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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13 12:43
1세기 교회질서05: 믿음의 선한 싸움(5)(딤전 1:18-2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63  

1세기 교회질서05: 믿음의 선한 싸움(5)(딤전 1:18-20)

“선한 싸움을 싸우며”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 교회는 세 가지 고통을 겪고 있었다. 첫 번째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물리적인 박해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두 번째는 내부의 적대자인 이단자의 도전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으며, 셋째는 교회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질서문제, 치리문제, 예배문제 등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신약성경 뿐 아니라 구약성경조차도 그 대부분이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끈, 인내의 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권면하고, 박해자를 향해서는 기독교의 무흠함을 변호하기 위해서 펜을 들었다. 이단에 직면해서는 이단자들로부터 교회를 보수하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과 예배전통을 교회의 표준과 잣대로 세우고자 하였다. 또 교회가 성장하면서 발생된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할 목적으로 펜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는 3백여 년에 걸쳐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말쌀을 시도한 10여 차례의 대 박해(Great Tribulation)를 이겨내고 제국의 유일한 종교 곧 국교가 되었으며, 4세기 초부터 삼위일체론을 담은 신앙고백서들의 작성 등을 통해서 단일신론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선한 싸움에 힘썼다. 또 4세기 말부터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27권의 신약성경을 정경으로 확정짓고, 예배예전을 발전시켰으며, 사제직제도 등을 확립하였다. 다른 한편 이때부터 서서히 1천여 년에 걸쳐서 교회(가톨릭)는 적폐를 쌓기 시작했고, 결국 또 다른 선한 싸움 곧 종교개혁이란 대수술을 받아야했다.

디모데전서는 교회내부에 침투한 이단처리와 일군선임 등에 관해서 기록한 목회서신이다. 교회에 침투한 이단자들에 관련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두 차례나 당부하였다. 디모데전서 1장 18-19절에서 바울은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고, 6장 12절에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함으로써 이 선한 싸움에서 솔선수범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지난 2천년에 걸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선한 싸움의 역사였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디모데전서 1장 18-20절의 내용은 이렇다. 18절, “아들 디모데야, 전에 네게 선포된 예언의 말씀들을 회상하면서 이 지시를 내린다. 너는 그 예언의 말씀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 19절, “너는 믿음과 착한 양심이란 군함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과 양심을 버림으로써 파선하였다.” 20절 “그들 가운데에 히메내오스와 알렉산드로스가 있는데, 나는 그들을 사탄이란 적장에게 잠시 넘겼다. 그들이 사탄의 노예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모독했던 행위를 회개할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여기서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하라는 말씀은, 첫째, 4장 14절,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라.”에 연결된다. “전에”란 말은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를 말한다. 1세기 그리스도교에는 오늘날과 같은 총회나 지방회 조직이 없었다. 목사들도 없었다.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같은 이들은 떠돌이 목회자들이었고, 장로들이 개교회의 붙박이 지도자들이었다. 유대교 회당에는 보통 세 명의 장로들이 있었다. 그들은 회당장과 지방공회원(지방재판장)이기도 했다. 1세기 교회들에도 세 명의 장로들이 있었다. 그들은 목양자와 감독자였다. 디모데에게 안수한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를 바울은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라고 한 것이다.

둘째,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에서 예언은 안수식에서 장로들이 디모데에게 준 권면을 말한다. 이를 바울은 다른 말로 “네 속에 있는 은사”라고 하였다. 장로들이 디모데에게 권한 말씀 곧 디모데가 자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은사는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싸워야할 선한 싸움에 필요한 무기 또는 군함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아테나가 영웅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그들의 곁을 지키며 응원하고 격려한 것과 같다.

셋째,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하라는 말씀은, 6장 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다.”에 연결된다. 디모데는 소명과 사명을 받았다. 이 소명의식과 사명의식, 특히 많은 증인 앞에서 다짐했던 결심에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씀이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 디모데에게 본을 보이며 그의 길을 인도하였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바울은 선한 싸움의 무기로써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였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영웅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에 나가 싸운다. 영웅들은 거친 바다에 배를 띄우고 돛을 올린다. 영웅들은 높고 험한 가시밭길 산을 오른다. 영웅들은 미궁에도 빠지고 하늘도 날고 지옥에도 간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무모한 짓을 한 것은 아니다. 헤라클레스에게는 방망이가 있었고,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 아폴론에게는 백발백중하는 활이 그리고 아킬레우스에게는 방패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무기(타고난 재능)가 그들을 영웅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천하의 영웅호걸이라도 아무런 도움 없이 맞닥뜨린 난관을 헤쳐 간 것은 아니다. 헤라클레스나 오뒤쎄우스에게는 지혜와 용기와 전쟁의 신 아테나의 도움과 격려와 응원이 있었고, 페르세우스나 벨레로폰도 마찬가지였다. 아테나는 페르세우스에게 그가 메두사의 목을 벨 수 있도록 방패와 단칼을 건넸고, 벨레로폰에게는 그가 키마이라를 죽일 수 있도록 페가수스를 다룰 황금고삐를 주었다. 여신 헤라는 금양모피(황금양의 털가죽)를 찾아 거친 바다에 배를 띄운 이아손을 돕기 위해 마녀 메데이아가 이아손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이아손이 시련을 돌파할 수 있도록 마법의 힘을 써 돕게 만든다. 이아손이 금양모피를 지키는 용에게 잡혀 먹히는 순간에 아테나가 이아손을 돕고 나선다.

바울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거친 바다에 띄운 함선에 비유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착한 양심”은 헤라클레스의 방망이, 포세이돈의 삼지창, 아폴론의 활, 아킬레우스의 방패, 페르세우스의 방패와 단칼, 벨레로폰의 황금고삐, 이아손이 금양모피(황금양의 털가죽)를 찾아 거친 바다에 띄운 함선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리는 행위는 적에게 무장해제당한 것과 같고, 배가 파선당한 것에 같다. 바울은 그 같은 사람들 가운데 20절에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다고 하였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싸움의 무기인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렸다는 것이다. 20절에서 바울은 그들이 이미 파선 당했으므로 교회공동체에서 추방되었는데, 그 목적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모독하던 행위를 멈추고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도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모독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회개한 후 선한 싸움을 싸우는 선봉장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도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금 이 선한 싸움에 종군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