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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 산 돌03: 산 소망(2)(벧전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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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071 2021.01.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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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 산 돌03: 산 소망(2)(벧전 1:6-12)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는 말씀은 마치 히브리인들이 야훼 하나님을 믿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 구원을 받고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온갖 시련과 환난을 겪은 것과 같다. 그리고 믿음과 인내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아니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복지를 차지한 것과 같다. 이것은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연결된다. 또 로마서 5장 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는 말씀에 연결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으셨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하늘로 끌어올리시어 당신의 보좌우편에 앉게 하셨다. 게다가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빌 2:9-11).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에 있었던 사건들 가운데 종려주일사건은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사건에 비교될 수 있고, 그리스도인들의 회심사건 곧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된 중생(칭의)에 비교될 수 있다. 종려주일사건이후 십자가에 못 박힌 성금요일까지를 고난주간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승리의 예루살렘입성이후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고난주간사건은 히브리인들이 40년간 광야에서 겪었던 사건과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난 이후 교회생활 중에 겪는 크고 작은 환난에 비교될 수 있다.

또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는 로마서 5장 5-6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다.”와 고린도후서 4장 17-18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다.”에 연결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 부활승천과 영광을 누리셨듯이, 또 히브리인들이 광야생활 후에 가나안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고, 환난을 당한 후에 소망을 이룬다. 히브리인들의 광야생활을 구름기둥이 인도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생활을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희망은 하나님의 백성을 부끄럽게 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으로부터 제8일째 날 저녁에 도마에게 하신 말씀 곧 요한복음 20장 29절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에 연결된다. 참고로 요한복음 20장에는 ‘주 첫날 저녁’이 두 번 나오고, 제자들이 이 두 번의 저녁에 함께 모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두 번의 저녁집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주 첫날은 일요일이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어쩌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이 함께 모인 날들이 ‘주의 날’ 곧 주일이었음을 암시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해가지면서 새 날이 시작되기 때문에 “안식 후 첫날”은 주일이지만, “안식 후 첫날 저녁 때”는, 우리에게는 주일저녁이 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월요일의 시작을 뜻한다. 아무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는 말씀은 당대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이요,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믿음이 위대했던 것은 그들이 가나안땅을 본 적도 가본적도 없었지만,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이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의 결국”은 영생이란 것이 본문 8-9절의  말씀이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9절의 “영혼의 구원”에서 “영혼의”를 “of [your] souls”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souls”는 헬라어 ψυχῶν(프쉬콘)의 번역으로써 우리말로 ‘혼,’ ‘영혼,’ ‘존재,’ ‘사람,’ ‘생명체’ 등을 뜻한다. 구약성경에서는 נֶ֫פֶשׁ‎(네페쉬)란 말로 쓰였다. 이 말은 ‘존재,’ ‘사람,’ ‘생명체,’ ‘짐승’ 등을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경 39권이 완성된 페르시아시대까지 근동세계에는 영혼 또는 영적 세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이 개념은 헬라시대에 근동세계에 알려졌고, 신약성경에서 강조되었으며, 신약성경 이해의 핵심이다. 다만 구약성경이 신약성경 이해의 또 다른 핵심이기 때문에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의 히브리개념과 그리스로마시대의 헬라개념이 혼용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혼’ 또는 ‘혼’으로 번역되는 ‘프쉬케’(psyche)란 말과 ‘음부’로 번역되는 ‘하데스’(Hades)란 말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하데스는 낙원에 해당되는 ‘엘리시온’(Elysian Fields)과 지옥에 해당되는 ‘타르타로스’(Tartarus)가 함께 있는 깊은 지하세계, 음부의 세계 곧 죽음의 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이것에 해당되는 ‘스올’(Sheol)은 ‘보이지 않는 세계’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 곧 ‘무덤’이란 뜻이다. 따라서 ‘스올’은 죄를 짓고 벌 받아 가는 곳이 아니라, 죽으면 누구나 다 가는 곳을 말한다. 이들 단어들 ‘하데스’와 ‘스올’은 죽음의 세계란 점에서 신약성경에서 혼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는 “믿음의 결과는 생명(사람)의 구원을 받음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유대인들에게 ‘다가올 세상’(Olam Ha-Ba)은 회복된 이스라엘왕국이고, 에덴동산의 개념이다. 지옥개념은 없고, 다만 ‘게힌놈’(Gehinnom)은 가톨릭의 연옥과 같은 곳으로써 ‘다가올 세상’이 도래하기 전까지만 존재하며, ‘게힌놈’에 머무는 기간도 최장 12개월로 한정된다.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여기서 “믿음의 결국”은 인내의 열매 또는 믿음과 인내의 끈을 놓지 아니한 결과를 말하고, ‘생명’은 육체구원 곧 부활을 말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음으로써 영혼구원이란 현재구원을 선물로 받지만 현세에서 교회생활을 하는 동안 온갖 시련과 환난을 겪는다. 그리고 이것을 끝까지 견디고 이긴 믿음의 용사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생명의 구원 곧 부활이란 축복이다. 그것은 마치 히브리인들이 구세주 하나님을 믿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 구원을 받고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온갖 시련과 환난을 겪은 것과 같다. 그리고 믿음과 인내의 끈을 놓지 아니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복지를 차지한 것과 같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고, 11장 1-2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하였다.

10-12절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했고 풀었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셔서 그리스도께서 장차 받으실 고난과 영광에 대해서 예언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 예언은 당대의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그리스도인들 곧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 사실을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계시로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란 것이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그 사실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는데, 그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그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고, 심지어 천사들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이 점을 바울도 자주 강조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차 오실 그리스도로 예언된 자는 유대인만을 위한,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희망한 문자적 방식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영적 방식으로 이뤄졌다. 구약성경에 담긴 것들은 실체가 아니고 신약성경에 담긴 것들의 그림자요 모형이었다.

둘째, 그 같은 사실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것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이 예언된 그리스도로 오셨고, 그분이 다윗의 왕좌에 오르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민족성별색깔빈부귀천에 상관없이 그 분을 구주로 믿는 자들을 대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로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셋째, 하나님이 그 같은 사실을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로 알게 하신 것은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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