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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믿음, 보배 약속03: 더 확실한 예언(벧후 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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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213 2021.02.28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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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믿음, 보배 약속03: 더 확실한 예언(벧후 1:12-21)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는 11절까지에서 언급한 것들을 12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한다.”는 말은 베드로후서가 기록된 목적을 밝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1장 12절에서 뿐 아니라, 13절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긴다.”와 15절에서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했고, 3장 1-2절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한다.”고 했다. 또 쌍둥이 서신인 유다서 1장 5절에도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한다.”고 했고, 17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베드로의 이 같은 노력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이뤄졌다. 1장 13절에서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긴다.”고 하였고, 14절에서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고 하였으며, 15절에서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다. 이처럼 베드로는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성도들이 이미 아는 내용이라도 다시 상기시킬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언(신약성경)을 주신 목적도 이와 같으므로,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1:16)을 확실히 믿고, 진리가 마치 샛별이 떠오르듯이 마음에 밝히 깨달아질 때까지 예언(신약성경)을 읽고 묵상하되 사사로이 풀지는 말라고 하였다(1:19-20).

14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지시한 내용은 무엇인가? 여기서 “지시”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앞날을 예언하신 것과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 것으로써 요한복음 21장 18-19절에 담겨있다. 18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예언이고, 19절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는 명령이다.

그리고 14절은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의 저자임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는 예수님이 예언하신 베드로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유언서를 작성하는 심정으로 베드로후서를 썼음을 피력한 것이고, 그 심정이 15절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에 잘 녹아있다.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Tabor2.jpg그리고 16-18절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의 저자임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16-1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이들 구절에서 “거룩한 산”은 갈릴리 남서쪽에 위치한 다볼(Tabor, 588M) 산을 말한 것으로써 여기서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으셨고, 변화하셔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대화를 나누셨다. 그리고 이 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마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변형과 야훼 하나님의 음성과 히브리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식을 통해서 계명의 아들들이 된 역사적 사건을 다볼산에서 있었던 변형사건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로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막 6:14-29)과 오천 명(막 6:30-44)과 사천 명을 먹이신 표적(막 8:1-10)과 이 변형산에서의 표적(막 9:2-8)을 예수님의 공생애의 분수령 곧 갈릴리지방에서의 사역과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의 분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들 사건이 있고난 다음 예수님은 자신이 장차 오실 자로 예언된 메시아임을 밝히셨고, 곧바로 제자들을 데리고 명성과 인기를 얻으셨던 갈릴리지역을 떠나 배척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부활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시는 영광을 누리셨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의 때를 “영광 받으실 때”라고 말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위로부터”의 표적을 ‘제2의 모세’ 곧 장차 오실 자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표적으로 보고 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제1대 메시아로 믿었는데, 모세는 명실상부한 히브리인들의 구세주였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동안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들을 행하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장차 오실 자 메시아도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들을 행할 것으로 믿었고,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막 8:11). 예수님은 자기의 때 곧 영광 받으실 때가 다가오자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신 표적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당신이 장차 오실 자 메시아이심을 증명해 보이셨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속(代贖)의 죽음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변형산 사건은 갈릴리 지역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Tabor1.jpg히브리인들의 구세주 모세가 펼친 하늘로부터 온 표적들은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제2의 모세 곧 예수님이 펼친 하늘로부터 온 표적들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이었다. 베드로가 19-21절에서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언은 결과적으로 신약성경의 말씀을 말한 것으로써 19절의 말씀대로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하였다. “더 확실한 예언”이란 것은 “확실한 예언”보다 ‘더’(much more) 뛰어나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밤하늘에 아무리 많은 별들이 빛을 낸다고 해도 밝은 달 하나에 미치지 못하고, 아무리 크고 밝은 달이 빛을 낸다고 해도 태양이 내는 빛에 미치지 못한다. 별빛도 달빛도 모두 다 좋지만, 햇빛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베드로는 예언의 말씀을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에 비교하였다. 따라서 “더 확실한 예언”이란 것은 마치 그 밝기가 햇빛과 같은 계시를 말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음시대에 주어진 신약성경이란 예언의 말씀이다.

율법시대에 주어진 구약성경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 허락하신 것으로써 그 시대에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되기 이전의 고대세계에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유대교보다 더 뛰어난 성문법이나 윤리도덕적인 유일신만을 섬기는 종교가 없었다. 고대세계는 다신 세계였고, 제왕을 포함한 각종 동물과 같은 피조물을 신들로 섬기던 시대였다. 히브리서 7장 18절은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였다”고 했고, 10장 9절은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는데, 히브리서에서 “더 좋은 것”이란 표현은 ‘좋은 것’과 비교해서 ‘더욱 좋은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 비교는 총체적으로 ‘더 좋다’가 아니라 최소한 ‘구원에 속한 것에서 더 좋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약의 것들이 구원에 속한 것에서 한층 더 큰 보물로 부각된 것이라면, 구약의 것들은 구원에 속한 것에서 이전시대에 일시적으로 탁월했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20-21절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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