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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21 18:37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2_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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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

강연: 하비 C. 브림 2세(Harvey C. Bream, Jr.)

번역: 조동호

역자 서문

이 자료는 신시내티기독대학교 및 성경대학원(Cincinnati Christian University and Cincinnati Bible Seminary)의 총장을 역임했던 하비 C. 브림 2세(Harvey Cleveland Bream, Jr.) 목사가 1989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총 4회에 걸쳐서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싸우스이스트그리스도의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 in Orlando Florida)에서 행한 강연,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를 녹음한 4개의 오디오테이프들에 담긴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역자는 이들 오디오테이프들을 오디오 파일들로 변환하였고, 이것들을 다시, 불완전하고 오류가 많을 테지만, 아무튼 문자화하였다. 그리고 이 오디오테이프들을 손에 넣은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우리말로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디오 파일들과 텍스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http://kccs.info) <그리스도의 교회>난 게시판 46-54, 81-89번에서 듣고 읽고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kccs.info/with_home/bbs/board.php?bo_table=history

하비 C. 브림 목사는 95세를 일기(一期)로 2018년 12월 1일 소천하였다. 하비 브림은 영감을 주는 교사, 설교자, 전도자, 찬양리더, 저자, 편집자, 학장, 총장, 이사였다. 그는 76주 이상 산상집회(Christian Service Camp)와 452주 이상 부흥집회를 인도하였고, 세 개의 교회들을 설립하였으며, 일곱 개의 교회들의 설립을 후원하였다. 그밖에도 그는 수많은 컨벤션들, 모금을 위한 집회들(faith-promise rallies), 세미나들, 부흥회들, 청소년 집회들, 남성 집회들, 리더십 집회들에서 강연하였다. 신시내티 기독대학교에서는 22년간 개인전도학을 강의하였고, 67년간 ‘그리스도인환원협회’(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독립 그리스도의교회들 곧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의 후원을 위한 단체)의 이사로 섬겼다.

강연내용은 총 6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개론(INTRODUCTION): 신약성경교회, 어떻게 시작되었는가?(The New Testament Church: How It All Began). 

제2부 배도(100-1517) [THE APOSTASY(100-1517)]: 무엇이 교회에 잘못되었는가?(What Went Wrong with the Church?).

제3부 그리스도교(개신교) 개혁(1517-1800) [THE PROTESTANT REFORMATION(1517-1800)]: 돌아가는 길(The Road Back). 

제4부 환원운동(1793-1900)(출범과 성장) [THE RESTORATION MOVEMENT(1793-1900) (Beginnings and Growth)]: 하나의 새로운 시작(The Restoration Movement: A New Beginning). 

제5부 환원운동(1900-1969) (배도) [THE RESTORATION MOVEMENT(1900-1969) (Apostasy)]: 제20세기 배도, 또 다른 잘못된 회전(The 20th Century Apostasy: Another Wrong Turn). 

제6부 환원운동(1923-1974) (부활) [THE RESTORATION MOVEMENT(1923-1974) (Resurgence)].

아래의 강사소개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싸우스이스트그리스도의교회 목사가 1989년 9월 10일 저녁 집회 때 초청강사인 하비 C. 브림 2세를 집회 참석자들에게 소개한 내용이다.

강사 소개

우리는 여러분을 초대하였습니다. 연속해서 말씀들을 전해주실 하비 C. 브림(Harvey C. Bream)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위치한 포레스트대일그리스도의교회(Forest Dale Church of Christ in Cincinnati Ohio)의 목사입니다. 그분은 신시내티성경대학의 학장과 동기관의 총장(chancellor)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는 이전에 300회 정도, 부흥회들, 주간 집회들, 산상집회들(camps) 및 그 같은 수백회의 집회들에서 설교하셨던 전반적으로 부흥전도자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입니다. 그의 가족은 근본적으로 설교자들의 집안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의 아버지, 그의 형제, 세 명의 동서들, 두 명의 아들들, 한 명의 삼촌, 두 명의 조카들, 한 명의 사위가 설교자이고, 세 명의 손자들이 장래의 설교자들입니다. 그간 그를 우리 교회에 모실 기회가 없었는데, 우리는 이번에 하비 목사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소재한 ‘그리스도인환원협회’(the 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in Cincinnati Ohio)를 위해 전 미주(美洲)들을 순회한 전도자로 섬겼고, 3개 교회들을 세우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포레스트대일그리스도의교회인데, 1989년 신시내티성경대학의 총장직에서 은퇴하신 후 설교 목사로 복귀하셨습니다. 그리고 브림 형제님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나오실 때 우리 모두 기쁨으로 그분을 환영합시다.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오실 때 그분을 열렬히 맞이합시다.

환원운동사(RESTORATION HISTORY)

신약성경교회로의 환원(RESTORATION TO THE NEW TESTAMENT CHURCH)


제2부 배도(100-1517) [PART II THE APOSTASY (100-1517)]: 무엇이 교회에 잘못되었는가?(What Went Wrong with the Church?).

아, 하지만 모든 것이 가장 신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젯밤에 여러분은 매우 집중해서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연속 집회가 매우 유익하고 도움이 되고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라는 이 주제를 아주 신속히 복습해보겠습니다. 어제 저녁에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전적으로 시작되었는지를 함께 논의했습니다. 우리는 주후 30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진 것과 이 교회, 곧 신약성경 속의 교회를 그 이상을 따라 회복하려는 우리들의 오늘날의 노력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밤에 우리는 바로 그 환원이란 용어가 무언가가 손실되었음을 함축한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조리법에 대한 두어 가지 예화를 사용하였고, 그 중 하나는 우리가 그 조리법을 다시 찾았고, 그것을 회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경우 우리는 같은 재료, 같은 방법, 같은 양을 사용하여 우리는 처음과 같은 결과를 얻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돌아와서 신약성경에 있는 교회에 대해 읽을 수 있고, 그것의 가르침과 설교와 우리가 말하고 실천했던 방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우리는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위조품을 식별하는 방법에 대한 예화를 사용하였습니다. 모든 위조품을 연구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들이기보다, 우리는 단지 진품인 정품을 취하고 진품임을 나타내는 모든 표시들을 식별할 수 있다면, 대조적으로 자동적으로 우리는 위조품을 모조리 식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의 제안은 기꺼이 신약성경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계시된 교회를 연구하고 진품인 것을 나타내는 모든 표시들을 식별하며, 그것이 말한 것, 그것이 실행한 것, 그것을 실행한 방법을 식별하려는 것입니다. 그 경우 대조적으로 자동적으로 우리는 위조품을 모두 식별할 것입니다.

그리고 회복될 필요가 있는 교회를 보십시오. 우리는 그것의 특성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힘썼습니다. 어젯밤에 우리가 함께 숙고한 여섯 가지 특성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신조입니다. 두 번째는 입회 조건입니다. 세 번째는 집합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사용된 이름들입니다. 네 번째는 준수한 의식들(침례, 주의 만찬)입니다. 다섯 번째는 교회 정치 또는 조직 및 관리입니다. 여섯 번째는 그것의 권징과 규약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가 누렸던 일치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밤 지금 우리의 두 번째 강연의 주제인 “무엇이 교회에 잘못되었는가?”를 다루게 됩니다.

서론: 신약성경 규범으로부터의 이탈(INTRODUCTION: The Departure from the New Testament Norm)

정의 – 타락; 믿음의 원칙들을 저버림(Definition – The falling away; the abandonment of principles of faith).

예언됨 – 사도행전 20:28-31; 디모데전서 4:1-3; 디모데후서 4:1-4; 데살로니가후서 2:3-7(Foretold – Acts 20:28-31; 1 Timothy 4:1-3; 2 Timothy 4:1-4; 2 Thessalonians 2:3-7).

우리는 오늘 저녁에 대략 주후 100년부터 서기 1517년까지 배도에 관한 분야를 다룰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암흑기 또는 우리의 세계사의 중세시대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 기간 동안에 성경은 문자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쇠사슬에 묶인 책이 되었기 때문이며, 물론 성경 사본들은 손으로 정밀하게 필사되어야 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매우 희귀하고 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묶었고, 도난방지를 위해서 문자 그대로 쇠사슬에 묶인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비유적으로도 교회가 무류한 해석 없이는 여러분의 성경을 이해할 수 없고, 무류한 해석은 물론 교회와 사제들의 대표자들을 통해 왔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암흑시대입니다.

이제 신약성경의 규범으로부터의 이탈은 그것이 예언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나타낸 역사를 그들이 검토할 때 사람들을 놀래게 해서는 안 되는 놀람으로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만약 저와 함께 사도행전 20장을 펼치신다면, 이것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그 큰 교회의 장로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것입니다. 여기 28절에서 시작하여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또 여기 4장에서 디모데에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기 처음 세 구절에서 우리가 읽는 것에 주목해주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또 여기 디모데후서 4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젯밤에 그것을 읽었기 때문에 오늘 밤 그것을 읽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그의 데살로니가후서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씁니다. 그가 여기 2장 7절에서 시작하는 말씀에 주목해주십시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그리고 다시 저는 제가 인용한 이들 참고 구절들에 관해 어젯밤에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연구가 아닙니다. 여러분들께서 갖고 계신 성구사전들과 참조문헌들을 참고하셔서 그들이 믿음에서 타락할 때가 올 그 시기에 관한 많은 다른 예언들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젯밤에 살펴본바와 같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교회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일치를 위한 기반의 믿음을 중시한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하고 제시한 그들의 원칙을 중시하는 한, 매우 빠른 성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함께 검토했습니다.

I. 교리와 도덕적 배도(I. Doctrinal and moral apostasy)

지금 우리는 타락 혹은 원칙들이나 믿음의 저버림을 단순히 의미하는 교리적 배도와 도덕적 배도의 비극적인 시기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A. 사제 계급의 등장(사제 계급 제도 – 통치자 집단 – 서열의 등장, 교회 통치 체계)[A. Rise of the clergy (hierarchy – a body of rulers – rising in order, a system of church government)]

무엇보다도 먼저 사제 계급 제도의 등장, 위계적인 교회 체계, 통치자 집단, 서열의 등장, 교회 통치 체계에 있어서 증거가 시작되었습니다.

B. 성경적 – 장로들, 목사들, 감독들(동의어 – 동일한 직분을 가리킴)[B. scriptural – elders, pastors, bishops (synonymous – referring to same office)]

어젯밤에 우리는 성경적인 교회 조직을 검토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장로들, 목사들,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용어들이 동일한 직분과 기능을 말하며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1. 관행의 변화 - 치리 장로, 한 사람이 교회의 그룹들에 미치는 영향력 확장(디오드레베, 참조. 요한 3서 9절)[1. Change in practice – ruling elder, extension of influence of one man over groups of churches (Diotrephes, cf. III John 9)]

그러나 그들은 점차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요한 3서 9절에서 사도 요한은 특별히 그 절에서 디오드레베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언급합니다. 요한이 그 친구에 대해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요한은 그가 “교회에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로나 감독이 성격상 더 외향적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수한 지식 때문에 치리 장로 또는 치리 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시 교회들은 지리적으로 더 전략적으로 위치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훨씬 더 크고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도시 교회들은 외곽에 있는 더 작은 교회들에 대한 감독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이 한 사람 치리 감독(주교) 혹은 치리 장로로 귀결되었으며, 이들 교회들에 대한 감독수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 구조는 점진적으로 점점 더 확장되었고, 급기야 동방 교회의 치리 감독들 중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동방 교회들을 감리(監理)할 한 사람을 콘스탄티노플에서 뽑고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 서방에서의 지배적인 영향은 서방교회들 중에서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방 교회들을 감리(監理)할 치리 감독(주교)을 로마에서 뽑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서방 교회들의 치리 감독(주교)을, 콘스탄티노플에 동방교회들의 치리 감독(주교)을 두었습니다. [역자 주: 여기서 동방은 그리스가 포함된 지중해 동쪽 헬라어문화권을 말한다(예: 정교회). 반면에 서방은 이탈리아가 포함된 지중해 서쪽 라틴어문화권을 말한다(예: 가톨릭교회).]

2. 사제들, “주교들,” 대주교들, 추기경들(2. Priests, “bishops,” archbishops, cardinals)

그런 다음 점차적으로 새로운 계급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 사제라는 용어가 채택되기 시작했고, 사제직이 확립되었으며, 이러한 종교적 위계질서는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주교(감독)라는 용어가 사제보다 상위 계급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때의 주교는 신약성경에서 쓰인 감독이란 말의 쓰임새가 아니고, 이처럼 새로운 쓰임새를 말합니다. 그런 다음 주교 위에 대주교들이 있었고, 대주교들 위에 추기경들이 있었으며, 그리고 그런 다음 결국 교황이 나타납니다.

이제 이런 교회 구조 확장이 이뤄진 이 모든 기간에 이 모든 것에 대한 큰 반대가 있었습니다. 매우 논쟁적인 이슈로, 그것이 간섭하는 감시로 간주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히브리 제사장직에서 채택된 성의(聖衣)가 착용되기 시작한 것은 주후 257년이었습니다. 성의들은 로마의 주교인 스테파누스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Porters(문지기守門品), Sextons(교회지기司察), Readers(독서자講經品), Subdeacons(차부제次副祭品) 및 Deacons(부제副祭品)와 같은 계급들이 주후 290년에 만들어졌습니다.

C. 비성경적 도입들(C. Innovations)

1. 성수(약 117)[1. Holy water (c. 117)]

이제 좀 더 연대순으로 역사적 발전을 살펴봅시다. 비성경적(인위적) 도입(제도)들이 교회에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수 사용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주후 117년에 있었으며 알렉산더 1세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자 그가 그것을 그리고 그 후로 사용한 이유는 마귀를 두려워해서, 은총을 입기 위해서, 성례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불임치료를 위해서, 선(善)의 증가를 위해서, 혹은 건강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들은 몇 가지 다양한 이유들이었습니다. 성수 사용에 대한 합리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관행은 이후의 교부들에 의해서 이교적 관습으로 정죄되었습니다.

2. 사순절(140)[2. Lent (140)]

사순절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주후 140년에 여기서 언급됩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완전하게 소개되지 않았지만, 로마의 주교인 텔레스포로(Telesphorus, 137년경 사망)에 의해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3. 유아 세례 – 이레네우스(Irenaeus)가 최초 언급(약 170)[3. Infant baptism – first mentioned by Irenaeus (c. 170)]

그런 다음 여러분은 유아세례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을 보시게 됩니다. 이레네우스가 170년경에 처음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그러나 유아들의 침수세례는 침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예외는 규칙이 아닌 교회에서 매우 주의를 기울였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슈였습니다.

4. 연옥(기원 – 230, 그레고리 – 593)[4. Purgatory (Origin – 230; Gregory – 593)]

자 동방교회는 연옥을 결코 믿지 않았습니다. 연옥은 주후 230년에 오리게네스에 의해서 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이 불을, 심지어 마귀조차도, 통과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오, 이것은 교회의 공의회에서 단호히 정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주후 593년 그레고리우스 대제는 가족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면 사제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5. 병상 “침례” – 노바티아누스(Novatian, 약 250)[5. Clinical “baptism” – Novatian (c. 250)]

그런 다음 여러분은 병상 침례에 이르게 됩니다. 자 250년에 이것은 정말 첫 번째 큰 이탈이었습니다. 노바티아누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침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를 옮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로부터 허가를 받아 노바티아누스에게 물을 부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그 사람 위로 일곱 배럴(7x159L=1,113리터)의 물을 부었습니다. 그것은 거의 침수세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복되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노바티아누스에게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는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그들은 “병상 침례”(Clinical Baptism)라고 불리는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것은 극도로 논쟁적이었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6. 콘스탄티누스의 회심(312) – 국가 종교[6. Conversion of Constantine (312) – State Religion]

그런 다음 여러분 모두는 콘스탄티누스가 로마황제가 된 역사를 상기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전설적으로 콘스탄티누스가 하늘의 환상을 보았고 그의 개종이 그것에 기인됐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심지어 자신의 열정 때문에 일부 군대를 개울 근처로 행진시켰고 개종여부에 전혀 상관없이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그들은 로마를 그리스도교화하기보다는 그리스도교를 로마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또한 영리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제국이 급속히 붕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아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 정치적 조치로 빠르게 붕괴되는 제국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7. 원죄 – 아우구스티누스 (4세기)[7. Original sin – Augustine (4th Century)]

그런 다음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영향력 있는 한 인물이자 초대교회 교부들 중 한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에 도달합니다.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 특정한 교리에 대해 들으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그가 전적인 유전적 타락의 교리를 가르치게 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는 얼룩과 유죄가 또한 모든 사람에게 유전된 아담의 죄의 결과라고 가르쳤습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는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 아기는 그에게 전가된 아담의 죄의 얼룩과 유죄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것일 뿐이고, 다시 유아세례를 국교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친 것이 사실이라면, 또 성경이 침례가 죄 사함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우리는 아기들을 데려다가 침례를 베푸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매우 논쟁적인 이슈입니다.

8. 니케아 공의회(325)[8. Council of Nicaea (325)]

그런 다음 여러분은 회피하고 싶은 중요한 날짜에 다다릅니다. 주후 325, 이것은 최초의 대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일차적으로 이 모든 교리적 이탈(변개), 신제도들 및 관행들의 도입으로 인해 소집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니케아 신조라 일컫는 최초의 인위적(비성경적) 신조를 작성한 것은 이 공의회였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신조의 작성자들은 진심으로 동기를 부여받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든 이단이나 거짓 가르침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교회의 모든 기본적인 근본 교리에 협력하는 신앙 진술서를 작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니케아 신조를 거의 사용할 수 없었고 교회 내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며 여러분이 신조에 협력한 것들 중 일부를 우리는 이단으로 간주합니다.”라고 강력히 반발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라틴어 회기를 시작하였고 교회 공의회들의 회기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교회 공의회는 여러 번 앞선 교회 공의회들을 저주하며 정죄하였고, 새로운 신조들을 작성하였으며, 또 앞선 신조들에서 합법적 상태에서 대책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교회는 암흑시대라 불리는 시기 즉 우리의 세계사의 중세시대라 불리는 시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9. 사제직의 독신(생활)(305; 314; 692; 1015; 1074; 1123)[9. Celibacy of the priesthood (305; 314; 692; 1015; 1074; 1123)]

그런 다음 우리는 305년 스페인의 엘비라 공의회(Council of Elvira)에서 처음 도입된 사제직의 독신에 이르렀고, 314년 네오-카이사레아 공의회(Council of Neo-Caesarea)에서도 이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주후 692년에 소집된 제6차 총 공의회는 사제직의 독신(생활)의 관행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1015년 공의회에서 그것은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음 1074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사제직의 독신을 다시 의무화했습니다. 그런 다음 1123년, 이것은 제1차 라테란 공의회(the First Lateran Council)의 시기였습니다. 독신은 강권(권위)적으로 강요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관행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아실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제정되었고, 그런 다음에 정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그것들은 다시 제정되었고, 그런 다음에 정죄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은 강권(권위)적으로 강요되었습니다.

10.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380)[10. Praying for the dead (380)]

그런 다음 우리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에 다다릅니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가 사망한 때 380년에 시작되었고 그들은 영혼 곧 그 몸을 위해 그 영혼을 대신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자 이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는 연옥 교리가 충분히 발전되기까지는 충분히 발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보편적으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역자 주: 콘스탄티누스는 337년에 사망하였다. 380년은 밀라노에서 테오도시우스 대제가 암브로시우스 주교로부터 침례를 받은 해이다.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도 그로부터 7년 후인 387년에 암브로시우스 주교로부터 침례를 받았다. 참고로 암브로시우스는 374년에 침례를 받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주교로 임명되었다. 당시 암브로시우스는 밀라노에 주재한 집정관이었다.]

11. 사적고백(390)[11. Private confession (390)]

그런 다음 우리는 사적고백(고해성사)에 다다릅니다. 자 사적고백이 390년에 도입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공개적인 죄의 자백(공동참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공개적으로 자백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들로 하여금 심지어 새로 관리자를 세워 그가 이 모든 죄의 고백들에 먼저 소리를 지르게 함으로써 그 중 누구도 너무 수치스럽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390년 여기서 공동참회가 사라졌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러한 공동참회들 중 하나의 결과들로 인해 콘스탄티노플 시 전체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스캔들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사적고백(고해성사)을 원했던 것입니다.

12. 로마 주교에 의해서 처음 사용된 ‘교황’ 칭호(400)[12. Title “pope” first used by bishop at Rome (400)]

자 ‘교황’이라는 칭호는 톨레도 공의회(Council of Toledo)가 열렸던 400년에 로마의 주교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13. 로마 주교 레오가 서방교회들에 대한 최고 권위자로 선언(450). (그레고리 7세 – 유일한 교황임을 선포 – 1073)[13. Leo, bishop of Rome, declared supreme authority over Western churches (450). (Gregory VII – decreed only pope – 1073)]

그런 다음 우리는 로마 주교 레오에 다다릅니다. 450년에 그는 자기 자신을 서방 교회들에 대한 최고 권위자로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 7세는 그때 로마 공의회(Council at Rome)에서, 이 공의회는 1073년에 있었습니다, 자신이 유일한 교황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로마 주교에 의해서 배타적(독점적)으로 최초로 참칭된 이 칭호를 보시게 됩니다.

14. 성인들의 호칭 기도(사적 – 470, 공동 – 600)[14. Invocation of saints (private – 470; publicly – 600)]

그런 다음 여러분은 성인들의 호칭 기도에 다다릅니다. 우선 그것은 사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470년(43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소스토무스의 시신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의 시신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황제(테오도시우스 2세)는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크리소스토무스에게 그를 박해한 자신의 부모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 미신은 교부들에 의해 책망되었습니다. 600년까지, 그런 다음 성인들의 호칭 기도는 성인들에 대한 공동 청원 혹은 공동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그것은 아직 공식적인 교회 교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5. 성체성사(490)[15. The Eucharist (490)]

그런 다음 여러분은 490년에 성체성사가 제정되거나 시작된 때에 다다릅니다. 자 이 때는 한 종류 곧 한 덩어리 빵으로 성찬을 떼는 것이 도입된 때였습니다. 이때에 중요한 인물들이나 권세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포도주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포도주가 영성체에서) 제외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주교였던 레오와 겔라시우스(젤라시오)는 이것을 정죄하였고, “영성체는 주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빵과 포도주) 전체를 받든지, 아무 것도 받지 않든지” 하라고 명령했다고 그들은 말하였습니다.

16. 성상들(500, 니케아 공의회 – 787 승인)[16. Images (500; Council of Nicaea – 787 sanctioned)]

그런 다음 여러분은 500년에 아이콘의 도입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것들은 단지 역사적 기념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방 교회인 콘스탄티노플은 754년에 이것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방교회)는 이것(정죄)을 무시하였고, 그들은 767년에 그것을 허용(존중)했으며, 789년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에서 그들은 예배에서 성상들이나 아이콘들의 사용을 승인하였습니다.

17. 병자(종부)성사(528)[17. Extreme Unction (528)]

그런 다음 여러분은 528년에 병자성사 교리에 다다릅니다. 이때는 그들이 병자들에게 기름부음을 가르쳤던 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후(extremis) 또는 죽음의 시점이란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주교인 펠릭스 4세(Felix IV)는 죽음의 순간에 최후를 맞는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바르는) 이 병자성사의 관행을 도입한 사람이었습니다.

18. 보편 주교 – 콘스탄티노플의 요한 총대주교(595)[18. “Universal Bishop” – John patriarch of Constantinople (595)]

그런 다음 성직, 보편 주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으며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습니다. 보편 주교라는 용어는 주후 595년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요한에 의해 채택되었습니다. 그가 이 성직을 독점하자 로마의 그레고리우스는 충격을 받았고, 이것을 비난하며, 그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보편 주교라고 일컫는 자는 적그리스도의 선구자이다”라고 썼습니다.

19. 라틴어 미사(666; 1215)[19. Mass in Latin (666; 1215)]

그런 다음 여러분은 미사에서 라틴어 사용에 다다릅니다. 자 로마 주교 비탈리아누스(Vitalianus)가 이것을 처음 도입하였고, 666년에 미사는 라틴어로 읽혀야 한다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날짜에 대해 뭔가 중요한 것이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구속력을 갖는 법령이 아니었지만, 1215년에 라테란 공의회(Lateran Council)는 그 관행을 완화했습니다.

20. 교회와 국가의 통합(728)[20. Church and State combined (728)]

그런 다음 728년은 교회와 국가가 통합된 날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교회가 여러분의 모든 정치적 및 통치적 활동에서 지배적임을 알게 됩니다.

21. 사면(750)[21. Absolution (750)]

사면. 로마 가톨릭 역사가 플루리(Flury)는 여기서 “750년은 죄를 고백한 후 참회자들에게 사면이 주어진 가장 이른 발생시기이다.”라고 말합니다.

22. 분향(790)[22. Incense (790)]

주후 795년에 그런 다음 처음으로 예배에 향이 사용되어야한다고 명령한 사람은 교황 레오 3세(Leo III)였습니다.

23. 교회전통 수용(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869년)[23. Tradition accepted (Fourth Council of Constantinople – 869)]

그리고 그런 다음 869년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있었고, 교회전통을 수용해야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자 그들은 구전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기록된 전통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심지어 기록된 전승이라도 성경말씀과 대등하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가 있고 나서야 전통의 권위가 성경말씀과 대등하다는 것이 받아들여졌습니다.

24. 성인 시성(884, 승인 – 1160)[24. Canonization of saints (884; authorized – 1160)]

그런 다음 여러분은 884년에 다다릅니다. 그 때에 성인들의 시성이 로마의 주교, 교황 아드리안(Adrian, 하드리아노) 3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권고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그것은 알렉산데르(Alexander) 3세의 법령에 의해서 주후 1160년에 승인되었습니다.

25. 사면(1000)[25. Absolution (1000)]

이제 “I Absolve Thee”(내가 그대를 사하노라.)라는 용어의 근대적 형태는 1000년경에 나타났습니다. 이 날짜 이전에는 사면의 근대 형태인 “I Absolve Thee”가 추적될 리가 없습니다.

26. 성체신학(화체설)(1000)[26. Transubstantiation (1000)]

그런 다음 우리는 성체신학(화체설) 교리에 다다릅니다. 자 그것은 끔찍합니다. 저는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산상수련회(Christian Service Camp)에서 교회사 강좌를 듣고 있었고, 그 단어의 뜻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일곱 번 정도 그 단어를 곱씹어 보았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미사(Mass)에서 종소리에 순간적으로(twinkling in the bell) 빵과 잔이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가 된다고 가르치는 화체설(성체신학) 교리입니다. 여러분이 로마 가톨릭 성소에 가시면(미사에 참석해 보시면) 제단 위에 빨간불이 비취는 것을 보실 수 있는데, 그것은 성체(Host, 주님)가 실제로 현존한다는, 그리스도의 실제 몸이 현존한다고 일컬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자 주: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 그리스도의 제자들(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의 진보성향화에 반발하여 하나 둘씩 떨어져 나온 미국의 독립 그리스도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은 지역 단위로 숲 속에 캠프시설(숙소, 강당, 식당, 운동장, 수영장 등)을 갖추고 수시로 부흥집회, 수련회 등을 개최하여 왔다. 이 시설을 Christian Service Camp라고 부른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미사는 그 성격이 제사 예배인데, 1962-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는 라틴어 미사와 라틴어 성경만 허용되었다. 미사에 길고 장엄한 성찬기도가 있는데, 이 기도가 끝나는 순간 떡과 잔이 예수님의 실제 몸으로 변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런데 그 기도가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읽히다 보니까 그 순간을 참석자들이 놓치지 않고 호스트(Host)를 향해서 경배하게 하려고 예전에는 종을 울려주었고, 근대에는 반짝이 전등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에는 전 세계 어디서나 가톨릭교회에서 자국어로 미사(제사)를 바친다.]

27. 그리스도교국의 첫 번째 큰 분열(1054년). 주요 이슈들, 권위, 독신, 이미지(아이콘)들, 약식세례. 결과 –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27. First major split in Christendom (1054). Major issues, authority, celibacy, images, sprinkling. Result – Greek Orthodox and Roman Catholic churches]

이제 우리는 여러분이 다시 회피하고 싶어 할 그리스도교국의 중요한 날짜에 다다릅니다. 1054년, 이것은 그리스도교국에서 첫 번째로 큰 분열이 발생한 때였습니다. 분열의 원인은 네 가지 이슈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동방 교회 콘스탄티노플과 서방 교회 로마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고 우리가 말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슈들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권위에 대한 이슈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에게 있었거나 교회의 권위가 로마의 주교(교황)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주의의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숍 스미스 대학(College of Bishop Smith)에 관한 신문이나 잡지들을 읽으셨다면. 이슈는 가장 큰 이슈는 교회에서의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금세기 내내 대학이나 주교 회의에 얼마나 많은 권위가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권위가 교황권에 주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투쟁이 계속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슈는 사제직의 독신주의 도입이었습니다. 물론 동방교회는 우리 사제들이 역사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서쪽 부분(서방교회)은 이교 신전들에서 독신 사제들과 이교 신전들의 여신 베스타 여사제들(Vestal Virgins)이 금욕주의였다고 전해진 이교도 로마의 그 관행 이후에 그 자체로 꽤 많이 덧대어졌습니다. 이제 그것(그 이교도 관행)은 독신 사제(장로)들과 독신 수녀들로 대신 채워지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런데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제직의 독신주의입니다. 여러분은 1년 조금 더 전에 로마교회의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때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는 우리나라 12개 주요 도시들을 방문했습니다. 모든 주요 연설들의 주요 주제는 사제직 지원자들의 모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시에서 열린 일라이 릴리 재단 [역자 주: 일라이 릴리 앤드 컴퍼니(Eli Lilly and Company)는 미국 굴지의 제약회사이다. 본사는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다. 회사명은 창업자인 일라이 릴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후원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의 신학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두 개의 권위 있는 로마 가톨릭 신학교들도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의들 중 하나에서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신학교 교육이 67퍼센트 감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은 그들이 발표한 것을 들은 청중보다 더 많은 것을 짐작하십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두 개의 로마 가톨릭 신학교가 목회를 위해 공부하려는 젊은이들의 부족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것은 그 같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결혼을 허락하는 새로운 사제직 제도를 만들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토론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이슈는 아이콘들과 성상들의 도입이었습니다. 다시 교회의 동쪽 부분(동방교회)은 “어떤 성상들이나 아이콘들은 없다"고 단호했지만, 로마에 정착한 교회의 서쪽 부분(서방교회)은 느슨하게 수용함으로써 이들 형상들로부터 이방신들의 이름들을 단순히 취하고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이름들에 사용합니다. [역자 주: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칙령(주후 313년) 이후 특히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주후 392년)가 된 이후 참 신앙을 갖지 못한 수많은 이교도들 특히 야만족들이 한꺼번에 입교하였고, 이교도들은 입교 전에 그들이 믿었던 수많은 이방신들의 자리에 그리스도교 성인들 곧 성모 마리아, 순교자 등을 놓았다고 하며, 그것들의 형상들이 성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 때까지 히브리어(구약) 성경과 헬라어(신약) 성경 그리고 개역성경으로는 라틴어 성경만을 허용하였고, 라틴어 미사만을 고집한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야만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문맹자들을 신앙교육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성상들, 아이콘들, 14처, 프레스코(벽화)들, 스테인드글라스들에 새긴 성화들이었고, 라틴어 미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미사는 점차 듣는 것에서 보는 연출미사로 발전되었다.]

이 분열로 인한 네 번째 이슈는 약식세례의 도입이었습니다. 안 됩니다. 교회의 동쪽 부분(동방교회)의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신약성경에서 ‘baptizo’라는 헬라어 단어는 그 어떤 파생된 형태로도 ‘뛰어들다’는 것, ‘담그다’는 것, 또는 ‘침수하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의미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정착한 교회의 서쪽 부분(서방교회)은 성인들뿐만 아니라 유아들에게까지도 세례 때 물을 뿌리는 느슨한 의식을 행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서쪽 부분(서방교회)에서도 물을 뿌리는 세례는 그로부터 300년이 지나서야 유효한 세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311년 로마 가톨릭교회 라벤나 공의회 때에 가셔야 비로소 물을 뿌리거나 붓는 세례가 유효한 세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전까지는 유효한 세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네 가지 이슈들 곧 교회의 권위, 사제직의 독신, 아이콘들과 성상들의 도입, 물을 뿌리는 세례의 도입이었습니다. 그리고 분열된 교회는 표준어가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방 정교회 그리스 가톨릭교회와 동방과 서방 로마 가톨릭교회가 되었습니다.

28. 비밀(귓속말) 고해(告解)성사 – 제4차 바티칸 공의회(1215)[28. Auricular confession – Fourth Vatican Council (1215)]

이제 우리는 연대기적으로 우리에게 무슨 비극이 일어났는지에 다다릅니다. 비밀 고해성사, 그 귓속말(auricular)은 귀에서를 의미합니다. 비밀 고해성사는 주후 1215년 제4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도덕적 죄의 고통 속에서 권위적으로 요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비밀 고해성사를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죄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29. 약식세례(1311)[29. Sprinkling (1311)]

그런 다음 우리는 이미 물을 뿌리는 약식세례가 1311년에 교회에서 유효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라벤나 공의회(Council of Ravenna) 때였습니다.

30. 면죄부 판매 - (1390; 1515)[30. Sale of indulgences – (1390; 1515)]

그런 다음 우리는 교회사에서 또 다른 흑(위험)지점인 면죄부 판매에 다다릅니다. 이제 교황 보니파시오(Boniface) 9세는 면죄부 판매를 1390년에 실제로 실행한 첫 번째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장 친숙한 사건이 더욱 눈부신 사건이 된 것은 1515년 교황 레오(Leo) 10세 때였습니다. 그의 사치스러운 바티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어마어마한 사업의 거대한 중심(허브)에 강타했기 때문에 로마에 짓고 있던 성 베드로 대성당은 곧 돈이 바닥나서 로마를 고갈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착은 성 베드로 대성당 건설이라는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완료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일종의 계획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언자들, 특히 테젤(Tetzel)이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면죄부를 파는 것이 기금을 모으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고안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면죄부가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이른바 많은 고행들을 하거나 매우 많은 14처들[역자 주: 그리스도의 생애를 14개로 나눠 그린 그림들이나 조각한 부조들을 십자가의 길(명상의 길)에 세운 장소들. 14처는 본래, 성경이 비싸고 귀했을 뿐 아니라,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미사만 허용되었던 시절(1960년대까지) 특히 문맹자들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당 안에 혹은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림이나 부조 형태로 장식했었으나 자국어 성경을 읽고 자국어 미사를 드리고 있는 1970년대 이후에는 곳곳에 일명 ‘십자가의 길’이라는 명상의 길을 만들어 14처를 세우고 있다. 가톨릭교회 기도서에는 이 14처에서 바치는 14개의 기도문들이 담겨 있다.]을 방문하실 것입니다. 혹은 여러분은 매우 많은 성경말씀들과 기도문들을 읽으실 것입니다. 그에 따라 여러분은 매우 많은 면죄부를 받으실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죄를 줄이거나 연옥에서의 기간을 단축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여러분이 교황이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하게 하고 로마 제국 전역에서 이 면죄부들을 상품화해서 판매를 꾀하기 시작했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가격을 아신다면, 여러분은 가서 면죄부들을 구매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가서 죄를 지으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미 그 죄의 사함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 죄의 결과에 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여러분이 그냥 구입한 것을 여러분의 손에 쥐고 있는 그 종이 쪼가리에 있었습니다. 도덕에 관해서 교회는 그 상실한 입구를 가라앉히기 시작했고 그리고 교회 자체에서 면죄부 판매라는 이 모순된 관행에 거슬러 격렬한 항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후에 우리의 논의에 관하여 그것에 다다를 것입니다.

31. 주의 만찬 때 분잔 배제(1414)[31. People deprived of cup at Lord’s Supper (1414)]

그런 다음 우리는 주후 1414년 주의 만찬에서 컵을 빼앗긴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콘스탄츠 공의회(Council of Constance)에 의해 포고되었습니다.

32. 원죄 없는 잉태(1439; 1457)[32. Immaculate Conception (1439; 1457)]

그런 다음 여러분은 원죄 없는 잉태 교리에 다다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교리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원죄 없는 잉태 교리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제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뿌리 깊은 원죄교리를 기억하십시오. 자 이 교리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아담이 지은 죄의 부패와 유죄가 죄 가운데 태어난, 태어난 모든 아기에게 유전된다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원죄 없는 잉태 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 곧 마리아는 잉태의 순간에 자연발생적으로 잉태되었지만 원죄와 무관하다고 선언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 다음 그녀의 아기 예수는 원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이 원죄 없는 잉태의 교리입니다. 마리아는 자연발생적으로 잉태되었지만 잉태 시점에 원죄의 오염이 없는 것으로 선언되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원죄 교리로 인한 그 곤경을 교묘히 회피하였고 또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렇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1439년에 여기에서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비뇽 공의회(Council of Avignon)가 이 교리를 확증한 것은 145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만약 그것을 다르게 전하면, 파문으로 처벌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1457년 아비뇽 공의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33. 연옥(1563). (트리엔트 공의회 – 18년 – 1545 – 1563 – 교리 문제, 15개의 교령, 44개의 장, 113개의 교회법을 통과시켰고 또 125개의 저주선언들로 이들 교리들을 시행함!)[33. Purgatory (1563). (Council of Trent – 18 years – 1545 – 1563 – passed on matters of doctrine, 15 decrees, 44 chapters, 113 canons and enforced these doctrines by 125 anathemas!)]

그런 다음 여러분은 연옥 교리에 다다릅니다. 자 수 세기들에 걸쳐 연옥 교리는 점차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1563년 연옥 교리는 트리엔트 공의회 마지막 회기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트리엔트 공의회로 가봅시다. 이것은 모든 교회 공의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트리엔트 공의회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중요합니다. 회기가 소집되고 18년간 지속된 이유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가톨릭교회에 입힌) 파괴적인 영향에 거슬러 대응(가톨릭교회를 보수하기 위한 반종교개혁)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를 소집하였고, 1563년까지 회기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들은 15개의 교령, 44개의 장, 113개의 교회법으로 교리 문제들을 통과시켰고 또 125개의 저주선언으로 이들 교리들을 시행하였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행한 일을 다른 말로 하자면, 1400년이 넘는 기간에 공의회들과 교황들이 선포(포고)한 모든 인위적 도입(제도)들(innovations)과 모든 미신들을 하나로 집대성한 것이고, 또 그 모든 것들을 교회의 법령들로 확증한 것이며, 또 그것들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에 당할 125개의 저주선언들로 위협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이 모든 자료는 소문이나 누군가가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신시내티 시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서 약 일주일을 보내면서 모든 가톨릭 서적들을 읽었고, 제 자료의 상당부분이 로마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것들입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서적들과 출판물들에서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 역사적으로 진술한 것이 사실입니다.

34. 교황 무류설 – 교황 비오 9세[34.  Papal infallibility –1870 – Pope Pius IX]

그런 다음 우리는 무류성(無謬性) 교리에 다다릅니다. 1870년 교황 비오 9세(Pius IX) 치하에서 교황이 도덕들과 교리들에 관해 공식 선언에서 성좌에서(from the chair)를 의미하는 ‘엑스 커티드라’(ex cathedra) 혹은 ‘엑스 케티드라’(ex cathedra, 성좌선언)를 할 때 무류(무오류)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의 무류성 교리가 선포되었을 때, 자 이것을 보십시오. 주교단이나 주교회의와 먼저 협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교령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여기에서 이 투쟁 곧 주교단과 교황 사이의 지속된 투쟁을 보십니다.

결론(CONCLUSION)

여러분이 알아차리셨듯이, 우리는 모든 영역을 다루었고, 배도는 점진적입니다. “이 계몽되고 탐구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사물들의 원인과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이 대의를 위해 우리는 오늘 밤 시간을 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전통과 교회의 교리들과 미신의 기원을 추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교는 처음에는 거의 감지할 수 없지만 그것이 진행하면서 추진력을 얻고 마지막 붕괴(충돌)에 직면할 때까지 가속도를 붙여 하강합니다. 일단 고정된 신약성경 가르침의 기준에서 떠나 표류하면, 그러면 여러분이 어디에 붙들어 맬지, 여러분이 도선사(導船士)나 나침반도 없이 얼마나 멀리서 표류할지를 전혀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