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와 양반 신사들 사회에서 기독교 믿음을 갖는 최초의 일(빌 4:22)
본문
관리와 양반 신사들 사회에서 기독교 믿음을 갖는 최초의 일(빌 4:22)
광무 5년 신축년 봄 3월에 선고부군(先考府君: 당시 법무협판으로 이능화의 부친인 이원긍을 의미함), 이상재(의정부 참찬), 유성준(내무협판), 김정식(경무관), 이승인(부여군수, 이상재의 아들), 홍재기(개성군수), 이승만(철학박사), 안국선(회경군수), 김린(관직미상) 등이 한꺼번에 체포, 함께 구속되었다. 본래 죄가 없는 터이니 어찌 죄를 억지로 뒤집어 씌었다고 아니 하리요. 관력(官歷)을 지닌 인사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일은 모순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삼년 동안의 철창생활은 괴롭고 참담한 일이어서 고뇌가 항상 따르더니 다행히 감옥 규칙상 종교서적의 차입이 허가되고 간혹 서양인이 찾아와 포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미국인 선교사 방거(Bunker)씨가 감옥에 찾아와 전도하니 이때 감옥에 있던 여러 양반들이 서로 협력하여 신약전서를 연구하고 마음에 결심을 굳혀 세례 입교하니 이것이 관리와 양반 신사들 사회에서 기독교 믿음을 갖는 최초의 일(是爲官紳士會信敎之始)이 되었다. 광무 8년 갑진년 초에 일로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들은 석방되기 시작하여 다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마침내 출옥후 이들은 서울 연동교회에 출석했다. 이때 연동교회 담임은 기일(Gale)이었다. .... 후에 여러 양반들이 연동교회부터 분산, 각자 흩어져서 종교사업에 헌신하고 힘을 다해 정신지도에 임하였다. 선고부군(이원긍)은 조종만(파주군수)씨와 함께 묘동교회로 가고, 월남 선생(이상재)은 윤치호씨 신흥우(문학사)씨와 함께 중앙기독청년회로 가고, 긍제(유성준) 선생은 박승봉(관찰사)씨와 함께 안국동교회로 갔으며 삼성(김정식) 선생은 도쿄기독청년회로 가서 각자 사업에 종사했더라(이능화, 朝鮮基督敎及外交史 朝鮮基督敎彰文社, 1928, 203-204쪽을 한글로 풀어 쓴 글).
위의 글은 1901년부터 3-4년의 한성감옥상황을 이능화가 기록한 것입니다. 옥중에서 많은 수의 양반 지식인들이 기독교에 입교한 사실과 출옥 후의 행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덤 속과 같았던 감옥이 변하여 천국이 되고, 죽음이나 다름없는 삶이 변하여 부활과 환희의 삶이 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삶의 변화 곧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 변화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광무 5년 신축년 봄 3월에 선고부군(先考府君: 당시 법무협판으로 이능화의 부친인 이원긍을 의미함), 이상재(의정부 참찬), 유성준(내무협판), 김정식(경무관), 이승인(부여군수, 이상재의 아들), 홍재기(개성군수), 이승만(철학박사), 안국선(회경군수), 김린(관직미상) 등이 한꺼번에 체포, 함께 구속되었다. 본래 죄가 없는 터이니 어찌 죄를 억지로 뒤집어 씌었다고 아니 하리요. 관력(官歷)을 지닌 인사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일은 모순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삼년 동안의 철창생활은 괴롭고 참담한 일이어서 고뇌가 항상 따르더니 다행히 감옥 규칙상 종교서적의 차입이 허가되고 간혹 서양인이 찾아와 포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미국인 선교사 방거(Bunker)씨가 감옥에 찾아와 전도하니 이때 감옥에 있던 여러 양반들이 서로 협력하여 신약전서를 연구하고 마음에 결심을 굳혀 세례 입교하니 이것이 관리와 양반 신사들 사회에서 기독교 믿음을 갖는 최초의 일(是爲官紳士會信敎之始)이 되었다. 광무 8년 갑진년 초에 일로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들은 석방되기 시작하여 다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마침내 출옥후 이들은 서울 연동교회에 출석했다. 이때 연동교회 담임은 기일(Gale)이었다. .... 후에 여러 양반들이 연동교회부터 분산, 각자 흩어져서 종교사업에 헌신하고 힘을 다해 정신지도에 임하였다. 선고부군(이원긍)은 조종만(파주군수)씨와 함께 묘동교회로 가고, 월남 선생(이상재)은 윤치호씨 신흥우(문학사)씨와 함께 중앙기독청년회로 가고, 긍제(유성준) 선생은 박승봉(관찰사)씨와 함께 안국동교회로 갔으며 삼성(김정식) 선생은 도쿄기독청년회로 가서 각자 사업에 종사했더라(이능화, 朝鮮基督敎及外交史 朝鮮基督敎彰文社, 1928, 203-204쪽을 한글로 풀어 쓴 글).
위의 글은 1901년부터 3-4년의 한성감옥상황을 이능화가 기록한 것입니다. 옥중에서 많은 수의 양반 지식인들이 기독교에 입교한 사실과 출옥 후의 행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덤 속과 같았던 감옥이 변하여 천국이 되고, 죽음이나 다름없는 삶이 변하여 부활과 환희의 삶이 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삶의 변화 곧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 변화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전글 기독교는 영생을 가르쳐 주었다(요 6:53-58) 05.01.25
- 다음글 그 가는 길목마다에 해타라는 짐승이 숨어 있어(계 2:3) 05.01.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