 협의회는 적어도 일 년에 두 차례 5월 첫째 주 목요일과 11월의 첫째 주 목요일에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약정한 기부금의 반기 분납금을 수령하도록 지명 받은 위원들은 각 모임의 시점이나 그 이전에 회계에게 수납결과를 넘겨서 회계가 모임 때에 기금현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기 모임은 오는 11월 첫째 목요일에 워싱턴 군(郡)에서 개최된다.

Ⅷ. 협의회 모임은 설교로 개회되어야 하며, 정관(constitution)과 제언서(address)를 낭독하고, 협의회를 위한 헌금을 거둔다. 또한 공적인 성격의 모든 의사소통 사안은 반기별 모임 때 협의회에 상정(제출)되어야 한다.

Ⅸ. 본 협의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전적 충족하심에 의지하고, 그분의 은혜를 통해서 참된 기독교의 진정한 친구들의 관대한 후원을 확신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주께서 은혜로 감동하사 협력하도록 하시는 목회자들에게, 요청이나 본 협의회의 초청에 따라, 합당한 지원을 제공할 의무를 지닌 것으로 스스로 여긴다. 그 같은 목회자들은 영원한 복음을 단순하게 전파하고, 전술한대로, 하나님의 기준에 정확히 부합하는 방식으로 의식들(ordinances)을 집례 함으로써 순수한 복음적 개혁을 증진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따라서 협의회의 후원자들이, 본 협의회와 연계되어 상당히 먼 지역으로 파송되어 설교하게 될 목회자들의 지원을 위해 기꺼이 기부하는 금액이 어떠하든지, 전액(全額)이 본 협의회 기금에 대한 기부로 감사히 접수되고 공적으로 인정될 것이다.

제언 및 기타

모든 교회들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다음의 제언을 가장 존경하는 마음으로 제출함.

 

친애하는 형제들에게: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연합시키며, 인간 상호간에 진실과 사랑으로 화목하며 일치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인간들에게는 현세와 내세에 유익하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거대한 계획이요 본래의 목적이라는 점을 진실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탄생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라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외침으로 고지(告知)되었다. 그분의 제도(표준)들을 담고 있는 신성한 책의 전체적인 취지는 그 안에 담긴 모든 은혜로운 선포들, 훈계들, 의식들, 신성한 범례들을 통해 매우 분명하고 힘차게 이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일치와 합의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성취되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행복은 촉진되고 보장된다. 그러한 감정에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우리 거룩한 종교의 은혜롭고 자비로운 의도를 매우 심각하게 방해하여 그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로 하여금 서로를 물어뜯고 삼키도록 부추긴 그 서글픈 분열들에 대해서 비탄을 금치 못하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치유하고 제거하기 위한 우리의 진실하고 겸손한 노력들의 작은 것조차 보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저 비통한 분열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 결과들을 낳았는가! 혐오들, 비난들, 험담들, 악성 루머들, 분노에 찬 언쟁들, 증오들, 출교들, 심지어는 박해까지도!!! 이런 분열이 계속되는 한, 이런 악순환은 어느 정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도가 말했듯이,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기”(3때문이다. 저들 저주받을 분열들의 비참한 결과들이, 심지어 이처럼 큰 은혜를 입은 나라에서도 목격되고 있지 않는가.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시민 통치자의 칼이 제단에서 섬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회중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이웃 공동체들이 당파 싸움으로 먼저 혼돈에 빠졌다가, 마침내는 복음적인 의식들까지도 완전히 박탈당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이 와중에서 넓은 정착지들과 광대한 지역들이 오늘날까지도 복음사역의 불모지로 남아 있고, 그들 중 상당수는 이교도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머물고 있으며, 교회들은 분열로 인해 매우 약해져서 저들에게 목회자들을 파송할 수가 없거나, 사람들이 서로 심하게 갈라져 있어 사역자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몇몇 사람들은, 복음이 선포되는 문턱에 살지만, 양심상 감히 복음을 들으러가지 않으며, 또 당연히, 그 점에 있어서는, 마치 이교도들 가운데 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유익을 누릴 뿐이다. 그러한 상황들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일치와 사랑의 위대한 의식인 주의 만찬의 시여(施與)를 얼마나 드물게 누리는가. 또한 얼마나 비통하게 이 깨지고 혼돈된 상태의 일들이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에 영적인 교통을 방해하는가. 영적인 교제는 악한 현세 속에서 서로 덕을 세우며, 위로하는데 너무나 필수적이다. 감정적으로 너무나 분열되어 있고, 당연히 서로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같은 의견이나 같은 당파에 속한 소수만이 종교적 목적을 위해 편리하게 자주 모이거나 적절한 빈도의 목회 돌봄을 누릴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정착된 교회들에서와 같이 여건이 더 좋은 상태에 있는 곳에서도 당파심의 영향 때문에 얼마나 규율의 기강이 해이해지는가. 많은 이들이 이를 마땅한 엄격함으로 실행하기를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신도들이 그들을 떠나 그럴듯한 구실을 빌미로 다른 당파의 품에 안길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비록 말하기 안타까운 일이지만, 교회는 저주받은 분열로 너무나 타락하여, 아무리 비열한 자라도 신앙을 표방하는 어떤 교파에든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지경이다. 이처럼 성경적 교제의 순수성이 상당 부분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라져 버렸다. 교회의 위안과 영광과 유익의 많은 부분이 그 순수성의 마땅한 보존에 크게 의존됨에도 말이다. 우리의 비참한 분열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를 완성하기 위해, 매우 끔찍한 성격의 또 하나의 악이 여전히 남아 있다. 평화의 복음에 대한 이 슬픈 왜곡으로 인해 하나님의 불쾌감이 정당하게 폭발하였고, 주님은 그분의 의식들로부터 당신의 은혜롭고 영향력 있는 임재를 거두시며, 종교적 불화의 주동자들과 선동자들을 자주 심각한 추문에 빠지게 내버려 두시고, 엘리의 집을 벌하셨던 것처럼 심판으로 그들을 찾으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서로 물어뜯고 삼키는 동안, 그들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소멸되거나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먹잇감이 된다. 한편 모든 당파에 속한 진정한 신앙인들은 슬픔에 잠기고, 연약한 자들은 걸려 넘어지며, 은혜를 모르고 불경한 자들은 더욱 완고해지고, 불신자들의 입은 종교를 모독하기 위해 열린다. 그러므로 인간의 현재의 영적이고 항구적인 유익을 촉진시키고 보장하는데 신적인 효능을 가진 하늘아래서는 유일무이한 것, 곧 축복된 예수의 복음마저도 멸시 받는 처지가 되었고, 이미 언급했듯이, 복음사역을 박탈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하는 자들의 쉬운 먹잇감이 되고, 전대미문의 망상들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행복했을 이 나라에서조차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분열들에 대한 가시적인 결과들이 아닌가. 자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이러한 일들이 사실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든 성서적 수단을 동원해서 저 악행들을 고치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할 책무를 맡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자가 있는가? 또한 이 책임이 특별한 복음 사역자들의 위치에 서 있고, 이 칭송할 만한 과업의 지도자들인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일의 성패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합한 협력과 열심 있는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 신성한 섭리가 이 행복한 나라에서 그토록 큰 선을 이루도록 여러분의 손에 맡겨 주신 유리한 기회는 그 자체로 작지 아니한 독려이다. 다행히도 이 나라는 특정한 형태의 기독교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생겨나는 해로운 영향에서 벗어나 있으며, 적그리스도의 성직제도가 직접 미치는 영향에서도 벗어나 있고, 동시에 짐승에게 헌신적이어서 힘과 권세를 넘겨준 나라들과 어떤 형태의 공식적인 연관도 맺지 않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들이 그들에게 쏟아지기 전까지는 어떠한 개혁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참으로 이 나라는 그러한 무시무시한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면제되어서 복되다. 만일 우리가 그 위대한 혜택들을, 그것들이 분명히 주어진 고귀하고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마땅히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많이 받은 곳에는 많이 요구될 것이다. 주께서 이처럼 제약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 즉 온갖 수단과 자비를 풍족히 공급받은 사람들에게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시민적 종교적 모든 면에서 철저한 개혁을 기대하시거나 요구하시는 것이, 어찌 과도한 요구이겠는가?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해야겠는가?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특권들이 이처럼 향상된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인간의 현세와 내세의 유익을 이루는 데에도 동일하게 이바지하지 않겠는가? 시대의 상서로운 현상들은 우리의 경건하고 신실한 노력이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매우 고무적인 부차적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적그리스도 세계에 대한 주님의 복수의 날 즉 시온의 송사에 대한 보응의 해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분명히 시온을 은혜로 대할 때가 왔다. 정해진 때가 왔다. 시온은 환난의 때에 세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이후로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복음의 전파는 혁명이전의 수세기 동안에 이루어졌던 것보다 더욱 큰 노력들과 더 많은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시기 이후로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은 분쟁을 해소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형제 상호간의 교제를 회복하며, 서로 다른 사람의 영적 유익의 증진을 위해서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주제들에 관한 인쇄된 문서들이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이 선한 일 곧 아직 해야 할 남아 있는 일이 완전히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의 온 힘을 다해 협력하고, 추진하고 돕는 데 열의를 가져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비록 연합을 이루려는 선의의 노력들이 어떤 경우에는 모든 교파들의 바람대로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 시도를 포기하게 해야 하겠는가? 진실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실하고 정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따르는 반대와 미미한 성과 때문에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달된 신성한 믿음과 의무의 교리를 위해 열심히 싸우기를 멈추어야 한다면, 진리와 의에 대한 하나님의 대의가 오래 전에 포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여러 악들 가운데, 골리앗과 같은 분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겠는가? 아니면, 구원의 대장이 추적을 멈추라고 신호나팔을 불었는가? 아니면, 그분의 교회 깊숙이에 칼을 꽂아 넣고, 그분의 신비로운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는 이 치명적인 적과 휴전을 선포하셨는가? 그분이 자기 종들에게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씀하셨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중단할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반면에,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경우들에서 소망했던 성공을 가로막아온, 눈앞에서 전개된 다른 사람들의 실수들과 과오들을 통해서 얻은, 현명한 경험을 통해 이 일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더 잘 가르침을 받지 않는가? 이처럼 우리는 경험으로 배우고, 이 선한 대의를 위해 성실히 힘써온 앞서간 선배들이 남긴 축적된 가르침들로 기쁘게 무장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평화의 복음을 예비함으로 신을 신자. 불굴의 인내로 이 중차대한 의무를 굳건히 버터내자. 시온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처럼 중대한 목적이 처음부터 권세 있는 자들이나 다수의 명시적인 지지를 받아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불쾌해하지 말자. 이 점을 신중히 고려한다면, 이미 제시된 내용과 관련하여 문제의 본질을 고려하는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주거나 낙담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시온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 시온의 시민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속한 보편적 권리와 의무의 사안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점에서, 그 누구도 어떤 특별한, 하물며 배타적인 의무에 관해서 자신의 동료들보다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또한 권위라는 것은 이 일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만 특별히 속한 어떤 사안에 대해, 그들 형제들에게 이 의무적이고 중요한 과업에 관심을 촉구할 신성한 권리가 자신들에게 부여되었다고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그런 오만한 추정을 전혀 즐겨하지 않는다. 또한 이 선한 사업을, 그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여 앞장서고 시도를 승인하며, 그들이 초대하고 모범을 보일 때까지 방치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우리의 형제들 중 누구에게도 전가하려 하지 않는다. 이 일은 개방된 분야이고, 광대한 일이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환영받고 동등하게 초대받는다.

우리가 그 목적의 중대함과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 놓인 수많은 난관들을 보며 역량에 논한다면, 누가 이런 일들에 합당한가(4라고 사도 요한처럼 즉시 외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맡은 일이 그러하듯, 우리의 능력(합당함)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사도와 더불어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권세 있는 자들과 다수는 우리와 함께 한다. 주님 자신과 진실로 그분의 백성인 모든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우리 편에 서 있다. 모든 교회들의 기도들, 아니, 그리스도 자신의 기도들(요 17:20,23), 그리고 그분의 하늘 왕국에 입성한 모든 이들의 기도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 시온으로부터의 축복은 우리의 과업 위에 선포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5 이와 같은 격려들이 주어졌는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 하늘의 사명을 주저하게 하겠으며, 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교회가 믿음과 실천에서 온전히 하나 되는 일을, 언젠가 때가 되면, 이루려는 우리의 시도를 절망적으로 보이게 하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그런 일을 이룰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런 생각 자체를 단호히 부인한다. 다만 우리는 이를 추진하기 위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적절한 수단을 동원하여 시도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의무라고 판단할 뿐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우리의 겸손한 선의의 노력들이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옹호하는 대의는 우리만의 특별한 대의도 아니며, 어떤 특정 당파의 대의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동 대의이며, 그리스도와 모든 교파교회 형제들의 대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히 주장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무라고 겸손히 생각하는 것을 우리의 형제들과 더불어 행하는 것이며, 이 축복된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힘써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 각자에게도 동등하게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 지극히 바람직하며, 그처럼 복된 결과들을 가져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형제들이 기꺼이 동참해 줄 것임을 의심할 정당한 이유가 없듯이, 우리의 불행한 분열을 영원히 종식시키고, 교회를 원시교회의 일치, 순수성, 번영으로 환원시킬 그 행복한 사건을 기대할 수 있으려면, 오직 형제들의 진심어린 의무에 충실한 동참이라는 기쁜 전망 안에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처럼 은혜를 크게 입은 이 나라에서, 교회의 본질에 속하고, 교회의 영광을 이루는 본래의 일치, 평화, 그리고 순수함을 회복해야 하는 것을 믿기 어려운 일로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약성경에 명시적으로 드러난 초대 교회의 모범에 순응하고 그 관행을 채택하는 이 바람직한 목적을 이루는 데 적당하게 필요하다고 여겨질 만한 어떤 것이 과연 있겠는가? 이로 인해 어느 교회든, 혹은 모든 교회든 변화가 생기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변화가 용납될 수 없거나 부적합하다고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신성한 영감으로 된 규칙에 결함이 있거나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한, 분명히 그러한 변화는 모든 면에서 더 나은 결과들이지, 더 나쁜 결과들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 사도시대의 교회와 완전히 일치함을 보인다면, 그 점에 있어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되기를 바라신 그대로의 완전함에 이르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족하지 않겠는가?

그와 같이 서로를 상호 인정하는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믿음과 성결과 같은 중요한 교리들에 일치할 뿐 아니라, 복음적으로 제정된 적극적인 의식들에 관해서 유형적으로도 일치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기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래서 우리의 차이점들은 기껏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본질로 삼지 않는 것들, 곧 사적인 의견이나 인간의 고안에 속한 문제들에 관한 것들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와 같은 일들로 분열되어야 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들 가운데 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고안들을 포기하고, 자신의 사적인 의견들을 형제들에게 강요하기를 멈추며, 그래서 우리의 갈라진 틈들이 치유되도록 앞장서지 않겠는가? 누가 이 복된 목적을 위해 신약성경에 제시된 본래의 모범에 기꺼이 따르지 않겠는가? 모든 교회 교파들에 속한 우리의 친애하는 형제들은 우리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맞서서 싸워야할 교육적 선입견들과 독특한 관습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꺼이 헤아려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 곧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분명한 말로든지 혹은 승인된 전례이든지, 명시적으로 가르쳐지고 명령되어지지 않은 것을 믿음과 실천의 문제로서 수용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리는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교회의 본래적이고 헌법적인 일치에로 환원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 복된 일치 속에서 우리의 모든 형제들과 화평과 사랑 속에서 온전한 교제를 즐길 것이라는 것을 정말 진심으로 선포한다. 하나님께, 서로에게, 또 멸망해 가는 그들의 인류 형제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의무감을 진심으로 자각하는 모든 이들한테서 우리가 솔직히 기대하는 바가 바로 그 같은 본분을 다 하는 겸손함이다. 이것에로 우리는 모든 교파들에 속한 우리의 형제들을 부르고 초청한다. 이는 우리가 이처럼 그들에게 제언하는 고무적인 이유들로 공언한 모든 신성한 동기들에 따른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우리의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띠로 하나 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만이 머리이자 중심이며, 그분의 말씀이 규범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 말씀을 명확히 믿고 분명하게 순종하는 것이 그 (일치의) 조건이다. 이보다 더한 것을 여러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보다 덜한 것을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구할 수도 없다. 사실, 누구도 그것을 원하리라고는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그것이 무슨 선한 목적에 이바지하겠는가? 우리는 계시된 진리와 의무에 관한 문제들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사이의 진부하고 모호한 구분을 감히 가정하거나 제안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이 어떠하든 간에, 단순히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계시하고 명령하신다는 신적 권위에 대한 높은 의무가, 우리가 그것들을 알고 있는 한, 그것들에 대한 믿음과 실천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것이 되게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든 무지한 채로 있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수도, 우리의 특권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겸허히 추정하건대,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이 이 토대 위에서 우리를 만나는 것에 대해 달리 제기할 만한 타당한 반대가 없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간곡히 부탁하오니, 이는 소수의 초대에 불과하다는 것과 여러분의 동참으로 우리가 다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처음에는 소수이든 다수이든, 모든 이들의 충분한 이해와 진심 어린 동의를 궁극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사건(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행해져야 할 일이 무엇이든, 언젠가 어딘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디서 누가 하든, 주님께서 그 일에 손을 대시면 반드시 형통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은혜롭게도 여러 중요한 경우에 아주 미약한 시작들에서 심지어 가장 예상치 못한 수단을 통해서 가장 위대한 사건(결과)들을 이루어 내시기를 기뻐하시곤 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의무는 우리에게 있지만 사건(결과)들은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면, 우리가 촉구하는 것이 불합리하고,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기를 우리는 바란다. 왜 그것이 시기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어져야 하는가? 일들이 현행대로 진행되고 있는 동안, 그와 같은 시도를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어떤 시간이나 그것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것이 정해질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공개적인 선언과 관습의 유사성의 입장에서 볼 때, 교파들의 더욱 큰 근접함에 가까운 것이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아집의 점진적인 퇴보가 기대되어 지겠는가? 전자에 대해서는, 차이가 최소인 곳에서는 반대가 대의의 장점들에 반대로 균형 잡힌 열정의 정도에 따라서 항상 처리되어질 것이라는 점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후자에 관해서는, 우리는 몇까지 이유들과 입장들 때문에 그것을 말하기는 기쁘지만, 또 우주적으로 아집이 쇠퇴하기를 바라지만, 과거에나 현재에도 그런 가설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보장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런 수단에 의해서 그와 같은 어떤 결과가 발생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진실로,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연약한 사람들의 무리들이 항상 있을 것이며, 그리고 이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아집에 빠지기 쉽다. 이 뿐만 아니라, 분열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그들을 반드시 후원하는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우리는 사탄이 자기 왕국의 이익에 매우 중요한 이점을 증진시키는데 나태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전체 즉 우리의 세상적 관심들에 유사하게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가 그와 같은 종류의 시비에 우리 자신들이 결코 만족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주시되도록 하자. 여기에 제안된 시도는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성질의 것이란 점과 그것이 질투를 유발하거나 특정 교파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경향을 전혀 지닐 수 없다는 점을 부언코자 한다. 그 반대로, 교회들 사이에 우주적으로 인정되고 스스로 입증된 진리들의 견고한 기초에 바탕을 둔 항구적인 성서적 일치를 향한 모든 노력은 인간대 인간 상호간의 사랑과 진리에 대한 열정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서 계몽하고 화목할 가장 행복한 경향을 지녀야 한다. 성서는 말하기를,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6 진실로 만일에 하나님과 연합에 대한 그와 같은 적절한 근거도 공정하게 나타나질 수 없다면, 모든 올곧고 지성적인 그리스도인의 승인을 받게 되는 것처럼, 약자들을 위해서 채택되지 아니한 그와 같은 절차의 방법도 그들의 양심을 억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에 입각한 이 거대한 목적의 성취는 영원토록 불가능할 것이 틀림없다. 이런 가정에 입각해서 오로지 자발적인 절충과 선한 본성의 타협말고는 그것을 성취할 어떤 다른 방법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일이 그럭저럭 성취될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과 기도들이 무익하다는 것이 전혀 입증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문제 제기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신이 계시하신 진리의 확고한 근거에 입각에서이든지, 혹은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은혜로운 겸손의 선한 본성의 원리이든지 간에, 그러면, 그것은 성취되어질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동일하게 실용가능하지 않으며,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바람직하지 않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의 그 기질과 분별, 즉 우리의 자비로운 구세주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에게 갖추게 하는 데 본질적으로 필요하며, 그분의 백성에게 내린 구세주의 명백한 명령인 그리스도인의 기질과 분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그들 가운데 분열이 없이, 다 같은 말을 하고, 다 같은 규칙에 따라 걷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지"(7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적법한 만큼 실행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그것을 시도해 보자.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8

오로지 한 양떼가 있고, 오로지 한 분 목자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 복된 행사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지 않는가? 무엇을! 우리가 한가지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을 것인가!  그 일이 성취되도록 필요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다소 비슷한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9 예수의 사역자들에게 오로지 이 권고를 받아 들여, 그들의 손을 그 일에 대게 하며, 분명한 진리의 확고한 바탕 위에서 사람들을 앞으로 나가도록 독려하며, 전체 그리스도인의 일치로 결속해서 연합하도록 하자. 누가 감히 그것이 곧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10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각별하게 속한다. 언표 되고 인정된 백성의 지도자들로서 이 선한 사역에서 그들의 앞장을 서며, 그 길에서 인간의 견해들과 사람의 창안들을 제거하며, 우선적이고 믿을 만한 계시의 순수한 알곡으로부터 이 쭉정이를 조심스럽게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가장(假裝)된 권위를 추방하고, 법률화시켜 포고하는 권세에 의해서 저 일들은 부여되고 세워졌다. 이 목회적 분야에까지, 그러면, 우리가 근심으로 바라보는가. 예수의 사역자들인 여러분은 교회의 분열과 부패를 모른 채 할 수 없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없다. 예수께서 운명하시면서 주신 명령들, 그의 신앙공동체의 보이는 일치를 위한 마지막 열정적인 기도는 이 문제에 있어서 여러분이 무관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의 개인적인 영광과 그의 백성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도 크고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결코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며, 침묵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침묵은 승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러분은 나팔처럼 소리를 높여 저들 부자연스럽고 적그리스도적인 분열들, 즉 하나님의 교회를 심하게 찢어 놓고 망쳐 놓은 분열의 흉악한 성질과 무서운 결과를 폭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위치와 특성에서 정의와 주님의 명예를 걸고, 시온의 갈라진 틈들을 고치기 위한 여러분들의 열심과 충성스런 노력들을 우리는 희망적으로 기대해 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일치와 사랑 속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으면. . . 우리는 참아 그것을 말할 수가 없다. (말라기 2장 1-10절을 보라).

아! 목회자들과 사람들은 무덤 속에는 분열이 없고, 사후의 세계에서도 분열이 없다고 오로지 생각할 것이다! 거기서는 분열이 끝장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거기서 우리는 모두 연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현세의 짧은 수명의 분열들에 종지부 찍는 것을 우리 심령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우리 사후에 어떤 축복, 심지어 행복하고 연합된 교회까지도 남길 수 있기를 하나님께 바라는가. 한편, 우리의 분열들이 목회자들이나 백성들에게 무슨 만족이나 실용성을 줄 수 있겠는가? 그것들이 심판 때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것들이 죄인을 그의 잘못된 방법에서 개심 시켜 죽음으로부터 그 한 영혼을 구원하겠는가? 그것들이 하나님께는 몹시 불명예스럽고, 그의 백성들에게는 해로운 죄악의 가득함을 숨겨 줄 어떤 의향을 갖는가? 오히려 그것들은 죄악을 짜증스럽게 하고 생산해 내지 않는가? 그것들이 신자들과 불신자들 속에서 만들어 냈고, 현재까지도 만들고 있는 죄악들이 얼마나 많으며, 얼마나 크게 가중시키고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에게 간구한다. 이런 모든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이 축복되고 책임 있는 시도에 일치하기를 간청한다. 무엇이 모든 사람들의 일이며,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와 같은 것이 광야에서의 회막에 관한 일이었다. 그와 같은 것이 여러분이 사람의 권위로 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부르심을 입은 일이다. 이 권위에 의해서 여러분은 우리들 사이에서 쓰러진 다윗의 회막을 일으켜 세우며, 그것을 본래의 토대 위에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의 집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움직이거나 자기 자신의 교파의 이익을 위해서만 자문한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행할 수 없다. 여러분이 더불어 교제하고 자문하고 충고하며, 친절한 기독교인의 태도로 그 주제를 탐구할 때까지는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마땅한 복종과 순종함으로 분명하고 중요한 교제의 의무에로 우리 형제들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고자 한다. 단순하고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의 공통된 대의 속에서 우리와 함께 연합하자. 이런 영광스런 대의 속에서 우리는 여러분과 연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연합한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모든 교회에 속한 우리의 형제들과 우주적인 일치와 평화와 순수함의 대의이며,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번영할 수밖에 없는 대의이다. 그것을 장려하기 위해서 연합하자. 그러므로,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앞으로 나와 우리와 함께 협력하자. 나른하고 성가신 거짓 선지자의 세이렌 요정의 노래소리에 취해서 여러분 자신들을 잠들지 않게 하라.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주의 집이 세워질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를 믿지 말라. 여러분은 때의 징조들을 구별치 않는가? 두 증인이 그들의 정치적 죽음의 상태와 수 대에 걸친 오랜 박해로부터 일어서지 않았는가? 그들은 그들 적들의 경악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두발로 맞서지 않았는가? 그들의 부활이 큰 지진으로 인해서 성취되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인해서 큰 도시 십분의 일이 파괴되지 않았는가? 이 사건이 나라들로 분노를 일게 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분노, 그렇다, 대노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오 주님, 당신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였고,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입니다.(11 우리 가운데 누가 이런 일들과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이 엄청난 지진과 큰 우박과 만국을 질그릇 깨뜨리듯 부수셨고, 부수고 계신(12 이들 무서운 소란과 혁명에 대한 보도를 듣지 않았는가? 그렇다. 이 무서운 충격의 진동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아주 먼 곳에 피난시켜 놓은 우리들에게까지도 느껴 오지 않았는가?

이런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말하겠는가? 주께서 말씀과 섭리로 회개와 개혁에로 우리를 매우 크고 분명하게 부르고 계신 때에, 우리가 부패와 분열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인가?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 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13 그 고귀하고 값비싸게 산 자유,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자유케 하신 자유,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권위에의 복종으로부터 자기 자신에로의 자유를 회복하라. 지상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아버지로 또는 선생으로 부르지 말라. 한 분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의 선생이며, 우리 모두는 형제이다. 그러므로, 이 고귀한 자유 안에서 든든하게 서자. 그리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자. 이 고귀한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과 뜻을 다하는 주창자들임을 선포하였다. 이 상서롭고 의무에 찬 목적을 위하고, 이 목적을 장려하기 위해서 보잘것없고 미력한 노력이나마 공헌하고, 같은 목적을 위해서 형제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우리는 결속하였다. 우리는, 이 축복된 목적을 위한 우리의 첫 열매로서, 형제들이 검토해 볼 수 있도록, 다음의 명제들을 겸허하게 발표한다. 우리는 형제들의 사랑과 솔직함을 의뢰하며, 그들이 우리의 보잘것없고 모험적인 시도를 무시하거나 오해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 만약에 그들이, 일종의 준비단계로서, 교계의 형제들과 진리와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 사이에 항구적이고 성서적인 일치에의 길을 여는 데에 어느 정도 공헌한다면, 우리는 그 점을 크게 기뻐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명령할 의사가 없으며, 증거적이고, 모순이 없고, 적절한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제안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중대한 목적에 대한 그들의 경건하고 의무에 찬 관심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수정 제의를 해 오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쳐야 될 부분들이 크게 부각될 것이다. 왜냐하면, 확실히 교회에 주어진 총체적인 은사들은, 만일에 그것들이 수행해야 할 의무에로 합당하게 결합되고 집약되기만 한다면, 그것을 바르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에 넉넉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주신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14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15 그리고 그와 같은 지시들에 직면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완전한 충족함에 대한 그와 같은 확신들을 가지고, 그리고 교회가 높임을 받으신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같이, 우리는 참 교인들의 일치를 정당하게 의심할 수 없으며, 협력하여 충실하게 행하고, 그분의 영광과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수행하는 그들의 능력을 의심할 수 없다. 만일에 우리가 사장되어 가고 있는 자비로우신 주님의 명령과 기도를 신뢰한다면, 확실히 진리와 성결, 믿음과 사랑 안에서 그들이 맺은 보이는 일치는 이들 모두에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언급된 중요성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파의 이름들로 구별된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그들의 도움의 손을 거두어 드리지 않을 것이요, 그럴 수도 없다. 우리가 진실로 자원하여 그들의 채무자가 된 것같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은인이 될 수밖에 없다. 자, 오라,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가장 겸허하게 여러분에게 간구한다. 우리의 취약한 출발을 여러분의 빛으로 빛나게 하라. 그래서 여러분의 빛이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라. 교회의 일치와 순수성과 번영을 조성시킬 수 있도록 여러분의 정성과 열심 있는 협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복지를 위한 여러분의 열심을 증명하라.

누구도 아래에 제시된 명제들이 교회를 위한 새로운 신조나 기준을 향한 제안으로 조금이라도 의도되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친교의 조건으로 삼도록 고안되었다고 상상하지 말아 달라. 우리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길을 트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명확하고 확실한 전제들 위에 본래의 토대로 공정하고 확고하게 돌아가 사도들이 그것들을 남겨준 그대로 일들을 이어가게 하려함이다. 그리하여 누적된 중간 시대들의 온갖 당혹스런 얽힘에서 벗어나, 우리는 교회가 창립 당시 서있었던 바로 그 동일한 토대 위에 증거를 가지고 설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를 환기하고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만큼 제언하였으므로, 이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명제 1. 지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조(헌법)적으로 하나이다. 성경말씀대로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신앙과 그분에게 순종을 고백하고, 그들의 기질과 행실로 동일한 것을 표명하는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자들로 구성한다. 다른 누구도 참으로 적절히 그리스도인들로 불릴 수 없다.

2. 비록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 개별적이고 구별된 공동체들로 존재해야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분열이나 사랑 없는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신 것처럼, 그들도 서로 영접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동일한 규범에 따라 보조를 맞추고, 동일한 것을 생각하고 말해야 하며, 동일한 마음과 동일한 판단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3. 이것을 행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명령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조항들로 주입되어서는 안 되며, 교제의 조건으로 요구되어서도 안 된다. 또한 교회의 제도(헌법)와 운영에 있어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권위로 신약교회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명하신 것, 즉 명시적인 조항이나 승인된 선례에 따른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4. 비록 구약과 신약성경의 말씀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고, 교회의 덕화(德化)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완전하고 온전한 계시를 하나로 통합하므로, 그런 점에서 분리될 수 없지만, 그것들의 즉각적인 목적에 직접적이고 본래적인 속성에 관해서는 신약성경이 신약교회의 예배와 권징과 치리를 위한 완전한 헌법이며, 그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의무들을 위한 완전한 규범이다. 그것은, 마치 구약성경이 구약교회의 예배와 권징과 치리를 위한 것이고, 그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의무들이었던 것과 같다.

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과 의식들에 관하여, 성경이 그 실행의 명시된 시기나 방식에 관해서 침묵하는 곳에서는, 만약 그 같은 것이 있다면, 어떠한 인간의 권위도 그 추정된 결핍을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교회를 위해 법들을 제정하거나 간섭할 권한이 없다. 그와 같은 경우들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그들이 이 명령들과 의식들을 그대로 준수하여 그것들이 제정된 공포된 분명한 목적에 명확히 부합하는 것뿐이다. 더욱이 어떤 인간의 권위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시지 않은 새로운 계명들이나 의식들을 교회에 강요할 권한이 없다. 신약성경만큼이나 오래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교회의 신앙이나 예배 안에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친교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6. 성경말씀의 전제들로부터 공정하게 도출된 추론들과 연역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교리라고 참되게 불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공식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그들이 그 연관성을 인지하고 명백히 그러함을 볼 때에 한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진실성 위에 서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연역들은 친교의 조건으로 삼을 수 없고, 교회의 사후적이고 점진적인 덕 세움에 속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연역들이나 추론적인 진리들은 교회의 신앙고백 안에 어떤 자리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 분명하다.

7. 비록 신성한 진리들의 위대한 체계에 대한 교리적 설명들과 만연한 오류들에 맞선 방어적 증언들이 매우 유익하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그것들이 더욱 충실하고 명확할수록 더 좋다 하더라도, 이러한 것들은 상당 부분 인간의 논리적 사고의 결과물임이 틀림없고, 또한 당연히 많은 추론적 진리를 포함하고 있겠지만, 그것들을 그리스도인의 친교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실과 상반되게, 매우 명확하고 결정적인 판단력을 소유했거나 교리적 지식의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자들 말고는 교회의 친교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교회는 창립 이래로, 그리고 영원히, 아버지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로도 구성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8. 사람들이 교회에 속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모든 신성한 계시의 진리들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나 명확한 이해를 반드시 가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그들이 이 목적을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지식보다 더 광범위한 신앙고백을 하도록 요구받아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이 본성과 행실로 인해 상실되고 멸망해 가는 상태에 관한 성경적 자각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에 대해 적절한 이해를 갖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모든 일에서 그분을 믿고 그분에게 순종하겠다는 신앙고백을 동반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들을 그분의 교회에 받아들일 자격을 갖추게 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이다.

9. 은혜로 그러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고, 성품과 행실로서 그 진실성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서로를 하나님의 귀한 성도들로 여겨야 하며, 서로를 형제들로서, 같은 가족과 성부의 자녀들로서, 같은 성령의 성전들로서, 같은 몸의 구성원들로서, 같은 은혜의 대상들로서,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같은 값으로 사신 자들로서, 같은 기업의 공동 상속인들로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을 사람이 감히 나누지 못한다.

10.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은 수많은 악을 낳는 끔찍한 악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가시적 일치를 파괴하기 때문에 반(反)그리스도적이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분열되어 자신의 일부를 배척하고 파문하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분열은 그분의 주권적 권위에 의해 엄격히 금지된 것이므로 반(反)성경적이며, 그분의 명시적 명령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분열은 그리스도인들을 서로 경멸하며, 미워하며, 적대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에 반(反)친화(자연)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형제로서 서로 사랑해야 할 가장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의무로 묶여 있다. 한마디로, 분열은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을 낳는다.

11. (어떤 경우들에서는) 명시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 소홀히 한 것과 (다른 경우들에서는) 인간의 의견들과 인간의 고안들의 승인을 교회의 헌법, 신앙 또는 예배에 도입하여 친교의 조건으로 삼으려는 권위를 자처하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부패와 분열의 직접적이고 명백하며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원인들이었다.

12. 지상의 교회가 가장 완전하고 순수한 상태로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경적 자각의 적절한 이해를 갖추고 성경의 말씀에 따라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과 그분에게 순종하겠다고 정말 고백하는 자 들만이 입교자들로 받아드리는 것; 둘째, 그들의 성품과 행실로서 그들의 고백의 진실성을 계속해서 나타내는 동안에만 교회의 친교에 머물게 하는 것; 셋째, 합당하고 성경적으로 자격을 갖춘 교회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적으로 계시되고 명령된 믿음과 거룩함의 바로 그 조항들 이외는 다른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모든 행정에서 목회자들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범에 따라, 어떠한 인간의 의견들이나 사람들의 고안들을 덧붙이지 않고, 모든 신성한 의식들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다.

13. 마지막으로, 신성한 의식들을 준수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어떤 부수(정황)적 사항들이 명시적 계시의 페이지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목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한해서, 반드시 그러한 것들에 한해서만 인위적인 방편들이란 명목아래서 채택되어야 하며, 더 신성한 기원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후 이러한 사항들을 준수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변경이나 차이가 교회 안에서 어떠한 다툼이나 분열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들 명제들은 우리 협의회가 선언한 목적에 부합되도록 작성되었다는 것이 문장의 성격과 구조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들 명제들은 전에 필요했던 의무, 즉 시온의 이익을 조성하려는 모든 사람의 손을 통해, 현존의 상황들 속에서, 큰 소리로 요구된 의무 이행을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나열되었다. 이 의무는 이사야 57장 14절에 이미 명시된 대로 명령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것들이 자발적으로 관여하는 일로써 충실한 자취에 대해서 예언되어 있다.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장차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17 그리스도인들이 근본적인 진리들을 사려 깊게 생각하고, 그들의 주의력을 최초의 원리들에 집중시키며, 길 위에 놓여 가로막는 거치는 것들 즉 시대적인 폐물을 제거하며, 그들 앞에 놓인 길을 정리하여, 원하는 목표를 향하여 나아감에 있어서 실수나 부주의로 방향 전환을 잘못하여 길을 잃지 않도록 그들 사이에 항구적인 성서적 일치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것이, 적어도, 상기한 명제들의 신실한 의도이다. 그것들이 어느 정도 이 의도에 충실했는지는 우리 형제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그것들이 성서와 올바른 이성의 빛에서 논증적으로 입증된 진리들을 드러내 보여 주고, 그것들의 어느 일부라도 그렇지 않다라고 부인하는 것이 명백하게 불합리하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인가? 그것들이 상기한 목적을 위한 사전준비로서 고려될 때, 그것들이 적절해서,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그것들이 틀림없이 원하는 결말에로 이끄는가? 이들 세목의 어느 것에서든지 명백한 결함이 발견된다면, 그것들이 충분히 증거적이고, 적절하여, 반대할 도리가 없을 때까지 그것들이 고쳐지고 수정되게 하자. 그러는 동안 그것들이 엄밀함으로 즉 정의와 솔질함과 사랑이 인정할 모든 엄밀함으로 검사되게 하자. 만약에 우리가 그 길을 잘못되게 했다면, 우리는 기쁘게 바로잡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동안, 우리가 분명하고 부인할 수 없는 진리, 즉 만약 그것들이 채택되고 따라서 실행되었을 때, 틀림없이 원하는 일치에로 인도하며, 그것을 획득했을 때, 보장할 진리들을 제시하도록 기쁘게 인도되었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총회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반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양심과 더불어 힘을 갖는 것, 이성적인 확신과 수용할 만한 순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다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진리의 목소리이다. 다수의 결정을 기다리는 양심, 다수가 투표로 결정하도록 미결로 남긴 양심은 죄인에게 어울리는 주제이다. 이것이 모든 교파교회의 참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믿는다. 모든 신앙인들이 그와 같기를 하나님께 바란다면, 멀지 않아 시온이 번성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머지 않아 예루살렘이 조용한 거주지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진리 안에서의 일치는 그와 같은 모든 것의 바램이요 기도였고, 언제나 그래야 한다. "진리 안에서의 일치는" 우리의 표어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표준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깃발을 펼친다. 우리는 약속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다."(18 "대적이 홍수처럼 밀려 올 때, 주의 성령께서 그를 대항하여 깃발을 드실 것이다."(19 우리의 겸허한 바램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오,"(20 요새들, 심지어 이 모든 분열의 요새들, 저들 분단의 경계벽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갈라놓고, 그분의 양떼를 나누어 놓으며, 적어도 그것이 이 세상을 중히 여기는 한, 그래서 그들이 약속된 안식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여리고 성같은 "요새들을 파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인," 그분의 깃발아래서 그분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기 위해서, 그분의 기수가 되는 것이다. 대적이 이것을 했지만, 그는 결국 이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길 것이기 때문이다."(21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들은 그것을 영원토록 소유할 것이다."(22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깨지고 분열된 현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스스로 분열된 왕국 혹은 집은 설 수 없으며, 황폐하게 되기 때문이다."(23 이것이 교회가 오랫동안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24 그와 같은 모든 것과 오직 그와 같은 것에 우리의 기대가 집중된다. 그러므로, 오라, 주의 복을 받은 여러분이여. 우리는 여러분의 기도를 받고 있다. 우리로 또한 여러분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게 해 달라. 무엇을, 어떻게 우리가 기도만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힘쓰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들 전제들 안에서 여러모로 신중하게 여러분들을 다시 부르며 초청한다. 가까이 계신 여러분, 우리와 함께 일하자. 너무 멀리 계신 여러분, 우리가 행한 대로 따라달라. 할당된 교구 내에서 여러분의 수의 부족이 극복하기 어려운 실망을 가져오게 하지 말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주님을 기억하라.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5 이와 같은 약속 위에 서서, 모든 가능하고 약속된 선에 도달키 위해서는 실망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오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26 다음과 같이 명령한 예언자의 고결한 해결책을 따르라.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이다."(27 그러므로, 여러분이 감명을 받으신다면, 여러분은 적어도 한 달에 한번씩 모이기 위해서 편리한 지역에 따라서 연합하고, 주님께 우리의 비통한 분열들을 끝내 주시도록 간청하고, 그의 백성을 치유하고 연합하며, 주님의 교회가 본래의 구조적인 일치와 순수성을 회복하며, 그래서 교회의 약속된 번영의 기쁨을 누리며, 유대인들이 급히 개종하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28 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연합되신다면, 여러분은 우리의 슬픈 분열들의 사악한 원인들을 조사하며, 그것들의 파괴적인 결과들을 심사숙고하여 몹시 슬퍼하며,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29 말씀하신 주님 앞에서 그것들 때문에 통곡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아아! 그러면, 오랫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괴롭혀 왔던 비통한 저들 불행들의 대물림에서, 즉 통곡하기보다는 당파심이 이들 파괴적인 악들의 비통한 원리를 모든 곳에서 정당화시키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서도 분명하게 계시되거나 명령되지 않은 사견과 인위적인 추론의 문제에서 그들과 더불어 함께 볼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점에서 예외를 둘 수 없는, 저들을 배척할 권리를 고집함으로서, 우리가 무슨 합리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연합하신다면, 화평의 친구들, 즉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주창하는 자들이 좀더 작은 저들 몇 개의 협의회들과 편리한 중심지에서 반년에 한 번씩 모일 곳, 즉 보다 큰 규모의 협의회에 연결할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들의 결합된 노력들을 이용한다.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사역하는 주의 목회자들의 많은 분들이 이 봉사에 자원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주께서 좋아하시는 일이요, 온몸으로 바라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이요, 그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름 끼고 어두운 날에 흩어져 버린 여러분, 여러분은 진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면) 그 진리를 사랑한다. 우리도 그렇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안에서 연합하기를 바란다. 우리도 그렇다. 여러분은 우리의 슬픈 분열들을 비통해 하며 통곡한다. 우리도 그렇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의 교리나 명령을 거절한다. 우리도 그렇다. 여러분은 말씀 그 자체가 우리의 법률이어야 하며, 말씀에 대한 어떤 인위적인 해설이 우리의 법이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우리도 그렇다. 여러분은 어떤 인간도 명백한 법의 조문에 의해서 정죄를 받는 상태이거나 거절된 상태에 있지 않은 한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 형제를 판단하고, 배척하고, 거절할 권리를 갖지 아니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도 그렇다. 여러분은 일치와 사랑의 커다란 기본법이, 명백한 계시와 동등한 상태로 인위적인 견해들을 높이고, 믿음의 조항들과 친교의 시금석으로 삼기 위한 방법을 만들기 위해서, 위반되어져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우리도 그렇다. 예수의 진실하고 공평한 추종자들이요, 진리와 평화의 친구들인 여러분, 우리는 감히 여러분을 다르게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인품에 위배되는 것이며, 여러분의 기도와 고백에 모순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의 진정한 협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친애하는 형제들, 즉 우리가 그들로부터 더 좋은 일들을 기대해야 하는 형제들 가운데 어느 분이라도, 연약함이나 편견 때문에, 우리가 감히 생각해 온 것말고 다른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것까지도 그들에게 드러내 보이실 것을 관대하게 바란다. 오직 그와 같은 것이 빛을 보지 못하게 말며, 한편, 선입견 때문에, 그것이 그들에게 비추일 때에 거절하지 말게 하라. 그래서 우리가 그들이 심사숙고할 수 있도록 가장 진지하고 정중하게 제출한 것을 오히려 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라.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선 것처럼, 정직한 기도로, 성령을 겸허하게 의지함으로, 자기 만족감이나 당파심이 아닌, 성역의 균형에서 모든 정서의 무게를 달게 하라.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교회의 화평을 확신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만족할 것이다. 아무도 우리가 지적 수준에 있어서 형제들보다도 우월하다거나 실수가 적다고 오만을 떤다고 말하거나 상상치 말라. 지금까지 우리의 확신은 명백한 성서와 그것에 전거(典據)를 둔 일들의 사실적 증거에 따라서 전적으로 근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것들이 부주의와 편견 때문에 그들의 정당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는 수많은 경우에 있어서 가장 증거적인 진리였던 것들의 일부에 관해서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어떤 악도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억측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가능한 악들에 대항하여 경고하는 것이 사랑을 쪼개어 놓는 것이 결코 아니며, 어떤 일들의 확실성을 확신하는 것에 관해서는 단지 주제 넘는 논쟁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성스런 대의를 촉진키 위해서 제안한 어떤 것, 즉 그것이 그것과 더불어 그것 자체의 증거를 가져오는 것 이상의 것에 관해서, 결단코 우리 형제들의 시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주제에 관해서 공정하게 조사 해볼 것을 겸허하게 요구하며, 그래서 우리가 빈약하게 시도했던 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 형제들이 도와 줄 것을 간청한다. 한편, 원했던 행사가 기쁘고 영광스러울 만큼 확실해서 어떤 논쟁도 인정치 않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위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장려할 적당한 방법에 관해서 주저하거나 의견이 다를지 모른다. 이 일에 관해서 우리가 감히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적절한 입장을 취했다고 믿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그렇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는 것을 단념한다. 왜냐하면, 고백과 실천에 있어서, 하나님의 표준에 명백하게 계시되고 명령된 것은 무엇이든 지간에 단단히 붙잡은 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약속된 영향아래서, 일치, 평화, 그리고 순수함을 장려하고 유지할, 적절한 근거를 입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느 교파의 표준을 채택함으로서 저들 무가치한 특권들을 얻는 것을 전적으로 단념한다. 교파의 이익을 용인하면서 일치의 대의를 주창하는 것은 나라들에 대 소동을 일으켰고, 현재도 일으키고 있는 무서운 싸움에서, 나라의 중립을 유지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 적국들에 이 나라가 동참하는 것만큼 불합리하게 나타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어찌할 바 모르던 교회가 과거 수 백년 동안 그리스도를 위하고 진리를 위해서 교회를 여러 갈래로 찢고 나누었던 바로 그 수단을 채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기독교의 첫째 되고 기초적인 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순서상으로 바로 그 다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이 서로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 받는 것이다."(30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31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우리에게 믿음의 영, 사랑의 영, 그리고 건전한 마음의 영까지도 주셨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히 우리들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우리의 형제를 어떻게 사랑하고, 받는가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그와 우리를 다같이 받았다는 것을 믿고 바라면서도 그와 계속 교제하기를 거절하는 것처럼, 우리가 고백하건대, 우리에게는 너무 깊은 신비이다. 만약에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았던 방법이라면, 우리에게는 화가 미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명백한 법의 조항을 위반하고도 회개하지 않은 신자를 의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례에 있어서 우리의 사랑이 무엇이든 지간에 그리스도께서 그를 받으셨고, 혹은 그가 그리스도를 그의 교사와 주로 받았다는 충분한 증거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바로 그 제안된 목적을 분명하게 전복시키는 수단, 수대에 걸친 경험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대로, 기독교의 보이는 이익을 던져 버리는 일에만 단지 성공적인 수단, 가능하다면, 선포된 의도, 즉 그것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방해하는 수단을 채택하는 것은, 저들 악들을 제거하고 막는데 결코 빈틈없는 방책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일치와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은 항상 인위적인 조직들의 편찬자들과 선동자들의 그럴싸한 가장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들의 신실한 의도를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도대체 그 목적에 해답을 주었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실증적으로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심지어 그것들을 가장 엄격하게 채택했던 몇몇 교파들까지도 그렇지 못했다. 하물며 온 세상의 교회야 말할 필요가 있으랴. 교회의 우주적 구조적 일치와 순수함 대신에, 작금에, 교회는 교파와 교파조직들에 대한 안내서, 즉 세상 끝날 까지 그대로 변치 않겠다는 가장 신성하고 엄숙한 서약들에 의해서 각 교파를 묶어 주고 있는 안내서 이외에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하는가. 적어도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많은 교파에 있어서 사실이다. 그리스도인 일치와 사랑 대신에 이것들로 대치하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다른 한편, 인간이 순복할 수 있는 어떤 인위적인 의무도 진리를 대항하는데 무가치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치유자이신 주께서 그의 백성에게 내려 오셔서, 그들이 어둡고 졸린 상태에서 그들 자신이 묶인 채로 고생했던 저들 인위적인 결합들의 성격과 경향을 그들에게 밝혀 주실 때에, 그들은 삼손을 묶었던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그들의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있었던 놋쇠줄 이상으로, 적그리스도가 종교개혁가들을 포로로 묶었던 속박이상으로 교파적 속박의 상태에서 그것들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 곧 그의 백성의 눈들을 열어 주셔서 그들의 참빛으로 사물들을 보게 하시며, 그들이 그들의 광야의 상태와 이 바벨의 혼란으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독려하시며, 그들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며, 그 안에서 서로 포용하며, 평화의 결합 속에서 성령의 일치를 튼튼하게 붙잡기를 기원한다. 이 은혜로운 일치와 예수 안에서의 전원합의가 그와 더불어 그들의 연합의 가장 최고의 외적 증거와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그들의 공동이익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32고 그는 말씀하신다. 그리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3 그리고 또다시,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34 심지어,"나를 믿는 모든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35  주께서 그것을 그의 시간 안에서 서두르시기를 기원한다.
진실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있을 찌어다. 아멘.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
                              토마스 애치슨(Thomas Acheson).

역자 해설

<선언과 제언>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워싱턴 군에 조직된 ‘그리스도인 협의회’의 총무였던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1763-1854)이 초안하여 회계였던 토마스 애치슨과 공동으로 1809년 9월 7일에 발표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대헌장이다. 이는 ‘선언’과 ‘제언’으로 구성된 56쪽(초판의 경우)의 소책자이다. 그리고 1930년대 이후에 ‘부록’과 ‘후기’가 추가되었다. 필자가 가진 책은 이 네 가지가 모두 포함된 책으로 총 90쪽이다.

이 책자에서 강조된 내용은 성서의 권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 그리고 신앙양심의 자유이다. ‘선언’에서는 ‘그리스도인 협의회’의 9가지 결의 내용을 적었고, ‘제언’에서는 분열의 무서운 결과들을 지적하면서 분열을 멈추고 일치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면서 일치를 향한 13개조의 명제를 발표하였다. ‘부록’에서는 ‘제언’에서 주장한 특정 부분을 확대 설명하였으며, 가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후기’에서는 전도단 발기를 위해서 취해야 할 단계를 제안하고 있다. ‘제언’에 나타난 13개조의 명제(Thirteen Propositions)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핵심헌장이다. 여기에 실린 번역된 <선언과 제언>은 ‘부록’과 ‘후기’를 뺀 나머지 초기판에에 담긴 ‘선언’과 ‘제언’ 전체 내용이다.

<선언과 제언>을 작성한 토마스 캠벨은 1763년 2월 1일 아일랜드 카운티다운(County Down)에서 아키발드 캠벨(Archibald Campbell)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키발드는 울프 장군(General Wolfe) 휘하에서 퀘벡(Quebec) 전투에 참가했던 군인 출신이었다. 그는 본래 가톨릭 신자였으나 후에 성공회로 개종하여 충실한 신자가 되었다. 토마스 캠벨은 아버지 아키발드에게서 성공회 분위기의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그도 또한 어린 시절부터 신앙심이 매우 깊었고, 성서를 즐겨 읽었다.(36 그가 받은 가정교육(training and discipline)은 매우 교훈적(didactic)이며, 성서적이고, 엄격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성서와 브라운의 교리문답서(Brown's Catechism)를 매일 읽고, 암송하였다.(37 이런 가정 교육의 영향으로 후에 토마스 캠벨은 "예리한 비평가, 엄격한 규율가, 헌신적인 신학자"(39가 되었고, 알렉산더 캠벨을 같은 방법으로 교육시킨 훌륭한 아버지였다.

토마스의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한동안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래지 않아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확신하였고, 사명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토마스 캠벨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목회자였다. 그는 1451년에 세워진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Glasgow) 대학교에서 3년간 신학교육을 받았고, 반공민파 분리주의 장로교 소속인 휘트번(Witburn) 신학대학원에서 일 년에 8주씩 5년간 목회자 수업을 받았다.(39

목회와 교육에 전념하던 캠벨은 교회 분열의 뼈아픈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고, 일찍부터 교회 연합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798년 안수를 받은 직후, 캠벨은 이미 교파의 한계선을 넘었다고 해서 지방회로부터 책망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에 그의 교회는(his group of Presbyterians) 20년간 지속된 믿음의 본질에 대한 표독한 논쟁에 개입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 논쟁에 활동적으로 개입하면서, 엄격한 교파주의를 완화시켜 보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40

1802년 캠벨은 두 분리주의 교파가 연합하기 위해서 조직한 첫 위원회에 반공민파 대표로 활동하였고, 1804년 벨훼스트(Belfast) 지방회 때와 1805년 룰간(Lurgan)에서 열린 연합 모임 때에도 연합에 대한 노력을 힘썼다. 그러나 캠벨의 형제들은 1806년 글라스고우(Glasgow) 총회 때에 그의 계획에 반대하였다.(41

토마스 캠벨이 목회 하던 당시 교계의 상황은 분열을 거듭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토마스 캠벨이 아일랜드 애호리(Ahorey)에서 목회 하던 당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편협한 당파의식과 성서해석으로 인해서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었다. 1528년 2월 29일,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의 순교 후에 개혁교회는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560년, 요한 녹스(John Knox)가 장로교회를 설립하고, 일련의 정치적 종교적 전쟁들을 치른 후에는 장로교가 스코틀랜드의 국교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랐다. 그 유명한 국민 계약에서는 교회와 국가 모두가 배타적으로 칼뱅주의를 고수할 것을 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1643년 그 계약이 정치적으로 수정 해석되었고, 그것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계약자들(Covenanters) 혹은 개혁 장로교인들(Reformed Presbyterians)이라는 이름하에 독립된 교회와 협의회들(societies)을 구성하였다. 그 후에 국가가 교회의 동의 없이 성직자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였을 때, 알렉산더 에르스킨(Alexander Erskine)과 몇몇 목회자들이 1733년 국교와 분리하여 분리 장로교회(Seceder Presbyterian Church)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이 교단은 시의원들에게 요구되고, “국가 안에서 현재 인정된 종교”(the religion presently professed within the realms)를 지원토록 그들을 제한하는 서약이 자신들이 대항하는 국교 내에서 악습을 허용하는가의 문제로 1747년 갈라졌다. 서약을 받는 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반공민파”(Anti-Burghers)가 되었고, 그것을 찬성한 사람들은 “공민파”(Burghers)가 되었다. 그리고 각 교회는 서로 자기 교회가 참 교회라고 주장하였다. 1795년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과 본래의 국민 계약서에 주장된 시의 종교문관들(civil magistrates in religion)의 권한 문제로 “공민파”는 “옛빛 공민파”(Old Light Burghers)와 “새빛 공민파”(New Light Burghers)로 나뉘었고, 반공민파는 “옛빛 반공민파”(Old Light Anti-Burghers)와 “새빛 반공민파”(New Light Anti-Burghers)로 갈라졌다. 그리고 각 교회들은 자기 교회가 참 교회라고 주장하였다. 토마스 캠벨이 속해 있던 교회는 아일랜드의 옛빛 반공민파 분리 장로교회였다. 공민파의 서약은 순전히 스코틀랜드의 논쟁들이었으며, 아일랜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항구적으로 분리되기를 고집하였다.(42

성공적인 목회와 교회 연합 운동으로 인해서 신경성 복통을 얻었던 토마스 캠벨은 의사로부터 목회를 잠시 쉬고 바다 여행을 하라는 권유를 받고, 44살의 나이로, 1807년 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였다. 미국에 도착한 캠벨은 북아메리카 노회로부터 환영을 받았으며, 펜실베이니아 주 서부 지역에 위치한 차티어스 장로회(Chartiers Presbytery)에 소속되어 7월 21일 북버팔로(North Buffalo)에서 첫 설교를 하게 되었다.(43

그러나 그의 진보적인 생각과 설교로 인해서, 이단이란 소문이 8월 하순에 퍼지고 있었다. 9월경에는 이미 지도급 성직자들이 그에게 설교의 기회를 주지 않았고, 10월 31일 이후에는 모든 설교약속이 취소되었다. 다음해 1월초에 그는 공식적으로 기소되었고, 1808년 3월 8일에는 목회사역으로부터 정지처분을 받았다.(44 그리고 1808년 9월 18일, 캠벨은 차티어스 장로회로부터 탈퇴하였다. 이런 불이익의 원인이 성서적인 교회와 일치에 대한 그의 신념과 활동 때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장로교회들의 분열현상은 미국 땅에도 그대로 전달되었고, 토마스 캠벨은 미국에 와서도 북 아일랜드에서 경험했던 똑같은 아픔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이 캠벨로 하여금 더욱 성서적인 교회와 일치 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던 원인들이었다.

캠벨은 몇몇 동지들과 함께 펜실베이니아 주 워싱턴 군 근처에 위치한 아브라함 알터스(Abraham Altars)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캠벨은 설교를 하였는데, 이 설교의 마지막 결론은 “성서가 말하는 곳에서 우리는 말하고, 성서가 침묵하는 곳에서 우리는 침묵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축적되어서 결국 1809년 9월 7일에 <선언과 제언>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45 토마스 캠벨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809년 8월 17일 버펄로에서 열린 한 모임에 참석한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신앙 교파들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그들 대부분이 정해진 복음 사역에 대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위에서 명명된 신앙 협의회를 조직하는 것에, 선포 이후의 목적들을 위해서, 심사숙고 후, 만장일치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그들은 협의회를 결성하였고, 스물한 명의 회원을 임명하여 함께 모여 협의토록 하였으며, 복음사역자인 토마스 캠벨의 도움으로, 그들 협의회의 중요한 목적들을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을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 협의의 결과가 다음과 같은 <선언과 제언>이며, 협의회의 비용으로 협의회를 위해서 1809년 9월 7일 인쇄하기로 합의하고 결정되었다.(46

‘선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그리스도인 협의회’라 칭하였다.

2. 필요한 운영자금은 자율적인 기부금 납부에 의존하기로 하였다.

3. 다른 지역에서의 ‘협의회’ 조직을 권장하기로 하였다.

4. 협의회는 교회나 교단 혹은 통제기구가 아님을 천명하였다.

5. 성서에 입각한 단순한 복음만을 강조하였다.

6. 1년 임기의 총무, 회계, 상임위원회를 둘 것을 결의하였다.

7. 협의회 모임은 5월과 11월 첫째 목요일에 개최키로 하였다.

8. 협의회는 설교로 개회하고, 규정과 제안 및 회의록 낭독, 헌금의 순서로 진행할 것을 결의하였다.

9. 협의회 운영기금과 선교후원기금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개별적으로 후원하는 기금이라도 협의회 차원에서 사의가 표명되도록 하였다.

성서를 헌법으로 하는 “진리 안에서의 연합”이 강조된 ‘제언’에서는 13개 명제가 제시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지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조(헌법)적으로 하나이다.

2. 그리스도의 교회가 필연적으로 개별적이지만, 분열이나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된다.

3.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명시적으로 명하신 것이나 승인된 선례에 따른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신성한 의무나 친교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4. 신약성경은, 직접적이고 본래적인 속성에 있어서, 신약교회의 예배와 권징과 치리를 위한 완전한 헌법이며, 그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의무들을 위한 완전한 규범이다. 그것은, 마치 구약성경이 구약교회의 예배와 권징과 치리를 위한 것이고, 그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의무들이었던 것과 같다.

5.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어떤 인간의 권위로도 새로운 계명들이나 의식들을 강요할 수 없고, 친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6. 연역들이나 추론적인 진리들은 교회의 신앙고백 안에 어떤 자리도 가져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제한해서도 안 된다.

7. 진리들의 체계는,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인간의 논리적 사고의 결과물이므로, 그것들로 친교의 조건을 삼아서는 안 된다.

8. 입교인의 자격은 성경지식에 좌우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회개, 침례, 등)하겠다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9. 은혜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동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10. 분열은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을 낳는 끔찍한 악이다. 분열은 반(反)그리스도적이고, 반(反)성경적이며, 반(反)친화(자연)적이다.

11. 인간의 의견들과 고안들을 교회의 헌법, 신앙, 예배에 도입하여 친교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 지금까지 교회에서 일어났던 모든 부패와 분열의 원인들이었다.

12.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과 그분에게 순종하겠다는 고백이 없이는 입교자가 될 수 없고, 성품과 행실로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교인으로 남을 수 없으며, 초대교회의 모범대로 하지 않고, 인간의 의견들과 고안들을 덧붙이는 사람은 목회자로 남을 수 없다.

13. 성서가 침묵하는 곳에서 의식들을 준수하는 데 필요한 부수(정황)적 사항들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채택하되 교회에 다툼이나 분열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토마스 캠벨은 1854년 1월 4일 수요일, 한 달 부족한 91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가 썼던 방과 침대는 베다니에 있는 알렉산더 캠벨의 저택에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851년 6월 1일 88세 때에 베다니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였다. 이 때 그는 이미 실명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설교는 펜들턴(W.K. Pendleton)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본문은 마태복음 22장 37절이었다.(47

그가 택한 마지막 본문의 말씀대로, 그는 마지막까지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사랑했다. 그는 성서의 권위회복과 교회연합을 위해서 한 평생을 바친 인물이며, 위대한 환원사상가인 알렉산더 캠벨을 배출한 목사요, 교육가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각주

1) Thomas Campbell and Thomas Acheson, Declaration and Address of the Christian Association(Washington, Pa: Brown & Sample, 1809), reprinted by Lincoln Christian College Press, Lincoln, Illinois in 1983.
2) 역자주: 누가복음 2장 14절.
3) 역자주: 야고보서 3장 16절.
4) 역자주: 계시록 5장 2절.
5) 역자주: 시편 122편 6절.
6) 역자주: 요한2서 1-2절.
7) 역자주: 고린도전서 1장 10절.
8) 역자주: 학개 2장 4절.
9) 역자주: 출애굽기 14장 15-16절.
10) 역자주: 이사야 62장 10절.
11) 역자주: 계시록 11장, 11장 18절.
12) 역자주: 계시록 2장 26-27절.
13) 역자주: 이사야 52장 1-2절.
14) 역자주: 고린도전서 12장 7-10절.
15) 역자주: 베드로전서 4장 10절.
16) 역자주: 마태복음 19장 6절.
17) 역자주: 이사야 57장 13-14절.
18) 역자주: 이사야 59장 19절.
19) 역자주: 이사야 49장 22절 및 62장 10절 참고.
20) 역자주: 고린도후서 10장 4절.
21) 역자주: 시편 37편 11절.
22) 역자주: 다니엘 7장 18, 27절.
23) 역자주: 마태복음 12장 25절.
24) 역자주: 시편 94편 14-15절.
25) 역자주: 마태복음 18장 19-20절.
26) 역자주: 이사야 62장 7절.
27) 역자주: 이사야 62장 1절.
28) 역자주: 로마서 11장 25-26절.
29) 역자주: 호세아 5장 15절.
30) 역자주: 로마서 15장 7절.
31) 역자주: 요한일서 3장 23-24절.
32) 역자주: 요한복음 13장 35절.
33) 역자주: 요한복음 13장 34절.
34) 역자주: 요한복음 17장 11절.
35) 역자주: 요한복음 17장 20-23절.
36) William Herbert Hanna, Biography of Thomas Campbell Advocate of Christian Union, reprinted and distributed by College Press Publishing Co. Inc. in Joplin Missouri, pp. 23-24.
37) Alexander Campbell, Memoirs of Elder Thomas Campbell(Cincinnati: H.S. Bosworth, 1861), p. 9.
38) Morris Womack, Thirteen Lessons on Restoration History(Joplin, Mo.: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92), p. 68.
39) William Herbert Hanna, op. cit., pp. 25-26.
40) Hiram J. Lester, ed., "Preface to Abridged Edition," Declaration and Address, 175th Anniversary Abridged Edition, written by Thomas Campbell in 1809.
41) Ibid.
42) James DeForest Murch, Christians Only: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Cincinnati: Standard Publishing Co., n.d.), p. 37.
43) Alexander Campbell, op. cit., pp. 8-10; Morris Womack, op. cit., pp. 70-71.
44) Hiram J. Lester, op. cit.
45) Morris Womack, op. cit., p. 72.
46) Declaration and Address of the Christian Association, p. 90.
47) Morris Womack, op. cit., p. 74.

참고서적

Campbell, Alexander. Memoirs of Elder Thomas Campbell. Cincinnati: H.S. Bosworth, 1861.
Campbell, Thomas and Acheson, Thomas. Declaration and Address of the Christian Association. Washington, Pa: Brown & Sample, 1809. Reprinted by Lincoln Christian College Press, Lincoln, Illinois in 1983.
Cochran, Louis and Cochran, Bess White. Captives of the Word: A Narrative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the Christian Churches(Independent), and the Church of Christ. 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87.
Hanna, William Herbert. Biography of Thomas Campbell Advocate of Christian Union. Reprinted and distributed by College Press Publishing Co. Inc. in Joplin Missouri.
Lester, Hiram J. ed. "Preface to Abridged Edition." Declaration and Address. 175th Anniversary Abridged Edition. Written by Thomas Campbell in 1809.
McAllister, Lester G. Journey in Faith: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Saint Louis, Missouri: The Bethany Press, 1975.
Mills, Dean. Union on the King's Highway: The Campbell-Stone Heritage of Unity. 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87.
Murch, James DeForest. Christians Only: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 Cincinnati: Standard Publishing Co., n.d.
Webb, Henry E. In Search of Christian Unity: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 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1990.
Womack, Morris. Thirteen Lessons on Restoration History. Joplin, Mo.: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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