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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참으로 풍설인지 사실인지를 알어보고(행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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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720 2003.07.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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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참으로 풍설인지 사실인지를 알어보고(행 17:11)
[성만찬 명상문]
한국인 최초의 목사인 김창식(1857-1929)은 21살 되던 해에 무작정 집을 나와 머슴살이도 하고 때로는 마부로 일하면서 팔도를 유람하였습니다. 이런 생활을 8년간 지속하다가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 나라에 첫발을 디딘 바로 다음해인 1886년에 아내를 얻게 되자 정착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888년 서울에는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유괴하여 삶아서 먹고 눈은 뽑아서 약으로 쓰거나 사진을 찍는데 사용한다는 소문이 퍼져 흥분한 군중이 선교사의 집이나 기독교학교를 습격하는 소위 ‘영아소동’(baby riot)이란 것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때 김창식은 그러한 말이 “참으로 풍설인지 사실인지를 알어보고 십흔 생각이 간절하였다”(「나의 교역 생활」 ꡔ승리의 생활ꡕ 1927)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실여부를 알아보고 더 나아가 직접 그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실체를 알아보려는 열린 자세로 인하여 그는 결국 선교사 올링거(F. Ohlinger)의 집에 문지기로 시작하여 요리사가 되었고, 나중에 예수님 믿고 목사가 되어 선교사로부터 “조선의 바울”이란 호칭을 얻기까지 하였습니다. 김창식은 의료선교사 홀(Hall)을 따라 평양에 이주하여 일하고 있었는데 평안감사 민병석에게 체포되어 악형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일을 의사 셔우드 홀은 ꡔ닥터 홀의 조선 회상ꡕ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이 불쌍한 친구는 백번 이상 죽는 듯한 큰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나는 창식이가 석방되기 전에 죽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닥터 홀은 그를 면회 갈 때마다 운다. 정말로 소름끼치는 일이다. 창식이가 오씨나 한씨보다 더 심한 형벌을 받고 있는 이유는 관리들이 그에게 만일 석방시켜 주면 또 예수를 전도하겠는가 물었을 때 그는 ‘석방되어도 계속 예수를 전도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조선의 바울, 하느님께 영광을!
신실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열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만찬은 믿음의 열성을 시험하는 잣대일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반도의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상고(詳考)하는 진실한 자세를 갖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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