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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교육이 아니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딤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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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249 2005.01.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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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교육이 아니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딤후 3:16-17)
무너져 가는 조국을 일으키려면 예수를 믿어라. 예배당을 세워라. 자녀를 교육시켜라. 단발하여라. 그래야 우리도 문명국과 같이 잘 살 수 있다.
위의 말은 직간접으로 경기도 강화에만 70여개, 개성, 평양, 원산 등지에 170여개의 학교를 세웠다는 이동휘가 눈물로 호소했던 강연내용입니다.
이동휘는 1873년 12월 3일 함경남도 단천군 파도면 대성리에서 태어나 18세에 때에 단천 군수 홍종후 밑에서 통인(通引)이란 심부름꾼으로 일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탁지부(度支部) 대신을 지낸 이용익의 소개로 군관학교에 관비생으로 들어가 졸업 후 참위(參尉)로 임관되어 오늘날의 경호실장과 비슷한 궁전진위대장에 임명되어 고종을 호위하였습니다. 1902년 7월에는 참령(參領)으로 진급하여 강화진위대장에 부임하였는데, 이곳에서 기독교에 입문하여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와 성경읽기를 힘썼고, 각종 예배와 집회에 빠지는 일이 없었으며, 자신이 체험한 마음의 평안을 친구들에게 전하고 기독교인이 되라고 전하였습니다. 이동휘의 변화는 그를 흠모하던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큰 동인(動因)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은 참으로 큽니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개화를 주도한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8세기 말 조선에 발달된 서양학문과 천주교를 들여온 이들이 실학파였고, 19세기 말 조선에 민주주의를 비롯한 서양학문과 기독교를 들여온 이들이 개화파였습니다. 19세기는 실학파 천주교인들이 순교의 피를 뿌리면서 진보적이고 희생적인 기독교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20세기는 개화파 개신교인들이 심한 탄압 속에서 진보적이고 민족적인 기독교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특히 초창기 개신교 교인들은 이 땅에서 외세를 물리치고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였고, 곳곳에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민족계몽운동에 공헌하였으며, 민족독립운동에 힘썼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 속에 이동휘가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복음의 특징은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의 특징도 역시 변화입니다. 이 긍정의 변화가 성도님들의 삶속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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