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 산 돌10: 교회(5)(벧전 3:1-7)
본문
산 소망 산 돌10: 교회(5)(벧전 3:1-7)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1-2절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에 대한 주석 <Daily
Study Bible>에서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로마시대의 여성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놓고 있다.
필자도 로마시대의 여성들에 대해서 여러 차례 소개한바가 있는데, 그 내용들과 대부분 같은 것이어서 그의 글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왔다. 다음은
그의 글을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교가 불가피하게 야기할 가정문제들에 관심을 돌린다. 부부 가운데 한쪽이 상대방 배우자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복음전도에 싸늘한 반응을 보인 배우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 같은 상황에서 문제들이 불거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아내들에 대한 베드로의 조언이 남편들에 대한 것보다 6배나 길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이것은 아내의 입장이 남편보다 훨씬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일 남편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는 반사적으로 아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이고, 남편이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남편이 이교도로 남는다면, 그녀는 전례 없는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첫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고대문명권에서 여성들은 결코 권리들을 갖지 못했다. 유대인 율법아래에서 여성은 하나의 물건이었다. 여성은 남편의 소유였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남편이 양과 염소 떼를 소유한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남편은 부인을 마음만 먹으면 버릴 수 있었지만, 부인은 어떤 경우에도 남편을 떠날 수가 없었다. 부인으로서 종교를 바꾸는 것은, 남편이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스 문명에서 여성의 의무는 “실내에 머물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었다. 여성이 가능한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물어봐야한다는 것은 좋은 여성이라는 표시였다. 여성은 독립적 존재란 것을 갖지 못했고, 자신의 마음이란 것을 갖지 못했다. 남편은 지참금만 돌려준다면 거의 언제라도 부인과 이혼 할 수 있었다.
“너희의 단장은...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로마법 아래에서 여성은 어떠한 권리도 갖지 못했다. 법적으로 여성은 언제나 아이로 남아있었다. 여성이
아버지 밑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권력(patria potestas) 아래 있었다. 아버지의 권력이란 여성의 생사여탈권이 아버지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여성이 결혼을 하면, 여성의 생사여탈권이 남편에게 이양이 되었다. 부인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혹은 남편의 자비에 예속되었다. 전형적인
고대 로마인 검열관 카토(Cato the Censor)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그대가 아내를 배신(부정한) 행위 중에 잡았다면, 재판 없이
아내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 로마의 부인들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다. 에그나티우스(Egnatius)는 아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녀를 때려서 죽였다. 술피키우스 갈루스(Sulpicius Gallus)는 부인이 단 차례 베일을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이유로
아내를 버렸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Antistius Vetus)는 부인이 공개석상에서 해방노예에게 은밀히 말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이혼했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Publius Sempronius Sophus)는 부인이 단 한 차례 대중 오락장에 갔다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했다. 고대 문명의 전반적인 태도는 여성은 누구라도 자력으로 그 어떤 결정도 감히 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편이 조상의 신들에게 충실한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아내에게 무슨 문제들이 있었을까? 그리스도인이 될 만큼 용감했던 아내의 삶이 어땠을지 우리로서는 거의 알 수가 없다. 그 같은 경우에서 베드로의 조언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그가 조언하지 않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 아내에게 남편한테서 떠나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이 점에 있어서 베드로는 바울이 취하는 것과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고전 7:13-16). 바울과 베드로는 이교도 남편이 그리스도인 아내를 쫓아내지 않는 한 그녀는 남편 곁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베드로는 아내에게 설교하거나 논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노예와 자유인, 이방인과 유대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이가 없고, 그녀가 알게 된 그리스도 존전에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하라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여성에게 뭔가 매우 단순하게 말한다. 좋은 아내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 아내가 편견과 적대감의 장벽들을 허물고, 남편을 그녀의 새 주인에게 인도할 수 있는 수단은 무언의 설교로써 그녀의 사랑스런 삶에서 묻어나오는 것이다.
“남편들아...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귀히 여기라”
그녀는 복종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맹종이 아니라, 누군가가 잘 표현했듯이, “자발적 헌신”을 뜻한다.
그것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섬기려는 열망에 기초한 복종이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나온 복종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복종이다.
그녀는 청순해야한다. 그녀의 삶에는 사랑에 기초한 사랑스러운 순결과 정절이 있어야한다. 그녀는 경건해야한다. 그녀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모든 생명이 그리스도의 존전에서 살아간다는 확신 속에서 살아야한다....
그렇다면 남편의 의무는 무엇인가?
첫째, 남편은 이해하고 있어야한다. 남편은 아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사려 깊고 예민해야한다.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으뜸가는 미인이었지만, 아버지는 미남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결혼한 그 못생기고 작은 남자에게 충실하십니까?” 그녀의 대답은 “그는 나를 결코 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와 배려는 깨지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했다. 견디기 어려운 학대는 종종 고의성의 산물이 아니라 순전히 무심함의 산물이다.
둘째, 남편은 기사다워야 한다. 그는 여성이 더 약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정중히 대해야한다. 고대 세계에서 여성을 향한 기사도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동방나라들에서 남자는 당나귀를 타고 가고, 여자는 그 옆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드문 광경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기사도를 도입한 것은 그리스도교였다.
셋째, 남편은 여성이 동등한 영적 권리들을 갖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녀는 생명의 은총을 입은 동료 상속자이다. 여성들은 그리스로마인들의 제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심지어 유대인 회당에서도 여성들은 기도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정통주의 회당에서는 지금도 참여하지 못한다. 여성들에게 회당출입이 허용된 때에도 남성들과 격리되어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에 제한되었다. 여성이 동등한 영적 권리들을 갖는다는 것과 그로 인해서 남녀관계에 변화가 생겼다는 혁명적 원칙이 나타난 것은 이 그리스도교에서였다.
(역자 주: 유대인들은 인구조사에서 여성을 세지 않았다. 여성들은 성전 영내의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계명의 아들들 곧 13세 이상의 남성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여성들은 613개의 계명들 가운데 “~를 하라”는 계명 248개를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들은 남성 신체의 뼈와 기관의 숫자란 주장과도 맥을 같이 했다. 같은 이유로 여성들은 기도회 때 회당의 성소에 들어가지 못했다. 성소가 보이는 별관 입실만 허용되었다.)
넷째, 남성이 이 같은 의무들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도들과 하나님 사이에 장벽이 있는 것이다. 빅그(Bigg)가 말했듯이, “상처 입은 아내의 한숨이 남편의 기도들과 하나님의 청취사이를 가로막는다." 여기에 위대한 진리가 있다. 만약 동료 인간들과의 우리의 관계가 잘못되면,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는 결코 올바를 수 없다. 우리가 서로 하나일 때 하나님과도 하나가되는 것이다.
이상은 윌리엄 바클레이의 <Daily Study Bible> 베드로전서 3장 1-7절의 주석 가운데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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