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 믿음, 보배 약속07: 이단자들의 최후(4)(벧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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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믿음, 보배 약속07: 이단자들의 최후(4)(벧후 3:1-9)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3장 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는 이 서신이 동일한 공동체들에 보내진 베드로의 두 번째 서신이라는 것과 두 서신들의 기록목적이 수신자들에게
사도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려한 것임을 말한다. 베드로후서는 서두에서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임을 밝혔고,
1장 16-18절에서는 변형산에서 예수님을 목격한 자로 밝혔다. 또 서신의 기록목적에 대해서는 수신자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점에서는 쌍둥이
서신인 유다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다서 5절은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한다.”고 했고, 17절은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다. 바울도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나라(교회)를 거룩한 성전에 비교했을 때, 그
건물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전통이고, 그 건물의 모퉁잇돌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모퉁잇돌은 고대 이스라엘의 건축에서
집이 들어설 네 모서리에 놓이는 거대한 돌을 말한다. 이 모퉁잇돌들을 근거로 기초가 놓이고 집의 방향과 각도가 결정되었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독자들한테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약성경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담아 전하고 있는 책이다. 신약성경은 교회의 기초이자 헌법이며 표준이고 새 언약의 내용이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것들을 예수님께 배워서 전하였다.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될 당시 정경여부를 결정지은 잣대는 대상 문서가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에 일치하는가 여부였다. 그러므로 2절,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한다.”는 베드로의 희망이 우리한테서 이뤄지려면 신약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3-4절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는 윌리엄
바클리의 주석에 따르면,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자들의 이중 반박을 언급한 것이다. 첫 번째 반박은 재림이 지연되고 있고,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이뤄질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 반박은 세상을 뜬 조상들이 많지만, 산천은 유구(悠久)하다는 주장이다.
재림의 지연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을 안긴 것은 사실이다. 복음서들과 일부 서신들의 기록 시기는 재림의 지연과 교회들은 성장과 박해와 이단의 침투와 배교자들이 속출하던 시기에 맞물려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성도들은 지연되고 있는 주의 재림에 대해 묻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그들의 물음에 해답을 주고자 했다.
바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롬 11:25), 누가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눅 21:24), 베드로는 주님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벧후 3:9)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48절에서 재림이 지연된다는 생각이나 아예 없다는 악한 생각을 경계하셨다. 특히 누가는 교회의 설립과 발전과정에서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을 가지고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박해까지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령충만하자. 그래서 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를 세워나가자.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삶과 정신에 잇대어 살았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삶과 정신에 잇대어 살아가자’라고 권면하였다.
이뿐 아니라, 신약성경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종려주일(예루살렘 입성, 주일)과 부활주일(하늘 예루살렘 입성, 주일) 사이에 고난주간을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 곧바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40년간 광야교회시대를 거친 후에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땅에 들어간 것과 같다. 이것은 주의 재림과 세상 끝이 있기까지 장기간의 교회시대 곧 성령시대, 은혜시대, 선교시대, 환난시대가 지속될 것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교회시대 혹은 고난시대에 박해가 아무리 극심하고 환난이 커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을 받지 말고 인내로써 믿음을 신실하게 지켜야할 이유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과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마 24:30-31)이 성도들을 불러 모울 그날이 멀지 않기 때문이며, 또 그때까지는 아직 종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5-7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는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자들의 이중 반박에 대한
베드로의 이중 답변 가운데 첫 번째 답변이다. 이 답변에서 베드로는 ‘이 우주는 안정된 곳이 아니다. 노아 홍수 때 이미 한 번 물로 전멸
당했었고, 이번에는 불로 심판을 받을 터인데, 그 때까지 이 우주를 보존해 두고 계신 것이다.’고 하였다.
8-9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자들의 이중 반박에 대한 베드로의 이중 답변 가운데 두 번째 답변이다. 이 답변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시간개념은 인간의 시간개념과 다르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더딤(느림)은 더딤(지연)이 아니다. 느림과 지연의 실상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올 수 있는 제2, 제3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오래 참고 계신 것이다.’고 하였다.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대조한 시편 90편 4절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에 연결된다.
베드로후서 3장은 주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교훈하고 있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구원의 핵심은 부활과 재림에 있다. 모든 종교의 출발이 다 그렇듯이, 기독교는 인간의 가장 큰 문제를 죽음으로 본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해답이 육체의 부활이다. 그리고 이 육체의 부활이 이뤄지는 시점을 주의 재림의 때로 설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모든 육체가 부활할 때까지 이뤄지는 구원은 이때에 이뤄질 약속의 성격을 띠는 것이고, 이 약속을 보증하고 인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성령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성령님에 의해서 우리 가운데서 이뤄지는 모든 축복은 사실상 영적인 것이다. 굳이 육체적인 것이 있다면, 병 고침이나 기도응답과 같은 것들이지만, 이와 같은 것들은 일시적인 축복일 뿐이고, 성경이 말하는 궁극적인 구원의 축복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육체의 부활과 주의 재림을 확실하게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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