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 그 희망(Ha-Tikvah)의 출발점(벧전 1:3-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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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 그 희망(Ha-Tikvah)의 출발점(벧전 1:3-9, 21)
예수님의 탄생에는 여러 의미들이 담겨 있다.
먼저 흑암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 곧 흑암을 생명의 빛으로 바꾼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16절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고 했다. 성탄절을 동지에
맞춰 지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2월 25일 성탄절은 동짓날이 막 지난, 즉 점차 커지던 어둠의 권세를 퇴각시키고 생명의 빛이 정복해나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둘째는 아기의 탄생이 희망을 상징하듯이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절망한 세상을 희망의 나라로 바꾼다는데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그 희망의 출발을 의미한다. 별을 관측하던 페르시아 유대인 박사들은 유난히 빛나는 특별한 별을 처음 보았을 때, 흥분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메시아 별,’ ‘그리스도 별’ 곧 ‘희망의 별’이었기 때문이다. 그 별이 자기 민족을 구원할 희망의 별이라고 확신한 그들은, 마치 먼 옛날 조상들이 가나안땅을 향해서 또는 빼앗긴 고토를 찾아서 순례길에 오른 것처럼 그들도 짐을 꾸려 희망을 찾아 집을 나섰다. 희망을 찾아 떠나는 길은 많은 돈과 시간이 소비되는 길이요, 고되고 험난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길이다. 그들이 험난한 여행 끝에 갓 태어난 아기를 본 것은 그 희망이었고, 그 희망의 출발이었다.
‘그 희망’(Ha-Tikvah)이란 아브라함이 나이 일흔 다섯에, 비록 척박하고 좁은 땅이었지만, 그곳 가나안에 자기 민족의 나라를 세우고 싶어 한 희망을 말한다. 그런데 그 때 아브라함은 무자식이었다. 늙고 자식도 없었던 때에 품었던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희망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모세오경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희망이란 것이 뜬구름을 잡는 것일 수 있지만, 인간의 그 희망에 신(하나님)이 개입하게 되면, 그 희망이 성취된다는 것이 모세오경의 메시지일 뿐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화의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에게 ‘그 희망’은 아브라함이후 3천8백년이나 된 아주 오래 묵은 희망일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있고, 그토록 오랜 그 희망의 내용을 애국가에 담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성취할 영웅이 다름 아닌 장차 오실
메시아 혹은 모쉬아크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2천 년 전에 선포된 예수님을 이미 오신 메시아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2천 년 전에 쓰인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출현이 그 희망의 출발이었음을 분명히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나이 일흔 다섯에 가나안 땅을 희망한 이후 그 첫 번째 희망을 가시적으로 성공시킨 인물이 모세였다. 그리고 그 희망이 절정에 달했던 나라가 다윗왕국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죽고 왕국은 북과 남으로 쪼개졌으며, 북이스라엘 왕국은 200여년 만인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고, 남유다왕국은 340여년 만인 주전 586년에 멸망하였다. 출애굽 후 가나안땅에 나라를 세운지 860여년 만에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원점이 이집트에서 바빌로니아로 바꿨을 뿐이었다. 이때로부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나이 많고 늙은 무자식 상태에서 처음 품었던 그 희망, 곧 성취될 가능성이 아주 없었던 그 희망을 다시 품기 시작하였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가능성이 제로인 상태, 절망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 깊은 흑암의 상태, 무질서가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희망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브라함의 희망이 430(혹은 645)년 만에 성취되었듯이, 유대인들의 희망은 580여년 만에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다는 것이 복음서들이 선포한 메시지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이 그토록 오래 묵은 희망의 시작임을 선포하였다.
그런데 그 희망의 성취가 최악 가운데 최악의 상태인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이뤄졌듯이, 예수님 탄생이
가져온 제2희망의 성취도 로마제국의 압제라는 사실상의 노예생활에서 이뤄졌다. 모세가 이집트에 등장한 시기처럼 예수님의 등장시기도 흑암과 절망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출발을 알리고 있고, 새로운 희망의 출발을 알리고 있다.
성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의 성막제작과 봉헌 이야기는 일 년에 한 차례씩 모세오경을 완독하던 유대인들, 특히 바벨론유배에서 조상들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고토에 돌아온 유대인들이 겪었던 이방인들의 핍박과 경제적 어려움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이 바벨론(페르시아)탈출 세대가 고토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900여 년 전 이집트탈출 세대가 광야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한 가지 사례로 선지자 스가랴와 학개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에게 성전재건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외치며 힘써 독려하였다. 그로 인해서 비록 솔로몬성전의 영광에 훨씬 못 미쳤고 기간도 20년이나 걸렸지만, 그들은 성전을 완공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떠돌이와 노예들인 조상들이 극한의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만들어가는 영웅적 광야시대의 이야기는 수천 년에 걸쳐 제2, 제3의 떠돌이 광야시대를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그 희망’(Ha-Tikvah) 자체였다.
마찬가지로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고 30대에 이르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보좌에 앉는 영광을 누리시는 영웅적 이야기는 매일의 삶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희망’ 자체이다. 베드로전서 1장 21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는
앞선 이야기와 같은 뜻이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하늘 가나안땅에 있고, 하나님은 그
나라를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것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고
했고, 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근거인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데 있다. 우리들의 삶은 마치 주검처럼 실망과 좌절과 고난과 흑암과 무질서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 상태 곧 용광로 속과 같은 처지에서 건져내 주시고 살려내 주시며, 영광을 주시고 살아 역사하는 희망을 주실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용광로란 시련을 통해 단련된다. 불같은 시련을 이기고 단련된 믿음은 금보다 귀한 것이어서, 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 21절은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하였다.
인류역사상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가장 적게 누린 민족, 가장 불행했던 민족이 유대민족이다. 출애굽 후 아주 어렵게 가나안 땅을 차지해놓고서도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렸으며, 결국 북왕국이 주전 722년에 영구히 사라져 버렸고, 남왕국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제국에 망한 후로 600여 년간 제국들의 지배아래 유다 도(道)로만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나마도 주후 70년에 로마제국에 망해서 1948년까지 무려 1878년간 지도에서 사라졌으며, 그 사이 1200만 명이 학살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강점은 그들이 그들의 희망을 3800년이 넘도록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한이후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이 지난 2600년의 유대민족의 사무친 희망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희망이 자기 대(代)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또는 자기 조상들의 대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후손들에게까지 자자손손 이어갔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대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희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우리 조상들의 대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절망해 버리지는 않는가? 우리가 끝내 이기고 역사에 기리 기억되는 길은 우리의 희망을 우리의 세대만이 아닌 먼 미래 세대에까지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마다 이맘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탄생은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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