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연구를 통해서, 독자는 어떻게 초대교회가 시작되어
발전하였으며, 세계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려면 네 가지 분명하고
두드러진 물음에 답을 얻어야 하는데, 첫째, 어떻게 교회는 막강한 지구촌에서 시작되어
발전하였는가; 둘째, 어떻게 초대교회는 본래의 패턴에서 떨어져 나갔는가; 셋째,
어떻게 종교개혁은 시작되어 발전하였는가; 넷째, 어떻게 로마 천주교회는 반-종교개혁으로
대응하였는가를 포함한다.
교회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오래도록
갖지 않는다는 것을 곧바로 보여준다. 그러한 예들은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위해서 모세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러했고,
사사 시대와 열왕 시대에도 그러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그분의 길을 떠나지
않고 신실한 믿음을 갖는 것이 결코 한 세대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하나님께 신실한 모습으로 남아있도록 대비해야
할 세대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이 연구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학과에서 우리는 교회의 영구성을 강조하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교회와 교회의 영구성에 관한 몇 개의 진술들을 구약성경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교회사에 있어서 오순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교회의
영원성에 관한 가르침들을 신약성경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순례자들로
가득한 이 땅에서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왕국을 찾아보고자 한다.
구약성경의 약속들
구약성경에는 교회에 관한 성구들이나 예언들이 많다. 그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언급되고 있다. 때때로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길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급되어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데아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 <강조는 필자의 것임>
상기한 말씀은 일반적으로 메시아의 출현을 언급한 것으로
받아 드려지고 있다. 예레미야 또한 "이스라엘의 집과의 새로운 계약"을
예언하였다.(렘 31:31-34). 이 새로운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그리고 다시 다니엘은 "영원히 망하지 아니할 왕국"을 예언하였다(단 2:44이하).
이들 성구들의 하나하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있을 새로운 통치의 출현을 예언한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보다 훨씬 더 분명하다. 신약성경 속에
교회가 예언되어 있다. 예수는 마태복음 16장 18-19절에서 약속하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께서 "교회 건축"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신지,
교회의 영구성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신지는 중요치 않다. 예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교회는 "흔들 수
없는 왕국"이다(히 12:28을 보시오).
우리들은 예수의 왕국인 교회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는 예수 자신의 예언과 약속을 모두 갖고 있다. 이 원칙은 우리가 신약성경교회의
환원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할 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그 패턴을 갖고만
있다면,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다.
오순절의 충격
오순절 날은 이스라엘 나라의 주요 축제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 날은 유월절 안식일 이튿날부터 세어서 50일 째날 혹은 제칠 안식일 이튿날에
있었고, 종종 "칠칠절"로 언급된다. 첫 열매들의 처음 익은 단을 흔드는
안식일 이튿날에 시작되었던(레 23:11)<Henry E. Dosker, "Pentecost,"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ed. James Orr(Grand Rapids,
Mich.: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1955), IV, p. 2318>. 그 날은 이스라엘의
두 번의 토지 축제들 가운데 첫 번째 것으로 기술되어지고, 보리추수의 종결을 의미하였다(레
23:15-16, 신 16:9-10). 예수의 부활과 승천이 뒤따르는 유월절 날에 유대인의 큰
무리가 모였고, 오순절 축제를 위해서 남아있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시작하기로
선택했던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따라서 오순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다.
그 날에 성령께서 예수께서 주셨던 약속의 응답으로 강림하셨기 때문에, 오순절 날은
"성령시대"가 시작된 날이었다(요 14:26; 행 1:4-8; 2:1이하). 위대하고
놀라운 사건들이 그 날에 발생하였다.
예수께서 사망하셨고, 장사되었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복음이
온전하게 세상에 처음 주어진 것은 오순절 날이었다. 이 일이 발생하기까지는 복음이
온전할 수 없었다(고전 15:1이하 비교).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처음 선포되었던 날은
오순절 날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오순절 날에 실제로 출범하였다.
교회의 영원성
필자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분별 있는 생각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것이 진실할 수
있는지,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 진리를 단언하는 진술들로 가득하다.
당신의 아들의 강림을 위해서 하나님은 폭넓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셨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위대한 서신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4-10).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엡 1:22-23)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이어서 진술한다. 하나님께서 "비밀"을 드러내실
이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바울은 또 예수께서
"때가 차서" 역사 속으로 정확한 시기에 오셨다고 말한다(갈 4:4). 다른
어떤 시간도 예수께서 오시는데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몇몇 사람들이 억측하는 것처럼, 재고(再考)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교회는 천지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으로 태어난 피조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의 일부분이다. 몇몇 세대주의 주창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세우려고 오셨으나, 유대나라가 그분에게 그렇게 하시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분은 왕국대신에 교회를 남겼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교회"와
"왕국"은 마태복음 16장 18-19절에서 동일한 것으로 언급한다.
예수께서, 교회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약속하신 것을 상기하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신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은 설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예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8-11)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거두셨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이 깨닫는
것은 커다란 위로의 원천이다. 남겨진 것은 "노획물을 청구하는 것"이다.
계시록을 읽어 보라. 비록 우리가 계시록의 모든 상징들의 의미에 철저하게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승리"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승리를 거두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흔들 수 없는 왕국인 교회에
접근한다. 이것에 관해서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의
흔들 수 없는 왕국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28절에서 말한 "흔들 수 없는
왕국"에 관해서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히
12:22-23) . . . .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8). 이
과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요 개념들, 즉 순례자들과 시민들, 역사상의
"환원"의 표식들 그리고 환원 개념을 주목하기 바란다.
순례자들
대(對) 시민들
먼 옛날, 북아프리카 히포의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에서 "세속 도시"와 "하나님의 도시"를
비교하였다. 그의 주장을 크게 압축하여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도시는 영원한 왕국,
즉 교회로 상징되는 영원한 도시인반면, 세속 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임시적이며
미완성의 세상을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의 시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순례자들일뿐이다.
우리는 여기에 지속적인 거처를 갖고 있지 않다. 이 개념에 대한 성구들은 신약성경에
얼마든지 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적고 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후 5:1-2)고 적고 있다. 또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19-20).
앞에서 인용한 몇 개의 성구들을 정리해보면, 첫째, 우리는
순례자들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영원토록 살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아 이 사실을 안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한테 미치기까지, 종종 우리들은
이 진리의 충격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이 임시적이라는 인식으로 지상의 "업무"를
다루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참된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과 동료 시민들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셋째, 이 삶은 단지 "실험장"이다.
이 삶 속에서 여기에 관하여 우리가 무엇인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우리의
삶들을 어떻게 처리해 가는가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영원한 삶을 얻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련하신 선물을 청구할
수 있다. 예수의 피는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해답이다.
역사상의
환원의 표식들
교회는 예수께서 주셨던 원래의 모습에서 곧 떠났고, 조직과
삶과 교리에서 왜곡된 많은 모습들이 교회에 스며들었다. 한 몸으로써 로마천주교회와
자치적인 많은 개교회들 모두가 개혁을 시도하였다. 상당히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거론되었고, 위클립, 후스, 루터 깔뱅, 쯔빙글리는 그 가운데 몇 사람들이다.
따라서 로마천주교회는, 자체의 반-종교개혁운동을 통해서, 스며든 잘못들을 고치려
하였다. 사제들 사이에서의 도덕성은 때때로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교리들이 장려되었다. 복잡한 모습의 조직은 중세기와 그 이전 시대의 교회를
특징 지었다.
종교개혁(reformation)과 환원(restoration). 본서는 “개혁”과 구별해서 “환원” 운동으로 알려져 온 것을 조사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비록 루터 이전에도 수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수많은 개혁활동들을 시동시켜왔었지만, 일반적으로 마르틴 루터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종교개혁운동(the Reformation Movement)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비록 캠벨과 스톤은 그들이 몸담았던 운동을 "개혁"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교회역사가들에 의해서 "환원운동"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루터와 깔뱅 그리고 다른 개혁가들은 그들의 개혁을
기존교회를 "고치고 정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 학과들을
통해서 연구하려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랜 초대교회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전적인 인도를 받기 위해서 신약성경에로 복귀하는데서 그들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보았다. "성경이 말하는 곳에서 우리는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우리는 침묵한다."가 그들의 의도들을 기술하는 자주 반복되는
슬로건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들 학과들에서 "환원운동"이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그분의 길을 찾기 위해서 신약성경에로
복귀하려는 그 시도를 우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캠벨과 스톤 그리고 다른 개혁가들이 착수했던 것과 동일한
일을 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교회 역사를 통해서 있어왔다. 몬탄파(Montanists)는
교회를 정화하려고 착수하였다. 알비겐즈파(Albigenses)와 발덴즈파(Waldenses) 그리고
재침례파(Anabaptists)들은 기존 교회들을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교회가 가진 본래의
순결성에로 돌아가는데 전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지면관계상 신약성경 기독교를 회복시키려했던
모든 운동들을 낱낱이 기술할 수는 없지만, 알렉산더 캠벨은, 그의 토론들에서, 세기들을
통해서 신약성경의 패턴을 따르려고 한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환원"
개념
그러므로, 환원운동은 신약성경 기독교를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착수되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은 이 운동이 얼마나 커질지
그 범위를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 본래의 활동들이 갖게될 영향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19-20세기 기독교 연구에 의하면, 환원운동은, 이 운동의
모든 분파들(Disciples of Christ,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을
포함해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토착적인 종교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이들
그룹들에는 중앙 교회본부들이나 중앙 "홍보기관"이 없기 때문에 그 운동의
수적 크기를 추정하기가 매우 어렵기는 하나, 이 모든 그룹들에 속한 교인들의 수가
3~4백만 명을 넘는 것이 분명하다.
과거 한 세기 반을 돌아보게 되면, 우리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주목하게 된다. 첫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에 관해서 듣고
수용했던 추종자들이 초창기에 쇄도하였다. 이미 주목했듯이, 그것은 19-20세기에
가장 빠른 성장운동이었다. 둘째, 그 운동은 초기에 기세를 장악하였지만, 분열로
인해서 그 힘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운동의 세 분파 모두에서 분열과 갈등과
대립이 그 운동을 특징짓게되었다. 셋째, 초기에 성장이 쇄도한 후, 그 운동의 신약성경
기독교 정신의 환원이 종종 "교리 순결"을 위해서 희생되었기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것은 교리 그 자체의 분야에서보다는 종종 견해의 분야에서 더욱
심했다. 성만찬 때 한 컵을 사용하지 않고 개별 컵들을 사용한다거나 신학대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들을 고용하는 문제들이 문자적으로 그 운동을 분열시켰다. 과거 수년
동안, 분열들은 매우 극화되어서 한 그룹이 또 다른 그룹과 종종 "말하지"
않게도 되었다. 이것은 그 그룹들의 실제적 성장을 종종 제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신약성경 기독교의 원칙들에 우리의 삶을 바쳤던 우리 모두는
환원운동 내의 "유감스런 상태의 일들" 때문에 비탄에 잠기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환원운동을 택하셨고 또 지금도
계속해서 사용하고 계시다고 믿는다. 그러나, 필자는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와 계속해서
다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최근에 필자의 절친한 친구가 "우리들의 운동이
심각한 문제 가운데 있다"는 말에 대답하기를, "만약 우리가 환원운동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성취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서
그것을 성취하시려고 누군가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에게 헛되이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더 일찍 주목하였다(이사야 55장 8-11절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성취하기
원하는 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더 크게 강조하는 것에 고무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들 학과들을 공부하는
분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데 그들 자신들을 헌신하기를 바란다.
결론
이 첫 학과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교회를 통해서
성취하시기를 원하시는 일을 침묵하셨던 수세기 동안에 계획하셨다는 것을 배웠다.
교회는 영원하며,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길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성취를 위해서 교회와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신약성경 기독교의 환원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개혁과
환원의 개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개혁가들은 기존의 교회를 "고치거나"
정화하려고 하였고, 환원운동은 모든 기독교 세기들 배후에 있는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는
본래의 모습에로 돌아가려고 한다. 우리가 보아온 대로 이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신실한 믿음을 갖는 것이 결코 한 세대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인간의 개념들 위로
일어나며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다.
토의 주제들
1. 무슨 방법으로 하나님은 왕국 즉 교회의 도래를 준비하셨는가?
2. 오순절 날은 오늘날의 교회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3.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예수께서 교회에 관하여 하신 말씀의 충격을 토의하시오.
4. "세상의 시민들" 대(對) "왕국의 시민들"을
토의하시오.
5. "환원"과 "개혁"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6. "환원"의 개념을 논하고, 어떻게 이 개념이
그리스도를 위한 당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토의하시오.
Morris M. Womack, Thirteen
Lessons on Restoration History(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88), pp.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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