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신행일치09: 말씀을 들음과 행함(1)(약 1:19-20)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9,296 2020.12.21 09:25

본문

신행일치09: 말씀을 들음과 행함(1)(약 1:19-20)

“듣기는 속히 하고”

anger2.jpg19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말씀은 말과 행동에 조심하라는 권면이다. 말과 행동에서 말은 “말하기”에, 행동은 “듣기”와 “성내기”에 해당된다.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이겨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말과 상대방의 마음을 살 수 있는 행동이 중요하다.

20절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는 말씀은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 행하는 것과 같다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나의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상대방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면, 나와 상대방은 피차 불편한 관계가 되고, 이 불편한 관계가 서로에게 수치심과 미움을 낳게 만들고 그 나쁜 감정의 층이 켜켜이 쌓이게 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평화가 있는 곳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을 가려서 해야 한다. 특히 말에 조심해야 한다. 이왕이면 좋은 말, 격려와 용기가 되는 말, 응원하는 말을 골라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가급적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혼자서만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내 생각만 옳다거나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인 말, 판단하는 말, 비난하는 말,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만한 자들을 신들이 가장 싫어한다고 생각했고, 신들은 반드시 그런 자들을 보응한다고 믿었다.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 제노(Zeno, 335BC-263BC)는 말하기를, “우리는 두 개의 귀와 하나뿐인 입을 갖고 있다. 이것은 듣고 또 듣데 말은 적게 하라는 뜻이다.”고 했다. 한자로 청(聽)은 귀 이(耳)와 임금 왕(王), 그리고 열십 십(十)과 눈 목(目) 그리고 한 일(一)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큰 귀와 열 개의 눈 그리고 하나의 마음을 뜻한다. 귀는 크게 열고, 눈은 넓게 열 되, 마음은 하나여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또 “신은 인간에게 두 개의 귀와 하나의 혀를 주셨다. 인간은 말하는 것의 두 배만큼 들어야할 의무가 있다.”고도 했다.

“말하기는 더디 하며”

anger1.jpg외경 집회서 5장 11-13절은, “듣기는 빨리하고 대답은 신중히 하여라. 네가 이해했거든 이웃에게 대답하여라. 그러지 못했거든 손을 입에 얹어라. 영광과 치욕은 말에 있고 인간의 혀는 파멸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잠언 29장 20절도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하였다.

신학자 윌리엄 바클리(1907-1978)는 야고보서 주석에서 말하기를, 현명한 사람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듣기를 싫어하는 것의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듣기와 말하기에 관련해서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빨리 듣고 빨리 잊어버리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얻은 것을 빠르게 내버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둘째는 천천히 듣고 천천히 잊어버리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얻은 것이 많아서 내버린 것을 상쇄시킨다고 했다. 셋째는 빨리 듣고 천천히 잊어버리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현명한 자라고 했다. 넷째는 천천히 듣고 빨리 잊어버리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최악이라고 했다.

윌리엄 바클리의 기도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사소한 것에 화내거나 조바심을 갖지 않게 하시며...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과 당신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되도록 하옵소서. 내게 뛰어난 감각을 주심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 주는 행동을 하지 않게 하시고,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중원대학교 유경미 교수는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이란 글에서 “듣는 것이 에너지다. 듣는 것이 사랑이다... 듣는 것은 보는 것이다. 듣는 것이 기쁨이다.”고 했다. 대화할 때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자기를 비우지 못하기 때문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또 유경미 교수는 경청하는 태도로써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첫째는 귀담아 듣는다. 둘째는 도중에 차단하지 않는다. 셋째는 판단하지 않는다. 넷째는 반응을 보이면서 듣는다. 다섯째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했다. 또 귀로 듣고, 눈으로 듣고, 가슴으로 듣고, 입으로 듣는 네 가지 경청공식을 말했는데; 첫째, 귀로는 소리를 듣고 내용을 파악한다. 둘째, 눈으로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듣고 감정을 파악한다. 셋째, 가슴으로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의도를 파악한다. 넷째, 입으로는 재구성하면서 듣고 재 진술할 수 있는 수준까지 듣는다고도 했다.

“성내기도 더디 하라”

anger3.jpg본문에서 ‘성내기’의 헬라어는 ‘오르게’(?ργ?)이다. 충동, 분노, 격정 등을 나타낸다. 성을 낸다는 것은 화가 있다는 뜻인데, 화는 무엇인가가 채워지지 않아서 생기는 스트레스성의 분노이다.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얻기 위한 다툼에서 밀려난 사람들 가운데 화가 많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화를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화병에 걸릴 이유가 없고, 또 걸렸더라도 고칠 수 있다. 반면에 매사에 남과 자기를 비교하고, 그로 인해서 원망과 질투와 시기가 많아지면 평생 화병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

그리스신화에도 성내기로 인한 불행한 사례가 나오는데 헤라의 분노와 헤라클레스(알키데스)의 분노가 그것들이다. 헤라의 분노는 유한한 인간 여인 알크메네의 몸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알키데스)가 영존한 신인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보다 더 위대하게 되리라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생각했고, 그 분노가 헤라클레스를 끝없이 괴롭힌 원인이었다. 그로 인해서 헤라클레스의 일생은 십자가의 길, 가시밭길,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길을 숙명으로 알고 참아내야 했다.

헤라클레스가 델포이 신탁소에서 받은 아폴론의 신탁은 본명인 알키데스 대신에 헤라의 영광이란 뜻을 가진 헤라클레스로 개명하라는 것과 티린스의 영주인 에우리스테우스(Ε?ρυσθε??)가 내리는 12가지 과업을 잘만 수행하면 신들의 대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고난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자기 자신의 광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인간이 수행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업들은 자신에게 분노하는 헤라의 광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광기를 다스리고 치유하는 수행과정이었다. 신화는 헤라클레스가 광기에 사로잡힌 것은 헤라의 질투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다. 그 광기로 인해서 자기 자녀들에게 활을 쏘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 각자가 당하는 고난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기보다는 어쩌면 우리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치유하는 수행과정일는지 모른다. 잠언 16장 32절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하였다. 성내기는 자기중심적 광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플라톤은 이런 육체적 광기를 신앙이나 학문 혹은 예술을 통해 정신적인 것으로 승화시켜야한다고 말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