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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보겠소. 그리고 끝장을 보리라. 만약에 체포되어 죽더라도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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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154 2004.01.2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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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보겠소. 그리고 끝장을 보리라. 만약에 체포되어 죽더라도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계 2:10)
[성만찬명상문]
동학(東學)이란 말의 뉘앙스에서도 느낄 수 있듯 동학은 당시 천주교로 대변되는 서학(西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반(反) 기독교적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1893년 3월 서울에서 동학교도들이 복합상소(대궐문밖상소)를 올릴 때 서울 시내의 선교사들 주택 문마다 「예수교 배격문」이 나붙었습니다.
저들(선교사들)이 소위 하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실인즉 하늘에 패륜하고 비록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상은 사람을 혹(惑)하고 있으니 이는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랴!“(기포드 선교사 대문에 붙었던 격문 중에서).
이런 동학도들 가운데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서당의 훈장과 말단행정직인 유사(有司)를 지냈으며, 동학교의 접주(接主)와 오읍도령장(五邑都令長)을 지낸 방기창(1851-1911)이 있었습니다. 당시 민중은 동학지도자들이 문을 여닫지 않은 채 출입하고 축지법을 쓰며 공중으로 걸어 다니고 둔갑술을 쓰는 도인의 형태로 인식하고 있어서 웬만한 병은 주문하나로 고쳐내고 죽은 자도 다시 살려내며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초월적 존재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학혁명군의 대장이었던 방기창은 주문과 주술을 통해서 치병치세(治病治世)하겠다는 동학의 한계성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황해도에서 경군(京軍)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도술의 하나인 벽곡(辟穀)을 찾아나셨다가 조카를 통해서 선교사 마펫(Moffett)을 만나 전도를 받고 이전에 동학도로서 심히 배척했던 예수교에의 입문을 결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따라보겠소. 그리고 끝장을 보리라. 만약에 체포되어 죽더라도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J. S. Gale, The Vanguard, p. 37). 이후로 방기창은 평양장로회신학교를 1회로 졸업하였고, 최초로 장립된 한국인 목사 7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능력,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갖는 이 변화의 능력을 성만찬을 통해서 직접 경험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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