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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위해 싸우라01: 부르심의 본질(유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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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795 2021.03.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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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위해 싸우라01: 부르심의 본질(유 1:1-2)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Jude_Codex_Alexandrinus.jpg유다서는 예수님과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가 60-80년 사이에 거짓교사들과 그들의 교리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위해 싸우라”고 권하기 위해 쓴 글이다.

고린도전서 9장 5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형제들은 순회 전도자들이었다. 유다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또 유다서는 유대인들만이 알 수 있는 구약의 인물과 위경인 <모세의 승천기>와 <에녹서>를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유다서는 유다가 순회하며 설교했던 한 유대인교회 공동체에 보내진 편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유다서는 “가만히 들어온” 방탕한 영지주의 경향의 유대인 에비온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단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킬 목적과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기 위해서 기록된 서신이다. 방탕한 영지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육체적인 것을 죄악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었다.

1절 전반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에서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이었지만,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낮췄다. 야고보도 그랬다(약 1:1). 여기서 종은 노예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의 운명의 결정권자가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 신분을 포기하고 맏아들이 되심으로써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또 예수님 자신의 형제자매들이 되게 한 것과 같다. 유다는 예수님의 형제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노예가 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게 하였다.

예수님에게는 네 명의 이복형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였다(마 13:55). 이들 육신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동안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다(요 7:5). 그랬던 그들이 자기들의 친 형님을 어떻게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는가? 같은 어머니를 모신 혈육으로써 어떻게 예수님을 일컬어 주님이라 말할 수 있고, 자신들을 예수님의 노예라고 낮춰 말할 수 있었는가?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의 일인 듯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Jude_Duomo.jpg유다는 1절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했다. 이것은 당대에 야고보가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과 순종을 보여주는 호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더 이상 혈육이 아니라, 신앙과 순종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허구가 아닌 진실한 것임을 입증하는 상황증거가 된다. 남이 아닌 친형제들이 그것도 한 때는 전혀 믿지 않았던 자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였음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만든 명백한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에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최고지도자로(행 15:13) 부상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9절에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란 표현을 썼고, 2장 11-12절에서는 베드로가 안디옥에 있을 때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오자 자리를 피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당회장 장로)였던 것이다. 야고보서가 바로 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 의해 기록되었다.

야고보와 유다는 형제간이지만 또 다른 형제간인 안드레가 유력한 베드로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것처럼 유다도 유력한 야고보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유다가 이 짧은 <유다서>조차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겸손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혈통과 색깔과 언어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형제자매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라는 강한 인식이 있었다.

1절 후반부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에서 유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의미를 세 가지로 정의하였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고, 둘째로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했으며,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택정을 입은 사람들’이란 뜻이다. 옛날 조정에서는 세자비를 고르는 일을 간택(揀擇)이라고 했다. ‘간택’이란 골라 뽑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이 특별히 골라서 뽑은 사람들이란 뜻이다. 따라서 ‘부름을 입은 사람들’은 매우 존귀한 자들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주실 사람들을 이미 만세전에 간택하셨고, 간택된 자들을 부르신다.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Jude_Nuremberg.jpg두 번째로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란 뜻은 왕이신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세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영적으로) 세자비들이란 뜻이다. 옛날 조정에서는 세자비로 뽑힌 자가 시아버지인 임금과 남편인 세자 모두로부터 사랑을 입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 정권의 쟁탈과 갈등의 틈새에 끼어있었던 세자비로서 임금과 세자 모두로부터 사랑을 입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이고 아들 예수님의 사랑까지도 듬뿍 받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는 사람들’이란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란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사랑을 받으며, 보호를 받는 존귀한 자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요 은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통해서 그 같은 존귀한 은총을 입은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자신의 주석 <매일의 성경 연구>(Daily Study Bible)에서 좀 다르게 설명하였다.

첫째, “부르심”으로 번역된 헬라어에 해당되는 ‘칼레인’(kalein, 부르다)은 크게 세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그 첫 번째가 사람을 직무나 의무 또는 책임에로 부르는 데 쓰였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한 책무나 의무 또는 책임에 부름을 받는다. 두 번째는 사람을 잔치나 축제 또는 즐거운 행사에 초대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에 자녀로서 초대를 받는다. 세 번째는 사람을 법정에 나오게 하여 증언하도록 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최후심판 때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된다.

둘째, “부르심”의 본질이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랑받고 사랑하라는 명령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일하라고 부르시지만, 그 일은 짐이 아니라 영예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섬기라고 부르시지만, 그것은 강압이 아니라 사귐의 섬김이다. 마지막 때 하나님은 사람들을 심판하시려고 부르시지만, 그것은 정의의 심판이자 사랑의 심판이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지켜주시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을 항상 지키는 파수꾼이시요 그리스도인과 함께 걷는 동반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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