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면 외롭지 아니하다(마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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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면 외롭지 아니하다(마 10:8)
방애인은 1909년 9월 26일 황해도 황주읍 벽성리 출신으로 일곱 살에 황주읍교회에 설립된 양성학교를 거쳐 평양 숭의여학교에 진학하였다가 개성의 호수돈여학교로 옮겨 1926년 졸업했습니다. 17살의 나이로 전주 기전여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일하다가 3년 후 고향의 양성여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부터 신앙생활에 충실하였습니다. 핍박을 받아가며 교회에 다니고, 돈이 없어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당대의 가난한 여성들에 비교하면 부럽기만 한 삶을 살았던 방애인은 나태한 자신의 신앙생활을 자책하며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에 매진한 끝에 1930년 1월에 큰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다음은 그의 일기에 적힌 글입니다.
1930년 1월 10일. 나는 처음으로 신의 음성을 듣다. “눈과 같이 깨끗하라.” 아! 참 나의 기쁜 거룩한 생일이다.
1930년 1월 11일. 나는 어디로서인지 손뼉 치는 소리의 세 번 부르는 음향을 듣고 혼자 신성회(晨醒會=새벽기도회)에 가다. 아아! 기쁨에 넘치는 걸음이다.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손뼉소리에 잠을 깨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기쁨’의 삶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체험 후에 방애인은 다시 전주 기전여학교로 옮겨 24살로 소천하기까지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성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길가다 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손을 잡고, 씻어 주고, 입었던 옷을 벗어 주었고, 월급은 가난한 학생들의 수업료로 주었습니다. 당시에 전주 서문교회에 이름뿐인 고아원이 있었는데, 교회 지하실 한 칸 방에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방애인은 월급을 모아 기본금을 만들고, 전북노회 소속 교회들을 순방하며 호소했고, 마지막엔 전주 시내 8천 호를 가가호호 방문하여 기금을 모아 교회 옆에 집을 장만하여 1931년 고아원을 개원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방애인은 온몸을 던져 고아들을 돌보다가 과로로 쓰러진 후 장티푸스까지 얻어 24살의 짧지만 굵은 생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방애인의 마지막 글입니다.
1933년 4월 3일. 수일 동안 나는 병으로 고생하였다. 병중에 환연히 깨달은 것은 두 가지다. 독신으로 병이 나더라도 선을 행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면 외롭지 아니하다. 예수님께서도 염려하시지 아니하시더니, 과연 부자의 무덤에 들어가셨다. 그런즉 병이 나든지 죽은 후의 일이든지 염려할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방애인이 만난 하나님, 방애인이 의지하고 산 하나님을 우리 성도님들이 만나고 또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방애인은 1909년 9월 26일 황해도 황주읍 벽성리 출신으로 일곱 살에 황주읍교회에 설립된 양성학교를 거쳐 평양 숭의여학교에 진학하였다가 개성의 호수돈여학교로 옮겨 1926년 졸업했습니다. 17살의 나이로 전주 기전여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일하다가 3년 후 고향의 양성여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부터 신앙생활에 충실하였습니다. 핍박을 받아가며 교회에 다니고, 돈이 없어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당대의 가난한 여성들에 비교하면 부럽기만 한 삶을 살았던 방애인은 나태한 자신의 신앙생활을 자책하며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에 매진한 끝에 1930년 1월에 큰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다음은 그의 일기에 적힌 글입니다.
1930년 1월 10일. 나는 처음으로 신의 음성을 듣다. “눈과 같이 깨끗하라.” 아! 참 나의 기쁜 거룩한 생일이다.
1930년 1월 11일. 나는 어디로서인지 손뼉 치는 소리의 세 번 부르는 음향을 듣고 혼자 신성회(晨醒會=새벽기도회)에 가다. 아아! 기쁨에 넘치는 걸음이다.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손뼉소리에 잠을 깨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기쁨’의 삶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체험 후에 방애인은 다시 전주 기전여학교로 옮겨 24살로 소천하기까지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성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길가다 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손을 잡고, 씻어 주고, 입었던 옷을 벗어 주었고, 월급은 가난한 학생들의 수업료로 주었습니다. 당시에 전주 서문교회에 이름뿐인 고아원이 있었는데, 교회 지하실 한 칸 방에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방애인은 월급을 모아 기본금을 만들고, 전북노회 소속 교회들을 순방하며 호소했고, 마지막엔 전주 시내 8천 호를 가가호호 방문하여 기금을 모아 교회 옆에 집을 장만하여 1931년 고아원을 개원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방애인은 온몸을 던져 고아들을 돌보다가 과로로 쓰러진 후 장티푸스까지 얻어 24살의 짧지만 굵은 생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방애인의 마지막 글입니다.
1933년 4월 3일. 수일 동안 나는 병으로 고생하였다. 병중에 환연히 깨달은 것은 두 가지다. 독신으로 병이 나더라도 선을 행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면 외롭지 아니하다. 예수님께서도 염려하시지 아니하시더니, 과연 부자의 무덤에 들어가셨다. 그런즉 병이 나든지 죽은 후의 일이든지 염려할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방애인이 만난 하나님, 방애인이 의지하고 산 하나님을 우리 성도님들이 만나고 또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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