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일치03: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2)(약 1:1)
본문
신행일치03: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2)(약 1:1)
야고보서의 문학적 구조
야고보서는 단편적인 교훈들을 수집해 놓은 글이기 때문에 문학적인 구조를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야고보서는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산만하게 옮겨 다니며 지혜의 보석을 던지고 있다. 심지어 이들 주제들은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들
사이에 아무런 관련도 없이 연결되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청중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한 주제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설교를 카라즈(charaz)부르는데, 이 말은 실에 꿰여 있는 진주를 뜻한다고 한다. 야고보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한 움큼의 진주를 연달아 하나씩 독자들의 마음속에 꿰어 넣는 것이었다.
야고보서의 신학
1)실천의 종교(Religion of Praxis)
야고보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실천의 종교, 행함의 신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야고보는 이 서신의 중심부에 믿음과 행함에 대해 논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2:17)이라고 못 박고,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라고 말함으로써 바울의 칭의 교리를 보충해주고 있다. 이 같은 야고보의 가르침은 마태의 교훈과 비슷하다. 또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이 죄”라는 죄에 대한 독특한 정의를 내려 범법죄만이 아니라 태만죄까지도 강조하여 예수님의 정신에 더 근접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14- 26).
실천과 관련된 야고보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①시련은 온전한 인격을 만들어 낸다(1:2-4).
②인내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시험과 잘못을 하나님께 전가시키지 않는다(1:13-15).
③교회 내에서 부유한 자들에게는 아첨하고 가난한 자들은 업신여기는 속물근성은 죄다(2:1-7).
④부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며, 정의보다 부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1:10; 5:1-6).
⑤참된 종교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는 것이다(1:27).
⑥지혜에는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가 있다(3:13-17).
⑦혀에 재갈을 먹여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자다(1:26; 3:1-12).
⑧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2:14-26).
2)생명의 면류관(The Crown of Life)
야고보서는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말씀이 마음에서 싹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고 온전하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 때에 구원을 받아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써야 한다. 말씀을 듣기만 하거나 교회당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구원을 완성시켜야 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
3)위로부터 난 지혜(The Wisdom That Comes from Heaven)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소유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지만 땅에서 나오는 지혜는 오직 심판과 사망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3:15, 17).
4)자유의 율법(The Law of Liberty)
야고보서는 신앙이 행동으로 구현되고, 공동체가 유지되며, 마지막 날에 심판을 이기는 것은 자유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1:25; 2:12).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1:25).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2:12).
그리스도인의 삶은 두 가지 큰 사실에 기초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자유의 율법아래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판단을 받게 될 근거는 자유의 율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정통파 유대인들처럼 외적인 613개의 율법항목과 수많은 울타리(게자이로트) 법들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사랑의 요구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 강요나 두려움 때문에 지키는 율법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율법을 말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긍휼을 베푸는 자만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란 점을 기억해야한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2:13).
5)하나님의 벗(Friend of God)
야고보서는 철저히 신본주의 신학을 수립하여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모든 원리는 하나님께 귀결된다.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벗”이 되라고 권면한다(4:4).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2:23).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4:4).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4:8).
하나님의 벗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해야 한다. 친구란 같은 태도, 같은 가치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자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벗과 세상의 벗이 되려고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이 있는데, 세상의 욕심과 표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의 벗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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