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사귐01: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요일 1:1-2)
본문
하나님과의 사귐01: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요일 1:1-2)
기록 시기와 역사적 배경
요한일서는 저자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의 목격자로 또 예수님의 제자라는 인상을 주고 있어서 사도 요한이
저자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요한은 유대-로마 전쟁(AD 66-70)이 시작될 무렵에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에베소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이사랴의 주교 유세비우스가 남긴 <교회사> 3권 5장에 따르면,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Notzrim)은 주후
66년경 유대-로마전쟁이 시작될 무렵에 계시의 말씀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펠라(와 페트라)로 피난하였다(막 13:14).
펠라(Pella)는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사마리아 땅과 마주한 베레아 땅으로써 현재의 요르단 북부 요단강 주변에 있었던 도시였다. 베레아는
이방지역이어서 유대-로마전쟁 때 피해를 면한 곳이다. 펠라는 주후 635년 이슬람의 손에 넘어가기까지 그리스도교가 성행했던 곳이다.
예루살렘이 베스파시아누스(Titus Flavius Vespasianus)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군대에 포위된 상태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와 그의 제자들은 전쟁직후 로마의 허가를 받아 욥바 남동쪽 20킬로미터 지점, 지중해 동쪽 6-7킬로미터 지점,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6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해안 평야지대에 위치한 ‘야브네’(Japheth/Yavne) 혹은 ‘얌니아’(Jamnia)란 소도시에 율법(Halakha)학교를 세워 성전을 대신할 율법중심의 유대교를 재건하였다. 그리스도교를 탄압했던 유대인들은 이제 생존에 힘을 쏟아부어야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더 이상 탄압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의 잠재적 위험요소인 이단으로 보고 회당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출교시키기 시작하였다. 얌니아공동체는 18개의 베라코트(berakoth)로 이뤄진 쉐모네 에스레이(Shemoneh Esrei) 혹은 아미다(Amidah, ‘일어섬‘이란 뜻)로 알려진 기도문 열두 번째에 “이단을 공격함”(Against Heretics)이란 베라카(berakah)를 하나 더 추가하였다. 더불어 유대교회당들에서는 숨은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내어 출교시켰는데, 그 시기를 주후 85-90년경으로 보고 있다. 요한복음에는 ‘출교’(파문)에 관해서 3회 언급되었는데(9:22, 12:42, 16:2), 특히 9장 22절에 언급된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다”가 얌니아의 결의를 반영한 구절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서들의 기록연대를 얌니아 결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85년경부터 요한이 사망한 96년 사이로 보고 있다. 기록 장소는 에베소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요한이 에베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요한일서의 주제
요한일서는 편지라고는 하지만 전혀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있지 않고 수신자가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주변의 여러 교회들이 돌려 읽었던 회람편지로 믿어진다.
요한일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영생을 얻는 것임을 알게 하려고 쓴 서신이다(5:13, 20, 요 17:3).
요한일서 5장 20절은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고 했고,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했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요한은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1:1)고 하였다. 이 말씀은 법정증언의 개념으로써 증언의 신빙성과 증인의 신뢰성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1:1),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영원한 생명”(2절)이시다고 말한다. 여기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1:1)은 “생명의 로고스” 혹은 영원한 로고스(Logos)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c.?535?c.?475 BC)는 이 로고스를 “변화의 주체자이면서 스스로 변치 않는 진리”라고 하였다. 이 태초의 로고스가 참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독생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분은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에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2:25, 5:11-12).
요한일서에서는 예수님이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분”(1:2)으로서 “그리스도”로 표현된 구절이 <개정역> 기준으로 10회(1:3, 2:1, 22, 3:23, 4:2, 5:1, 6, 20),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들로 표현한 구절이 총 17회 나온다. “아버지와 아들”(2:22) 1회, “아버지와 그의 아들”(1:3) 1회, “그 아들”(1:7, 3:23, 4:10, 5:10) 4회, “그의 아들”(1:3, 5:9, 11, 20) 4회, “하나님의 아들”(3:8, 4:15, 5:5, 10, 12, 13, 20) 7회 나온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저자는 또 예수님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되시고, “죄가 없으신”(3;5)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2:1),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분(3:5),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고(2:2, 4:10), “물과 피로 임하신 분”(5:6)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3:8)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분(1:9)이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2:25, 5:11-12, 5:20)고 말한다.
요한일서에는 “나타난 바” 혹은 “나타내신 바”(faner, φανερ)란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1:2, 2:19, 28, 3:2, 5, 8, 4:9). 영어로는 ‘manifested,’ ‘appeared,’ ‘revealed,’ ‘made visible,’ ‘became visible,’ ‘made known what has been hidden or unknown’이 된다. 이 말은 참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타내신 것과 1장 2절,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에서와 같이 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보냄을 받고 “나타내신 바”가 된 것을 모두 포함한다. 또 이 말은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았거나 감춰졌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실체가 1절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한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고 귀에 들리는 계시의(육적) 형태로 세상 안으로 보내졌다는 곧 계시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4장 9-14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9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10절)...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한다”(14절)는 말씀에서 잘 표현되었다.
요한일서에서 “나타난 바” 혹은 “나타내신 바”는 구조주의 형태를 띤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대속과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과 형제들의 믿음과 서로 사랑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드러나는 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들을 나타(들춰)내려 함이다(2:19).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3:8),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4:9). 참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거짓을 들춰내고 몰아내기 위함이요, 빛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것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함이며, 질서가 나타내신 바 된 것은 혼돈을 몰아내기 위함이요,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 것은 죽음을 몰아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김은 의로우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5장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1절)라고 했고, 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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