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사귐02: 참 빛 하나님(요일 1:3-4)
본문
하나님과의 사귐02: 참 빛 하나님(요일 1:3-4)
참 빛이신 하나님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 빛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불리고 있다.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구절이 <개정역> 기준으로 11회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 5회 곧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1:2),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1:3), “아버지와 아들을”(2:22), “아들과 아버지 안에”(2:24), “아버지가 아들을”(4:14)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표현할 때 쓰였다.
또 하나님은 “참 빛”(2:8) 곧 “빛이시다”(1:5)고 했고, “빛 가운데 계신” 분(1:7)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들도 “빛 가운데 있다”(2:9)고 하였다. 그리고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요, “서로 사귐이 있는” 자이다(1:7, 2:9-10). 하나님은 태초의 어둠을 빛으로, 태초의 혼돈을 질서로, 태초의 죽음을 생명에로 바꿔놓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 빛이시오, 생명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4:8, 16).
요한일서에서 “사랑”이란 말은 <개정역> 기준으로 30회 사용되었다. 그중 일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나머지는 “서로 사랑”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특히 4장 9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하였고,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 계명이라고 하였다(3:23). 특히 4장 12절에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4장 20-21절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하였다. 또 참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증거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서로 사랑하는 것은 참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2장 9-11절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인간창조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시작되었고, 그 아들을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이었다. 그래서 4장 10절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하였다.
사랑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인간이나 천사와 같이 이성을 가진 고등한 피조물을 만드신 것은 그분의 크신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실 것이 없고, 아니 계신 곳이 없는, 한마디로 말해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초월적이고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이나 천사와 같이 이성을 가진 고등한 피조물을 만들었겠는가? 우리가 다른 것은 다 무시해버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이성을 가진 고등한 피조물을 만드셨다는 점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고등한 피조물을 만드셨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아무리 지혜와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아도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할 수가 없다.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뜻이고, 부족하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을 가진 고등한 피조물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고, 부족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인일 수밖에 없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될 것을 알고서도 인간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티끌만큼도 실수나 오류를 범할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하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외에 고등한 피조물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은 신성모독이 되고 하나님의 권한에 대항하는 도전이 된다. 이 고등한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할 것이고 그분의 권한에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특권, 이 특권은 하나님만이 가져야할 권한이다. 그런데 그 권한을 하나님께서 인간이나 천사에게 나눠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천사를 만든 분이고, 그러한 권한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는 누구라도 가질 수 없는 특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권한을 인간에게 주심으로 인해서 인간들로부터 모독을 당하시고 도전받게 될 것을 뻔히 아시면서 그렇게 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여러분은 운전하는 대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좋은가, 이따금씩 말 안 듣고 말썽부리는 아들딸이 더 좋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소중한가, 제멋대로 하는 아들딸이 더 소중한가? 초보운전자인 아들딸이 자동차를 몰겠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열쇠를 건네주시겠는가, 아니면 거절하시겠는가? 만일 사고 낼까봐서 또는 글길까봐서 열쇠를 건네주지 않는다면, 그 자녀는 영영 운전을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부모라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용기를 내어 운전을 시켜볼 것이다. 그러면 서툰 실수는 잠시 뿐이고, 오래지 않아 훌륭한 운전자가 될 것이다.
희생이신 하나님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초보운전자인 자녀에게 열쇠를 건네준 부모의 행위가 자녀의 발전을 염원하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크나큰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빚어 가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 인간을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고등한 동물로 만드셨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소유한 권한, 즉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고, 인격적인 관계를 가능케 하는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인간에게 나눠 주셨다. 하나님만의 권한을 인간에게 나눠 주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특권을 제한하셨다. 자신의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셨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과 도전과 모독이 불을 보듯이 뻔한 데도 하나님은 그리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스스로의 권한을 제한하시며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가기를 원하신다.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지고,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깨지고, 이로 인해서 이 세상에 악이 유입되었고, 죄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겪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고통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자기 권한의 제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이지만, 비록 우리가 고통과 고난 속에서 산다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면서, 인간들이 그분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이다. 그리하실 뿐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 인간들을 대신해서 죽으시며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3장 23-25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다”고 하였다. 또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끊임없이 배신하고 도전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셨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고등한 피조물로 만드셨다. 이것이 매우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리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실 어떤 방책을 세워두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 방책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벌(저주)을 받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택하시고, 인간의 모든 죗짐과 저주를 그분이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으며, 그 대신에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고 자녀로 삼으시며 영생의 지복을 누리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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