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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02 09:03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1_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19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pdf (2.6M) [1] DATE : 2022-08-02 16: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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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

강연: 하비 C. 브림 2세(Harvey C. Bream, Jr.)

번역: 조동호

역자 서문

이 자료는 신시내티기독대학교 및 성경대학원(Cincinnati Christian University and Cincinnati Bible Seminary)의 총장을 역임했던 하비 C. 브림 2세(Harvey Cleveland Bream, Jr.) 목사가 1989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총 4회에 걸쳐서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싸우스이스트그리스도의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 in Orlando Florida)에서 행한 강연,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를 녹음한 4개의 오디오테이프들에 담긴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역자는 이들 오디오테이프들을 오디오 파일들로 변환하였고, 이것들을 다시, 불완전하고 오류가 많을 테지만, 아무튼 문자화하였다. 그리고 이 오디오테이프들을 손에 넣은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우리말로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디오 파일들과 텍스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http://kccs.info) <그리스도의 교회>난 게시판 46-54, 81-89번에서 듣고 읽고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kccs.info/with_home/bbs/board.php?bo_table=history

하비 C. 브림 목사는 95세를 일기(一期)로 2018년 12월 1일 소천하였다. 하비 브림은 영감을 주는 교사, 설교자, 전도자, 찬양리더, 저자, 편집자, 학장, 총장, 이사였다. 그는 76주 이상 산상집회(Christian Service Camp)와 452주 이상 부흥집회를 인도하였고, 세 개의 교회들을 설립하였으며, 일곱 개의 교회들의 설립을 후원하였다. 그밖에도 그는 수많은 컨벤션들, 모금을 위한 집회들(faith-promise rallies), 세미나들, 부흥회들, 청소년 집회들, 남성 집회들, 리더십 집회들에서 강연하였다. 신시내티 기독대학교에서는 22년간 개인전도학을 강의하였고, 67년간 ‘그리스도인환원협회’(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독립 그리스도의교회들 곧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의 후원을 위한 단체)의 이사로 섬겼다.

강연내용은 총 6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개론(INTRODUCTION): 신약성경교회, 어떻게 시작되었는가?(The New Testament Church: How It All Began). 

제2부 배도(100-1517) [THE APOSTASY(100-1517)]: 무엇이 교회에 잘못되었는가?(What Went Wrong with the Church?).

제3부 그리스도교(개신교) 개혁(1517-1800) [THE PROTESTANT REFORMATION(1517-1800)]: 돌아가는 길(The Road Back). 

제4부 환원운동(1793-1900)(출범과 성장) [THE RESTORATION MOVEMENT(1793-1900) (Beginnings and Growth)]: 하나의 새로운 시작(The Restoration Movement: A New Beginning). 

제5부 환원운동(1900-1969) (배도) [THE RESTORATION MOVEMENT(1900-1969) (Apostasy)]: 제20세기 배도, 또 다른 잘못된 회전(The 20th Century Apostasy: Another Wrong Turn). 

제6부 환원운동(1923-1974) (부활) [THE RESTORATION MOVEMENT(1923-1974) (Resurgence)].

아래의 강사소개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싸우스이스트그리스도의교회 목사가 1989년 9월 10일 저녁 집회 때 초청강사인 하비 C. 브림 2세를 집회 참석자들에게 소개한 내용이다.

강사 소개

우리는 여러분을 초대하였습니다. 연속해서 말씀들을 전해주실 하비 C. 브림(Harvey C. Bream)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위치한 포레스트 대일 그리스도의 교회(Forest Dale Church of Christ in Cincinnati Ohio)의 목사입니다. 그분은 신시내티 성경 대학의 학장과 동기관의 총장(chancellor)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는 이전에 300회 정도, 부흥회들, 주간 집회들, 산상집회들(camps) 및 그 같은 수백회의 집회들에서 설교하셨던 전반적으로 부흥전도자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입니다. 그의 가족은 근본적으로 설교자들의 집안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의 아버지, 그의 형제, 세 명의 동서들, 두 명의 아들들, 한 명의 삼촌, 두 명의 조카들, 한 명의 사위가 설교자이고, 세 명의 손자들이 장래의 설교자들입니다. 그간 그를 우리 교회에 모실 기회가 없었는데, 우리는 이번에 하비 목사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소재한 ‘그리스도인환원협회’(the 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in Cincinnati Ohio)를 위해 전 미주(美洲)들을 순회한 전도자로 섬겼고, 3개 교회들을 세우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포레스트 대일 그리스도의 교회인데, 1989년 신시내티 성경 대학의 총장직에서 은퇴하신 후 설교 목사로 복귀하셨습니다. 그리고 브림 형제님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나오실 때 우리 모두 기쁨으로 그분을 환영합시다.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오실 때 그분을 열렬히 맞이합시다.

환원운동사(RESTORATION HISTORY)

신약성경교회로의 환원(RESTORATION TO THE NEW TESTAMENT CHURCH)


제1부 개론(INTRODUCTION): 신약성경교회, 어떻게 시작되었는가?(The New Testament Church: How It All Began).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성경과 신약성경들을 가져오셨기를 바랍니다. 또 배포된 강연요약자료를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 자료들을 빠르게 다룰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여러분은 그 자료들을 미리 살펴보시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의 일부를 느슨하게 다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공부가 여러분을 녹초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그것이 여러분을 전혀 지치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암시성이 있는 성구들과 본문들에 흥미를 끌어낼 뿐이고, 여러분이 우리가 4일 밤 동안 함께 나눌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여러 성구사전들을 참고하여 좀 더 확실히 공부하고 싶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나눌 이 일련의 강의의 전체적 주제는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 곧 신약성경교회의 회복’(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 Restoring New Testament Church)입니다.

저의 기본 명제(제안)는 이렇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환원 원리는 20세기와 다가오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환원 원리는 오늘날에도 실용성과 타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 강연에서 자주 사용할 몇 개의 용어들의 정의를 위해서 웹스터의 대학생용 사전(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을 활용하였습니다. 함께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환원하다’(Restore)란 용어를 주목해주십시오. 그것은 ‘다시 세우다’(to reestablish), ‘원래 장소에 되돌리다’(to put back into existence or use), ‘되돌려놓다’(to put back), ‘이전 혹은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다’(to bring back to or put back into the former or original state), ‘수선하다’(to repair)란 뜻입니다. 또 다른 용어, ‘환원’(Restoration)도 여러 번 사용될 것입니다. 그것은 ‘손상되지 않았거나 훨씬 개선된 상태로 되돌림’(a putting back into an unimpaired or much-improved condition) 곧 ‘원래 형태의 표시’(a representation of original form)를 의미합니다.

제 아내와 제가 방문하고 싶어 하는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 중 하나는 버지니아 주에 소재한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그 역사적 장소를 이미 방문하셨을 것입니다. 그곳이 매혹적인 이유는 위대한 식민지 도시인 윌리엄스버그를 복원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확한 장소에 복원하려고 시도한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원래 세워졌던 그대로, 원래 주거지였던 그대로의 모든 모습은 그 당대의 식민지 생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해볼 것입니다. 우리는 환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라는 말은 단순히 “사건들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말합니다. 이제 이 두 단어들을 합치면 무엇이 되는지 봅시다. ‘환원역사’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기도하셨던 일치의 수단과 응답으로써 원래 상태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이것에로 되돌리는 것에 관한 사건들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입니다.

I. 환원이란 말은 무언가가 손실되었음을 암시한다. 본래의 것들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The term, restoration, implies that something has been lost; the original has been impaired.).

그런데 환원이란 말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암시합니다. 저는 몇몇 우리의 초창기 설교자들이 가족의 입맛을 자극한 최애(最愛) 조리법을 가진 한 여성에 대해 사용하곤 했던 오래된 예화를 들었던 소년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특정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싶어져서 조리법을 찾았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이전에 사용했던 모든 재료에 대한 기억과 그 재료의 양, 그리고 어떻게 혼합했었는지를 생각해 내려고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녀가 이전에 했던 방식으로 결과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 후로도 여러 번 시도해보았지만, 그 결과는 늘 실패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른 어느 날 그녀는 집안을 청소했고 캐비닛을 옮겼습니다. 벽에 맞대어 세워진 그녀의 작업 캐비닛 뒤에는 먼지가 묻어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조리법을 적은 쪽지는 캐비닛 뒤 곧 캐비닛과 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조리법을 적은 쪽지를 찾은 그녀는 당연히 기뻐했고, 그것을 꺼내서 먼지를 모두 털어낸 다음, 그녀 앞에 펼쳐놓고, 조리법에 적힌 대로 동일한 재료들과 동일한 양과 동일한 방법으로 조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보십시오. 그녀는 예전처럼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예화는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환원 문제의 성격을 짚어줍니다.

II. 무엇이 회복되어야하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하는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How are we to recognize that which is to be restored? Where is it to be found?)

물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무엇이 회복되어야하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합니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미국 그리스도교 연감>(American Yearbook of Christian Church)이라는 제목의 연례 간행물이 오늘날 미국에는 주요 교단들이 300개가 넘는다고 밝힌 사실에 기인합니다. 이것은 더 작은 교단들과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많은 주의주장들(causes and isms)이 포함되지 않은 숫자입니다. 여기에 지적으로 정직하게 진리를 추구할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모든 가르침들과 모든 관행들과 모든 다양한 교단들이 그가 해야 할 연구 과제들로 닥칠 것입니다. 그가 그러한 연구를 양심적으로 진행한다면, 그는 아마도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것들의 연구에 바쳐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가 끝날 때쯤이 되면 그는 아마도 그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보다 더욱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 우리의 명제는 공정하고 지적으로 정직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또 다른 옛 예화에서 드러났습니다. 한 젊은 사업가가 은행에 들어와서는 접객원에게 명함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은행장을 접견할 약속을 잡지 못하자, 그는 접객원에게 5달러짜리 지폐를 건네면서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 평범한 지폐로 모든 위폐를 어떻게 구별해낼지를 가르쳐드릴 수 있다고 은행장에게 말해 주십시오.” 접객원은 그 명함을 들고 가서 호사스런 마호가니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은행장에게 건네며 그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은행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였습니다. “음, 정말 평범한 지폐로군. 이런 5달러짜리 지폐가 이 은행에 수천달러는 족히 있을 텐데.” 그래서 그는 젊은이를 들어오게 해서 책상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은행장은 그 젊은이가 서류가방에서 온갖 종류의 위폐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구별할지를 자신에게 가르쳐 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젊은이는 그냥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낸 후 은행장의 책상 위에 펼쳐놓으며 말하였습니다. “은행장님, 저한테 이 진짜 돈의 특징(귀표)들을 설명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은행장님은 단순히 대조해 보시는 것만으로 모든 위폐를 자동으로 구별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호소(plea)는 이렇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리고 아마도 처음보다 더 심한 혼란에 빠뜨릴 이들 다양한 종교 단체 모두를 연구하는 대신에, 저의 명제(제안)는 모두가 진짜를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함께 신약성경의 페이지들을 펼치고 신약성경 말씀들에 계시된 대로 교회의 특징들을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신약성경교회가 가르친 것들과 신약성경교회가 실천한 것들 그리고 그들이 그것들을 실천한 방법을 연구해보면, 우리는 모든 진짜들의 특징들을 대조하고 조사함으로써 자동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가짜들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명제의 놀라운 실용성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메릴랜드 주에서 가장 큰 도시들 가운데 한 곳에서 개최된 부흥집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공회에 다니는 한 여성이 이 집회들을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세련되고 교양 있는 한 여성이 집회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녀가 우리를 자신의 집에 와달라고 초청하였습니다. 그녀의 집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들어가 보는 특권을 누렸던 가장 아름다운 집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되자 그 부인은 말하기를, "저는 당신네 저녁 집회들에 즐겁게 참석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날 밤에 몇 사람이 (예배당 안의 침례탕에서) 침례를 받았으므로 그녀는 말하기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침례를 베풀 때, 당신네가 침수세례를 베푸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저는 약식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신네가 침례를 베푸는 이유를 저에게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의 집에 들어섰을 때 제가 안 첫 번 것들 가운데 하나 때문에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일종의 문헌과 다른 것들 주변의 것들을 관찰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눈에 잘 띄는 커피 테이블 위에 성경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분명히 오래된 성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하기를, "그럼, 그 질문에 답을 드리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당신에게 성경이 있군요. 당신의 성경을 펼쳐봅시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말해야만 했고, 그녀의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물론이죠, 저는 항상 그렇게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내용이 무엇인지를 봅시다. 이 마지막 말씀들은 틀림없이 매우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6장 15-16절을 펼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그녀의 성경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두 구절에 이미 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 읽어보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녀는 거기에서 멈췄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돌아가 그것을 다시 읽었습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았을 때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아기였을 뿐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어라고 말씀 하셨나요?” 그녀는 다시 그것을 읽었습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제가 말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 순종하라는 명령을 받은 예수님의 사도를 봅시다.” 그래서 저는 교회가 세워지고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된 때의 이야기가 실린 사도행전 2장을 펼쳤습니다. “베드로가 막 설교를 마치자 군중이 그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했는지 봅시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책을 그녀에게 넘겨주며 사도행전 2장 38절을 읽도록 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읽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녀는 명석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읽기를 다 마치기 전에 멈추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큰 소리로 읽을 준비를 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침례를 받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세례받기 전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단지 아기였을 뿐입니다.” 저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모든 회심들이 그와 똑같다는 것을 그녀가 알기를 원했을 뿐이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고, 단지 그녀에게 성경말씀들을 읽게만 했습니다. 성경말씀들이 답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그 성경공부를 마쳤을 때, 이것이 첫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약식세례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녀가 모든 진짜들의 특징들을 인식하자마자 그녀는 모든 가짜들을 자동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말씀으로는 줄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교회사 공부를 통해서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교회사를 약 30분가량 설명하였습니다. 제가 이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다 말씀드리려면 총 4회에 걸친 강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날 그녀의 집에서 그녀에게 30분만 교회사를 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인디애나 주 미시간시티(Michigan City) 어느 교회의 집회에서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가톨릭신자 부인과 감리교인 남편이 이웃들 가운데 한 분의 초청으로 우리의 집회들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부흥회기간 목요일 밤에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대부분의 청중이 떠날 때까지 기꺼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브림 씨, 남편과 저는 당신들의 이 저녁집회들에 참석하여 당신이 행한 설교들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설교 때 인용한 모든 성구들에 특별히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왔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결정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평생 동안 양육 받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전투적으로 양육 받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몇 분만 시간을 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말했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로비에서 나와 옆방(주일학교 분반을 위해 마련된 방들)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까?” 부부가 함께 말했습니다. “어머, 우리는 평생 동안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까?” 다시 그들은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들에게 완벽히 솔직하고 정직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로마 가톨릭 교리는 성경과 동등하거나 동등하게 권위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저의 유일한 신앙의 권위로 성경만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그 주장을 기꺼이 수용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을 여러분의 유일한 신앙의 권위로 기꺼이 수용하시겠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하라고 요청하신 것을 발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시겠습니까?” 그들은 둘 다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라고 요청하신 것을 발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고자했습니다. 저는 동일한 절차를 밟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에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거기서 그분들에게 성경을 건네고 마가복음 16장 15-16절을 그 부인이 큰 소리로 단지 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절차대로 그녀는 읽었습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그녀는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런, 저는 세례를 받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을 때 아무도 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기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녀는 그것을 다시 읽었습니다. 저는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인 오순절로 방향을 틀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도 같은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녀는 제가 앞서 언급한 다른 여성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회심자들에게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까?” 그들은 모두 주저함 없이 “예,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여러분이 기꺼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녀는 물러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글쎄요,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평생 동안 정말 로마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갈등(전투)중이며 이것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 당신은 성경을 당신의 유일한 권위로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용하였습니다. 당신은 그분이 하라고 한 것을 발견하는 것을 기꺼이 하고자 합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저는 기쁘게 그 방을 나왔습니다. 대략 15분이 지나자 교회로비 쪽으로 방문이 열렸고, 마침내 그들이 걸어 나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침례를 받을 준비가 됐습니다.” 밤 10시 30분쯤에 우리는 그들 부부와 함께 걸어서 침례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복음에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명제(제안)입니다. 본래 것들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와 가톨릭 모두의 모든 교파주의를 넘어서서 신약성경의 말씀에 드러나 있는 대로 그것의 교리들과 그것의 의식들(침례와 주의 만찬)과 그것의 삶과 열매들에서 힘써 교회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무엇이 회복되어야하는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한 이들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신약성경교회를 시작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신약성경교회(THE NEW TESTAMENT CHURCH)

I. 예수님은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6:18). - 미래의 사건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북쪽 지방인 빌립보 가이사랴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억하셨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제 주님께서 사용하신 설명과 시제에 주목해주십시오. 예수님은 교회를 미래의 사건으로 언급하셨습니다. 교회는 침례 요한에 의해 설립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미래의 사건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이 진술을 하신 때에 침례 요한은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미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시작으로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인용했습니다. 초기 교회를 보면, 사도 베드로가 환상을 볼 때까지 처음 9년 또는 10년까지는 구성원들이 거의 전적으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무렵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따르면 로마군인 고넬료가 항상(하루 세 번 기도시간에) 기도를 했고 환상 중에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에게 말씀을 전할 것이고, 그러면 너와 네 온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돌연 그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설교하고 있을 때,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신 것을 보면, 그 때 그들은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베풂을 금하리요?” 그런데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침례를 베풀며, 그들을 교회로 인도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할례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기다리고(벼르고) 있었고, 그를 소환하여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이 행한 그 일을 변호하면서, 사도행전 11장을 보시면, 거기서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자신이 행한 이 일을 변호하면서 15절에서 말하기를,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10여 년 전의 오순절 날로 거슬러 올라가 그 때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성령의 부으심, 성령의 침례(성령세례), 이 방언 말함은 분명히 흔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언급한 유일한 다른 시간은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사건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6장에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셨고, 또다시 사도행전 1장에서 약속하신 말씀,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 24:49)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1절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당연히 어떤 이들이 나서서 조롱하여 말했습니다. “이 자들은 술 취한 자들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열한 제자들과 함께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시간이 3시에(오전 9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라.”고 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구약의 예언이 부어졌음을 인용했습니다. 그 예언은 성취되었고 분명히 현존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이 설교에서, 사도행전 2장대로, 이것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리고 9-10년쯤 후인 여기에서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관하여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한 정당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 전체를 만족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II. 회복된 교회의 특징들(Characteristics of the church to be restored)

A. 교회의 신조. 참조: 마태복음 16:16, 사도행전 8:37, 디모전서 6:12-13, 로마서 10:9-10(Its creed, cf. Matthew 16:16; Acts 8:37; 1 Timothy 6:12-13; Romans 10:9-10)

이제 우리가 사랑스럽게 보게 될 회복된 이 교회의 6가지 주요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신조입니다. 신약성경교회에 신조가 있었습니까? 네,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조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라틴어 단어입니다. 오, 라틴어 학자 여러분들 ‘크레도’(credo)라는 단어를 기억하십니까? 그 라틴어 단어를 번역하면 ‘나는 믿는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신조는 여러분이 믿는 무엇인가입니다. 그러면 신약성경교회의 신조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앞에서 이미 그것을 인용했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16)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러분은 사도행전 8장에 실린 에티오피아인들의 여왕의 재무관에게 설교한 빌립을 기억하십니까? 이 재무관은 예배드리려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5절에 있습니다. 그는 같은 성구에서 시작하여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이 내시가 이사야 53장 곧 구약성경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립이 부름을 받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읽고 계신 것을 이해하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를 지도해줄 어떤 사람이 없다면,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빌립은 병거에 올라타도록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내시는) 그 성구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을 향해서 물었습니다. “그 예언자는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절은 이런 내용입니다. 그리고 같은 성구에서 시작함으로써 빌립은 그에게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길을 가다가 어떤 물이 있는 곳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시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제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습니까?” 그리고 빌립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마음을 다해 믿으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답했고 또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는 병거를 정지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곧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물에서 올라왔을 때, 주의 영께서 빌립을 붙잡아 가셨기 때문에 내시는 그를 다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갔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다시 신앙고백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13절을 펴보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신앙고백을 상기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신앙고백, 곧 선한 신앙고백을 그가 많은 증인 앞에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행하신 선한 신앙고백을 언급합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불러냅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우리의 마음에 믿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신앙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제 주의해서 봐주십시오. 신약성경에는 사도신경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사도신경을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결코 그것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사후에 나온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니케아 신조도 없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300년이 지나서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성경 교회의 유일한 신조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B. 입회(가입) 조건 - 회심 - 사도행전 2,8,9,10,16장 등(B. Terms of admission - conversions - Acts 2,8,9,10,16; etc.)

이제 우리는 신약성경 교회의 다른 어떤 특성에 관심이 있습니까? 두 번째는 입회(가입) 조건입니다. 자, 오늘 밤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혼란스러운 종교 세계에 이 정도만 접근하면 신약성경 교회의 입회 조건은 구원의 조건과 동일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동시에 자동적으로 그를 교회의 구성원이 되게 합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고 나중에 선택한 교회에 가입할 수 있다는 개념은 신약성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입니다. 그 용어는 성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그를 자동적으로 주님의 교회 곧 주님의 몸의 구성원이 되게 합니다.

그것은 회심에서 지적됩니다. 가장 첫 번째 회심은, 우리가 그것을 불러냈듯이, 우리가 이미 인용했던 오순절 날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 구절이 무엇인지를 주목해 주십시오. 사도행전 2장 47절은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에 구원 받는 혹은 받아야할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가입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는 교회에 가입합니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듣습니다. 저의 친구들이여, 여러분이 만약에 교회에 가입한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교회에 가입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교회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로운 죄 사함의 조건들을 따를 때 주님께서 여러분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복음에 순종할 때 주님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몸인 그분의 교회에 더하게 하십니다.

또한 여러분은 사도행전 8장에서도 같은 것을 발견하십니다. 이것들은 모두 회심에 관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 8장을 사마리아인들의 회심에 관해서 읽었고, 마술사 시몬의 회심에 관해서 읽었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에티오피아 내시의 회심에 관해서 읽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여러분은 다소 출신의 사울의 회심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또한 훗날 두 번의 공회들에서 바울 자신이 일종의 회심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 사도행전 22장과 26장을 읽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로마 군인 고넬료의 회심에 대해서 10장을 읽었고, 물론, 여성 사업가 루디아와 빌립보인 간수의 회심에 관해서 사도행전 16장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그들을 자동적으로 주님의 교회 곧 신약성경말씀에 계시된 교회의 구성원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회심과 입회)은 두 개의 분리된 행동들이 아니라 동시적인 행동들입니다.

C. 사용된 이름들(C. Names employed)

여기에서 참된 모든 것의 특징을 인식하려는 교회의 세 번째 특징은 사용된 이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연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원하기를, 저는 이 모든 주제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더 철저한 연구를 하고 탐구를 하도록 도전이 되고 동기가 부여되기를 바랍니다.

1. 집합적으로. 참조: 사도행전 20:28; 디모데전서 3:15; 골로새서 1:18,24; 에베소서 1:22,23; 로마서 16:16; 등등(1. Collectively, cf. Acts. 20:28; 1 Timothy 3:15; Colossians 1:18,24; Ephesians 1:22,23; Romans 16:16; etc.)

그러나 (교회는) 집합적으로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사도 바울이 그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처럼 전체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는 “주님의 교회를”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가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교회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8절과 에베소서 1장 22-23절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관계가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로마서 16장 16절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단순히 이 인용문을 사용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것은(교회는) 집합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2. 개별적으로. 참조: 사도행전 11:26(이사야 62:2); 로마서 1:7; 고린도전서 15:6; 갈라디아서 3:26<2. Individually, cf. Acts 11:26 (Isaiah 62:2); Romans 1:7; 1Corinthians 15:6; Galatians 3:26>

이제 (교회는) 개별적으로 여러 해 동안 제자들, 무엇보다도 먼저, 그저 “제자들”이라고 언급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제자들로 불렸습니다. 그런 다음 사도행전 11장에 와서 26절에서 처음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약 700년 전 이사야서 62장 2절에서 말한 이사야의 예언 곧 이방인들도 왕국의 구성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의 성취로 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새 이름 곧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이름으로 부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새 이름은 사도행전 11장 26절에 와서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컬음을 받게”로 번역된 그 단어는 신약성경의 다른 몇 곳들에서만 사용되었으며, 사용된 그 사례들은 모두 신(神)이 제정한(divinely) 일컬음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그리스도인들로 하나님이 제정한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이제 로마서 1장 7절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를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서 “성도”(saints)라고 언급된 이 용법을 자주 발견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다가와 말하기를, “여보세요, 당신은 성자(성인)이십니다.” 여러분은 그 말(용어)에 당혹해하실까요? “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 성자가 아닙니다.” 무슨 일입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쓰는 용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십시오. 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나보다 더 거룩하고, 여러분이 단지 거의 완벽하고 성자를 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자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가톨릭적인) 생각과 개념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자가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특별한 행위가 있다고 추정되거나 성자는 특정한 금액으로 구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 역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죽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에게 어떤 특별한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추정되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또는 다른 방법으로 여러분은 일정 금액의 돈을 기부함으로 여러분이 성자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성경의 용어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여, 저의 친구들이여,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시라면 여러분은 성자이십니다. 성자란 단지 섬기기 위해 구별된 사람일 뿐이며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자이십니다.

또한 여러분은 고린도전서 15장 6절과 다른 많은 성구들에서도 발견하십니다. 여기에서 저는 여러분이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언급되고 “형제들”로 언급된 본문들을 제시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그것은 우리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로 가족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27)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래서 이것들은 이 모든 것과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사용된 용어들입니다.

D. 지켜진 의식들(D. Ordinances observed)

이제 신약성경교회의 네 번째 특징은 지켜진 의식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교계는 두 가지 기본 의식들, 첫째로 침례를, 둘째로 주의 만찬을 모두 인정합니다.

1. 침례 - 마태복음 28:18-20(마가복음 16:15,16); 사도행전 2:38; 8:38,39; 22:16; 로마서 6:3-5; 갈라디아서 3:27; 베드로전서 3:21; 등(1. Baptism - Matthew 28:18-20 (Mark 16:15,16); Acts 2:38; 8:38,39; 22:16; Romans 6:3-5; Galatians 3:27; 1Peter 3:21; etc.)

이제 저는 침례 문제를 장황하게 말하지 않겠고, 우리가 그것을 말하는, 곧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지상 명령(대위임)에 차질 없이 응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마가복음 16장 15-16절 곧 마가가 기록한 명령(위임)을 인용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사도행전 2장 38절을 인용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사도행전 8장 38-39절, 사도행전 22장 16절, 로마서 6장 2-5절을 인용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아직 이것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침례를 멋지게 묘사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만약 여러분이 랭스두에이 성경(Douay Version)에서 로마서 6장 4절 각주에 있는 로마 가톨릭 번역을 읽으신다면, 로마 가톨릭 랭스두에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성 바오로는 침수에 의한 침례의 초기(원시) 방식을 암시한다.” 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랭스두에이 성경을 자주 사용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침례 문제에 관한 이 모든 성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은 베드로가 노아와 그의 가족이 어떻게 물로 구원을 받았는가를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두 개의 모양들(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같은 모형들)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다, 몸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다 고 말합니다.

이제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이 모든 성구를 사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글쎄요, 여러분은 물이 구원한다고 믿습니까? 여러분은 침례에 의한 중생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침례가 구원받는 데 필수적이거나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침례 중생주의자들(침례를 받아야 중생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물이 구원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 같은 어떤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침례만이 구원할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같은 사실은 믿음만이 구원할 것이라거나 회개만이 구원할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회심(체험)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을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리가 세 개인 의자에서 가장 중요한 다리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라고 묻는 것이 격에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는 회심과정(a conversion process)인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함께 회심을 일으킵니다.

2. 주의 만찬 - 마태복음 26:26-28; 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1:23-30; 참조: 사도행전 2:42(2. Lord’s Supper - Matthew 26:26-28; Acts 20:7; 1 Corinthians 11:23-30; cf. Acts 2:42).

그 다음 지켜진 의식은 주의 만찬입니다. 우리 모두는 물론 마태복음 26장 26-28절에 기록된 대로 배반당하셨던 밤에 위층 방에서 우리 주님이 제정하신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 20장 7절에 기록된 선교여행 중의 하나를 기억하시다시피,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 와서 행한 관례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7일 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7일 동안 머물렀던 이유에 대해서 그는 말하기를,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형제들이 주의 만찬을 지키려고 모일 때까지 거기 드로아에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고린도전서 11장 23-30절에서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의 합당한 준수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결정적인 논의를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도행전 2장 42절도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기억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곧 오순절 직후에 3,000명을 더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읽은 후 42절에 와서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말합니다.

저는 학창시절 기하학을 아주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기억합니다. 저는 기하학을 이렇게 시작하겠습니다. “동일한 것에 동등한 것들은 피차 동등합니다.”(Things that are equal to the same thing are equal to each other). 여러분들 중에는 그 기하학을 기억하십니까? 이제 만약 여러분이 그것을 이 본문에 적용하시면, 여러분은 동일한 것, 즉 동일한 것에 동등한 것들로 끝을 보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제가 이것을 여기에 적겠습니다, 꾸준히 계속하였다(힘썼다), 꾸준히 계속하였다(continued steadfastly)를 보십니다. 그것은 그것들이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에 동등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들의 교리와 친교와 떡 뗌과 기도들을 꾸준히 계속하였습니다. 따라서 동일한 것에 동등한 것들은 피차 동등합니다. 오늘날 종교계에서 매우 일반적인 관행이 특정한 시기로 주의 만찬의 준수를 법으로 제한시킨다는 것임을 저는 압니다. 일부는 주의 만찬을 한 달에 한 번 준수할 것입니다. 일부는 반년마다 그것을 준수할 것입니다. 일부는 그것을 일 년에 한 번 준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근본적 이유는 “음, 너무 자주 준수하면 흔해빠지게 한다(매너리즘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궁금합니다. “그것이 매주일 설교하는 것이 너무 흔해빠지게 한다는 뜻인가? 아, 그것이 매주일 기도하는 것이 너무 흔해빠지게 한다는 뜻인가?”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매주일 헌금 걷는 것을 너무 흔해빠지게 한다고 말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교의 초점이 예수님의 죽음, 장사(葬事), 부활에 관한 바로 그 중심에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너무 흔해빠지게 하는 것은 너무 잦은 준수 때문이라고 말하고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아닙니다, 친구 여러분, 동일한 것에 동등한 것들은 피차 동등합니다. 그들은 꾸준히 계속했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도들의 선례(관례)입니다. 이것이 신약성경교회의 특징입니다.

E. 정치(조직 및 관리)(E. Polity (organization and government)

다섯 번째 특징은 정치입니다. (교회)정치(Polity)라는 단어는 단순히 조직(organization)이나 관리(government)를 의미합니다. 나는 우리의 교회들에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 그리고 우리의 교회들은 오늘날 문제들에 놀아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약성경교회 정치에 관한 연구를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문제들, 지역 교회들에서 촉발된 정치, 지역 교회들에서 촉발된 긴장들이 교회에서의 다양한 기능들과 교회에서 이들 여러 가지 기능들과 직책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거할 것입니다. 올바른 이해와 신약성경교회 관리는 대부분의 회중(교회)들에서 대부분의 권력 투쟁들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신약성경이 이 주제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가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1. 구성원 - 사도행전 2:41-47(1. Members - Acts 2:41-47)

이제 신약성경교회 조직에서 기본단위, 기본단위는 구성원들입니다. 다시 우리가 인용한 사도행전 2장, 여러분을 그리스도인들로 만드는 41-47절은 여러분을 구성원들로 삼습니다. 우리가 여기 지역 교회에서 사도직과 예언자직 밖에서 발견하는 첫 번째 직무는 사도행전 6장에 따라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고 특정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사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밑도 끝도 없는 사역들 곧 과부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로 바빴었던 것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일부 헬라파 과부들은 자신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이 받는 구제에 반하여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회중을 소집하여 말하기를, “형제들이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과 전파하는 것과 기도하는 임무를 방치하는 것이 합당치 않습니다.” 그는 그것이 작은 임무 곧 덜 중요한 임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들은 너무너무 슬기로운 사람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 중에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 정직한 사람들, 지혜로운 사람들을 선택하십시오.” 이 특별한 사역들을 수행한 사람들이 바로 그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뒷부분에서 베드로가 말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 사도들이 우리의 모든 시간을 식탁 봉사에 쓰는 것은 어설픈 청지기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하게 하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역교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맥락이 같은 이해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정체성 위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도자 설교자들은 너무 많은 요구사항이 자신들에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그 기능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알지를 못합니다. 대부분의 장로들은 교회에서 그 기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집사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역시도 이러한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때때로 겹치는 기능들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기능들의 하나하나를 지정하셨고 각각의 기능에 우선적인 책임영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능을 맡은 사람이 그 책임영역의 필요를 제대로 채우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 모든 다른 일들을 행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성경(신학) 대학의 학장이었을 때, 저는 복도를 걷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학생들이 때때로 너무 정확히 쓰레기통들이 놓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그 쓰레기들을 볼 것이고, 학장으로서 저의 품위를 다해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말하기를 그 휴지들을 주워서 휴지통에 버리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유지보수담당자들에게 급여를 지불한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복도를 걸을 때면 자주 휴지들을 주어 쓰레기통에 넣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만약 제가 돌이켜 캠퍼스 곳곳과 기숙사들을 돌아다니며 낙엽들과 주변의 모든 것을 청소한다면, 이사님들이 불러서 야단을 칠 것입니다. “보세요, 하비(Harvey)님, 그것은 당신에게 맡겨진 일(job description)이 아닙니다. 그것을 하라고 우리가 당신에게 급여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 일을 처리할 유지보수담당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타자를 많이 쳤지만 평생토록 타자를 쳐왔습니다. 다시 이사님들이 말할 것입니다. “하비(Harvey)님, 당신은 우리에게 있는 그 비서실이 무엇 때문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저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성경(신학) 대학에서 다년간 강의를 해왔고 여전히 성경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역자 주: 20세기 초 진보 신학자들이 대다수 신학교들(colleges, seminaries, universities)을 장악해버린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20세기 초중반에 미국 전역에 수많은 성경 대학들(Bible colleges and Bible seminaries)이 세워졌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학생모집의 수월성을 위해서 이들 대학들 대부분이 기독대학들(Christian colleges and Christian universities)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저는 저의 모든 시간을 (주당) 14시간에서 16시간을 강의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이사님들이 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 하비(Harvey)님, 강의하라고 우리가 당신을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강의를 맡은 교수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기를 주목해주십시오. 저는 무엇인가 이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주요한 책임 영역은 최고 관리자의 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 재능의 기능이 일부 겹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로들은 어떤 특별한 기능을 갖습니다. 집사들은 어떤 특별한 기능을 갖습니다. 전도자는 어떤 특별한 기능을 갖습니다. 지금 우리는 오늘날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교회들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합니다.

2. 집사 - 사도행전 6:3-6; 디모데전서 3:8-13; 등(2. Deacons - Acts 6:3-6; 1Timothy 3:8-13; etc)

그러므로 장로님들, 말이 난 김에 집사님들, 여러분은 디모데전서 3장 8-13절을 읽으셨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들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3. 장로 - 디모데전서 3:17; 디도서 1:5-9; 등(3. Elders - 1Timothy 3:17; Titus 1:5-9; etc)

4. 전도자 - 디모데전서와 디도서(4. Evangelists - 1 and 2 Timothy and Titus)

장로들과 동일하게, 디모데전서 3장은 감독들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디도서 1장 5-9절 및 베드로전서 5장 1절에서 여러분은 그들을 장로들이라고 말한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여러분은 그들을 목사(장로목사, pastors)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디도서 1장 5-9절에서 여러분은 장로들과 감독들이라는 용어가 같은 의미로(교환가능하게) 사용되었음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이것들은 동일한 기능에 대한 언급으로 같은 의미로(교환가능하게) 사용된 직책들입니다. 그것은 제가 관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체성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게 커지고 있고, 또 점증하는 현상이 되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단지 보여줍니다. 설교가들은 목사(장로목사, pastors)들로 언급되어져왔습니다. 자 그것은 목회자들이 목사(장로목사, pastors)들로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자격이 있고 회중이 그를 목사(장로목사, a pastor)로 섬기도록 선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나 전도자나 설교자가 자동적으로 그를 목사(장로목사, a pastor)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그리고 만일 전도자가 역할(기능)해야 하는 전도자로서 정말 역할(기능)을 다하고 있다면, 그는 목사(장로목사, a pastor)임을 말해주고 있는 모든 일을 행할 시간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역자 주: 16세기에 종교개혁자들인 칼뱅과 존 녹스가 평신도 장로 대의제도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역사적으로 교회의 설교자, 목회자, 사제(제사장), 치리자, 감독자들은 모두 장로들이었다. 지금도 가톨릭교회, 정교회, 성공회, 미국의 감리교회 등의 목회자들은 사제(제사장)라 칭하는 장로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평신도 장로제도 자체가 없다. 장로를 사제로 바꾼 것은 가톨릭교회이고, 사제를 목사(pastor)로 바꾼 것은 종교개혁자들이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가 가톨릭교회가 1000여년 이상 사용해온 ‘사제’(priest, 제사장)라는 호칭의 대안으로 ‘목사’(pastor, 목자)라는 칭호를 주장하였는데, 칼뱅 등이 수용하였다. 종교개혁 1세대들이었던 루터와 츠빙글리도 이 호칭을 선호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개신교) 예배가 더 이상 매일 바치는 ‘미사’(제사예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히 개혁교회들에서는 주의 만찬의 횟수를 연 2-4회 미만으로 확 줄였고, 제사(제물) 개념을 제거하였다. 그 때문에 ‘사제’라는 칭호가 그리스도교 예배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참고로 종교개혁가들은 모두 가톨릭교회 사제 출신들이었다. 한국 그리스도교(개신교)에서 사용하는 목사라는 칭호는 대체로 ‘pastor’(장로목사)를 뜻한다. 따라서 이 강연에서 하비 브림(Harvey Bream)이 말하는 장로목사(pastor)는 목회자의 기능인 설교와 목회뿐 아니라, 장로의 기능인 치리와 감독의 기능까지를 겸하는 자 곧 개신교회들에서 호칭하는 ‘목사’를 뜻한다. 미국 그리스도의교회들에서는 치리와 감독의 기능을 수행하는 장로들이 대체로 1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매년 새로 선출되는데, 설교자 또는 목회자들이 장로선거 때 입후보하여 뽑혔을 때를 가정하여 장로목사(pastor)라 칭한 것이다. 미국 그리스도의교회들에서는 목회자들의 칭호를 ‘pastor’라고 하지 않고, ‘minister’, ‘preacher’, ‘evangelist’ 등으로 칭하며, 장로들의 치리와 감독기능을 제한한다. 장로직에 뽑힌 목회자들에 한해서 pastor라는 호칭이 가능하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여기에서 이 용어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장로, 성숙하고 친절하며 지혜로운, 믿음에 굳게 선 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목자(a pastor) 곧 양 떼를 치고, 양 떼를 인도하고, 양 떼를 먹이고, 양 떼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언급됩니다. 그는 회중을 감독하고 회중을 치리하기 때문에 감독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다시 감독이 되어 지배하는 것에 대한 미국인의 개념(계급으로써의 감독)은 신약성경개념이 아닙니다. 우리의 교회들에서 그들은 사람들 위에 있는 교회의 것들을 감독 혹은 장로와 목사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철권으로 통치하고, 또 그는 명령으로 통치합니다. 그리고 그는 방방 뛰면서 타고난 권위를 행사합니다. 그것은 신약성경의 개념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말에 대해 “하나님이 맡기신 양떼(God’s heritage, 벧전 5:3)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저는 약 11년 전 성지를 방문했을 때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산책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외출을 했습니다. 저는 베두인들이 그들의 양과 그들의 또 그들의, 그들의 염소를 이끌고 목초지로 나가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자, 그건 그렇고,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그곳에 오래된 낙타 가죽 움막과 천막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옛날 세계로 돌아간 것 같으신지요? 하지만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것들의 꼭대기마다, 그 낙타 가죽 천막들마다에 텔레비전을 시청하기 위한 안테나가 있었습니다. 허, 허,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관찰한 바로는, 이 베두인 양치기들이 앞장서서 인도하고 있었고, 양떼가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 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목자에 대한 성경적 개념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주장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장로들, 목사들, 감독들을 갖고 계십니다. 이분들이 모범적으로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그들의 삶에 활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으며, 너그러우며, 신실한 사람들이라면, 그러면 여러분은 기꺼이 그러한 리더십에 복종하고 그러한 모범을 따르는 교회(회중)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약성경이 여기서 말하는 것입니다.

5. 사도직과 선지자의 직분에 대해 고려할 사항(중단)[5. Consideration of the apostolic and prophetic offices (ceased)]

그러면 여러분은 사도직을 고려할 문제를 갖습니다. 그리고 물론 사도직은 대중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분명히 지속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되려면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언자직은 계시가 성취된 후에는 추가 계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좀 더 다룰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된 예화를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집을 건축할 때, 여러분은 비계를 세웁니다. 비계는 여러분이 건물을 높이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이 건물을 완성한 뒤에는 비계가 서 있어야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웃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완성된 건물을 둘러싼 비계가 계속적으로 세워져 있으면, (건물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비계는 건물이 완성된 후에는 제거됩니다. 마찬가지로 계시가 주어진 후에는 더 이상 선지자의 직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계시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F. 권징 또는 규약(헌장)[F. Discipline or rulebook (constitution)]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신약성경교회 특징들의 여섯 번째 특성인 권징 또는 규약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교회의 유일한 헌법은 신약성경입니다. 우리의 많은 교회들이 헌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조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조례가 성경이 말하지 않는 영역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신약성경교회가 어떻게 장로들과 집사들 등을 선출했는지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야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편의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이 (편의의) 영역들에서 교회는 조례를 갖는 것이 괜찮습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이 믿음과 교리를 말한다면 그것은 신약성경교회의 헌법이 됩니다.

1. 디모데후서 3:16-17; 2:15; 등(1. 2 Timothy 3:16-17; 2:15; etc)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저는 사도 바울이 말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를 좋아합니다. 디모데후서에서, 앞부분에서 다뤄진 장의 뒷장으로 돌아가 2장 15절에서, 저는 여기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여기서 말한 20세기 교회들에서 가장 필요한 훈계 중 하나가 있다고 믿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또한 같은 장의 앞부분에 있는 디모데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이것을 말했습니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그것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그것들을 짚어가며 제가 직접 메모한 이 모든 성경말씀들로 디모데에게 위탁한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탁할 때, 디모데후서 4장에서 1절부터 시작하여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 베드로후서 1장 20절과 21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1장 6-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시 와서 거의 같은 의미를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유다서 3절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습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그리고 물론 요한은 요한계시록 22장 18절로 시작되는 말씀에서 자신의 요한계시록을 끝냅니다. 이 말씀들은 자신이 기록한 책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원칙은 적용됩니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 외에 더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요, 누구든지 그 책의 말씀들에서 제하여 버리면, 그는 생명책에서 제하여 질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더 이상의 계시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후일의 계시라고 주장하는 어떤 계시도, 저의 친구들이여, 성령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모순될 리가 없습니다. 성령님은 스스로 모순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자신이 이미 역시 계시하신 것과 다른 계시를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진리의 말씀이라고 언급된 대로 일들이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는 스스로 모순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진리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권징 또는 규약’은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입니다.

2. 전적 충분(2. All sufficient)

그것은 전적으로 충분합니다. 더 갖는 것은 너무 많고, 덜 갖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성경말씀과 동일한 것을 담고 있다고 공언하는 것은 불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존재하는 신조들, 책들, 규율은 결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사이의 공통 합의를 위한 단계들이 아닙니다. 변동과 분열과 혼란의 원인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과 실천 모두에서 유일하고 전적으로 충분한 규약인 하나님의 말씀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든 신자들이 설 수 있는 유일한 공통의 집회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