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사귐04: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2:1-6)
본문
하나님과의 사귐04: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2:1-6)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요한은 2장 1절과 2절에서 예수님을 “대언자”(advocate)와 “화목제물” (propitiation)로 소개하였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죄를 범치 않는 자이다. 만일 죄를 범했더라도 세상 죄를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대언해주신다. 그러므로 회개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2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적었다.
대언자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하는 자란 뜻이다. 히브리서 1장 1-2절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1절에서 하나님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먼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는 선지자들이 대언자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는 이들 대언자들이 기록과 구전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는 뜻이다. 유대교의 ‘기록 토라’(Tenach)와 ‘구전 토라’(Mishnah)가 여기에 해당된다. 히브리서 1장 1절은 그리스도교가 구약성경(Tenach)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는 토라(Torah)와 선지서(Neviim)와 성문서(Ketuvim)를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유대교가 발전시켜온 구전 전승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대교에서처럼 토라를 선지서보다 더 우위에 두지도 않았다. 유대교인들이 구약성경(Tenach)을 실체에 관한 또는 실체 그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대언자들이 전한 말씀으로 본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와 그림자 또는 모형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를 바르게 아는 핵심이다. 또 유대교가 613개의 계명들(Mitzvot)과 규례(계명의 울타리법들, Gezairoth)를 문자적으로 실천하는 종교라면, 그리스도교는 신약성경에 진술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들을 믿고 고백하는 종교이다. 유대교인들이 계명들과 규례를 문자적으로 지키는 ‘계명의 아들들’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성삼위 하나님에 관한 신앙(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대언자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입장을 하나님께 대변하는 자란 뜻이다. 이 두 번째의 뜻이 요한일서 2장 1절의 본래적 의미이다. 이 구절을 의역하면, 예수 그리스도님은 의로우신 분이신데,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시다가 된다. 여기에 쓰인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이다.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총 다섯 번(요 14:16, 26, 15:26, 16:7, 요일 2:1) 썼는데, 한글성경에서는 ‘보혜사’(개역개정, 표준새번역), ‘협조자’(공동번역), ‘보호자’(가톨릭성경), ‘대언자’(개역개정), ‘변호자’(바른)로, 영어성경에서는 ‘위로자’(KJV), ‘상담자’(NIV), ‘돕는 자’(NKJV, NASB), ‘옹호자’(TNIV, NRSV)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쓰인 “화목제물”은 ‘힐라스모스’(hilasmos)로써 속죄, 보상, 화해를 뜻하는 명사이다. 로마서 3장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구절에 쓰인 “화목제물”은 ‘힐라스테리오스’(hilast?rios)로써 형용사이다.
“화목”은 중재(仲裁)용어이다. 분단의 벽을 헐고 적대감정을 풀어 평화를 되찾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 인간끼리의 적대감, 자연을 착취하고 고갈시킨 데서 오는 적대감이 제거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을 위한 제물로 세우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신 이 제물은 선물(膳物)이다. 하나님이 자신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주신 선물을 뜻한다.
“제물”(祭物)이란 본래 죄와 허물이 큰 인간이 신(神)에게 바치는 뇌물(賂物)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로마시대에 “화목제물”의 개념은 죄가 큰 인간들이 진노하는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쳐 신들의 노여움을 달램으로써 다가올 재앙과 형벌을 피하고자 한 노력을 뜻하였다. 제물에 대한 보편적 개념이 뇌물의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애써 마련한 화목제물로 과연 신들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을까? 다신을 믿었던 그리스로마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까지도 그런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신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란 생각과 신들이 인간이 준비한 제물을 먹거나 그 향기를 즐길 것이란 생각은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서조차 찾아볼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리스로마시대에는 “화목제물”(hilasmos)이란 뜻이 ‘신들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인간들이 마련한 뇌물’이란 뜻을 담고 있었으나 신약성경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바꿨다. 신약성경에서 “화목제물”이란 ‘하나님이 인간들의 죄와 온 세상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마련한 선물’(2:2) 곧 하나님이 인간들의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게 하신 곧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신” 것을 뜻한다(롬 3:25).
신(神)이 인간에게 무엇이 아쉬워서, 무슨 잘못이 있어서 제물을 바치겠는가? 제물을 바쳐야할 쪽은 죄와 허물이 큰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일서 2장 2절과 로마서 3장 25절은 그 어떤 형태의 죄도 허물도 없는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간에게 화목제물로 주셨다고 말한다. 이 제물이 인간에게는 더 없이 큰 구원의 선물이 되는 이유이다.
구약시절에는 다섯 가지의 제사종류가 있었다. 자원해서 드리는 화목제(和睦祭)와 소제(素祭)가 있었고, 이 두 제사는 뇌물(賂物)보다는 선물(膳物)의 성격이 강했다. 또 의무로 드리는 속죄제(贖罪祭)와 속건제(贖愆祭, 愆=허물)가 있었다. 여기서 속죄제는 죄의 사함을 위한 것이고, 속건제는 허물의 사함을 위한 것이다. 유대교인들의 관점에 볼 때, 죄는 하나님께 대한 십계명 1-4계명과 “~을 하라”는 248개의 계명들을 범한 것이고, 허물은 이웃에게 대한 십계명 5-10계명과 “~을 하지 말라”는 365개의 계명들을 범한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그리고 번제(燔祭)가 있었는데, 번제는 단독으로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다른 네 가지와 함께 세트(set)로 자원해서 바치는 제사였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태워 향기로운 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화제였다. 제물은 예배자의 생활형편에 따르되, 반드시 흠이 없고, 일 년이 된 수컷이어야 했다. 번제 때 제물이 불에 타면서 나는 향기로운 냄새는 하나님의 몫이었고, 가죽은 제사장의 몫이었다. 그러나 예배자는 번제를 통해서 온전한 헌신과 감사를 하나님께 바치기 때문에 자기 몫이 없었다. 가죽만 취했던 제사장은 번제와 세트로 바치는 소제나 화목제 등을 통해서 자기 몫을 추가로 취할 수가 있었다. 자원해서 바치는 화목제(和睦祭)는 화제였지만, 다 태우지 않고, 내장과 기름만 상징적으로 태웠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상징하기 위해서 무교병과 함께 드려졌다. 화목제의 특징은 예배자에게도 일정한 몫이 주어진데 있었다. 동물의 가슴은 요제로 흔들고, 오른쪽 뒤 넓적다리는 거제로 높이 쳐든 다음 가죽과 함께 제사장에게 주어지고, 나머지는 예배자가 가져다가 가족친지이웃들과 더불어 그날로 다 먹어야 했고, 먹다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했다. 제사장도 마찬가지였다. 화목제로 바친 고기는 예배자이든, 제사장이든 그것을 결코 혼자서 독식할 수가 없었다. 반드시 제사를 드린 바로 그 날에 모두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화목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와 자연관계에서까지 두루 이뤄져야 진정으로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크든 작든 동물이 화목제물로써 희생되면, 하나님은 그 제물의 향기만 받으시고, 살코기는 고스란히 예배공동체의 음식물로 하사(下賜)하시어 구성원들의 관계회복에 쓰이게 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다.”는 말은 우리 예수님이 대신(對神), 대인(對人), 대(對)자연관계에서 속죄와 구원, 화목과 일치, 연대와 결속, 나눔과 친교를 위한 완전하고 위대한 선물이었음을 의미한다.
3-6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는 유대교인들이 613개의 계명들과 규례(울타리법들)을 지키는 목적과는 상치되는 말씀이다. 유대교인들이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지켜 내거나 빼앗긴 나라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자신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유대전통에서는 모든 유대인의 영혼들이 토라를 받던 시기에 존재했었고 그곳에 있었으며 시내산 언약에 동의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님의 피를 인하여 하늘 가나안땅을 값없이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도리요 감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3-6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와 함께 빛과 생명과 사랑과 진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 것이다.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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