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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05 12:22
1세기 교회질서01: 믿음의 선한 싸움(1)(딤전 1: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2  

1세기 교회질서01: 믿음의 선한 싸움(1)(딤전 1:1-2)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1)

디모데전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하나님과 ...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는 바울과 동시대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네로 황제 시대의 주화에 적힌 “원로원의 법령에 따라”(EX SC)와 대조된다. 또 모세오경에 자주 쓰인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와도 비교된다. 바울은 개종하기 직전까지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행 26:10) 즉 안나스와 가야바로부터 받은 위임장을 지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공회(회당재판소)에 넘겼던 인물이었다. 그랬던 바울이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사도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을 지시하고 명령하는 주체 또는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재설정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가 지시받고 명령받는 말씀, 진리, 윤리, 도덕, 정의, 봉사 또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점검해볼 필요를 느낀다. 세상 사람들이 지시받고 명령받는 것들은 돈, 명예, 권력, 성공 또는 쾌락과 같은 것이고, 또 그것들을 얻을 수만 있다면, 윤리도 도덕도 정의도 진실도 짓뭉개버릴 뿐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 어떤 규칙도 지키지 않는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공과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얻는 일에도 힘써야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덜 성공하더라도, 좀 덜 갖더라도, 좀 덜 이루더라도, 그 과정과 방법과 수단이 옳아야하고, 성경말씀에 따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야한다. 이것이 1세기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있다. 바울시대에 ‘구주’는 ‘구원자’를 뜻하는 말로써 보통 신들과 황제들에게 적용됐던 용어이다. 이 당시 황제들은 신, 신의 아들, 신의 현현, 혹은 주(Dominus)로 불렸다. 피조물이 감히 신성을 참칭했던 것이다. 아무튼 바울 당시 황제들은 ‘구주’ 곧 ‘구원자’였던 셈이다. 반면에 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성의 권리를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만 돌리고 황제숭배를 거부하였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고, 죽음을 무릅쓴 일이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성삼위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나머지는 다 가짜 신 곧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거나 참칭된 우상들이라며 숭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믿었고 또 그 같은 신념 때문에 죽는다고 해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었다.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2)

반면에 헬라인들이나 로마인들이 그들이 믿었던 신들에 대한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했다는 기록을 거의 읽어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다신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그들이 굳이 유일신만을 고집하며 순교를 불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러 신들을 믿을 뿐 아니라, 그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신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황제가 인간이었을지라도, 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할 명분이나 실익을 찾지 못하였다. 당대의 주화들에 새겨진 문구들을 보면 당대의 백성들이 황제들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황제들은 국가와 시민의 보호자(PR VINDEX), 대중의 희망(SPES PVBLICA), 영원한 왕(PRINC PERP), 왕중의 왕(SHAHANSHAH), 공정한 통치자(AEQUITAS AVG), 행복(FELICITAS)과 자유(LIBERTAS)와 풍요와 행운(TYCH)과 운명(행운, FORTVNAE)과 평화(PAX, PACI)와 승리(NIKE)를 가져다주는 자, 국가와 백성의 수호신(THEOS), 하나님과 주(DEO ET DOMINO) 또는 주와 하나님(DOMINUS ET DEUS), 신의 아들(DIVI F), 신의 현현(THEOU EPIPHANOUS), 신성(DIVO, DIVI, DIVVS)으로 홍보되었고, 황제 신들을 위한 별도의 신전들을 세워 죽은 황제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 살아 있는 황제에게까지 분향하도록 강제하였다.

상당수의 현대인들은 무신론자임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그들 자신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많은 신들에 사로잡혀있다. 그들은 자기우상을 비롯해서, 철학자 베이컨이 말한 대로, 자기 편견에 맞는 사례에 마음이 동요되는 종족우상, 동굴에 갇혀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편협한 편견인 동굴우상,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면서 허구에 미혹되듯이 잘못된 논증이나 학설에 미혹되는 편견인 극장우상, 시장에서 조심성 없이 주고받는 여론에서 생기는 편견인 시장우상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

바울은 예수님을 소망으로 고백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하나님의 보좌 앞 성소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소망을 가질 때, 이 소망은 마치 우리 영혼을 위한 닻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을 하늘 성전의 지성소에 안전하고 든든하게 정박시켜준다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우리보다 먼저 그곳 하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셨는데, 멜기세덱 계열을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하셨다고 했다(히 6:19-20).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의 상징으로 당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허무셨고, 모든 장벽들을 제거해버리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하셨다. 또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은혜와 자비를 입고 때를 따라 필요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셨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 성소에 도달하여 그곳에서 영생할 새로운 살아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히 4:16, 10:19-20).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산 소망이시다. 비록 그 길이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색깔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려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피를 힘입지 않고서는 하늘 성전의 성소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것이다. 참고로 하늘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나 담장이 없다(계 4-5장).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대제사장처럼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담력” 또는 “담대히”의 뜻이다. 지상의 교회는 하늘 성전의 그림자요 모형이다. 당연히 예배당은 지성소와 성소의 구분이 없어야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색깔의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한다.

2절에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빌고 있다. 또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와는 믿음 안에서 이뤄진 부자지간임을 밝히고 있다. 유대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식탁은 제단이며, 아버지는 제사장이요, 교사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다. 유대인들은 친부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불렀고, 바울도 디모데, 디도, 오네시모를 “아들”(딤전 1:18), “신실한 아들”(고전 4:17), “사랑하는 아들”(딤후 1:2), “참 아들”(딤전 1:2, 딛 1:4), “나의 아들”(몬 1:10)로 불렀다. 베드로도 마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벧전 5:13). 이런 점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