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9-09-11 16:11
1세기 교회질서04: 1세기 그리스도인(4)(딤전 1:12-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  

1세기 교회질서04: 1세기 그리스도인(4)(딤전 1:12-17)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바울시대에 그리스 로마인들은 인간에게 귀감이 되는 영웅들을 묘사할 때는 반드시 그들 곁에 조력자인 지혜와 용기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를 그려 넣었다. 헤라클레스가 헤라로부터 부과된 숙명적인 과업들을 수행해낼 때마다 아테나는 그의 곁에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이아손과 페르세우스와 같은 다른 영웅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테나는 그들을 능력으로 덧입혔고, 그들을 충성되게 여겼으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그들 곁에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테나는 헤라클레스가 조국 테베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을 때 그의 곁에서 함께 싸웠고, 스튐팔로스 숲의 새를 쫓을 때는 청동으로 된 딱따기를 만들어주었으며, 케르베로스를 잡고자할 때는 음부로 가는 길을 안내하기도 했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가 준 방패를 가지고 메두사의 모습을 비춰보며 접근하여 그녀의 목을 베었고, 벨레로폰은 아테나가 준 황금고삐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를 잡아타고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쳤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내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도움을 주었다.

반면에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생각에만 존재하는 가짜 신들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자신들을 능하게 하시고 충성되게 여겨 직분을 맡기신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는 바울의 고백일 뿐 아니라, 주께 은혜를 입고 성실히 살아온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설사 능력이 뛰어나고 충성스러울지라도 그들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주께서 덧 입혀주신 것으로 여길 뿐 아니라, 자신들의 성실함과 충성심조차도 주께서 베풀어주신 자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도 자기가 잘나거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부족하고 재주가 미천하지만 자비하신 주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한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바울은 바리새파에 속한 유대교인으로서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유대교는 교리를 믿는 종교가 아니고, 민족의 생사가 유일신 야훼와 맺은 언약의 내용인 율법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믿는 민족 종교요 실천 종교이다. 게다가 유대민족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육신의 문제였다. 따라서 유대교인들에게는 장차올 메시아가 영적이거나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야할 하등의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의 빼앗긴 주권과 추락한 명예와 고토를 되찾아줄 모세와 같은 선지자, 다윗과 같은 정치인이면 족하다. 따라서 바울도 혈기왕성하던 시절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슈아가 장차오실 자 메시아라는 주장,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주장,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주장,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그리스도교의 주장들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들의 위임장을 받아들고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기 위하여 주요 도시와 심지어 외국에까지 다녔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는 대로 공회에 넘겼고, 공회의 장로들은 그들을 비방하고 핍박하며 곤장을 치게 한 후 옥에 가뒀다. 여기서 공회란 회당을 말한다. 회당은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 열 명이상만 모이면 조직이 가능했기 때문에 다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반드시 회당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행위는 그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지나친 열심과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그의 이 열심과 열정은 도리어 그리스도 예수님께 은혜를 입는 계기가 되었다. 그 열심을 그리스도 예수님께 돌려놓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13-15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한 말씀의 뜻이다.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바울은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님께 긍휼을 입은 까닭이 16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예로 들어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자라도 그리스도 예수님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까닭을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13절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큰 죄라도 알지 못하고 행했다면 긍휼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16절 전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음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한없는 인내로 대하시고 오래 기다려주시는 분이심을 자기를 본보기로 삼아 보여주셨다는 뜻이다. 셋째는 16절 후반에서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죄인 중에 괴수”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자기에게 오래 참으시고 긍휼을 베푸신 까닭은 훗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생을 얻을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기위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14절에서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했다.”고 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은총과 믿음과 사랑이 자기에게 넘쳐흘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15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이다.”고 하였고, 17절에서는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하고 찬양하였다.

“그리스인들에게 신을 만들어준 사람은 호메로스(800?-750 BC)와 헤시오도스(740-670 BC)이다”는 말이 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이고, 헤시오도스는 신의 족보를 정리한 <신통기>의 저자이다. 신화는 통치자들에게 필요했지만, 오락이 필요한 평민들에게도 필요했다. 신들의 이야기는 연극무대에서 희화되었고, 인간보다 못한 신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종종 오버랩 되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신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신앙에서 신화를 철저히 배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