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그리스도07: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7)(계 1:2-3)
본문
승리자 그리스도07: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7)(계 1:2-3)
계시와 예언과 묵시의 관계
계시와 예언과 묵시가 다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과 구원의 뜻과 역사경륜과 섭리와 계획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각각의 장르가 독특하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계시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과 뜻이 변신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예언자들의 입과 묵시록 저자들의 글을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구원활동 그 자체를 계시로 볼 수 있다. 한편, 예언은 예언자들의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회개운동은 현재적이고, 예언은 미래적이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베푸실 회복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묵시는 문학적인 글에 가까운 것으로써 예언보다는 희망을 담은 권면(설교)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의 글이면서, 예언의 글이기도 하지만, 묵시적 성격이 강한 글이다.
요한계시록 1장 1-3절은 기록된 내용이 ‘발생할 일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한다는 점에서는 예언적인 성격이 있다. 그러나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다.”는 점에서는 포상과 징계, 축복과 저주, 구원과 심판, 천국과 지옥의 내용을 담은 권면의 성격을 띤 글이다. 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점에서는 미래적이기보다는 현재적이고, 미래의 사람에게 전하는 글이기보다는 현재의 사람에게 전하는 글이다. 따라서 계시록은 시간과 시대에 관계없이 언제나 그 글을 읽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계시록은 미래에 관한 예언이기보다는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시간에서 볼 때 언제나 현재가 되는 글이다. “그 때가 가깝다.”는 것도 언제나 현재적인 경고가 된다. 시간에 관계없이 계시록을 읽는 사람은 “그 때가 가깝다.”는 긴박감과 긴장감 속에서 현재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은 계시록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계시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천사에게 주셨고, 천사는 이 말씀을 요한에게 전달하였다고 1장 1절은 말하고 있다.
계시록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면,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첫째, 이 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이 책의 말씀은 진실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감으로 된 다른 모든 성서들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계시록의 내용들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첫째로 그것은 다른 성서연구를 통해서 얻어진 지식들이 계시록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그것은 계시록을 통해서 얻어진 해석이 분명하게 알려져 있는 다른 성경말씀에 의해서 검증되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하며, 성서의 다른 책들과 동일한 메시지를 찾는데 충실해야한다.
본대로 들은 대로 전달한 요한
계시록 1장 3절은 이 글을 읽는 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한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계시록은 오늘 우리에게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한 헌신을 다짐할 것을 촉구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계시록 1장 2절을 보면,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언하였다.”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 첫째는 계시록의 저자가 ‘요한’이란 것을 알 수 있고; 둘째는 그의 증언이 자기가 본 것,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증언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 ‘요한’이 정확히 누군가라는 점에 있어서는 의견이 갈린다. 사도 요한이라는 주장, 사도 요한이 아니라는 주장, 장로 요한이란 주장, 선지자 요한이란 주장, 마가 요한이란 주장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에녹, 에스라, 바룩과 같은 가명(위경)을 쓰는 다른 묵시들과는 달리, 계시록은 네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요한’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1:1, 4, 9; 22:8). ‘사도’라는 호칭 없이 그냥 ‘요한’이라고 밝힌 점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에게해 연안 소아시아도(道)의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낼 만큼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계시록의 저자가 사도 요한일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계시록의 저자가 ‘요한’이란 이름의 유대인이란 점이고, 그가 전한 증언이 ‘자기가 본 것’에 기초했다는 점이다. ‘자기가 본 것’이란 말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그것이 객관적이라는 점이다. 자기의 생각, 자기의 주장, 자기의 견해를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고, 예수님의 증거를 증언한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본대로 증언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본 것,’ ‘본 바,’ ‘본’(seen) 또는 ‘보았는데’와 같은 단어들이 많다. 그리고 22장 18-19절을 보면, “이 책의 예언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1장 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본 것 그대로, 읽고, 듣고, 행하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것, 인간의 생각, 인간의 판단, 인간의 경험을 섞지 않는 순수함과 겸손함이 필요하다.
구약성경에서는 예언자를 히브리어로 ‘로에,’ ‘호제’ 또는 ‘나비’라고 하는데, ‘로에’와 ‘호제’는 ‘보는 자’(seer)란 뜻으로써 선지자나 선견자를 의미했다(삼상 9:6; 삼하 24). 그러나 선지자나 선견자는 자기 자신의 선견 또는 자기가 본 것을 전한 것이 아니라, 야훼께서 보여주신 것(렘 24:1; 겔 37:1; 암 7:1; 슥 3:1)을 전하였다. 그리고 예언자시대가 진행되어갈수록 예언자는 ‘로에’(ro'eh)나 ‘호제’(chozeh)보다는 ‘나비’(Nabi)라고 불렸다. ‘나비’는 전하는 자 또는 대언자란 뜻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전하거나 말한 것이 아니라, 야훼께서 들려주신 것을 전하였다. 예언을 받는 형식이 환상에서 말씀으로,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귀로 듣는 것으로 바꿔갔다.
해석가로서의 요한
첫째, 요한은 삶의 해석자였다. 그는 사건사고들을 우연이나 숙명으로 보지 않고, 재수나 운수로 해석치 않고, 믿음의 눈으로 보고 풀이하였다. 발생되는 일들을 인간의 삶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개입에 의한 사건들로 보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둘째, 요한은 역사해석자였다.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들을 찾아내고 그 뜻을 읽어냈다. 요한에게는 일상에서 발생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과 그 일들의 의미를 신앙의 눈으로 읽어내고, 신앙의 귀로 듣고, 신앙의 입술로 고백하는 영적 예민함이 있었다.
셋째, 요한은 성서해석자였다. 요한은 구약성서에 실린 이스라엘 역사를 해석해 냄으로써 박해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침묵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당대의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이 짜놓으신 우주를 향한 경륜과 계획을 밝혀냈다. 요한은 성도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던 구원의 하나님, 보응의 하나님,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우주를 향한 은혜의 경륜 속에서 인간의 역사를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철저하고 끈질기며 변치 않는 믿음을 요구하였다.
성서 저자들은 전승의 해석자들, 조상 때부터 전해진 가르침의 해석자들이었다. 구약성서가 완성되기 이전의 예언자들은 시내산 언약과 같은 계약전승들을 표준잣대로 삼았고, 급변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시는 야훼의 뜻을 밝히고 응답을 촉구할 목적으로 계약전승들을 해석하였다. 바울도 사도전승, 특히 안디옥 교회 전통들을 해석해 냄으로써 이전 시대에 밝혀지지 않았던 하나님의 비밀, 곧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밝혀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선별하고 충실하게 해석한 전도자들이었다. 이단의 침투와 기독교박해로 인해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배교의 위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또 제도와 질서 확립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남기신 주옥같은 말씀들과 권세 있는 발자취는 신앙인들을 권면하고 의로 교육할 최상의 자료였다.
넷째, 요한은 비전을 품은 지도자였다. 성서 저자들은 하나님이 영영 응답하실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죽고 안 계실 것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절망하고 좌절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구원의 희망을 잃지 않았던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정말 훌륭한 목회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이사야는 잘려버린 그루터키에서 새싹이 나오는 환상을 보았고(사 6:13; 11:1,10), 에스겔은 골짜기에 쌓인 마른 뼈들이 되살아나는 환상을 보았다(겔 37:1-10). 복음서 저자들은 갈릴리 호수의 광풍이 결코 ‘교회’란 이름의 작은 배를 침몰시킬 수 없는 사실을 보았다(막 4:35-41).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이 엄청난 노도에도 불구하고 홍해를 건넌 후 승리의 노래를 부른 이스라엘 백성처럼(출 15장)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이긴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 예수의 노래,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을 보았다(계 15:2,3). 요한은 박해세력들이 홍해의 거친 파도 속에(출 15장), 불과 유황과 연기 속에(창 19장), 범람하는 홍수 속에(창 6-8장), 심판의 재앙 속에서 저주를 받게 될 것을 구약성서의 사건들 속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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