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실천하라(갈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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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실천하라(갈 1:8-9)
[성만찬명상문]
1908년 10월, 호가드(R. Hoggard, 許嘉斗)에 의해서 구세군이 조선 땅에 처음 소개된 때는 을사보호조약(1905)이후 헤이그밀사사건(1907)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당하고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으로 관리임용권마저 늑탈 당했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일본군을 물리치겠다는 애국심으로 구세군을 군대로 생각하여 입대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가 된 성낙소(1890.5.16-1964.11.30)였습니다.
성낙소는 7세 때인 1897년부터 서당에서 수학하였는데 갑오년혁명(1894) 때 전봉준의 모사(謀士)를 지낸 신평곡(申平谷)이 1907년 17살이 된 성낙소에게 권하기를, “남아가 출세하여 유사시에는 제세민안(濟世民安)의 도량이 있어야 하거늘 경서(經書)만 읽을 것인가? 추수(推數=앞으로 닥쳐올 운수를 미리 아는 것)하여 천지운명과 인간의 길흉화복을 추측하는 역리를 습득하여 시기가 오면 활용하여 성공을 도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여 도를 닦던 중에 홍주성의병에 가담하여 왜적과 싸우려고 가던 중에 홍주성이 함락되고 의병가입이 좌절되자 구세군에 가입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의병출신의 패잔병들이 구세군에 많이 가입하였는데, 성낙소는 구세군이 군대가 아닌 사실이 드러나고 1910년에 한일합방까지 이뤄지자 실망하여 구세군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충북영동지방 사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1919년에는 영동지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이 때 사망자가 21명이나 되었고 중상자도 수십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성낙소는 기독교계의 분열을 뼈아프게 생각하던 중에 에베소서 4장을 통해 교회연합과 명칭통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1927년 정월 초에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서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이름을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라 불렀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한국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였던 셈입니다. 성낙소는 “구원을 받으려거든 반드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실천하라”고 가르쳤고 그 신념을 일제점령기와 6․25동란 중에도 굳세게 지켜나갔습니다. 매주일 성만찬예배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주의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성만찬명상문]
1908년 10월, 호가드(R. Hoggard, 許嘉斗)에 의해서 구세군이 조선 땅에 처음 소개된 때는 을사보호조약(1905)이후 헤이그밀사사건(1907)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당하고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으로 관리임용권마저 늑탈 당했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일본군을 물리치겠다는 애국심으로 구세군을 군대로 생각하여 입대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가 된 성낙소(1890.5.16-1964.11.30)였습니다.
성낙소는 7세 때인 1897년부터 서당에서 수학하였는데 갑오년혁명(1894) 때 전봉준의 모사(謀士)를 지낸 신평곡(申平谷)이 1907년 17살이 된 성낙소에게 권하기를, “남아가 출세하여 유사시에는 제세민안(濟世民安)의 도량이 있어야 하거늘 경서(經書)만 읽을 것인가? 추수(推數=앞으로 닥쳐올 운수를 미리 아는 것)하여 천지운명과 인간의 길흉화복을 추측하는 역리를 습득하여 시기가 오면 활용하여 성공을 도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여 도를 닦던 중에 홍주성의병에 가담하여 왜적과 싸우려고 가던 중에 홍주성이 함락되고 의병가입이 좌절되자 구세군에 가입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의병출신의 패잔병들이 구세군에 많이 가입하였는데, 성낙소는 구세군이 군대가 아닌 사실이 드러나고 1910년에 한일합방까지 이뤄지자 실망하여 구세군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충북영동지방 사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1919년에는 영동지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이 때 사망자가 21명이나 되었고 중상자도 수십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성낙소는 기독교계의 분열을 뼈아프게 생각하던 중에 에베소서 4장을 통해 교회연합과 명칭통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1927년 정월 초에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서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이름을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라 불렀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한국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였던 셈입니다. 성낙소는 “구원을 받으려거든 반드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실천하라”고 가르쳤고 그 신념을 일제점령기와 6․25동란 중에도 굳세게 지켜나갔습니다. 매주일 성만찬예배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주의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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