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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5-16 16:45
출애굽기38: 성막 뜰 기구 제작(출 38:1-3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294  

38. 성막 뜰 기구 제작(출 38:1-31)

출애굽기 38장 1-7절은 번제단 제작에 관한 내용이다. 이 단은 제물을 태워 드리는 단이기 때문에 ‘번제단,’ 혹은 놋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놋단’이라 부른다. 그러나 전체를 놋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조각목으로 사방 5규빗(2.25m), 높이 3규빗(1.35m) 크기로 제작한 다음 놋으로 싼 것이다. 넓이는 1.5-1.6평 정도이다. 재통, 부삽, 대야, 고기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 그물, 고리와 같은 부속기구들도 모두 놋으로 만들었다.

놋은 십자가를 상징하고, 조각목은 버림받은 인간을 상징한다. 제단은 하나님께 속죄예물과 감사예물을 바치는 곳이다. 버림받은 인간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감싸질 때 비로소 속죄함을 받고 감사할 이유를 갖게 된다. 조각목이 놋으로 감싸지듯이 죄로 인해서 버림받은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능력을 믿고 의지할 때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번제단의 네 모퉁이는 뿔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 한다. 고대근동에서는 뿔을 힘과 권세의 상징으로 여겼다. 레위기 4장 25절을 보면,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얼마 받아다가, 손가락으로 찍어서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바닥에 쏟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제물을 번제나 화제로 바치기 전에 그 제물의 피를 제단 모퉁이 뿔에 발랐던 것이다(레 4:18). 이 의식은 단을 깨끗케 하는 예식이었다. 레위기 8장 15절을 보면, “모세는 그 수소를 잡고, 그 피를 얼마 받아다가 손가락으로 찍어서 제단의 뿔에 두루 돌아가며 발랐다.”고 했고, “그렇게 하여서, 모세는 제단을 깨끗하게 하였으며, 또 나머지 피는 제단의 밑바닥에 쏟아서 제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였다.”고 했다.

희생제사에서 제물의 피를 제단 뿔에 바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갖는 속죄능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제단 뿔을 붙잡고 탄원을 하면 억울한 누명이나 실수로 인한 범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면을 받을 수도 있었다(왕상 1:51). 어떤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회개하면 그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새찬송가 268장의 가사처럼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은 보혈의 능력, 주님의 보혈이다. 주님의 보혈에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을 믿자.

출애굽기 38장 8절은 물두멍 제작에 관한 내용이다. 이 물두멍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청동거울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필수품인 거울을 물두멍 제작을 위해서 드렸다. 자신이 쓰고 남는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하고 아끼는 물건을 드렸다. 따라서 여인들의 미용에 쓰이던 거울이 이제 하나님의 종들의 성결을 위해서 쓰이게 되었다.

물두멍은 성소 뜰, 곧 성소 바깥마당에 놓였다. 정확하게는 성소와 번제단 사이에 놓였다.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 자신을 위해서 이곳에서 수족을 씻어야 했고,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하나님 앞에 사를 때에도 수족을 씻어야 했다.

성막에 쓰인 놋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그리고 물은 침례를 상징한다. 따라서 놋으로 만든 물두멍의 물로 수족을 씻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과 구원받은 것을 침례와 세례를 통해서 공증을 받고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소에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또 제단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예배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물두멍의 물로 씻어 죽음을 피하라(출 30:20)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런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출애굽기 38장 9-20절은 성막 뜰에 친 포장 제작에 관련된 내용이다. 성막 뜰의 크기는 남편과 북편이 각각 100규빗(45m), 동편과 서편이 각각 50규빗(22.5m)으로써 306평 정도이다. 울타리는 5규빗(2.25m) 높이로 세마포로 쳤다. 기둥은 5규빗(2.25m)에 하나씩 세웠고, 각 기둥은 놋받침을 만들어 받쳤다. 그러니까 성막 뜰의 경계를 표시할 울타리를 치는데 2.25미터 기둥 60개, 놋받침 60개, 2.25미터 폭 세마포가 126미터 필요했다. 또 각각의 기둥에는 은갈고리와 은가름대와 놋말뚝들을 필요로 했다.

성막의 뜰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신성한 장소이다. 속죄를 위한 제사가 드려지고, 회개와 씻음이 이뤄지던 곳이다.

성막문은 동쪽에 하나뿐이었다. 크기는 20규빗(9m)에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포장으로 만들어졌다. 문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구원에 이르는 문은 오직 하나뿐임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성막 밖의 인간이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거룩한 처소인 성막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동편문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하고 새로운 생명의 길이 생명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상징한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38장 21-31절은 성막제작에 쓴 재료의 물목과 비용에 관련된 내용이다. 24절을 보면, “성소 건축 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대로 29달란트와 730세겔”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 한 달란트가 34킬로그램이다. 29달란트이면 986킬로그램에 해당된다. 그리고 한 달란트는 3000세겔이다. 730세겔이면 8.27킬로그램에 해당된다. 성막에 들어간 금의 총량은 994.27킬로그램, 곧 265,138.7돈이 된다. 금 한 돈에 18만2천 원가량으로 보면, 482억 5천5백만 원에 해당된다. 성막에 들어간 은, 놋, 가죽, 천 가격까지 합치면 엄청난 비용이 산출될 것이다. 19평 크기가 채 못 되는 공간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성막을 제조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귀한 정성과 희생으로 하나님을 모실 성막을 제조했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금이나 은이나 돈의 액수를 보려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선민’이란 자부심을 가졌던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과 정성과 희생을 보았으면 한다. 성막에 쓰인 금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질 수도 있겠지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성화되어지고,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의 교회의 뼈대를 구성하게 된 아름다운 결과에 비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금이란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하며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성도들이 본래 금과 같은 존재들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금으로 도금된, 곧 금으로 덧입은 존귀한 존재들이 되지 않았는가? 따라서 성막에 쓰인 금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하나님을 모신 곳의 신성함과 소중함과 하나님의 가족이 된 성도들의 성화와 영화로움과 존귀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은의 양이 100달란트와 1775세겔(20.12킬로그램), 곧 3,420.12킬로그램이었고, 또 놋이 70달란트와 2400세겔(27.2킬로그램), 곧 2,407.2킬로그램이나 되었다. 금은놋의 양을 다 합할 경우 귀금속의 무게가 무려 6.8톤이나 된다. 어마어마한 귀금속이 성막제작에 쓰였던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성과 희생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하나님을 모신 곳의 신성함과 하나님의 가족이 된 성도들의 성화와 영화로움과 존귀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세상으로부터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할지라도,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쓸모없는 조각목으로 보기 때문이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입고 침례와 세례를 받아 구원에 대한 공증을 받은 성도들을 금은놋보다 더 귀하게 더 존귀하게 더 영화롭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보는 입장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는 입장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을 갖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