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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도덕적으로 선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눅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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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611 2004.02.2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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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도덕적으로 선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눅 19:8)
[성만찬명상문]
1919년 3․1만세운동 때 민족대표로 서명까지 하였으나 이후 33인의 일원이 되지 못한 사람 가운데 동석기 목사가 있습니다. 동석기(1881-1972)는 1903년 22세 때에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갔다가 농장주의 눈에 들어 공부할 기회를 얻었던 사람입니다. 하루는 농장주가 동석기를 불러 하는 말이 "자네는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열심히 일을 하더군. 그래서 말인데, 자네를 도와주고 싶다네. 자네 같은 젊은이가 사탕수수밭에서 노동만 하고 있어서야 쓰겠는가. 내가 자네에게 무엇을 도와줬으면 좋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해서 동석기는 이민을 간지 9개월 만에 시카고인근에 위치한 노스웨스턴대학에 입학하여 1913년에는 게렡신학부에서 신학석사를 받고 10년 만에 감리교목사가 되어 귀국하였습니다. 귀국 후 14년간 감리교회에서 목회하였고,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박희도와 수원지방 독립운동 책임자였던 김세환 등의 구미소식통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두 가지 사실을 고백하였는데, 처음 그는 “단지 도덕적으로 선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예수님을 믿었고, 목사가 된 후에는 “감리교 교리를 전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행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1927년 미국에 들어갔을 때에는 신시내티 신학대학원과 대빗 립스콤 대학신학부에서 수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고 1930년 11월 고향인 북청으로 돌아가 같은 달 29일 함전교회를 시작하였는데 그가 세운 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였습니다. 이후 1966년 은퇴하고 1971년 12월 26일 캘리포니아에서 소천하실 때까지 36년 이상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서 한국에 외국인선교사가 도착한 것이 1935년 3월이었고, 그나마 일년도 못 채우고 돌아갔으니까 동석기 목사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만찬은 우리에게 새로운 헌신을 요구합니다. 신앙을 점검하고 가치 있는 삶의 목표를 향해서 새롭게 출발할 것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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