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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천련: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고후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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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754 2006.03.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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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천련: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고후 8:19)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사비에르가 1549년 8월 15일 일본에 입국한지 50년이 지난 박해 당시에는 기독교인이 50만 명에 달했다고 전합니다. 이 당시 일본인들은 기독교인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신부들을 반천련(伴天連)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란 뜻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7월에 반천련들은 20일 이내에 일본을 떠나라는 반천련추방령을 내렸지만, 예수회 신부들이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 탄압을 엄히 명령한 조서를 전국 각지에 내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최측근이었던 다까야마 우꼰에게 배교를 명했는데, 그는 “각하께 목숨은 드릴 수 있지만, 저의 신앙은 버릴 수 없습니다.”라는 말로 정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최초로 십자가 처형 사건이 일본 나가사키(長崎)시 니시자카 언덕에서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기 1년 반 전인 1597년 2월 5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6명의 예수회 신부들과 일본인 기독교인 20명을 처형했던 것입니다.
나가사키 니시자카에 세워진 26인의 순교기념비를 자세히 보면, 세 명의 어린이가 포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의 나이는 각각 12살, 13살, 15살 소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12살 소년은 신부님과 엄마와 아버지가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찾아 헤매며 사형집행관에게 “제 십자가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 소년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부님과 엄마와 아버지를 따라서 ‘반천련’, 곧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에 끼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참여하는 이 주의 만찬은 ‘반천련’, 우리들이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임을 자각하고 일체감을 더욱 돈독히 하며, 두려워서 십자가를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린 소년이 했던 것처럼 자원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을 따르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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