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그리스도35: 천국백성과 지옥백성의 분리(5)(계 9:1-21)
본문
승리자 그리스도35: 천국백성과 지옥백성의 분리(5)(계 9:1-21)
일곱 나팔재앙(4)
요한 계시록 8장 3-5절을 보면, 제단 곁에 서서 성도들의 예배의 향과 기도의 향을
금향로에 담아 하나님의 보좌 앞 금단에 드렸던 천사가 이번에는 같은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곱 번째 나팔을 불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다는 11장 19절의 말씀과 동일하다. 금향로에
관련된 이들 구절에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들이 있다.
첫째, 천사가 손에 든 금향로에 담긴 것이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향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향을 태우는 불이다. 그런데 향은 태워져 그 향기가 천상의 보좌에 상달되고, 불은 향을 태운 후에 잿더미에 버려지게 되고, 버려진 불은 잿더미의 쓰레기들을 태우게 된다. 예루살렘에는 힌놈골짜기란 곳이 있었는데, 헬라어로는 ‘게헨나’(Gehenna)라 불렸다(마 5:22, 막 9:47). 이곳은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곳이었고, 또 동물과 죄인의 시체를 화장하는 곳이었을 뿐 아니라, 자식들을 몰렉신에게 불살라 바치기까지 했던 부정하고 음산하고, 늘 불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잿더미 골짜기였다. 그래서 이곳 ‘게헨나’는 지옥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참고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유대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이 낙원과 천국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갖는 견해만큼이나 다양하다. 반면에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에덴동산(Gan Eden)에 연결되고, 지옥은 ‘게힌놈’(Gehinnom) 곧 ‘힌놈의 골짜기’에 연결되는데, ‘게힌놈’은 심판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을 말하며, ‘게힌놈’의 불은 지상의 것보다 60배나 더 뜨겁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첨가되었다. 다만 ‘게힌놈’은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연옥과 같아서 ‘다가올 세상’이 도래하기 전까지만 존재하며, ‘게힌놈’에서 머무는 기간도 최장 12개월로 한정된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다가올 세상’에 들어가지 못한다.
둘째, 금향로에 담긴 향은 성도들의 예배와 기도의 상징이고, 향을 태우는 불은 그들을 연단하는 박해를 상징한다. 그러나 연단의 불이 강할수록 향은 더 빠르게 타고, 그 향도 진하게 하늘로 피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향을 태운 불은 쓰레기더미에 버려지게 되고, 불과 연기를 피어오르게 한다.
일곱 나팔재앙(5)
셋째, 금향로에 담긴 향과 불은 천국과 지옥의 백성, 천상과 지상의 백성을 각각 상징한다. 또 향은
구원과 축복을, 불은 저주와 심판을 상징한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에 성도들의 예배의 향과 기도의 향을
담아 보좌 앞 금향단에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들을 받으시고, 성도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지만, 성도들을 탄압하고 핍박하던 자들을 위해서는 제단
위에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고 있다. 불을 쏟는 천사의 행위는 나팔재앙과 대접재앙을 펼치기 위한 무대의 막을 여는 징소리와 같고, 그 불로
인해서 무서운 재앙들이 쏟아지게 된다.
넷째, 이런 점들 때문에 향로는 성도들에게 기도를 분향하는 그릇이지만, 악인들에게는 재앙의 불을 쏟아내는 그릇이다. 평상시에는 성도들의 예배의 향과 기도의 향을 태우는 그릇으로 쓰이지만, 심판의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 쏟아진 불처럼 저주의 불을 쏟아내는 진노의 그릇으로 쓰인다.
민수기 16장은 계시록의 향로와 불의 의미를 밝혀주는 모형적 사건이다. 민수기 16장은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운 다음 하나님 앞에 가져다 놓고, 성막 문 앞에서 생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모험을 펼치는 장면에 관한 기사이다. 사건의 발단은 레위 자손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을 추종하는 250명의 족장들이 모세와 아론을 반역한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모세는 그들 가운데서 250개의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우게 한 다음 하나님 앞에 가져오게 하였고, 모세와 아론도 그렇게 하였다. 결과는 모세와 아론의 향로들 위에 피운 향기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받으시고, 나머지 250인은 하나님의 불에 의해서 소멸되었다. 이 일을 원망하다가 염병에 걸려 추가로 죽은 사람이 14,700명이다. 족장들의 죽음은 향로의 불에 의한 것이고, 염병에 의한 죽음은 불티와 재 곧 바이러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향로는 염병을 멈추는 일에도 쓰이고 있어서 생사를 결정짓는 그릇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요하고 전통적인 개념들 가운데 한 가지는 축복이 지상에서 천상의 보좌에로 올라가고, 저주는 하늘에서 지상에로 쏟아진다는 점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콜레르트의 ‘최후의 심판,’ 로댕의 ‘지옥의 문’이 그렇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프레스코 벽화이고, 콜레르트의 ‘최후의 심판’은 판화이며, 로댕의 ‘지옥의 문’은 조각이다. 세 작품 다 구원받을 사람은 위(천국)를 향하게 하였고, 저주받을 사람은 아래(지옥)로 향하도록 하였다.
일곱 나팔재앙(6)
나팔은 전투에서 경고와 공격신호에 쓰인다. 나팔재앙과 관련해서 가장 특이한 구약성서의 모형적인 사건이
여리고 전투이다. 히브리 군사들은 여리고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엿새 동안 돌았고, 제사장 일곱이 각각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진하였다. 일곱 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고나서 나팔수들이 양각나팔을 일제히 길게 불었으며, 군사와 백성들이 목청껏 함성을 질렀다.
나팔과 고함소리에 그만 그토록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말았다(수 6장).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재앙은 심판과 저주를 의미하지만, 계시록의 기록 목적으로 볼 때, 재앙은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메시지이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주고, 불신자들과 박해자들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려고 쓰였다. 따라서 나팔재앙은 그 첫 번째 경고가 된다. 첫 번째이기 때문에 강도는 33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강도가 약해서 일까,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9장 20-21절에 적고 있다. 이 말씀의 모형은 출애굽 당시 바로의 강퍅한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강퍅한 마음은 결국 더 큰 재앙, 곧 100퍼센트 강도의 재앙을 불러오게 되고,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팔재앙 다음에 대접재앙이 뒤따라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재앙은 성도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기도의 응답이다. 여리고 전투에서 보듯이 나팔소리는 악인들에게는 두려운 절망의 소리이지만 성도들에게는 희망의 소리이다. 재앙은 출애굽 사건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탈출시키기 위한 공격전 개시사격과 같은 것이며, 재앙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해도 그것은 적진에 국한된 것이다. 9장 4절에서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계시록의 재앙은 그 모형을 출애굽 사건 때의 열 가지 재앙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나팔부터 차례로 피가 섞인 우박과 불로 인한 삼분의 일 재앙(출 9:13), 피로 인한 바다 삼분의 일 재앙(출 7:14f.). 강의 삼분의 일이 쓴물이 되는 재앙(출 15:23/ 마라), 해, 달, 별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는 재앙(출 10:21f/ 흑암). 황충으로 인한 괴로움(출 10:1-20), 사람 삼분의 일이 불과 연기와 유황을 품어내는 말과 2억의 마병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재앙(출 11-12장/ 사망)이 다 출애굽 사건 때 있었던 열 가지 재앙에서 그 모형을 찾을 수 있다.
열 가지 재앙이 히브리인들에게 오랜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주고, 가나안 땅에서의 안식을 가져다주었듯이, 계시록에서의 재앙은 이 땅에서 환란을 당하며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최후의 승리와 영원한 안식이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요, 믿음과 인내를 촉구하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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