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그리스도32: 천국백성과 지옥백성의 분리(2)(계 7:1-17)
본문
승리자 그리스도32: 천국백성과 지옥백성의 분리(2)(계 7:1-17)
환란과 재앙의 차이(1)
‘십사만 사천’은 14절의 말씀처럼, 큰 환란을 당하였지만, 춘향이처럼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킨 사람들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말이 어린 양의 피로 자기 옷을 희게 빨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환란’은 ‘재앙’하고 다르다. 환란은 믿음의 연단을 위해 잠시 받는 시련을 말하는 것이고, 재앙은 불신자들이 당할 저주를 말하는 것이다. 계시록 7장은 성도들이 ‘대 환난’을 잘 견디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후에 구원받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도열해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보좌에 앉으신 이’를 섬기는 장면이다. 이들 승리자들이 받을 보상과 위로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친히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며,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배고픔, 목마름, 태양열, 눈물은 큰 환난의 내용이자 상징들이다.
순교사를 보면, 박해 중에 성도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다. 곤장, 주리틀림, 각종 고문, 옥살이보다 더 고통스런 것이 배고픔과 목마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동일한 내용이 이사야 49장 10절에서 발견된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환란과 재앙의 차이(2)
이사야서와 요한 계시록에서 나타난 메시아상은 유대교인들이 고대하는 ‘군주적 메시아상’하고 비슷한 면이 있다. 복음서에 나타난
메시아상은 모성적이고 여린 십자가에 못 박힌 어린양 구세주이다. 이 메시아상은 유대교인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기독교만의 독특한 메시아상이다.
그러나 계시록에서의 메시아상은 어린양으로 설명되기는 했어도, 부성적이고 강한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심판주, 재림주이시다. 천상 보좌방의
어린양으로 묘사된 것만 아니라면, 유대교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상과 거의 비슷하다. 그렇더라도 다른 점이 더 많다.
첫째, 유대교인들의 종말론은 내세적이지 않고 현세적이다. 그래서 계시록에 묘사된 천상의 메시아를 수용하기 어렵다.
둘째, 유대교인들의 종말론은 우주적인 것보다 민족적이다. 그래서 계시록에 묘사된 우주적 메시아를 수용하기 어렵다.
셋째, 유대교인들의 종말론은 모세나 다윗과 같은 순수 인간 메시아에서 출발되기 때문에 천상에서 내려오는 메시아를 수용하기 어렵다.
넷째, 유대인 또는 유대교에 경도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재림 직후에 유대왕국으로써 천년왕국이 출범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재림 직후에 있을 문자적 또는 유대적인 천년왕국을 믿지 않는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죽은 직후부터 낙원에서 복된 삶을 누리다가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직후에는 즉시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시록 7장의 장면은 구원 받은 성도들이 보상과 위로를 받는 낙원의 상황을 보여준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면서 천국생활을 맛보고, 죽어서 낙원에 이른 후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도열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네 생물’과 ‘24 장로들’과 ‘천사’들과 더불어 밤낮으로 ‘보좌에 앉으신 이’를 섬기게 된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시게 되면, 그분과 함께 모든 성도들도 부활하여 흰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분의 뒤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와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에서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다.
환란과 재앙의 차이(3)
요한이 살았던 때에는 로마제국이 천하를 지배하던 때로써 신사참배와 같이 황제를 신으로
섬기도록 강요받던 때였다. 일본은 천황이나 무사들의 영을 신(神)으로 섬기는 신사(神社)를 읍과 면 단위에까지 만들고 전 국민을 참배케 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살아있는 천황의 사진에 경축일마다 절을 하게 하였다. 이는 조선인의 충성을 시험하고, 군국주의의 정신적 단결을 도모하려
함이었다.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1938년에 장로교 총회와 감리교 연회가 각각 신사참배를 결의하였고, 이후 장로교와 감리교는 총회 차원에서
일본에 굴욕적으로 복종하였다. 이때에 주기철 목사를 비롯하여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신앙의 정절을 지키려다가 순교하였다. 또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 때에는, 마치 64년 네로 황제 때에 발생한 로마시의 대화재 때에 죄 없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된 것처럼, 죄 없는
우리 동포들이 6일 동안에 무려 6,433명이나 일본인들의 죽창과 흉기에 찔려 죽었다.
이와 같이 로마제국은 황제들을 신으로 섬기게 하였으며, 심지어 살아있는 황제까지도 신으로 모시게 하였다. 요한이 죽기 직전에 로마제국을 통치한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다. 도미티아누스는 죽은 네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신으로 착각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주(主)와 신(神)'으로 부르게 하였다. 전 로마제국에 황제를 신으로 모시는 성전이 만들어지고, 황제를 '주와 신'으로 고백하게 하였다. 이것을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이 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록 1-3장을 통해서 능력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하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큰 태풍이 불어 닥친 것처럼, 황제숭배와 박해라는 큰 폭풍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배고픔과 채찍 맞음과 옥에 갇힘과 맹수에게 찢김과 십자가에 못 박힘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머물 것이냐, 황제의 깃발 아래로 옮겨갈 것이냐를 결정해야 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황제보다 위대하신 분, 머지않아 악의 세력을 제압하실 분, 박해의 풍랑을 잔잔케 하실 분, 게임을 승리로 이끄실 슈퍼스타, 죽었으나 다시 사신 분, 무덤에 묻혔으나 무덤을 박차고 다시 사신 분,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성도들의 인내를 지켜보시며,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서 하나님의 출전명령만을 기다리시는 분,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성도를 구원할 J장군 그리스도를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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