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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그리스도22: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8)(계 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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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456 2020.04.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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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그리스도22: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8)(계 3:14-18)

“귀 있는 자는”(2)

Laodicea_agora.jpg엘리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아합과 이세벨은 가문이 멸문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유다 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치 판도를 꿰뚫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쇠퇴를 읽고 있었다. 여호야김 때인 주전 609-598년에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코앞에 닥쳤다는 징조들이 많았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의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이로 인해서 이집트는 유다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이 임명한 왕이었지만, 바벨론의 멍에를 벗으려고 애를 썼다. 이 때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이집트에 의지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로 인해서 예레미야는 민족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다윗언약과 성전과 왕권이 유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여호와의 성전’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민족주의자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성전을 마술적으로 믿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금식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었던 여호야김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고, 주전 598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바벨론의 공격 직전에 사망했다. 결국 유다왕국은 다음 해인 597년에 바벨론 군에 능욕을 당했고, 왕위에 오른 지 3달밖에 되지 못한 18살의 여호야긴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다. 주전 605년에 이어 두 번째 유배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이자 요시야(주전 609년 므깃도에서 전사)의 아들인 시드기야를 잡혀간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으로 임명했다. 시드기야 역시 친 이집트파와 하나냐와 스마야와 같은 거짓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냐는 포로가 된 사람들이 신속하게 돌아오고, 성전 보물들도 곧 되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을 부정했고, 유다가 회복되려면 적어도 70여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벨론에 반기를 들지 말고 복종하도록 권했다. 예레미야가 민족주의자들에게 혹심한 핍박을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닫힌 눈과 막힌 귀로 보고 들을 때, 예레미야는 분명 매국노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토굴과 구덩이에 던져졌으며, 시위대 뜰에 갇히기도 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집트 편에 서서 주전 589년에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반역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예루살렘에 파견했고,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다.

라오디게아 교회(1)

Laodicea_water.jpg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했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소경을 만든 다음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로써 제3차에 걸쳐 바벨론의 침략과 유배가 완결되고 유다왕국은 철저하게 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예레미야만큼은 끝내 살아남았다.

복음서와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 듣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며 재앙을 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란 점을 암시한 말씀들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했다(롬 10:17). 귀를 열어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것은 개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이 귀를 열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 사람 개인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를 갖고 못 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라오디게아는 터키 소아시아도 브루기아 지방의 주요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해발 300미터 높이의 언덕 위에 세워졌으며, 20여리 떨어진 계곡 건너편 더 높은 지역에는 유명한 온천 도시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가 위치하고 있었다. 라오디게아는 수로를 통해서 온천수를 공급받고 있었는데 오는 동안 식어서 미지근하게 되었다. 또 라오디게아는 50여리 떨어진 산지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고 있었는데, 이 물 역시 외부기온이 워낙 높기 때문에 수로를 타고 오는 동안 미지근하게 되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에 도착한 물은 모두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오디게아는 온천물이 주는 치료효과를 누렸을 뿐 아니라,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는 안약의 산지로도 이름이 나 있었다. 또 목화와 목축으로 옷감이 생산되던 산업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사치품도 많았다고 한다. 비잔틴 시대에는 주교가 상주했던 도시라고 하니까 그들이 누렸을 번영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님은 이곳 성도들의 미지근한 믿음을 책망하셨다. 미지근한 믿음은 열정이 식은 믿음을 뜻한다. 주님은 열정이 식은 믿음의 가치를 아주 낮게 보셨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부유하고 싶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헌신이 없는 믿음, 구경꾼의 믿음, 아웃사이더의 믿음생활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교제를 끊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싶다. 식탁교제와 연관된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본문 20절에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 교회(2)

Laodicean_Church.jpg고대 근동세계에서는 식탁교제를 언약체결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 주님과 한 식탁에서 먹을 수 있기 위해서는 주님과 언약관계에 있거나 그 공동체의 회원이어야 한다. 또 주님의 가족이거나 친구이어야 한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 공동체의 회원들이자 가족이고 친구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의 칭찬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았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번영을 누렸던 라오디게아 인들이 영적으로는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서 율법에 통달하였다고 믿는 유대인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머리가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하신 것과 같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갖지 못한 자들이고,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무식한 자들이라는 이 현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아이러니는 그들이 그런 실상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들은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인 풍요가 곧 바로 영적인 풍요로 이어진다고 착각했다. 물질적인 부요가 영적인 경건을 대신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신앙인들이 많다. 물질적인 성공과 세상적인 성공이 곧 바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주님은 성공이 곧 축복이라고 믿는 성공지상주의에 대해서 우리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있다. 세상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먹고 살만하고 입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영적인 문제를 점검해 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이 영적으로 매우 가난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영적으로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착각 속에 살았고, 하나님을 오해했으며, 잘못 믿고 있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런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 주님의 권면대로,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부자가 되기 원한다면, 주님께 순도 높은 금을 사서 소유하고,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고 싶다면, 주님의 보혈로 씻긴 흰 옷을 사서 입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면, 주님이 열어 주시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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