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13강]제1장 100% 무죄
본문
13 LESSONS ON GRACE Written by Jack Cottrell
Wipf and Stock Publishers: 150 West Broadway, Eugene OR 97401
1999
Translated by Dong Ho Cho
Christian Church Studies, 2011
℡(042)841-9697
제1장 100% 무죄
“하나님께 의롭게 처신하라!”
우리는 이따금씩 시골 고속도로변에 세워진 표지판들에서 이 훈계를 맞닥뜨린다. 그것이 실제로 나쁜 충고는 아니다. 오히려 아주 좋은 충고이다. 무엇이 하나님께 의롭게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이슈에 대해서 말한다. 복음 즉 좋은 소식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본 장(章)에서 우리의 목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1. 믿음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믿음의 성격을 오해하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믿음을 정의하는 것이다.
A. 믿음은 동의이다.
의롭게 하는 믿음은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들을 포함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는 종종 동의(同意)로 불린다. 동의는 지적인 판단이며, 어떤 것이 진실하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어떤 진술의 진실성에 대한 마음의 판단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의미에서 믿음을 실천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받는다. “나는 조지 워싱턴이 정말로 델라웨어(Delaware) 강을 건넜다고 믿는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우리는 실제로 주유소 직원에게 “나는 당신이 내 기름 탱크에 넣고 있는 것이 정말로 휘발유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백화점이 “우리는 당신이 정직한 사람이고, 신용등급이 높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같은 어떤 명제에 이런 동의를 하게 만드는가? 기본적으로 우리는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약에 증거가 충분하다면, 우리는 무언가가 진실하다고 믿는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포함해서 역사적인 기록들은 워싱턴이 정말로 델라웨어 강을 건넜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기에 충분하다. 보기에나 냄새로나 휘발유와 같고, 휘발유이외에는 아무 것도 그 펌프에서 나온 일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에 주유펌프에서 나오는 맑은 액체는 휘발유라고 우리는 믿는다. 백화점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신용이행도 좋다는 증거를 확보했을 때에만 신용카드를 발행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 즉 의롭게 하는 믿음은 그와 같은 동의를 포함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베다니의 마르다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이렇게 요약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사도 바울은 만약 네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고 덧붙인다.
이것들은 단지 우리가 진실하다고 믿는 몇몇 진술들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그것들을 믿는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동의하게 만드는가? 증거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 자신은 그분이 행하신 기적들에서 근본적인 증거를 제공하셨다(막 2:1-12; 요 2:11을 보라). 그분 자신의 부활은 절정의 증거였다(롬 1:4). 목격자들은 우리에게 이들 기적적인 표적들에 대한 신뢰할만한 증거를 제공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 20:30-31).
따라서 믿음은 무엇보다도 이들 대단한 주장들을 진실하다고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를 위하여 독생하신 성자를 주셨다는 것, 예수님은 우리 죄악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 그리스도인의 침례 가운데서 우리에게 죄 사함과 성령님을 선물로 주심과 기타 많은 것들을 주실 것이라는 주장들이 진실하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진실하다고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겠는가? 이런 진술들의 진리를 단지 수용하는 것만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겠는가? 답은 아니요 이다. 심지어 귀신들조차도 이런 정도의 믿음은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약 2:19, 막 1:24). 의롭게 하는 믿음은 그 증거를 단지 수용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B. 믿음은 신뢰이다.
이런 사실이 우리를 믿음의 두 번째 요소 즉 신뢰에로 이끈다. 신뢰는 지적인 판단 그 이상이다. 그것은 혼신의 헌신에 관련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굴복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이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혹은 무엇인가 당신의 권한에 있는 것을) 다른 누군가의 통제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또 다른 사람을 신뢰(confidence)하는 태도이다.
신뢰에 관한 하나의 일상적인 실례는 당신의 아이들을 돌볼 베이비시터를 채용하는 것이다. 베이비시터를 채용함에 있어서 당신은 아마도 당신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을 다른 누군가의 손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당신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또 다른 하나의 실례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가는 것이다. 당신은 생명과 건강을 그의 돌봄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신뢰할 수 있는 의사,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원한다.
이것이 동의와 신뢰의 차이이다. 동의는 어떤 진술들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신뢰는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이다. 의롭게 하는 믿음은 확실히 신뢰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요 3:16과 행 16:31을 보시오). 그것은 당신의 전 삶을 예수님과 그분의 방법에 맡긴다는 결정이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그분의 손에 의탁하는 것이다(딤후 1:12).
동의와 신뢰의 차이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는 하나의 예화는 수십 년 전 공연된 프랑스인 줄타기 곡예사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그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온갖 종류의 비범하고 아슬아슬한 묘기들을 보이면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외줄 위를 걸었다.
마침내 그는 그 줄 위에서 외바퀴 수레를 밀었다. 그는 안전한 육지로 돌아와서는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고 있던 한 어린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 곡예사는 그 소년에게 분명히 영웅이었다. 그래서 그는 소년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내가 이 줄을 꽤 잘 탄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니?”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넌 아마 내가 이 줄 위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을 거야, 그렇지 않니?”
“예, 정말로 그렇게 믿습니다.”
“너는 내가 이 외바퀴 수레에 사람을 태우고 줄 위에서 건너편에로 밀고 갈 수 있다고 믿니?”
“예, 정말로 믿습니다.!”
“좋아, 그럼 올라 타거라!”
그러나 그토록 확신을 가지고 동의를 표시했던 그 소년은 그 단계에서 요구되는 개인의 신뢰를 분발시킬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곡예사의 손에 맡기기를 거부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은 동의와 신뢰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 죄를 사하신다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침례 안에서 성령님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행 2:38).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신 그분에게 우리의 삶을 헌신하면서 그분을 신뢰한다. 이 지속된 신뢰와 헌신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이다.
2. 의롭다하심(稱義)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의롭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의롭다하심을 이해하고 진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죄인으로서의 우리의 상태를 알아야만 한다. 죄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요일 3:4).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법에 그릇되고 처참한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법 앞에서 유죄가 되며, 그것의 벌과 유죄선고 아래에 서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분의 분노로 바꾼다. 만약 우리가 이런 유죄관계를 지속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죄를 범했고(롬 3:23), 그래서 유죄와 저주아래 서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가? 이 유죄를 없애고, 한 번 더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바른 관계를 맺게 할 무슨 방법이 없는가?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 바르게 될” 수 있는가?
A. 법적 선언
대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는 의롭게 될 수 있다. 이것은 법적 용어이며, 판사에 의해서 법정에서 선고된 판결문을 말한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무죄”로 선고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 그대로 우리가 유죄하고 죄가 있다고 보시면서도 우리에게 무죄라고 선포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받을 형벌을 면제하신다. 그분은 그 유죄를 멀리 가져가 버리신다. 그분은 율법이 요구하는 벌과 저주를 치워버리신다. 그분은 우리가 결코 죄를 짓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우리를 대우하신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는가? 그분은 우리가 죄인들이라는 것을 아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거슬리는 우리의 죄들을 갖고 계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향한 그분의 분노를 거두시게 하며, 우리를 향한 율법의 저주를 보류하시게 하는가? 오직 한가지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하여 율법이 요구하는 충분한 형벌을 이미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그분의 육체와 영혼 안에서 모든 죄인 때문에 영벌(永罰)을 받고 계셨다.
B. 침례를 통하여 주어짐
그러면 무엇이 우리를 이 형벌에서 구원하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다. 우리는 진실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지만(롬 5:9), 오직 우리가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을”(롬 3:25) 때에만 그렇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방법이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에 대한 일반적이고 막연한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며, 그분이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하여 진실로 “모든 것을 지불”하셨다는 믿음이다.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을 갖는 순간 의롭게 되지는 않는다. 그 같은 견해는, 비록 많은 사람들이 견지하는 것이지만, 아주 심각한 잘못이다. 그것은 수단과 시간을 혼동하는 것이다. 믿음은 의롭다하심(稱義)의 수단이지만, 성경에 따르면, 침례는 의롭다하심이 주어지는 시간(때)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침례(Christian baptism) 가운데서 우리와 만나주시기로, 또 그 순간에 죄 사함을 위해 그분의 피를 우리에게 적용하시기로 약속하셨다(행 2:38, 롬 6:4-6, 골 2:12, 갈 3:27). 우리가 이 약속을 믿는다면, 그러면 우리는 거기서 그분을 만날 것이며 의롭게 될 것이다.
C. 100% 무죄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즉시로 완벽하게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점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등급에 따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이 보시기에 당신에게 “무죄”라고 선언하실 때, 그 순간부터 당신이 100퍼센트 무죄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그분께서는 의미하신다.
우리는 이것이 지금, 이생에서 침례로 시작하는 신자에게 일어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의롭게 되기 위하여 심판 날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지금 의롭게 되며, 지금 의롭게 된 사람들처럼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처럼 산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의롭게 하는 믿음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이 사죄함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유죄선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신뢰하며, 그것이 우리의 죄들을 덮고 그 형벌을 흡수해 버림을 신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며, “복 받은 확신”을 갖는다.
의롭다하심은 이런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먼저 백지 위에다 파란색 또는 검정색 잉크로 사람모양의 윤곽을 그린다. 그러고 나서 빨강색 잉크로 그 안에 여러 가지 죄명들을 써넣어서 지저분하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적인 상태이다.) 끝으로 투명한 빨강색 셀로판지나 플라스틱을 그 그림 전체 위에 덮는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죄명들은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처음 그린 사람모양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의롭다함을 입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짊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피 아래에 옮겨졌으며, 그 피가 모습 속에서 우리의 죄들을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한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의로워진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以信稱義)은 좋은 소식이며, 복음의 바로 그 핵심이라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 더욱 더 놀란다. 그분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더욱 사랑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한 평화로운 확신 속에서 더욱 더 안식(安息)을 누린다.
다음 장에서는 이 위대한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통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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