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 산 돌11: 교회(6)(벧전 3:8-22)
본문
산 소망 산 돌11: 교회(6)(벧전 3:8-22)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침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2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자들이다(개역개정,
NRSV, NASB). 이 말씀의 뜻은 침례를 받음으로써 죄에 대하여 죽고 영적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표준새번역, KJV,) 혹은 “하나님께 서약하는”(공동, NIV) 것을 뜻한다. 그리고 8-17절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간구하거나 응답하거나 서약해야할 내용들에 대한 말씀이다.
첫째는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것이다(8-9절).
둘째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않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10-11절).
셋째는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는 것이다(14-16절).
그리고 9, 12, 14절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간구하거나 응답하거나 서약해야할 이유들에 대한 말씀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목적이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이고”(엡 2:10), 그로 인해서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9절).
둘째는 하나님께서 눈으로는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귀로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지만,” 얼굴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시기” 때문이다(12절).
셋째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14절, 마 5:10).
17-22절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와 그로 인해서 상속받으신 복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죄인들을 대속하시기 위함이라고 했고(18절), 그 받으신 복은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는” 것이고,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22절).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복에 대해서 바울은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고 하였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여덟 명이라”
20-21절은 노아의 방주와 침례의 연결점 및 침례의 목적에 관한 말씀이다.
20절에서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tebah, תֵּבָה)이고, 영어로는 ‘아크’(Ark, 상자, 궤)라고 한다. 노아의 방주, 갓난아기 모세를 태웠던 갈대상자, 지성소의 법궤가 ‘테바’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는데 있다. 방주와 갈대상자는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의미가 확실하지만, 법궤는 어떻게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것과 연결이 될까? 방주와 갈대상자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법궤 속에는 만나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와 십계명을 새긴 두 개의 돌 판이 들어있었다. 법궤에는 광야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표적들 곧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들이 담겼다. 특히 십계명을 새긴 두 개의 돌 판은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계명의 아들들과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은 계명의 아들들이고 계명의 아들들은 하나님과 계약한 율법을 지키는 의무자들이다. 그러므로 법궤에 담긴 두 개의 돌 판은 이스라엘 곧 계명의 아들들을 대표한다. 게다가 그들은 홍해라는 바다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이고, 광야라 불린 모래바다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이다. 복음서에는 제자들이 갈릴리호수에서 구원을 받는 표적이 두 개가 실려 있다.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을 때에 광풍이 몰아쳐 죽게 된 상황에서 예수님이 음부(죽음)의 권세를 상징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해주신 표적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지 않았을 때 역풍이 강하게 불었고, 제자들이 밤새도록 사투를 벌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셔서 음부(죽음)의 권세를 상징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해주신 표적이다. 여기서 제자들을 태운 배는 교회를 상징하고, 물은 세상과 음부(죽음)의 권세를, 물에서 받은 구원은 침례와 큰 환난과 죽음에서의 구원을 상징한다. 그 때문에 계시록 15장 2-3절에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출 15장),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성경에서 샘물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강이나 바다와 같은 큰물은 죽음을 상징하고, 죽음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물 바깥 곧 해변은 구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경에는 물에서 구원받은 사건들이 적지 않고 침례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고린도전서 10장 1-4절이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이 말씀에서 바울은 이집트를 죄악이 가득한 세상으로, 홍해를 죽음의 바다로, 홍해를 건넌 것을 침례
받음으로, 광야를 교회로, 광야에서 먹고 마신 만나와 반석의 물을 주의 만찬으로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요단강은 죽음의 강이요, 가나안복지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 되는 것이다.
침례를 행할 때 물에 들어가 물속에 잠기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이 죄 씻음을 의미한다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고,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상징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것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라고 말하며 침례의 예표로 설명하였고, 로마서 6장 3-4절에서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침례에서의 물이 죽음 또는 죽음의 세계를 상징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테바’(tebah, תֵּבָה)는 교회를 상징하고, 노아와 모세는 예수님의 예표이다.
테바 곧 방주(홍수), 갈대상자(나일강), 광야(홍해)에는 방향타(키)가 없다. 히브리인들을 인도한 구름기둥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탄 구원의 방주에는 방향타(키)가 없다. 성삼위 하나님이 친히 테바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테바 곧 방주(홍수), 갈대상자(나일강), 광야(홍해)에는 돛이나 닻이 없다. 성삼위 하나님이 친히 테바를 움직이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테바 곧 방주(홍수), 갈대상자(나일강), 광야(홍해)에서 인간은 승선자일 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운전자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노아의 식구를 살렸던 방주라는 테바, 히브리인들을 살렸던 광야(홍해)라는 테바, 그리스도인들을 살린 교회라는 테바에는 인위적인 방향타(키)나 동력이 필요 없다. 인위적인 방향타(키)나 동력은 테바를 목적지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삼천포로 빠지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탄 테바 곧 교회는 하나님이 방향타(키)가 되신다. 고로 인위적인 방향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탄 테바 곧 교회는 하나님이 동력의 근원이시다. 고로 인위적인 동력이 필요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탄 테바 곧 교회는 하나님이 운전하신다. 고로 운전자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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