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그리스도15: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1)(계 1: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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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그리스도15: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1)(계 1:17-20)
승리자, J 장군(1)
계시록은 공포영화나 스타트랙과 같은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불안 공포 분노 흥분 기쁨
등이 반복되고,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불의가 싸우는 박진감이 넘치는 소설이나 희곡처럼 독특한 문학형식을 갖춘 예언문서이다. 1-3쿼터 싸움에서는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악의 세력의 탄압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선량한 많은 사람들이 굴복하게 되고, 악의 화신인 불의의 사자를 쓰러뜨릴 정의의
사자가 더디 나타나 패전의 기운이 감돌고, 이길 수 있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4쿼터에 접어들자 비로소 정의의 사자가 나타나 불의의 사자를
물리치고, 온갖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정의를 쫓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크게 보상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드라마
형태로 전달한 일종의 설교이다. 이런 점에서 계시록은 미래의 희망을 전달한 예언서일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사는 모든 신앙인들을 위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이다.
김수경의 저술 가운데, <반칙과의 전쟁>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수천 년 동안 질질 끌고 있는 두 나라의 전쟁에 관해서 적고 있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두 나라의 전쟁은 정의의 나라와 불의의 나라의 싸움인데 너무나 오래된 전쟁인지라, 양쪽의 군사들조차도 전쟁 중이라는 인식이 아주 희미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정의의 나라 군사들이 불의의 나라 군사들의 생활방식을 좋아하고 동경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사병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 전쟁은 이미 옛날에 정의의 나라의 패배로 끝나버린 싸움이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있었고, 또 정의를 따라 살려고 하면 할수록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어이없게도 원칙대로 살려고 하면, 우둔하고 열등한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의를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몇 안 되는 군인 중의 한 사람인 나이 많은 대령이 정의의 나라 군사들을 소집해 놓고 말했다.
어젯밤 비밀문서 보관소에서 이 오래된 전쟁 상황일지를 찾아냈다. 이 전쟁일지에 의하면, 전쟁은 이미 2천 년 전에 끝났다. 승리자는 바로 우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전쟁은 우리가 전설로 여겨왔던 그 낙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공의로우신 왕께서는 수천 년 동안 무력하여 자꾸 적군에게 패배하고 굴복하는 우리 군사들을 위해 끊임없이 강력한 장수들과 참모들을 보내셨다.
승리자, J 장군(2)
우리 왕은 저쪽나라 왕과는 비교하기도 억울할 만큼 강력한 분이시다. 적군은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허깨비와 다름없다. 저쪽나라는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반역하기 위해 거짓에 기초하여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의로운 왕이 처음 이쪽나라를 건국했을 때, 이에 대적하여 공의의 왕의 권세에 도전하고 나온 반역자가 있었다. 왕은 그를 벌하고 추방했다. 반역자는 앙심을 품고, 왕의 백성을 이간하여 이쪽나라를 멸망시킬 계략을 꾸몄다. 그는 공의의 왕이 이쪽나라를 건국하면서 세운 모든 정의의 원칙들에 철저히 반대되는 불의한 반칙들로 자기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두 나라 사이의 전투는 일전일퇴를 거듭하는 장기전이 되었고, 군사들은 지칠 대로 지쳐 정의의 왕이 완전한 승리를 보장했지만, 그것을 믿지 않고, 불의의 왕의 꾐에 속아 넘어가 포로로 잡혀 온갖 고통과 억압 속에서 죽어 갔다. 이에 정의의 왕은 이 전쟁을 완전히 종결짓기로 작정하시고, J장군을 보내셨다. J장군은 왕의 하나뿐인 아들이었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내려와 3년 6개월 동안 정의와 희망을 버린 군사들을 모아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불의의 나라가 위기를 느꼈는지 무섭게 반격해왔다. 전투는 치열해졌다. 정의의 나라가 밀리면서 전세가 불리해졌다. 그러자 군사들은 겁을 먹고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J장군은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J장군이 돌아오지 않자 부하들은 그가 전사한 줄로 알았다. 군사들은 몹시 절망했다. 그런데 3일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J장군이 살아서 돌아오셨다. 게다가 그의 손엔 반역자의 목이 들려져 있었다. 그는 발꿈치만 살짝 다쳤을 뿐이다. J장군은 반역자와 그의 군사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이겼던 것이다. 그 후 J장군은 지레 겁먹고 도망쳤던 부하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당부했다. "제군들은 들어라. 본인이 적국의 왕을 죽었으므로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자, 이제 내가 너희들이 살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잠시 후방으로 돌아간다. 너희들은 내가 다시 돌아와 승전가를 부르며 함께 개선할 때까지 전방을 잘 지키고 있길 바란다.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내가 돌아오면, 적국의 군사들에게 엄한 벌을 주고, 너희들에게는 포상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승리했다는 것을 일러주고, 내 아버지의 이름과 나의 이름으로 군사를 삼아 내가 너희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런 일이 있고 난 직후 한동안은 이쪽 병영에 대단한 개혁의 바람이 일었고, 정의가 되살아나고 희망이 솟구쳤다. 그런데 이미 2천 년 전부터 다시 온다던 J장군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돌아왔다는 헛소문만 풍성했다. 그런 가운데 군사들은 예전처럼 정의와 희망을 잃게 되었고, 그나마 희망을 품고 정의롭게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소수의 병사들에게는 가혹한 억압이 가해졌고, 부정과 부패와 허세와 비리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정의로운 원칙을 포기하고 속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과 싸우느라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란한 트럼펫 소리와 함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J장군이 수만의 근위병을 거느리고 돌아오셨다. J장군은 엄격한 목소리로 순식간에 종이병정처럼 구겨져 엎드러진 저쪽 나라의 패잔군들을 포박하여 약속된 장소에 가두라고 명령하셨다.
승리자, J 장군(3)
그러고 나서 정의의 왕과 J장군에게 온전히 헌신하여 전선을 지킨 동지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들은 온갖
압박과 설움과 고통을 용케도 견디어냈던 사람들이다. J장군은 그들에게 말했다. "동지들, 수고했다. 너희들이 그 동안 흘린 모든 눈물과 땀을
내가 보았고 또 알고 있다. 내가 다 갚아 주겠다. 너희는 끝까지 나를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잘 싸웠으니, 마땅한 상을 내리겠다. 정말
잘했다." 그러고 나서 승리자들은 J장군과 함께 개선하여 높은 보좌에 앉으신 정의의 왕 앞에서 구원의 기쁨을 환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김수경의 <반칙과의 전쟁>의 이야기처럼, 요한 계시록도 온갖 고난과 박해 중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큰상을 내리시고, 박해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신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먼저 온갖 고난과 박해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다시 돌아올 J장군의 늠름한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론 아무나 그런 환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또 믿을 수 있다.
워너 샐만(Warner Sallman)의 1950년도 작품으로 크리벨과 베이츠(Kriebel & Bates)가 저작권을 가지고 보급하고 있는 ‘그리스도 우리의 키잡이’(Christ Our Pilot)란 제목의 성화가 있다. 풍랑이 일고 먹구름이 낀 바다에서 배의 키를 잡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고, 젊은이의 배후에 계신 예수님께서 왼손을 청년의 어깨에 올려놓으시고,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키는 그림이다. 그런데 젊은 항해사의 배후에 계신 예수님은 보통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실제 상황에서 젊은 항해사만 볼 수 있고 예수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 속에 예수님의 모습이 있는 것은 화가인 샐만이 믿음의 눈으로 젊은 항해사 배후에 계신 예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젊은 항해사도 믿음의 눈으로 자기 뒤에 서계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인지 그의 표정에는 폭풍이 몰아닥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당황해 하거나 불안해하지 아니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귀가 있는 사람은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이 그림의 청년처럼 자신감이 넘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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