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2502: 법궤, 떡상, 등잔대(출 25:1-40)
본문
2502. 법궤, 떡상, 등잔대(출 25:10-40)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때에 만든 이동 성막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인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 두 개의 방이 있었다. 그 첫 번째 방이 성소인데, 그곳 휘장 앞 중앙에 놓인 분향단과 동쪽 입구에서 바라본 오른쪽에 진설병이라 불리는 떡상 그리고 왼쪽에 34킬로그램의 순금을 두들겨서 만든 등잔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휘장 안쪽에 있는 두 번째 방을 지성소라 부르는데, 그곳에 법궤가 놓여 있었다. 이들 성막의 구성요소들, 특히 성소와 지성소에 놓인 법궤, 떡상, 등잔대가 의미하는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 또는 하나님의 현존이다.
한편 유대인의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건물에 갇힌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현존하신 곳을 성소 또는 지성소라는 특정 장소에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성소와 지성소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성소까지는 제사장들만이,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하루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전시대에 들어서면, 성소를 둘러싼 뜰들과 담이 접근을 겹겹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성소가 들어선 뜰을 제사장의 뜰이라 하여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고, 그 바깥뜰을 이스라엘의 뜰이라 하여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들에게만 허용되었으며, 그 바깥뜰을 여성의 뜰이라 하여 유대인 여성들까지만 허용되었다. 이방인들은 여성의 뜰 바깥에 있는 넓은 이방인의 뜰만 허용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성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영역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제사장들이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성전의 뜰들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종의 차단막, 곧 휘장과 같은 것이었다. 그 차단막을 없애버린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 차단막이 없어져 버린 곳이 기독교예배당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을 가로막는 휘장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 휘장이 남아 있는 곳이 있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 휘장이 남아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하나님이 성소에만 계실까? 고대 세계에서 성소는 신들이 머무는 거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나라가 붕괴되고 성전이 훼파되며,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면서부터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장소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 안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머무신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막이나 성전 또는 예배당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건물인 것이다. 특히 성막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다. 성막은 거주의 개념이 아니라 이동과 만남과 동행의 개념이다. 성막은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이 만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외경에는 하나님께서 성소를 위해 이스라엘백성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백성을 위해서 성소를 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마카베오하 5: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믿었고, 성전에 있을 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복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주셨다. 장소에 상관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은 이제 예수님의 몸으로 대신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참된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참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예배하는 그곳이 성전인 것이다.
법궤(25:10-22)
법궤는 가로
112.5cm, 세로와 높이 각각 67.5cm의 직사각형 나무상자이다(공부책상 정도의 크기).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인 조각목으로 상자를 만들고 펼친 금으로 감쌌다. 네
개의 고리를 부착하여 막대기를 꿰어 운반하기 쉽게 하였다.
이 궤는 법궤, 언약궤, 증거궤 등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 곧 언약의 돌비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속에 십계명이 적힌 돌판 두 개만 있었다. 나중에 하늘의 참 양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만나와 그분의 부활과 영원한 능력을 상징하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함께 담겼다. 상자 뚜껑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속죄소로써 양 끝에는 두 그룹천사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고”(20절) 있었다.
진설병상(25:23-30)
법궤의 절반 정도 크기로써 가로 90cm, 세로 45cm, 높이 67.5cm의 상이다. 법궤와 마찬가지로 조각목으로 만들어 펼친 금으로 감쌌다. 법궤와
마찬가지로 운반하기 쉽도록 채와 고리를 달았다.
상 위에는 임재의 빵이 진설되어 있었다. 이 특별한 빵은 안식일마다 향기 나는 ‘기념 예물’로써 유향과 함께 상위에 두 줄로 여섯 개씩 모두 열두 개가 진열되었다. 매주 안식일에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었고, 지난주의 빵은 제사장들이 성막안의 제한된 장소에서 먹었다. 진설병상 위에는 대접, 숟가락, 병, 잔 같은 부속 기구도 갖춰져 있었다.
진설병상은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백성들이 바치는 거룩한 빵을 진열한 곳이다. 진설병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궁극적으로 진설병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으며, 또한 당신을 의뢰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의 빵으로써 매순간 우리에게 구원과 힘과 능력을 제공하신다.
등잔대(25:1-40)
등잔대는
활짝 핀 살구(아몬드)나무 줄기에 좌우로 세 개의 가지들이 뻗어 있는 일곱 개 가지 등대를 말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당시에 이 등대의
일곱 개 가지 꼭대기들에는 일곱 개의 등잔을 놓게 제작되었다. 그러니까 촛대라 하지 않고 등잔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등잔대는 34킬로그램의 순금을 두들겨서 만들었다. 십계명의 제2계명 때문에 여타의 다른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 수 없었던 유대인들에게 이 순금등대는 이때로부터 유대인들의 중요한 국가적 상징물이 되었다. 특히 주전 605년부터 시작된 바벨론 유배로 더 이상 성전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그곳 바벨론에서 회당을 만들어 공동체의 예배와 교육 및 종교재판소로 사용하였는데, 그곳 예배당에 이 등잔대가 유대교의 상징처럼 서게 되었다. 그리고 주후 70년 로마제국의 손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붕괴되고, 모든 유대인들이 추방된 때로부터 현재까지 유대인들은 더 이상 성전을 갖지 못했고, 그 대신 회당예배로 대신하게 되었는데, 역시 이 등잔대가 중요 상징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고대문서들을 보게 되면, 이방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이방인 개종자나 혹은 이방인 유력자가 이 등잔대를 특별히 제작하여 회당에 기증한 사례들이 있었다. 그만큼 등잔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었던 것이다. 그 어떤 형태의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메노라 곧 등잔대는 유대교를 상징할 뿐 아니라, 국가를 상징하는 귀중한 기물이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에 십자가가 있다면 유대교에는 등잔대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유대교 회당에 놓인 등대는 ‘영원한 불꽃’이란 뜻의 ‘네르 타미드’(ner tamid)라 불린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등잔대의 불꽃을 “열방의 빛이”(사 42:6) 되라는 민족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십자가가 희생을 통한 구원을 상징한다면, 메노라는 빛을 상징한다.
등잔대는 이스라엘 국가의 상징이다. 1956년 영국의회는 벤노 엘칸(Benno Elkan)으로 하여금 제작한 거대한 브론즈 등잔대를 이스라엘 국가에 기증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등대를 크네셋트(Knesset)라 불리는 국회의사당 앞뜰에 세운다. 이 등대에는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있었던 29개의 역사삽화들이 새겨져 있고, 설명문 속에는 “빛의 상징,” “희망의 상징,” “이스라엘 국가의 상징”이란 단어들도 들어 있다.
진설병상과 등잔대는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상징이다(출 40:24). 일곱 개의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을 말해주고, 이스라엘을 지키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며(시 121:4) 언제나 자기 백성과 함께 깨어계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등잔대의 모양은 꼭대기에 놓인 일곱 개의 등잔과 줄기와 가지에 22송이의 살구(아몬드)꽃이 핀 살구나무 형상이다(출 25:33-34). 살구나무는 생명을 약속하며,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일깨워줬던 나무이다(렘 1:11-12).
등잔대는 밤 동안에 성소를 밝혔다(출 27:21). 저녁에 등잔에 불을 켜고, 아침에 불을 끈 다음 심지를 갈고 기름을 새로 넣는다. 스가랴서 4장 1-14절에 보면, 순금 등대 좌우에 두 올리브나무가 서서 그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의 의미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또 10절에서 일곱이 상징하는 바는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고 하였다. 빛과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그러나 빛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등잔에 기름을 채워줘야 한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어둠을 밝힐 수 없게 된다.
등잔대가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빛이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는 빛이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열방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 희망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임마누엘로 오셨다는 것, 생명을 약속하시고, 소명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 하나님의 성소인 교회를 영원히 밝힐 참 빛으로 오셨다는 것, 힘도 아니고, 능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유지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법궤와 진설병상과 등잔대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예표였다. 장차 오실 메시아의 성격을 말해주는 그림자였다.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형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아직도 실체를 인정하지 아니한 채 그것의 예표인 그림자와 모형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 이전글 출애굽기2602: 성막의 뼈대(출 26:15-30) 06.12.19
- 다음글 출애굽기2501: 성막(출 25:1-9) 06.11.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