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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902: 하나님임재로써의 성막(출 29: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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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36 2007.02.11 19:32

본문

2902. 하나님임재로써의 성막(출 29:38-46)

mishkan_furniture_hebrewbible_14c.jpg구약의 제사는 복잡한 절차를 통하여 이뤄졌지만, 그 제사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며, 제사가 담고 있는 의미가 더욱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약의 속죄제는 근본이 동물희생 제사였다. 흠이 없는 동물에게 안수함으로써 인간의 죄를 제물에게 상징적으로 전가시킨 후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죽임으로써, 인간이 치러야 할 죄의 대가를 동물이 대신 치르게 하여 죄를 용서받는 상징적 행위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에 의한 완전제사에 대한 그림자였으며, 그리스도교 예배의 모형에 불과했다는 것이 신약성서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짐승의 피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피로써 단번에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짐승의 피 뿌림으로써 하나님과 맺은 언약공동체였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써 하나님과 맺은 진정하고 영원한 언약공동체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이다.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성막 지성소에 놓인 언약궤 뚜껑 시은소는 대표적인 하나님임재의 상징이었다. 성막위로 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백성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임재의 상징이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어느 곳에나 계시지만, 성막에서 말하는 임재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 곧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과 은혜가 집중된 곳을 말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지시와 양식에 따라 세운 성막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 임재 싸인(sign)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다. 모세와 백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이동을 충실하게 뒤따랐을 때, 그들은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그분의 구속사역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성전과 동일시하셨다(요 2:19). 십자가에 못 박혀 찢기시고 깨뜨려지신 육체는 옛 언약에 기초한 지상 성막과 성전을, 영광을 받으신 부활의 육체는 새 언약에 기초한 하늘 성막과 성전을 상징한다. 옛것이 폐지되고 새것으로 대체된 이유, 구약이 신약으로 대체되고 유대교가 그리스도교로 대체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mishkan_furnitures.jpg지상성막은 천국성전의 그림자였으며 모형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막은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어 세운 교회를 예표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님의 거처인 천국성전을 예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지상성막이든, 교회이든, 천국성전이든, 성막과 성전이 갖는 중요한 상징은 하나님의 임재에 있다.

본문 출애굽기 29장 42-46절을 보면, 성막에서 드린 제사 때,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셨다. 교회는 성막의 실체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주시고 말씀하시겠다는 뜻이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신성한 장소이다.

성막에는 하나님과 언약백성을 섬길 일군들, 곧 하나님이 친히 명하시고, 권위를 인정하시고, 뽑으시고, 기름 부어 세우신 제사장들이 있다. 출애굽기 29장은 바로 이 일군들을 기름 부어 세울 위임식에 관한 내용이다. 그 일군들이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었지만, 신약시대에는 목회자들이다. 각각의 역할이 100퍼센트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같다.

제사장 위임식에서 큰 특징은 ‘기름부음’이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특별히 뽑아 구별한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목적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케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의 직무를 아무나 할 수 없었다. 아론계열만이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소견에 따라 사사로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부작용을 막을 뿐 아니라, 제사장의 고유한 업무를 규정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거룩성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여 원한다면 누구나 목사가 될 수도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강렬한 소명의식과 받은 사명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을 자들은 희생제물이 될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를 하도록 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죄를 대속키 위한 예비절차였다. 이 의식은 성막 문에서 거행되었으며,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만나 주시고 제사장의 권위를 부여하셨다. 또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을 자들은 성막 문에서 예복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고, 제물을 온전하게 태우고 그 피를 아론과 예복과 그 아들들에게 뿌리는 위임식 절차를 철저하게 행하였는데,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임재해 계시다는 전제하에서 이뤄졌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예배당에 모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절차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고 계시다는 것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다.

ordination_christening.jpg위임식을 위한 제물뿐 아니라, 하루에 두 차례씩 제단에 바치는 제물도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을 갖는다. 이 제물은 하루가 시작되는 저녁과 아침에 드려졌다. 이것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과 함께 시작되고, 하나님과 함께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전이 파괴되고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상황에서는 유대인들이 제사 대신에 제사를 드려야할 횟수만큼 기도문을 암송하였다. 기도문을 암송한다는 것은 기도회를 가진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희생제물이 되시고, 단 한 번의 제사로써 더 이상의 동물제사가 필요 없게 한 지금에는 기도가 더더욱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배를 기도회라 부르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도 유대교인들처럼 기도로써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써 하루를 마감할 때 일상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을 것이다.

성막예배뿐 아니라 성막의 집기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예배자들을 만나주신다는 외적인 증거물들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결코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막이나 예배당에서 이뤄지는 예배절차와 양식은 비록 그것들이 외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 속에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 때문에 성막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 예배의 중요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신 목적은 언약백성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성막은 시내산 언약의 외적인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실 목적으로 짓게 하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유대민족의 좁은 틀을 벗어나서 보다 넓은 세계에 흩어져 사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목적으로 설계하신 것이다. 유대교는 유대민족만을 위한 것이지만, 교회는 전 세계 민족들을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의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성막은 하나님의 궁전과 같았다. 하나님은 이 궁전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친견하시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 민족들과 달리 이스라엘에는 통치자인 왕이 필요치 않았다.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왕이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서인 토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토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라디오 채널과 같았다. 하나님은 토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고, 통치하셨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워 통치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통치하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새 언약서인 신약성서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신다. 신약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통치하신다. 유대인들이 옛 언약서인 토라를 준수하듯이 우리 성도들은 새 언약서인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지름길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막과 토라가 있었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회와 신약성서가 있다.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시고 토라를 통해서 말씀하셨듯이,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임재하시고 신약성서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따라서 교회를 떠나 살거나 신약성서를 떠나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거리밖에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그가 비록 신앙인일지라도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모여서 역할을 맡아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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