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그리스도04: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4)(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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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그리스도04: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4)(계 1:1-3)
계시록의 저자와 기록연대, 기록목적과 주제
계시록은 황제숭배를 가장 심하게 강요했던 도미티아누스가 죽고 난 96년에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이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일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다른 요한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계시록의 저자는 첫째, 창조신앙의 소유자였으며; 둘째, 구약성경의 해석자였으며; 셋째, 환상을 보는 묵시묵학자였으며; 넷째, 역사의식이 뚜렷한 신학자였으며; 다섯째, 소명의식을 가진 목회자였다는 점을 확실히 밝힐 수 있다.
계시록은 이와 같은 자질의 소유자인 목회자가 쓴 설교 곧 권면이자 예언이다. 이 설교는 보통의 원고 설교나 저자가 쓴 희곡이 아니라, 저자 자신이 본 환상을 그대로 전한 일종의 동영상 설교(Audio-video Sermon)이다. 계시록은 앞으로 될 사건들에 대한 예언적 설교일 뿐 아니라, 저자 시대의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시기적절하고 필요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목양 설교였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계시록은 회람용으로 쓰였고, 예수신앙 때문에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용기와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 쓰였다. 계시록의 본문은 박해를 이기고 믿음을 지킨 성도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며(7:17; 21:4),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8:3,4)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며(15:2), 피의 보상을 받고(19:2),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보장받는다(21장)고 말한다.
계시록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적그리스도의 박해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승리’를, 둘째는 거짓선지자의 이단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언제나 외부적으로 물리적인 칼의 박해와 내부적으로 이단의 거짓 교리에 맞서야 했었는데,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도 적그리스도의 칼의 위협과 거짓선지자의 이단 사설에 맞서야 했다. 따라서 계시록은 적그리스도의 칼의 박해와 관련해서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거짓선지자의 도전과 관련해서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박해자들에게 재앙으로 심판하실 것이고, 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계시록의 구조적인 틀(1)
계시록은 7이란 숫자를 자주 사용하고 있고, 네 개의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네
개의 환상은 총 일곱 장의 압축된 그림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이 일곱 장의 그림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그린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벽화와 아드리엔 콜레르트(Adriaen Collaert, c.
1560-1618)가 그린 ‘최후의 심판’ 판화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이 조각한 ‘지옥의 문’에서처럼,
다섯 번째인 중간계시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장의 그림들에 요한이 본 환상의 천상의 모습들과 지상의 모습들을 담을 수 있고, 각각의 그림에 담긴
천상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을 한목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요한이 본 4개의 환상들은 압축한 이들 일곱 개의 그림들은 신자들의 고난과 구원 그리고
박해자와 불신자들의 불행한 최후를 경고한다.
첫 번째 그림은 박해의 광풍을 금방이라도 잔잔케 하실 인자의 모습을 상층부에, 거센 풍랑을 만나 몹시 괴로워하는 일곱 교회를 하층부에 담는다. 두 번째 그림은 온 우주를 지배하고 있고, 악의 세력에 의해서 잠깐 동안 장악된 인류의 역사를 바로세울 하늘 보좌방의 화려한 모습을 상층부에, 일곱 인 재앙에 나타나는 지진, 기근, 전쟁, 순교, 천재지변과 같은 역사의 악순환을 하층부에 담는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그림은 박해를 이기고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서 영광과 축복을 누리는 장면을 각각 상층부에,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으로 인해서 큰 고통을 당하는 불신자들의 모습을 각각 하층부에 담는다. 이들의 모습은 방주에 안전하게 피신한 노아의 여덟 식구와 엄청난 물난리 속에서 멸망당하는 불신자들의 장면을 한 장의 그림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홍해를 무사히 건넌 후 바닷가에서 구원의 기쁨을 찬양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홍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바로의 군사들을 한 장의 그림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며, 소알로 피신하여 안도하는 롯과 그의 두 딸과 유황과 연기와 불에 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아우성치며 처참히 죽어가는 악한 자들의 모습을 한 장의 그림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계시록의 구조적인 틀(2)
네 번째 그림은 세 번째 그림보다 그 강도가 3배 이상 강한 저주의 장면을 하층부에 담는다. 그리고 다섯 번째 그림은
목회자, 교회,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부터 고난당하는 장면을 독자의 좌측에 담고, 박해자들과 그들의 나라가 천벌을 받는 장면을
독자의 우측에 담는다. 그리고 여섯 번째 그림은 백마를 타고 강림하시는 그리스도와 그 뒤를 따르는 흰옷 입은 수많은 성도들을 상층부에,
지상에서의 백보좌심판과 천년왕국의 시작을 하층부에 담는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그림은 통합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생복락을 누리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장면을 담는다.
요한이 전한 환상 곧 동영상(audio-video) 메시지를 일곱 개의 클립(clip)으로 끊고, 그 일곱 개의 클립에 담긴 모든 영상을 일곱 장의 그림에 담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마치 관람자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최후의 심판’이나 아드리엔 콜레르트(Adriaen Collaert, c. 1560-1618)의 ‘최후의 심판’ 또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지옥의 문’을 감상하는 것으로써 수십 쪽 또는 수백 쪽의 책 속에 담긴 내용을 한목에 보는 시각적인 효과 때문이다. 환상이란 긴 동영상을 일곱 장의 정체된 그림으로 압축하면 전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일정한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 틀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속한 불신자들을 완전히 천상과 지상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상과 지상이 반드시 문자적인 뜻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상은 구원을 그리고 지상은 저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구원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이 두 길은 다시 만나질 수 없는 영원한 갈림길이다. 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킨 자들은 구원의 길로,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 적그리스도가 강요하는 우상숭배에 머리를 조아린 자들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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