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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그리스도08: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8)(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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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760 2020.04.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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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그리스도08: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8)(계 1:3)

황제 메시아시대

emperor_worship_augustus.jpg그리스로마시대에 카비루스(Cabirus) 숭배신앙이 있었는데, 카비루스는 권리박탈자들을 변호하다가 자신의 두 형제에게 살해된 자로서 사람들은 그가 생전에 기적을 행하였고, 은밀히 환생하여 사람들을 돕고 있으며, 장차 재림하여 하층민들에게 정의와 평화, 독립과 영광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카비루스 숭배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황제 숭배가 도입되었고, 사람들은 카비루스가 카이사르의 몸으로 환생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이후 황제 숭배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이후 전파된 그리스도교 복음은 헬라인들에게 디오니소스(바쿠스)제전이 제공한 본능적 원시적 성적 에너지 발산과 쾌락이 채워주지 못했던, 또 카비루스 숭배와 황제 숭배가 채워주지 못했던, 심지어 유대교조차 채워주지 못했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었으나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었던 것이어서 결국 카이사르와 그리스도 중의 한 분을 택해야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황제숭배는 로마가 가져다준 평화와 안정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시작되었다. 주전 44년 율리우스 시저가 암살되고 나서 로마의 밤하늘에 한 혜성이 나타났는데, 로마인들은 이 현상을 시저의 영혼이 사후세계로 옮겨간 현시라고 믿었다. 2년 후인 주전 42년 제2차 삼두정권(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은 율리우스 시저를 신격화하였고, 신전을 건축하여 그를 기렸다. 혜성이 부조된 율리우스 신전(Temple of Divus Julius)은 시저 숭배의 상징물로써 데나리온에도 장식되었다.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이후로는 황제들의 생전에 그들을 위한 신전들이 건립되었고, 결과적으로 황제숭배는 민중의 충성도를 시험하는 잣대로 돌변하였다. 이 사악한 덫에 우상숭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이 걸려들었다.

반면에 그리스로마인들은 그들이 믿었던 신들에 대한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했다는 기록을 읽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다신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그런 그들이 굳이 유일신만을 고집하며 순교를 불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3만이 넘는 신들을 믿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신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들을 위한 제단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비록 황제가 인간이었을지라도, 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할 명분이나 실익을 찾지 못하였다.

황제 숭배

deo_et_domino_aurelianus.jpg그런 그들이 “신은 한분뿐이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 어떠했을 지를 생각해보면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로마제국 전역에 세워진 각종 신상들과 신전들 및 제단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황제가 신 곧 신성, 신의 아들, 신의 현현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황제(아우구스투스)를 섬겨야하는 로마군대에 입대를 거부하다가 참수당한 사례들이 있었다. 당대의 그리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다신교를 믿지 않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라고 비난하였고 이는 결국 박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그리스도교에 박해가 있었던 시기 곧 황제숭배가 강요되던 시기에 기록된 책이 틀림없다. 네로(54-68) 때에 로마에서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으나 황제숭배와는 무관하게 로마시 대화재로 촉발된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포괄적으로 수용되는 계시록 기록연대는 도미티아누스가 죽고 난 96년이다.

첫째, 2세기 말에 이레내우스는 계시록이 도미티아누스 말기에 기록된 것으로 전했고, 4세기 초반에 유세비우스는 요한이 밧모섬에서 나와 에베소에서 계시록을 기록하였다고 전하였다.

둘째, 도미티아누스 때 황제숭배가 강요되었다. 도미티아누스 때 처음으로 황제를 ‘주와 하나님’(Dominus et Deus)으로 호칭하였다.

셋째, 도미티아누스 때 박해가 있었다. 이 박해도 네로의 박해처럼 로마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동시대에 에베소에 카이사르 신전이 세워졌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69-121)는 <황제의 열전>에서 도미티아누스가 자신의 친척 플라비우스 클레멘스(Flavius Clemens)를 ‘무신론’(?θε?τη?)이라는 죄명으로 처형하였고, 그의 부인 도미틸라(Domitilla)를 유배 보냈다고 적었다. 그리스도교인의 무덤에서 도미틸라라는 비문이 발견된바가 있다.

넷째, 신화에 의하면, 네로가 죽기 직전 동방 파르테이아(Partheia)에 숨었다가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고 한다. 학자들은 계시록 17장 11절의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는 말과 13장 3절에 나오는 상처를 입었다 나은 짐승에 대한 언급이 이 신화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받아 드린다면, 도미티아누스는 그리스도교 박해자 네로가 윤회 혹은 재생(Nero Redivivus)한 셈이 된다.

신(神)과 주(主)(Deo et Domino)

deo_et_domino_carus.jpg당대에 발행된 주화들의 문구들을 보면 황제들이 백성들에게 자신들을 어떻게 홍보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국가와 시민의 보호자(PR VINDEX), 대중의 희망(SPES PVBLICA), 영원한 왕(PRINC PERP), 왕중의 왕(SHAHANSHAH), 공정한 통치자(AEQUITAS AVG), 행복(FELICITAS)과 자유(LIBERTAS)와 풍요와 행운(TYCH)과 운명(FORTVNAE)과 평화(PAX, PACI)와 승리(NIKE)를 가져다주는 자, 국가와 백성의 수호신(THEOS, DEUS), 신(神)과 주(主)(DEO ET DOMINO) 또는 주와 신(DOMINUS ET DEUS), 만왕의 왕(BASILEUS BASILEON), 만주의 주(KYRIOS KYRION), 평화의 왕(BASILEUS EIRENES), 신의 아들(DIVI FILIUS), 신의 현현(THEOU EPIPHANOUS), 신성(DIVO, DIVI, DIVVS)으로 홍보하였고, 황제들을 위한 별도의 신전들을 세워 죽은 황제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 살아 있는 황제에게까지 분향하도록 강제하였다. 게다가 황제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고, 안디옥코스 4세처럼 제우스 신상이나 칼리굴라처럼 자신의 동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려한 자들이 있었다. 또 티투스처럼 예루살렘성전을 멸망시킨 자도 있었다.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자리에 유피테르 신전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생각한 신은 야훼 하나님과 같은 유일신은 아니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로마황제들은 자신들을 제우스(유피테르), 아폴론, 태양신, 아몬 등의 현현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구주’란 말은 ‘구원자’란 뜻으로써 흔히 신들과 황제들에게 적용됐던 말이었다. 이런 준엄한 시기에 감히 유대인들은 유일신사상에 목숨 걸며 빼앗긴 나라의 주권과 명예를 되찾아줄 모세와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고대하였다. 또 요한과 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평화의 왕으로 선포하였으며, 이 신성의 권리를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만 돌리고 황제숭배를 거부하였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고, 죽음을 무릅쓴 일이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성삼위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나머지는 다 가짜 신 곧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거나 참칭된 우상들이라며 숭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믿었고 또 그 같은 신념 때문에 죽는다고 해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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