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좇아 세계 만방에 그의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따라서 한민족에게도 이 구원의 말씀이 전파되었다. 각 민족에게 전파된 복음의 말씀은
그 민족이 갖는 특이한 역사와 전통을 따라서 그 민족이 갖는 신앙적인 결단에 의해서
선택한 교회의 각양 형태를 취하였다. 복음을 식물의 종자라고 말한다면 각 민족이
갖는 역사적인 전통과 민족성은 기후와 토질 곧 풍토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식물의 종자이지마는 그 풍토 차이로 인해서 거기서 자라는 나무의
성장하는 모습이 달라지는 것처럼 각 민족이 갖는 민족성의 차이로 인해서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지마는 그 표현하는 신앙의 양태가 달리지는 것이다. 그것을 그
민족이 갖는 교회의 특색을 따라 각 민족의 신앙의 특이성이 나타난다. 카톨릭 교회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인 권력과 그 행정적인 조직과 법질서의 확립 등의 반영으로 그렇게
강한 교권과 조직력을 가진 로마 교회를 형성하였고, 동유럽 제국의 동양적인 성격은
비의적(秘儀的)이며 묵시문학적인 희랍정교회를 낳았고 영제국과 같은 보수적이며
귀족풍의 국민성은 성공회와 같은 의전적이고 고답적인 교회를 형성하였다. 게르만족과
같은 진취적이고 이지적인 백성들은 개혁적이고 전투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낳았고
미대륙과 같이 자유를 즐기고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미국에서 전래되는
군소 교파와 같은 평민적이며 자치적인 교회를 낳았다.
한국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이래 짧은 한국 교회 역사를
통해서 한국 교회가 갖는 어떤 특이성의 양상이 나타나기는 하였지마는 정말 이것이
한국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뚜렷한 모습이 신학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국적 자각 밑에서 복음이 수용되었다기보다는 외국 교회가 자기네들의
성서해석과 신앙 양식을 한국 교회에서 이식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아직도 한국
교회는 우리 나름의 자각으로 복음의 씨를 우리의 풍토에 심고 특이한 신앙 형태로
발전한 것 같지 않다. 다만 외국 교회의 흉내 아니면 무자각한 외국 교회의 전통과
성서해석의 묵수, 이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한민족의
역사가 정치적으로 외세에 의해서 억압과 침략을 당하는 동안 이민족의 정신적인
자세가 무자각한 사대주의에 기울어져 그 시정책이 국민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신앙마저 남의 나라의 종교적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될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극단의 반발로 무조건 외국 것은 나쁘다고 하는 배타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지마는
우리는 과거에 한국 교회가 걸어온 무자각한 외국 것의 모방이나 묵수 등은 삼가야
할 것으로 안다. 이런 것들은 초기 한국 교회의 발전 과정에 필요로 한 것들이었으나
상당히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에 와서도 한국 교회가 지속해야할 태도라고 우리는
보지 않는다.
우리는 타 교단의 문제는 고사하고 한국에서 소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불리우는 제 교회를 개관하여 보면 이상에서 말한 것과 같은 한국적 자각이
새삼스럽게 요청된다고 보는 것이다. 1937년이래 미국 선교사들이 전한 소위 말하는
'환원운동'은 신약성서에 있는 초대 교회에로 환원한다는 외침은 좋으나 우리가 성서를
읽고 깨닫는 대로는 성서가 정말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신앙과 교회의 원형태를 그들이
바로 인식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점에서 그들의 오해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미국의 환원운동이 개체교회의 독립성을 극단으로 고조한 나머지
교회와 교회끼리의 유대와 전체 교회가 가져야 할 질서 있는 통일성을 결하여 그
질서가 문란한 그것이다.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회는 어디까지나 질서 있는
유기체 곧 '그리스도의 몸'(엡 1:23; 골 1:18; 고전 12:21)으로서의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각자가 맡은 직책을 따라 신앙으로 봉사하며 개체교회는 타 교회와 협력해서
전체 교회의 통일성 있는 유대를 갖고 그 본래의 사명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깨달은 성서적인 교회는 한 개체 교회만 잘해 나가면
된다는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전체 교회가 공동체 의식을 갖고 상부상조하는
질서 있는 교회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고전
14:23)고 했고 "모든 것을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 골 2:5)고 몇 번이고
그 교회들에게 권유한 것이다. 초대 교회는 교리와 신앙상 문제가 생겼을 때 전체
교회의 신앙적인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공의회를 열고 이를 논의하였으며
그 논의된 것이 확정되는 대로 사람을 택하여 각 교회에다 공한을 발송했으며(행
15:6-29) 또 예루살렘 교회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각지방교회가 서로 헌금을 거두어
그 어려움을 돕기도 하였다(롬 15:25-29; 고후 9:1-5).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 있는
소위 말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이런 초대 교회가 가졌던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고
있느냐 하면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미국 환원운동이 전해준 개교회주의의 가르침이
극단의 개인주의식 교회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환원운동
지도자들이 가졌던 그 당대 미국 사회 풍조인 개인주의적 자유 사상의 영향과 지나친
교권주의에 대한 반발 등에서 나온 교회관을 한국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데 기인한다고 볼 것이다. 교회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세운 교권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그 본래의 사명과 그 종말론적 과제를
수행해 나가려면 성서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교권과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렇게 못할 때 교회는 혼란과 무질서 속에 빠져 들어가고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지탄받는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의 지금까지의 혼란상이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것은
조직과 교권이 확립되지 못한 허술한 틈을 타고 들어온 선교 방책의 무계획성, 성직자들의
무질서한 장립(將立)과 그 권위 상실, 신앙과 교리의 무정견(無定見), 그로 인한
교회의 신앙 방향의 동요와 건실한 발전의 저지(沮止) 등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미국 환원 운동자들의 오류는 그들이 세례와 성만찬
등의 초대 교회의 의전적인 방식을 강조한 나머지 신앙의 내면성의 충실을 결하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결코 신앙의 외면적인 형식을 경홀히 여기는 바는 아니지마는 신앙의
내용과 그 영감적인 면을 소홀히 할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이다.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대체적인 경향은 세례의 의식 자체에 구원이 있는 것처럼 해석한다든지 성만찬
의식을 행하는데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는 양 말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란 이름을
씀으로 그것이 유일한 신약성서적 교회를 뜻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나머지 그 내면성의
의의라든지 그 내용의 인격적인 실현 등이 도외시되는 점이다.
초대 교회에로의 환원은 세례와 성만찬과 교회의 이름 등의
외면적인 환원에만 주력해야 할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 특히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내적인 역사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환원운동자들의 가르침 가운데는
기사 이적이나 성령의 세례 등은 사도시대 당시에 국한되었든 현상이지 오늘날은
정지된 것처럼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세례'란 말을 자구적으로 해석하여
세례는 침수 세례 하나만이라는 주장에서 기인한 것일 것이다. 이런 극히 피상적인
자구적 성서해석이 그렇게 메마른 형식주의와 또 다른 율법주의적 신앙 형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어느 주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앙의
형식적인 면을 포기하고 그 내면적인 면만을 주장하자는 것도 아니고 오늘날 교파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위적인 명칭이나 성례전의 간편주의를 채택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앙의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보는 겸전한 신앙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서의
독자적인 해석 아래 한국 교회가 나가야 할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질서 있는 교회로써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가 유기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연합적 조직체의 형성과 성례전의 재인식 그리고 신앙 내용의 올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을 절감하는 바이다. 그래서 명실 공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그리고 성서적 신앙이 이 땅에 확립되기를 바라면서 아래와 같은 우리의 결의를 표명하는
바이다.
1. 우리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국인에게 들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한국인의 자각 있는 신앙과 이해에 의해서 세워져야
할 것을 믿는다.
1. 우리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신구약 성서의 말씀에 기준해서 신앙하며 또 그 말씀에 기준해서 교회가 세워져야
할 것을 믿는다.
1. 우리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서에 계시된 신앙의
내용의 충실을 기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담은 그릇인 양식과 표현도 성서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1. 우리는 한국인의 자각으로 이해하는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형태에 대해서 어떤 외국인의 독자적 신앙이나 교회 형태가 한국인의 신앙적 결단을
무시하고 간섭할 수 없음을 믿는다. 그러나 외국인의 독자적 신앙과 교회에 대해서
성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이를 존중하며 또 우호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1. 우리는 한국인의 자각으로 이해한 성서적 교회가 그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전체 교회의 유기적 통일성을 기하는 성서적 조직체가 있어야
할 것을 믿는다.
1. 우리는 한국인의 신앙적인 자각에서 세워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적인 조직을 갖고 이의 원활한 운영을 도모하기
위하여 각 교회의 구체적 헌신과 협력이 요청되는데 이는 각 교회의 전체 헌금 중
십일조를 교회의 연합체에 드림으로 이에 충당할 것을 결심한다.
1. 우리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건실한 발전을 위해서
같이 기도하며 우리의 총력을 기울여 이를 받들며 사랑으로 굳게 단결한 것을 다짐한다.
(참고: 이 선언에 참여한 동역자들은 다음과 같다. 서울교회 이신, 동막교회
김철수, 서울교회 김영원, 신촌교회 김태수, 부산교회 이명휴, 소수교회 김길홍,
안동교회 양정식, 진영교회 김육진, 희망촌교회 김정만, 소수교회 김상식, 원주교회
김용웅, 부산교회 장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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