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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언(遺言)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 성서
스프링필드 장로회는 버번(Bourbon) 카운티(County) 케인리지에 모여,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로 말미암아 평소보다 더욱 건실하고 강성하게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정신 또한 온전히 건전하고 차분한 상태에 있으나 대표를 파송한 모든 단체들이 한번은 죽도록 정해져있음을 알고, 또 그 같은 모든 단체들의 생명이 매우 불확실하다고 생각되어 다음과 같은 형식과 방식으로 우리의 이 유언서를 작성하고 제정하는 바이다. 먼저, 우리는 이 장로회가 죽고 해체되어 큰 범위의 그리스도의 몸에로 연합하기를 원한다. 이는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우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항목. 우리는 우리의 구별된 명칭과 존경하는(Reverend)이라는 칭호가 잊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기업 위에 오직 한 주(主)만 계시며, 그분의 이름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항목. 우리는 교회를 치리하기 위해서 법들을 제정하고, 위임된 권위로 그것들을 집행하는 권한이 영원히 멈추기를 원한다. 이는 성도들이 성서를 자유롭게 연구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채택하게 하려 함이다. 항목. 우리는 복음 사역의 후보자들이 이제부터는 뜨거운 기도로 성서를 연구하고,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자격(설교 면허증)을 얻어 단순한 복음을 설교하기를 원한다.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이 조금도 섞이지 않게 하고, 지금부터는 아무나 이 영예를 스스로 취하지 못하게 하고, 아론이 그러하였듯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만 취하게 하라. 항목.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내치(內治) 즉 목회 후보자들이 믿음은 건전한지, 체험적 신앙은 이해하는지, 가르칠 만한 품위와 적합성은 있는지를 알아 볼 본래의 권리를 회복할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말씀하시는 것 이외에 그들의 권위에 대한 어떤 다른 증거도 인정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시도록 추수의 주님을 바라보며, 자칭 사도라 하되 실상은 아닌 자들을 시험할 태고의 권리를 다시 회복하기를 원한다. 항목. 우리는 개개의 교회가 한 몸으로서 같은 정신으로 활동하며, 자기 교회의 설교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자원하는 헌금으로 설교자를 사례하며, 서명 청빙이나 승낙 없이 -- 교인들을 받아 드리고 -- 위법을 제거하며, 그리고 이제부터는 결코 교회의 치리권을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위임하지 않기를 원한다. 항목. 우리는 이제부터 사람들이 성서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잡이로 삼기를 원한다. 성경과 경쟁하는 다른 책들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원한다면 그 책들을 불 속에 던져 버려도 좋다. 이는 많은 책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항목. 우리는 설교자들과 성도들이 서로 관용의 정신을 기르며, 논쟁은 줄이고 기도는 더 많이 하기를 원한다. 또한 시대의 징조를 살피면서 위를 바라보고 구속이 가까이 왔음을 확신하며 기대하기를 바란다. 항목. 우리는 스프링필드 장로회를 그들의 왕으로 삼고 싶어 했으나 그것이 이제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한 형제들이 만세 반석이신 예수에게로 나아가 앞으로는 그분을 따르기를 원한다. 항목. 우리는 켄터키 주 노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벗어난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회원을 조사하고, 그러한 이단으로 의심되는 모든 자를 즉각 정직(停職)시켜 억눌린 자들이 자유롭게 되고, 복음의 자유의 달콤함을 맛보도록 하기를 원한다. 항목. 우리는 최근 렉싱턴에서 발표된 두 통의 편지들의 저자인 Ja----- 모씨가 당파주의를 파괴하려는 그의 열심에서 격려받기를 원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행적이 정확한 정보를 가진 모든 이들에 의해 조사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외부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악하게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항목.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자매 단체들이 성서를 주의 깊게 읽고, 거기서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음을 깨닫고, 너무 늦기 전에 죽음을 대비하기를 원한다. 스프링필드 장로회 1804년 6월 28일
직인을 찍을 자리(Locus Sigilli) 로버트 마셜, 존 던래비, 리처드 맥네마르, 발톤 W. 스톤, 존 톰프슨, 데이비드 펄비안스. 증인들(장로인 데이비드 펄비안스를 뺀 나머지 목사들의 이름은 알파벳순)
증인들의
진술(The Witnesses' Address)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유언서에 이름이 언급된 우리 증인들은 이 단체의 해산을 초래한 원인들에 관해서 많은 추측들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이 단체가 처음 조직되면서부터 사랑으로 결속되었고, 화평과 화합 속에서 지냈으며, 자발적이며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음을 증언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 단체를 해산하기로 한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깊은 우려 속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과 당파심을 바라보았는데, 주로 인위적인 신조들과 치리 형태들의 채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이 장로회란 이름아래 연합되어 있는 동안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사랑과 일치의 정신을 함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한 당파였다는 생각을 억누르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어려움은 그들의 사역이 성공할수록 더욱 커졌다. 질투심들이 다른 교파들의 마음속에서 불붙게 되었고, 여러 당파들과 연결된 자들에게도 그들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유혹이 놓여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모임에서 “교회 정치에 관한 관찰”이란 글을 출판할 채비를 갖추었는데, 이를 통해 세상은 인위적인 창안들과 권위적인 전통들이 제거된 그리스도인의 교회 정치의 아름다운 단순함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 주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신약성서에는 현대와 같은 연합체, 즉 당회, 지방노회, 주노회, 전국총회와 같은 지침이나 사례가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 속해 있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한 그리스도께서 친히 중요한 모퉁잇돌이 되신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교회 정치에 관한 그들의 견해가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스스로 구성한 단체의 이름과 승인아래 활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름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랑, 예수의 소중한 사명, 그리고 교회의 분파와 당파의 존재로 인해 주님께 나아오지 못하는 죽어가는 죄인들을 위하여, 그들은 기꺼이 서로 충돌하는 당파의 소란과 분노에서 물러나, 육적인 마음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죽음을 맞이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산이 세상에 큰 유익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상기한 바와 같이 비록 죽어 죽을 운명의 육신을 벗었다할지라도, 그 육신은 그들을 이집트의 속박의 경계에 너무 가깝게 붙잡아 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복음의 자유의 땅에서 살아가며 말한다. 그들은 희년의 나팔을 불고, 기꺼이 강한 자들에 맞서 주(主)를 돕는 일에 헌신한다. 그들은 필요할 때, 형제들을 그들의 조언으로 도울 것이며, 장로들과 혹은 목사들을 안수하는 것을 돕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고, 함께 교제하며, 주(主)의 사역에서 서로의 손을 굳세게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사역자들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저 직무들을 계속 수행하기로 뜻을 세우며,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며 신뢰한다.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어떤 일들에서는 실수할 수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방황함을 바로 잡아 주시고, 그의 교회를 보존하실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우리와 함께 동참하게 하여,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분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들을 제거해 달라고 간구하며, 그분이 예루살렘을 땅 위에서 찬양받게 하실 때까지 그분에게 쉼을 드리지 말자. 우리는 모든 이름의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과 진심으로 연합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서부 지역에서 행하시는 영광스러운 사역 속에서 펼쳐 보이신 그분의 선하심을 감사드리며, 이 일이 결국 복음의 보편적 확산과 교회의 일치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해설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유언서(최후의 유언과 증서)는 미국 켄터키(Kentucky)주(州) 버번(Bourbon) 카운티(County) 케인리지(Cane Ridge)에 위치한 발톤 스톤의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모인 스프링필드 장로회가 1804년 6월 28일 지방노회 해체를 선언하면서 발표한 유언서와 해명서이다. 1990년경 아래아한글 1.0으로 작성한 우리말 번역을 거의 35년만인 2025년 12월 중순에 다시 번역하였다. 스프링필드 장로회가 조직된 곳은 오하이오주 해밀턴 카운티에 있던 스프링필드 타운십이었다. 이 지역은 신시내티 북쪽 교외 지역으로 18세기 말에 스프링데일 장로교회(1792-2020)가 세워지면서 ‘스프링필드’(Springfield)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후 행정구역과 마을 이름이 바뀌면서 ‘스프링데일’(Springdale)로 개칭되었다. 본 문서는 리처드 맥네마르의 협조아래 주로 발톤 스톤이 작성하였고, 여섯 명의 증인들이 알파벳순으로 서명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자랑하는 최초의 문서이며, 1809년 9월 7일 토마스 캠벨이 초안하여 발표한 <선언과 제언>(Declaration and Address)과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의 출범을 선포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유언서 전반부는 12개 이상의 성구(예: 히 9:16-17; 고전 15:36; 요 12:24; 히 12:26-27; 엡 4:4-6; 마 23:10; 롬 8:2; 골 2:8; 마 9:3; 눅 10:2;8; 마 5:29-30; 요 1:32; 히 5:4; 계 2:2; 눅 21:28)가 인용 또는 부분 사용되고 있어, 본 문서가 성서에 바탕을 둔 유언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문서에서 발톤 스톤은 교회연합의 당위성, 성서의 권위회복, 개교회의 자치권, 그리고 홀로 주(主)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앙의 자유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다. 스프링필드 장로회는 해체를 선언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세계의 모든 교회가 분열과 파당을 멈추고 죽어 해체되어 더 큰 범위의 그리스도의 한 몸에로 연합하기를 유언한다. 그리고 이어서 각 조항에서는 존귀를 받아야 할 자는 오직 한 분, 주님뿐이시며, 자유로운 성서연구를 막고, 성령의 법을 어기는 교회법과 교권으로부터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방되어야 할 것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성서는 모든 신자들의 믿음과 실천을 규범 짓는 유일한 책이란 것을 선포하면서 세속학문이 성서보다 우위에 서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훈련된 참 일군을 선별하여 파송할 자치권과 그 책임을 회복해야 하며, 모든 일에는 사랑과 관용의 정신으로 임해야 할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후반부 해명서에서는 유언서를 작성하게 된 동기와 목적 그리고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본 문서의 탄생은 적어도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토양에서 가능했다. 제임스 오켈리는 발톤 스톤보다 앞서 이미 감리교단에서 교회치리와 목회자 임명에 대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본 문서는 장로교단안에서 벌어진 자유로운 성서연구를 위한 선투(善鬪)의 결과인 것이다. 이와 같은 운동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의 속박에서 자유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앙의 자유와 사랑과 관용의 정신으로 몇몇 사람들이 성서해석과 신학적 결론을 가지고 울타리를 좁게 치는 파당주의를 극복하고 더 큰 범위의 ‘그리스도인’ 또는 ‘그리스도의 교회’안에서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유익은 자유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율법과 죄의 속박에서 자유 하였다. 이러한 자유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의 열매를 맺는다. 인위적인 신조나 교리 혹은 교회법에 얽매임이 없이 성서로 돌아가 성서가 말하는 것을 행하고 성서가 금하는 것을 금하게 될 때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일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관용과 사랑의 정신이 절대적이다. 주님만이 우리의 왕이 되시고, 성서만이 우리의 헌법이 될 때에 교회법이나 교권에 지배됨이 없이 그리스도와 성서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참 자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그리스도요,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성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의 피로 사신 바 된 그의 백성이므로, 우리의 소속은 감리교회도 장로교회도 침례교회도 성결교회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주된 관심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실현시키는 것이다. 본 문서를 작성한 발톤 워렌 스톤(Barton Warren Stone)은 1772년 12월 24일 미국 메릴랜드주 찰스 카운티 폴트 토바코에 가까운 곳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세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아홉 살 때에 독립전쟁이 있었다. 발톤 스톤은 재산 분배를 받아 그 돈으로 자신의 대학교육에 투자했다. 그는 북 캐럴라이나주 그린스보로에서 멀지 않은 유명한 데이비드 콜드웰 아카데미(David Caldwell Academy)에 등록하여 다른 많은 장로교회 목회자들과 마찬가지로 삼년간의 고전수업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윌리엄 핫지(William Hodge)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설교를 듣고 회심 체험을 하게 된다. 그가 제임스 맥그레디(James McGready)의 유황과 불의 심판을 주제로 한 설교보다는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사랑을 주제로 한 설교에 감화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작성한 유언서에서 품기는 성품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의 평화주의와 타고난 실천적 연합의 정신, 그리고 잃은 영혼들을 구하겠다는 그의 깊은 관심에서 출발되었다. 스톤은 29세에 엘리자 캠벨(Eliza Campbell)과 결혼하였다. 졸업시험에 합격한 후 설교 자격증을 따기까지 일 년 동안 스톤은 조지아주 워싱톤에 위치한 숙콧 아카데미(Succoth Academy)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이 학교 교장이었던 호프 훌(Hope Hull)은 제임스 오켈리(James O'Kelly)의 운동을 지원하는 감리교인이었다. 여기서 스톤은 훌과 오켈리 운동의 영향을 받고 교권 민주화의 필요성을 수련 받게 된다. 조지아주에서 돌아와 설교 자격증을 받은 스톤은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북 캐럴라이나주와 버지니아주로 설교여행을 시작했고, 테네시주를 거처 켄터키주로 옮겨와 렉싱턴에서 가까운 케인리지와 콘코드 두 교회에서 임시 목회자(supply minister)가 되어 불과 수개월 만에 각각 30명, 50명의 새 신자를 얻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스톤은 그 다음 해인 1798년에 임직 목회자로 초대되었다. 이후, 목사 안수식 때에, 스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서에서 가르친 체계적인 교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을 받아 드리고 채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전체 회중이 들을 수 있는 힘찬 목소리로 “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을 보는 한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이 답변에 반대가 없어 안수를 받았지만, 목사가 된지 불과 5년 만에 스톤은 이 신앙고백서가 성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성서로 돌아가기로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1800년 통계에 의하면, 켄터키주의 신앙인은 전체 인구 221,000명 가운데 불과 10,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은 자연신론자이거나 무신론자였으며, 종교적인 무감정에 빠져 있었다. 독립전쟁직후 개척지였던 이 지역의 사람들은 주일을 지키지 않았고, 욕설, 무도회, 파티, 말 경주, 도박, 음주 등으로 대단히 문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임스 맥그레디(James McGready)와 같은 부흥사들에 의해서 켄터키주 일대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다. 스톤 자신은 깊이 개입하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비명, 경련, 입신과 같은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특히 1801년 8월에 있었던 케인리지 부흥회 때는 참석자가 무려 25,000여명에 이르렀고, 음식이 떨어져 기아상태에 이르기까지 밤낮으로 설교와 찬송과 기도가 계속되었다. 부흥회의 열이 가라앉자, 장로교회는 분열이 일기 시작했다. 지방노회와 주노회의 권위가 부흥회에 참석했던 목사들과 평신도들에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되었고, 기존 장로교 신학과 다른 입장을 보인 부흥회 그룹은 그들만의 친교모임을 만들고 강하게 결속하였다. 1810년에는 쿰버랜드(Cumberland) 장로교단이 형성되었고, 뉴 라이트(New Lights)도 새로운 장로회들을 조직하였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스톤은 신앙체험의 중요성과 기쁨을 알게 되었고, 전통적인 신조들 이외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에도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교회 분열의 죄악성을 보았고, 개척지역의 민주적 자유를 함께 나누며, 점차 교회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는 비록 부흥운동에 적극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함께 연대했다. 콘코드와 케인리지에서 장로교회 목사로 봉직한지 육년 만에 스톤은 성도들을 모아 놓고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양심적으로 장로교회가 옳다고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모든 노력이 당파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고 말하고, 성도들의 금전상의 모든 의무를 면하여 주었다. 그는 회중이 보는 앞에서 사례비 지불이행에 대한 약정서를 찢어 버렸다. 이와 동시에 부흥운동에 동참했던 스톤의 동료 목회자들도 이와 유사한 결단을 해야 했다.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유언서에 서명한 로버트 마셜(Robert Marshall), 존 던래비(John Dunlavy), 리처드 맥네마르(Richard McNemar), 존 톰프슨(John Thompson)이 이들 가운데 일부이다. 스프링필드 장로회 형성의 직접적인 동기는,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맥네마르의 견해가 워싱톤 장로회에서 문제가 되고 나서였다. 그는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에 담긴 교리에 위배되는 위험하고 해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을 받았다. 결국 이 문제가 1803년 9월 7일 렉싱턴에서 열린 켄터기주 노회에 상정되었고, 주노회는 워싱턴 장로회가 맥네마르의 문제에 엄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을 비난하였다. 투표에서 부흥회측은 반부흥회측의 수적 우세를 꺾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그러자 부흥회측은 주노회의 사법권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하였다. 성명서에 서명한 마셜, 스톤, 던래비, 맥네마르, 톰프슨은 그들의 글에서 충분하고, 최종적이며, 완결된 권위로서의 성경에 깊이 뿌리내린 헌신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자유롭게 해석하기를 바라는 갈망을 피력하였다. 문제해결을 위한 형식적인 노력이 있고 난 후에, 주노회는 1803년 9월 13일, 분리자들이 주노회의 사법권에서 탈퇴했을 뿐 아니라, 신앙고백서에서 떠났으며, 교회의 교리와 규범에 환원하기를 거절하고 그들 자신의 장로회를 구성했다는 이유로 서명자들을 정직(停職)할 것을 투표로 결정하였다. 실제로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구성은 이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된 일이다. 이들은 1804년 1월에 “켄터키주 노회의 사법권을 포기한데 따른 변호” 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로버트 마셜이 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1부를 썼고, 스톤이 신앙고백서에 담긴 잘못된 교리를 비판하기 위해서 제2부를 썼으며, 톰프슨이 인위적 신조의 권위를 반박하기 위해서 성서를 변호하였다. 독립 기구인 스프링필드 장로회는 단지 9개월 동안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정책이나 운영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장로교이면서도 기존 장로제도에 의해서 인정되지 않는 기구였다. 회원 교회들은 모두가 15개의 장로교회로 구성되었다. 이들 교회 말고도 비슷한 견해를 가진 교회들이나 부흥설교가들이 환영받는 비조직의 알려지지 않은 그룹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기질적으로 어떠한 교권에도 순복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스프링필드 장로회를 조직한 교회들도 구속(atonement)이나 다른 교리적인 이슈들에 대한 논의로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일치나 안정을 찾지 못하고 결국 텅 비고 이름뿐인 스프링필드 장로회는 해체 돼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조직에서 오직 스톤만이 안정적이고 의존할만한 인물로 남게 되었다. 스톤은 이 유언서의 근본정신을 바탕으로 파당적인 교회명을 버리고, 또 우리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아집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인 뿐(We are NOT only Christians, BUT Christians only)이라는 정신으로 ‘그리스도인’(Christians)의 이름아래 교회의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라이스 해가드(Rice Haggard), 제임스 오켈리(James O'Kelly), 아브너 죤스와 엘리아스 스미스(Abner Jones and Elias Smith), 그리고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의 운동에 함께 연대하게 되었다. 이들은 감리교인(Methodist), 장로교인(Presbyterian), 침례교인(Baptist)과 같은 이름은 옳지 않다고 믿었고, 침수세례가 옳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톤과 함께 유언서에 서명했던 목사들 가운데 맥네마르와 던래비는 셰이커(Shakerism)에 넘어갔고, 마셜과 톰프슨은 장로교회로 다시 돌아갔다.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침수를 주장했던 펄비안스는 설교가이지만 본래가 정치가였다. 그는 주의원으로 활약했다. 이상으로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유언문서의 번역과 이 문서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제임스 멀치(James DeForest Murch)가 쓴 <오직 그리스도인>(Christians Only)이란 책에 실린 스톤에 관한 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미 본 문서가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토양에서 가능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스톤이 주장한 교회연합의 당위성, 성서의 권위회복, 개교회의 자치권, 그리고 홀로 주(主)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앙의 자유가 우리의 토양과 현실에 접목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우리 각자가 스스로 물어 보는 아픔이 필요한 때라 생각된다. 우리의 생존을 미국식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틀에 맡겨 버려서도 안 되겠고,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다른 교단의 것들을 따라 가서도 안 되겠다. 우리 식에 맞는 우리의 것들이 있어야 할 때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물어 보자. 미국의 형제들이 우리에게 주어야 할 것은 정신이지, 그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교리도 조직의 틀도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소중한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성서만이 우리의 헌법이 되며, 사랑과 관용의 정신만이 끈끈한 접합제가 된다는 진리이다. 이제로부터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의 것을 찾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이다. 옳다고 믿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남의 것이니까 안 되고, 우리 것이니까 별나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버려야 한다. 남의 것이든 우리의 것이든 성서에 비추어 옳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내용이다. ‘본질에 일치를, 비본질에 자유를, 모든 일에 사랑과 관용을!’
참고서적
Stone, Barton W. “The Last Will and Testament of the Springfield Presbytery”(1804). Reprinted by Lincoln Christian College Press, Lincoln, Illinois in 1983. Cochran, Louis and Cochran, Bess White. Captives of the Word: A Narrative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the Christian Churches(Independent), and the Church of Christ. 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87. Dickinson, Hoke S., ed. The Cane Ridge Reader. Cane Ridge, 1972. 이 책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서들이 포함되었다: 발톤 스톤의 자서전, 교회 치리에 관한 관찰(Observations on Church Government),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유언서, 서부지역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사. Dunnavant, Anthony L. Cane Ridge in Context: Perspectives on Barton W. Stone and the Revival. Nashville: Disciples of Christ Historical Society, 1992. McAllister, Lester G. Journey in Faith: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Saint Louis, Missouri: The Bethany Press, 1975. Mills, Dean. Union on the King's Highway: The Campbell-Stone Heritage of Unity. 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87. Murch, James DeForest. Christians Only: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 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n.d. Webb, Henry E. In Search of Christian Unity: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 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1990. Womack, Morris. Thirteen Lessons on Restoration History. 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