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를 위한 믿음과 중생(요 4: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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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위한 믿음과 중생(요 4:46-54)
요한복음 4장 46-54절은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죽을병에서 고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난 예수님께서 행한 두 번째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갈릴리로 돌아오신 후, 가나에 머물고 계셨는데 가나로부터 27킬러미터 떨어진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가 찾아와 병으로 죽게 된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왕은 그 지역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디바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신하는 안디바의 보좌관이었거나 아니면 군대의 지휘관인 백부장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비가 자식을 위하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도 가버나움까지 내려가지 아니하시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돌아갔고, 그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에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신하는 그 사건을 계기로 자기와 온 집안 식구가 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 기적 이야기는 출애굽기 9장 1-9절에서 모세가 이집트인들의 모든 가축에게 심한 악질이 돌게 하여 다 죽게 만든 재앙과 유형이 같은 기적입니다. 먼 옛날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해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거역한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이기 위해서 재앙을 내려 이집트인들의 말과 나귀와 약대와 양과 모든 가축을 다 죽게 하였습니다.
이 두 개의 기적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주인이 직접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소유물인 가축이나 아들에게 재앙이 내린 데 있습니다. 만일 신하가 아들이 죽을병에 걸리지 아니하고, 그의 가축이나 종이 죽을병에 걸렸다면 훨씬 더 출애굽기의 내용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사건에 대한 누가의 기록을 보면(눅 7:1-10),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을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백부장의 종이 죽을병에 걸렸고, 마태복음에 보면(마 8:5-13) 백부장의 하인이 죽을병에 걸린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복음에 쓰인 “종”(δούλοꐠ)이란 말은 노예를 의미하는 말로써, 2,000년 전, 그리스 로마에서는 노예들이 짐승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쓰인 “하인”(παίꐠ)은 아들이나 노예를 다 의미할 수 있는 말입니다. 둘째, 이 두 기적의 차이점은 ‘죽임’과 ‘살림’에 있습니다. 옛 시대의 상징인 모세가 일으킨 기적은 ‘죽임’이었고, 새 시대의 상징인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은 ‘살림’이었습니다. 구약시대를 시작한 모세는 살아있던 가축을 죽게 하여 남에게 피해를 끼쳤고, 신약시대를 시작한 예수님은 죽어 가던 신하의 아들을 살려 내어 남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신하의 아들을 살린 기적이야기는 열왕기상 17장 17-24절에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자 이를 살려낸 이야기와 유형이 같은 기적입니다. 엘리야의 기적과 예수님의 기적이 갖는 공통점은, 첫째, 이 두 가지가 다 두 번째 일어난 기적이란 점이고; 둘째,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하신 말씀과 엘리야가 “보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한 말씀이 동일하다는 점이고; 셋째, 이 두 가지 기적이 다 주인의 아들들이 죽을병에 걸렸거나 죽었다가 살아났다는데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에서 발견되는 주제어는 변화였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되는 새 시대에 필요한 변화를 이야기하고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한 기적과 엘리야가 행한 기적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믿음’과 ‘회생’입니다. ‘믿었다’는 말과 ‘다시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열왕기상 17장 24절에 보면,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고 하였고, 왕의 신하도 자기와 온 집안 식구가 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믿음’과 ‘회생’의 주제는 이 사건에 앞서 나오는 존경받는 유대인의 관원이자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와의 대화와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이자 바닥인생을 살고 있던 한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2장에서 변화를 강조하는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이 소개되자마자, 제3장에서는 유대인을 대표하는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만남이 소개되었고, 제4장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역시 이방인을 대표하는 헤롯 안디바의 신하와 예수님과의 만남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 세 사람과의 만남의 사건에서 발견되는 주제어는 ‘믿음’과 ‘거듭난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듯이,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의 율법이 복음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세상에 대한 불신이 믿음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왕의 신하의 아들의 죽음이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과의 만남에서 차별 없이 열려있는 새 시대를 강조하셨습니다. 이 열린 시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자기를 믿고 거듭나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새 시대는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에서 나타났듯이 삶의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시대이며, 어둠이 빛이 되고,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없음이 있음이 되고, 쓰러짐이 세워짐이 되고, 병듦이 고침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회생과 생명이 넘치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복음을 유대인인 니고데모에게 선포하셨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 사마리아인 여인에게 선포하셨고, 이방인인 왕의 신하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정치 종교 사회 남성 여성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새 시대에 필요한 믿음과 거듭남의 필요성을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새 시대는 적어도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 새 시대는 예수님께서 오시고 또 그분을 대신해서 오신 성령님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라는 도구를 통해서 이 지상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죄로 멍든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둘째, 새 시대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세우실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합니다. 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죄로 멍든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새 시대를 가져오기 위해 외쳤던 예수님의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대로 회개해야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시작되는 메시아 시대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고 외쳤던 세례 요한의 말씀처럼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나야할 때입니다. 믿음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맞이할 수 없는 영원한 새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새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갖출 때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혼인잔치로 설명된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여 새 시대에 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예수님을 믿고 변화를 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영원한 새 시대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4장 46-54절은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죽을병에서 고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난 예수님께서 행한 두 번째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갈릴리로 돌아오신 후, 가나에 머물고 계셨는데 가나로부터 27킬러미터 떨어진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가 찾아와 병으로 죽게 된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왕은 그 지역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디바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신하는 안디바의 보좌관이었거나 아니면 군대의 지휘관인 백부장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비가 자식을 위하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도 가버나움까지 내려가지 아니하시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돌아갔고, 그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에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신하는 그 사건을 계기로 자기와 온 집안 식구가 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 기적 이야기는 출애굽기 9장 1-9절에서 모세가 이집트인들의 모든 가축에게 심한 악질이 돌게 하여 다 죽게 만든 재앙과 유형이 같은 기적입니다. 먼 옛날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해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거역한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이기 위해서 재앙을 내려 이집트인들의 말과 나귀와 약대와 양과 모든 가축을 다 죽게 하였습니다.
이 두 개의 기적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주인이 직접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소유물인 가축이나 아들에게 재앙이 내린 데 있습니다. 만일 신하가 아들이 죽을병에 걸리지 아니하고, 그의 가축이나 종이 죽을병에 걸렸다면 훨씬 더 출애굽기의 내용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사건에 대한 누가의 기록을 보면(눅 7:1-10),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을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백부장의 종이 죽을병에 걸렸고, 마태복음에 보면(마 8:5-13) 백부장의 하인이 죽을병에 걸린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복음에 쓰인 “종”(δούλοꐠ)이란 말은 노예를 의미하는 말로써, 2,000년 전, 그리스 로마에서는 노예들이 짐승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쓰인 “하인”(παίꐠ)은 아들이나 노예를 다 의미할 수 있는 말입니다. 둘째, 이 두 기적의 차이점은 ‘죽임’과 ‘살림’에 있습니다. 옛 시대의 상징인 모세가 일으킨 기적은 ‘죽임’이었고, 새 시대의 상징인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은 ‘살림’이었습니다. 구약시대를 시작한 모세는 살아있던 가축을 죽게 하여 남에게 피해를 끼쳤고, 신약시대를 시작한 예수님은 죽어 가던 신하의 아들을 살려 내어 남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신하의 아들을 살린 기적이야기는 열왕기상 17장 17-24절에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자 이를 살려낸 이야기와 유형이 같은 기적입니다. 엘리야의 기적과 예수님의 기적이 갖는 공통점은, 첫째, 이 두 가지가 다 두 번째 일어난 기적이란 점이고; 둘째,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하신 말씀과 엘리야가 “보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한 말씀이 동일하다는 점이고; 셋째, 이 두 가지 기적이 다 주인의 아들들이 죽을병에 걸렸거나 죽었다가 살아났다는데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에서 발견되는 주제어는 변화였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되는 새 시대에 필요한 변화를 이야기하고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한 기적과 엘리야가 행한 기적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믿음’과 ‘회생’입니다. ‘믿었다’는 말과 ‘다시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열왕기상 17장 24절에 보면,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고 하였고, 왕의 신하도 자기와 온 집안 식구가 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믿음’과 ‘회생’의 주제는 이 사건에 앞서 나오는 존경받는 유대인의 관원이자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와의 대화와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이자 바닥인생을 살고 있던 한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2장에서 변화를 강조하는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이 소개되자마자, 제3장에서는 유대인을 대표하는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만남이 소개되었고, 제4장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역시 이방인을 대표하는 헤롯 안디바의 신하와 예수님과의 만남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 세 사람과의 만남의 사건에서 발견되는 주제어는 ‘믿음’과 ‘거듭난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듯이,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의 율법이 복음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세상에 대한 불신이 믿음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왕의 신하의 아들의 죽음이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과의 만남에서 차별 없이 열려있는 새 시대를 강조하셨습니다. 이 열린 시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자기를 믿고 거듭나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새 시대는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에서 나타났듯이 삶의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시대이며, 어둠이 빛이 되고,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없음이 있음이 되고, 쓰러짐이 세워짐이 되고, 병듦이 고침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회생과 생명이 넘치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복음을 유대인인 니고데모에게 선포하셨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 사마리아인 여인에게 선포하셨고, 이방인인 왕의 신하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정치 종교 사회 남성 여성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새 시대에 필요한 믿음과 거듭남의 필요성을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새 시대는 적어도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 새 시대는 예수님께서 오시고 또 그분을 대신해서 오신 성령님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라는 도구를 통해서 이 지상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죄로 멍든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둘째, 새 시대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세우실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합니다. 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죄로 멍든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새 시대를 가져오기 위해 외쳤던 예수님의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대로 회개해야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시작되는 메시아 시대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고 외쳤던 세례 요한의 말씀처럼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나야할 때입니다. 믿음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맞이할 수 없는 영원한 새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새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갖출 때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혼인잔치로 설명된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여 새 시대에 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예수님을 믿고 변화를 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영원한 새 시대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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