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일치07: 시련을 견디어낸 자(1)(약 1:16)
본문
신행일치07: 시련을 견디어낸 자(1)(약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1)
그리스도교 복음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계시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아니하셨던 것들이다(엡 3:1-5). 다만 그 복음을 전한 방법에
있어서는 이전 것들을 재창조한 면이 없지 않다. 예들 들어서 유대교 에비온파들은, 그들이 비록 한 분 하나님 야훼만을 믿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님의 신성을 부정하였지만, 예수님이 이전의 토라 곧 율법을 새로운 의미, 참된 의미, 본래적 의미를 밝힌 분이라고 믿었던 것과 같다.
예수님이 새로운 율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율법을 재해석함으로써 율법의 본래적이고 참된 의미를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자자들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전하지 않고, 이전의 것, 옛 것, 구약을 재해석함으로써 옛 것의 본래적이고 참된 의미를 밝혀 주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과 독생하신 하나님이 되심과 부활승천하심과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심에 대한 것과 복음의 진수들을 옛 것들을
재해석하여 전한 것들이다. 다만 이 해석은 문자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영적으로 모형적으로 이뤄졌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전 것들 곧 옛 것들은 병든 것들이고 불완전한 것들이며 일시적인 것들이고 잠정적인 것들이며 땅의 것들이다. 이것들은 건강한 것들, 완전한 것들, 영원한 것들, 항구적인 것들, 하늘의 것들이 나타나면 사라질 것들이다. 그것은 마치 밤에는 달빛이 유용하지만, 햇볕이 나타난 낮에는 무용한 것과 같다. 한국 그리스도교 초기 신학자였던 최병헌(崔炳憲, 1858-1927) 목사가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먹을 것이 없고 가난했을 때에는 풀죽도 마다하지 않지만, 먹을 것이 풍부하고 부유한 때에는 풀죽이 필요 없어지는 것과 같다. 율법시대가 달빛시대라면 복음시대는 햇빛시대인 것이다. 율법시대보다 더 뛰어나고 완벽한 복음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율법시대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2)
율법시대가 나빴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율법시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대로써 당대에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되기 이전의 고대 근동세계와 고대 그리스로마세계에 이스라엘의 율법과 유대교보다 더 뛰어난 성문법이나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유일신만을 섬기는 종교는 없었다. 그 세계는 다신 세계였고, 제왕을 포함한 각종 동물과 같은 피조물을 신들로 섬겼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역사의 연구> ‘제4편 문명의 쇠퇴’에서, 당대의 유대인들이 천부적
재능으로 유일신사상이란 정신적 보물과 탁월성에 도달하였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과도적 단계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것을 절대시하고 우상화함으로써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의 강림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제공한 한층 더 큰 보물을 거절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응보로써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2천년 가까운 세월을, 한때 그들이 괴롭혔던 그리스도교가 국교인 나라들에서, 방랑자처럼
떠돌았다.
작고한 이윤기 신화연구가가 그리스로마신화의 헬레니즘문화와 성경의 헤브라이즘문화를 모르면 루브르박물관에 가봤자 헛것이라고 말한바가 있다<월간중앙 2009년 6월호>. 고대문화의 두 주류였던 이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모르면 유럽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모두 그리스도교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이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모두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으로 받아드렸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복음을 참되고 영원한 것으로 받아드렸다. 그러므로 20세기 초반을 장악한 유명했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신약성경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고대근동과 헬라세계의 영웅적 전기에서 차용했거나 모방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온당치 않다. 그의 이런 주장은 옛 것과 새 것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모방이나 차용이 아니라, 옛 것들, 문자적인 것들, 땅의 것들, 일시적인 것들, 잠정적인 것들을 새 것들, 영적인 것들, 하늘의 것들, 영원한 것들, 항구적인 것들의 그림자와 모형으로 보고 참되고 진실한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3)
예수님이 오시기 전 400여년에 이미 플라톤은 지상의 것 곧 현존하는 것은 하늘의 것 곧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요 모형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 같은 맥락에서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요 모형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0절에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했고, 또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모든 담을 허시고 하나로 통합하시기 위해서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7장 18절에서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였다”고 했고, 10장 9절에서는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에 관련된 것들을 나쁘다거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즐겨 쓴 “더 좋은 것”이란 표현은 ‘그냥 좋은 것’과 비교해서 ‘더욱 좋은 것’이란 뜻이다. 저자의 이 비교는 총체적으로 ‘더 좋다’가 아니라 최소한 ‘구원에 속한 것에서 더 좋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약의 것들이 구원에 속한 것에서 한층 더 큰 보물로 새로 부각된 것이라면, 구약의 것들은 구원에 속한 것에서 이전시대에 일시적으로 좋은 것에 불과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서 구약의 것들이 좋은 것이었다는 뜻은 흠이 없거나 완전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것들에 비교해서 탁월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전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이전에 좋았던 것이라도 더 이상 이전 것을 고집하지 않게 되듯이 새 것으로 인해서 옛 것은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만다.
옛 것의 상징이었던 세례 요한은, 요한복음 3장 30절에 따르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다. 세례 요한이 왜 “그분은 흥하여야하고 나는 쇠하여야한다”고 말했는가? 여기서 “그분은” 예수님을 지칭한 것으로써 예수님은 그리스도교를 세우신 분이다. 따라서 “그분은 흥하여야한다”는 그분이 세우신 그리스도교가 흥하여야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은 세례 요한 자신을 지칭한 것으로써 신약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이다. 따라서 “나는 쇠하여야한다”는 세례 요한의 쇠함과 더불어 유대교가 쇠하여야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세례 요한의 이 유명한 말은, 유대교 입장에서는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겠지만,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정말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유언과도 같은 이 말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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