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2603: 성막의 앙장(출 2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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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 성막의 앙장(출 26:1-14)
성막의 뼈대는 48개의 널판으로 만들어지고, 크기는 19평 미만이다. 여기서는 성막 뼈대의 천정과 삼면의 벽을 덮는 앙장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해 보려고 한다. 앙장은 넓은 천을 말하는데, 네 가지 종류로 나눠진다.
첫 번째 가장 안쪽에 들어가는 천의 길이는 28규빗 12.6미터이다. 성막의 두 개의 벽과 천장의 길이는 총 30규빗 13.5미터이다. 그런데도 길이가 28규빗인 이유는 성막의 두 벽 곧 북쪽 벽과 남쪽 벽을 지면바닥에서 각각 1규빗(45cm)씩 띄워 덮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가장 안쪽에 들어가는 천의 전체 폭은 40규빗 18미터이다. 길이 28규빗, 폭 4규빗짜리 10개를 이어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높이 4.5미터, 너비 13.5mx4.5m, 외부평수가 18-19평 남짓 되는 널판뼈대를 덮는 제일 안쪽에 들어가는 천의 전체 크기는 길이 12.6미터, 폭 18미터라는 이야기이다. 제일 앙장인 이 천의 길이로 성막의 북쪽과 남쪽 벽면을 지상에서 45센티미터 띄워서 덮고, 이 천의 폭으로는 동쪽 출입구 벽면을 뺀 나머지 전체 곧 천정과 서쪽 벽면을 덮는다. 성막의 길이가 30규빗, 높이가 10규빗이니까, 40규빗 천의 폭이면 서쪽 벽면의 땅에까지 닿게 덮을 수 있다. 북쪽과 남쪽 면은 45센티미터 띄워서 덮고, 언약궤가 놓인 서쪽 벽면은 땅에 닿게 덮는 것이다.
동쪽 벽면은 출입구이기 때문에 별도의 휘장을 만들어 5개의 기둥에 매단다. 이 휘장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만든다. 성막 입구에 세우는 5개의 기둥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싼 다음에 다섯 개의 놋받침 위에 세운다. 그리고 휘장문은 금으로 만든 갈고리에 걸어서 매단다.
널판 뼈대를 가장 안쪽에서 덮는 제일 앙장, 곧 천은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케루빔을 정교하게 수를 놓아 만든다. 이 천은 금으로 싼 널판 벽 밖으로 덮여지기 때문에 성소와 지성소 안쪽의 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수놓아진 케루빔은 천정 부분에 들어나 있었을 것이다.
이 천의 폭은 4x28규빗(1.8x12.6m)짜리 10개이다. 한쪽에 5개씩을 서로 이어대고, 그러면 20규빗(9m) 폭이
된다. 이 20규빗 폭 두 개를 서로 마주 대하는 쪽에 청색 고리를 50개씩 각각 서로 맞닿게 만들어 붙이고, 금 갈고리 50개로 20규빗짜리
곧 9미터짜리 두 개의 천을 양쪽 천의 청색 고리들에 걸어 연결시킨다.
정리를 해보면, 제일 앙장은 금으로 싼 널판 벽의 밖으로 덮이지만, 천정은 널판이 없기 때문에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정교하게 수를 놓아 만든 케루빔들이 천정부분에서 보이도록 만들어 덮고 있는 것이다.
성막을 덮는 두 번째 앙장은 염소털로 만든다. 염소털 앙장은 제일 앙장의 길이보다 2규빗이 더 길다. 성막의 두 벽면의 높이와 폭이 총 30규빗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성막의 남쪽과 북쪽을 땅에 닿게 덮을 수 있는 길이이다. 따라서 염소털 천을 덮으면 밖에서는 일체의 널판이 보이지 않게 된다. 제일 앙장의 경우, 북쪽과 남쪽 밖에서도 땅에서 한 규빗 높이까지 금으로 싼 널판을 볼 수 있었지만, 이 염소털 앙장으로 인해서 더 이상 널판이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된다.
염소털 천은 그룹이 수놓아진 천보다 길이도 2규빗이나 길뿐 아니라, 폭도 4규빗(1.8m)이 더 길다. 따라서 염소털 천은 폭 4규빗(1.8m)짜리가 총 11개이다. 먼저 6개의 천을 이어붙이고, 절반 폭, 곧 2규빗을 접어서 성막 입구를 덮는다. 그리고 나머지 5개의 천도 서로 이어붙이고, 양쪽이 서로 마주보는 각각의 천에 고리 50개씩 달고, 놋 갈고리 오십 개로 두 개의 천을 양쪽 천의 고리들에 걸어 연결시킨다. 그리고 절반 폭인 2규빗을 언약궤가 놓인 지성소 서편 벽 땅에 드리운다.
그러고 나서 붉게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덮개를 만들어 염소털의 천을 덮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어 덮는다. 총 4겹으로 덮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네 겹의 앙장들이 의미하는바 무엇일까? 앙장들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일 앙장에 쓰인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은 각각 그리스도의 품성을 드러낸다. 청색은 생명의 주, 자색은 만왕의 왕, 홍색은 수난의 종, 가는 베실은 부활의 주를 나타낸다.
제이 앙장에 쓰인 염소털과 제삼 앙장에 쓰인 수양의 가죽은 각각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을 나타낸다.
제사 앙장인 해달의 가죽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진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겉모습을 나타낸다. 해달의 가죽처럼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삶과 교회의 겉모습은, 2천 년 전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이 꺼리는 것이었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들에게 어리석은 것이었듯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보좔 것 없는 초라한 것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약하고 흠모할 것이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람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있고, 생명의 빛이 있고, 생명의 빵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전혀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감춰진 비밀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다. 교회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다. 성도들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들이 보는 것은 오로지 겉모습뿐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2천 년 전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꺼리는
것이었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영적으로 마음이 둔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던 자들이었는데,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밭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자들이요,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올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영적으로 귀먹고 어눌한 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하게 된 사람들이다. ‘에바다’의 축복, 곧 ‘열림’의 축복을 받아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된 사람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영적으로 벳새다의 소경처럼 앞을 보지 못하던 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눈이 뜨게 된 사람들이다. ‘에바다’의 축복, 곧 ‘열림’의 축복을 받아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된 사람들이다. 열림의 축복을 받고 그리스도의 신비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눈이 열리는 것이다. 귀가 열리는 것이다. 혀가 풀리는 것이다. 그리고 성막의 비밀스런 내막을 속속들이 보고 알듯이,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복음에 감춰진, 천국에 감춰진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성막 건축에 쓰인 별 볼일 없던 조각목이 금으로 덧입힘을 입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본래 금처럼 존귀한 존재들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 믿고 구원받고, 성화되어지고, 영화롭게 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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