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은 知性의 限界 위에 存在하는가
이어령,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집을 내어서 충격을 주었다.
정말 어느 서평처럼
지적 사치인 시인이라는 이름의 신비스런 과실에
탐욕의 손길을 뻗친 것일까
그러나
그는 작년에 실제로 일본에서 기독교의 세례를 받았다.
그의 시는
앞으로 신을 믿기로 마음먹은 인간의 기도
무신론자였다가 회개하여
신 앞에 무릎을 꿇는 자의 신앙고백이다.
그는 이렇게 밝힌다
사랑하는 딸에게 갑자기 나타난 갑상선암과 시력악화,
외손자의 ADHD 증후군.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다.
그의 시작 詩作 노트는
그 아픈 병에서 나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나았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언어밖에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으로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시로 바친다.
그래서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을 썼다.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무너지듯 신 앞에 무릎 꿇은 이어령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3:9)
여호와의 꾸짖음에 할 말을 잃고,
구구한 이유를 캐묻지 말라고
그냥, 자신을 받아 달라는 신에게 간청하는 시를 쓴다.
척박한 강토에서 천형 天刑과도 같은
시인의 삶을 살다간 우리의 선인 先人들에겐
왜 기적적인 하나님의 개인적 은총이 허락되지 않았던 걸까?
가혹했던 그들에겐 왜 이런 은총은 없었던 것일까
서평을 읽으며 나도 반문하고 있다.
제발 은총을 주소서,
#. 시작 메모:
그는 최고의 지성이며, 석학이었기에 기도가 더욱 애절하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 / 이어령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 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 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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