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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믿음, 보배 약속01: 보배로운 믿음(1)(벧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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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693 2021.02.2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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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믿음, 보배 약속01: 보배로운 믿음(1)(벧후 1:1)

“사도인 시몬 베드로”

precious_faith.jpg베드로후서는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고, 1장 16절부터 18절에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목격한 자로, 3장 1절에서는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낸다고 말함으로써 본 서신의 저자가 베드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베드로후서는 전서와 마찬가지로 네로 황제 박해 때인 주후 64년에서 67년 사이에 로마에서 기록되었으며, 지금의 터키 지역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어졌다. 본서가 수신자들에 대해서 1장 1절에서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라고만 쓰고 그들이 어느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인지를 밝히지 않았으나 3장 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쓴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전서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터키 중서부 전역 곧 아나톨리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발송된 회람서신인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가 전서에서 외부의 힘 곧 물리적인 박해로 인해서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격려했다면, 후서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神)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 곧 보배로운 믿음과 보배로운 약속들에서 성장하는 자들이 될 것을 당부하고 있고, 또 교회 내부에 침투한 이단자들과 그로 인해서 타락한 자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베드로후서는 유다서와 겹치는 부분들이 있어서 쌍둥이 서신으로 볼 수 있다. 학자들은 유다서가 베드로후서보다 먼저 쓰인 것으로 보고 있어서 유다서의 일부 내용이 베드로후서에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서신서들에서 겹치는 것들에는 거짓 선생에 대한 경고(벧후 2:1-3, 유 1:4), 범죄한 천사들(벧후 2:4, 유 1:6), 소돔과 고모라 멸망(벧후 2:6, 유 1:7), 발람 선지자를 통한 교훈(벧후 2:15-16, 유 1:11), 악인의 물 없는 샘(벧후 2:17, 유 1:12), 사도들의 권면을 기억할 것(벧후 3:2, 유 1:17), 정욕을 좇아 조롱하는 자들(벧후 3:3, 유 1:18)이 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precious_promises.jpg신앙인들은 언제나 두 가지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첫째는 외부의 물리적인 박해요, 둘째는 내부의 이단자들의 도전이었다. 베드로 서신의 수신자들이 이 두 가지 위협에 직면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초대교회에 가장 위협적인 이단자들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헬라의 영지주의가 혼합된 유대인 에비온파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주장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유일신 또는 단일신론 자들이었으므로 삼위일체신앙을 거부하였고, 따라서 예수님의 신성이나 동정녀 탄생과 같은 교리를 믿지 않았다. 또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문자적으로 지키고 실천하는 율법주의자들이었으므로 구약성경의 내용들을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의 예표들 곧 모형들과 그림자들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참고로 유대교는 민족이 가나안땅과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야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실천종교이기 때문에 교리가 거의 없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교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교리들을 대부분 부정해왔다.

유대인 에비온파들은 두 주의의 혼합인데, 그 하나가 금욕주의이고, 다른 하나가 향락주의이다. ‘에비온파’란 말이 ‘가난한 자들’이란 뜻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금욕주의자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다수가 악한 육체가 선한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여긴 헬라의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어서 육체를 함부로 다뤘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하였다. 베드로후서 2장 4-22절뿐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단이 바로 이들 방탕한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예전에는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자들을 별도의 그룹 곧 유대인 율법주의 그리스도인들과 헬라인 영지주의 그리스도인들로 보았으나 실상은 이들이 야훼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유대인 에비온파들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헬라인들은 수많은 신들과 황제들까지도 신으로 믿었고,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 및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와 같은 서사시들에 담긴 신화들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크게 방해가 되거나 적대감을 갖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로마 신화들은 그리스도교 복음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예표나 모형과 그림자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1세기 교회들의 적대자들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가 혼합된 유대인 에비온파들이었다.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베드로후서는 1장에서 부르시고 택하신 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 곧 보배로운 믿음과 보배로운 약속들 안에서의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2장에서는 불의한 자들, 저주의 자식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와 타락의 위험들과 타락한 자들의 불행을 경고하고 있다. 또 3장에서는 불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주의 재림 및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교훈하고 있다. 따라서 베드로후서 1장의 주제는 4절로써 ‘신(神)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 이고, 2장의 주제는 21절로써 ‘의(義)의 도(道)를 알고 난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지 말라’이며(비교: 3:17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3장의 주제는 18절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이다.

베드로후서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을 대조시켜 말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몇 가지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앎(지식)과 모름(무지)의 대조이다. ‘앎’이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1:2, 8),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1:3), 및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님”(1:20)을 아는 것을 뜻한다. ‘모름’은 신성한 것들 곧 보배로운 믿음(1:1), 보배로운 약속들(1;4), 주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 불의 심판에 관한 것들(3:8-13)을 알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둘째,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자(1:10)와 “불의한 자”(2:9) 곧 “저주의 자식”(2:14)의 대조이다. 이 대조는 또 “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2:9)의 대조이기도하다.

셋째, 받은 것(1:20-21)과 만든 것(1:16, 20, 2:3)의 대조이다. ‘받은 것’이란 성경의 예언들을 말하고, 예언자들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며, 그들이 말한 예언들은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을 뜻한다. 반면에 ‘만든 것’이란 “교묘히 만든 이야기들”(1:16), 성경의 예언들을 “사사로이”(자의적으로) 푼 해석들(1:20),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탐심으로 지어낸 말들”(2:3)을 말한다.

넷째, 신의 성품(1:4, divine nature)과 죄의 성품(2:10, 18, sinful or human nature)의 대조이다. 신의 성품이란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의 본성을 말한 것으로써 성령의 열매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성령의 열매들로 말하였고, 베드로는 후서 1장 5-7절에서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와 사랑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죄의 성품으로는 범죄, 음란, 비방, 정욕, 불의, 점과 흠 등을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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