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48: 야곱의 기도(창 32:1-20)
본문
창세기 048: 야곱의 기도(창 32:1-20)
야곱은 20년 동안이나 자신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복수의 일념으로 칼을 갈아온 에서와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듯 만남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두렵고 답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6-7절을 보면, 야곱이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자기를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극복할 수 있게 해준 야곱의 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어서 같이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께 아뢰기를, ‘일찍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며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이사야 55장 11절에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지 아니한 것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면 정욕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 자신의 바람이나 소원보다 항상 앞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약속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뜻에 제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불안하고 답답할 때 우리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나 하나님의 뜻이 우리 자신의 생각보다 앞서지 못할 때 우리는 불안하고 정욕에 빠지기 쉽습니다. 시편 기자는 119편 95절에서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라고 했고,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 자손이 유다를 치러 왔을 때, 환난 가운데서 부르짖으면 들으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대하 20:1-14).
하나님의 약속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약속을 붙잡는 것은 그분의 사랑과 보호를 함께 붙잡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까? 혹시 내 정욕으로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또 사단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무리치신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도 두렵고 답답할 때마다 그분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야곱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며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무능하고 자격 없고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였지만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쉴 곳을 주셨고 이만큼 재산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는 뜻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고전 15:10), 내 능력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져 왔다는 것입니다. 모든 공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기도입니다. 겸손은 성도의 가장 큰 덕목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응답이 없습니다.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은 십일조도 하고 금식도 한다고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했으나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습니다(눅 18:9-14). 이처럼 하나님은 자칭 의롭다하는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반대로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 달라며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실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요, 그분이 들으시는 기도는 겸손한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시 51:17). 겸손의 기도는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이뤄진 것이 내 의로 된 것인 양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고백하면서 겸손히 주님께 도움을 청했던 가나안 여인처럼(마 15:21-28) 겸손함으로 간구하십시다.
셋째, 야곱은 구체적으로 아뢰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고 야곱은 자기의 사정과 두려워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아뢰며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구하기 전에 벌써 우리의 사정을 다 알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정을 당신께 알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모의 마음이 자녀가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의논하기를 원하듯, 하나님께서도 동일한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과 답답함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도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의 사정을 다 털어놓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마 26:39). 예수님께서 그런 겸손한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답답함과 억눌림을 극복하고 그 엄청난 고통의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사정을 다 털어나 봤자 해결해 줄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모든 문제의 열쇠를 지고 계신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정을 다 아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한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사정을 소상히 고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이것만은...’하면서 나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모든 사정을 털어놓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구체적인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넷째, 야곱은 기도한 다음에는 주밀한 행동을 취했습니다. 야곱은 그에게 불어 닥친 “심히 두렵고 답답한” 상황을 기도로 푼 후에는 그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위기를 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닥친 위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때에 지혜와 침착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듯이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일은 주밀하게 조치를 취해 놓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야곱이 네 가지 조치를 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8절을 보면, 야곱은 먼저 재산보호 조치를 취했습니다. 자기가 부리는 종들과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눴고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다른 한 떼는 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13절을 보면, 야곱은 에서에게 줄 예물을 조심스럽게 택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정성이 담긴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투자를 해야 합니다. 투자 없이는, 그것이 시간의 투자이든, 금전의 투자이든, 노력의 투자이든 간에 거두는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준비한 예물을 보면, 암염소 이백 마리, 숫염소가 이십 마리, 암양 이백 마리, 숫양이 이십 마리, 젖내는 약대 삼십 마리와 새끼, 암소 사십 마리,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이십 마리, 새끼나귀 열 마리나 되었습니다. 요즘 시세로 치면 대략 2억 원어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야곱은 준비한 예물을 주밀한 계획 하에 보냈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조금씩 열면서 그 감동을 배가시킬 방법을 고안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16절) 하였으며, 각 떼를 맡은 자에게 부탁하기를,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에서의 감정을 풀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야곱이 취한 또 다른 행동은 약자를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22-23절을 보면, 야곱은 밤중까지 기다렸다가 아내들과 자식들을 인도하여 얍복 강을 건너게 합니다. 에서의 무리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는 야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강 건너편으로 떠난 보낸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가 강을 건너지 아니한 것은 저만 혼자 살겠다고 꽁무니를 뺀 그런 행동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조치해야할 일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결사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잘 알다시피 야곱은 그 싸움에서 승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도 적지 않았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위골된 환도뼈로 인하여 절뚝거리며 걷는 야곱의 모습이 상상되십니까? 기왕에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시려거든, 야곱의 얼굴에 밝게 비치는 아침 햇살을 그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만났던 곳을 브니엘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브니엘에 비치는 아침 햇살은 다름 아닌 야곱의 열린 미래였던 것입니다. 브니엘의 아침 햇살과 같은 밝은 미래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이나 자신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복수의 일념으로 칼을 갈아온 에서와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듯 만남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두렵고 답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6-7절을 보면, 야곱이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자기를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극복할 수 있게 해준 야곱의 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어서 같이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께 아뢰기를, ‘일찍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며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이사야 55장 11절에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지 아니한 것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면 정욕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 자신의 바람이나 소원보다 항상 앞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약속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뜻에 제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불안하고 답답할 때 우리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나 하나님의 뜻이 우리 자신의 생각보다 앞서지 못할 때 우리는 불안하고 정욕에 빠지기 쉽습니다. 시편 기자는 119편 95절에서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라고 했고,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 자손이 유다를 치러 왔을 때, 환난 가운데서 부르짖으면 들으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대하 20:1-14).
하나님의 약속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약속을 붙잡는 것은 그분의 사랑과 보호를 함께 붙잡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까? 혹시 내 정욕으로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또 사단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무리치신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도 두렵고 답답할 때마다 그분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야곱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며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무능하고 자격 없고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였지만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쉴 곳을 주셨고 이만큼 재산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는 뜻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고전 15:10), 내 능력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져 왔다는 것입니다. 모든 공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기도입니다. 겸손은 성도의 가장 큰 덕목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응답이 없습니다.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은 십일조도 하고 금식도 한다고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했으나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습니다(눅 18:9-14). 이처럼 하나님은 자칭 의롭다하는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반대로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 달라며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실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요, 그분이 들으시는 기도는 겸손한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시 51:17). 겸손의 기도는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이뤄진 것이 내 의로 된 것인 양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고백하면서 겸손히 주님께 도움을 청했던 가나안 여인처럼(마 15:21-28) 겸손함으로 간구하십시다.
셋째, 야곱은 구체적으로 아뢰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고 야곱은 자기의 사정과 두려워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아뢰며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구하기 전에 벌써 우리의 사정을 다 알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정을 당신께 알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모의 마음이 자녀가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의논하기를 원하듯, 하나님께서도 동일한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과 답답함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도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의 사정을 다 털어놓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마 26:39). 예수님께서 그런 겸손한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답답함과 억눌림을 극복하고 그 엄청난 고통의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사정을 다 털어나 봤자 해결해 줄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모든 문제의 열쇠를 지고 계신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정을 다 아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한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사정을 소상히 고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이것만은...’하면서 나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모든 사정을 털어놓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구체적인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넷째, 야곱은 기도한 다음에는 주밀한 행동을 취했습니다. 야곱은 그에게 불어 닥친 “심히 두렵고 답답한” 상황을 기도로 푼 후에는 그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위기를 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닥친 위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때에 지혜와 침착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듯이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일은 주밀하게 조치를 취해 놓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야곱이 네 가지 조치를 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8절을 보면, 야곱은 먼저 재산보호 조치를 취했습니다. 자기가 부리는 종들과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눴고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다른 한 떼는 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13절을 보면, 야곱은 에서에게 줄 예물을 조심스럽게 택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정성이 담긴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투자를 해야 합니다. 투자 없이는, 그것이 시간의 투자이든, 금전의 투자이든, 노력의 투자이든 간에 거두는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준비한 예물을 보면, 암염소 이백 마리, 숫염소가 이십 마리, 암양 이백 마리, 숫양이 이십 마리, 젖내는 약대 삼십 마리와 새끼, 암소 사십 마리,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이십 마리, 새끼나귀 열 마리나 되었습니다. 요즘 시세로 치면 대략 2억 원어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야곱은 준비한 예물을 주밀한 계획 하에 보냈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조금씩 열면서 그 감동을 배가시킬 방법을 고안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16절) 하였으며, 각 떼를 맡은 자에게 부탁하기를,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에서의 감정을 풀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야곱이 취한 또 다른 행동은 약자를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22-23절을 보면, 야곱은 밤중까지 기다렸다가 아내들과 자식들을 인도하여 얍복 강을 건너게 합니다. 에서의 무리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는 야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강 건너편으로 떠난 보낸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가 강을 건너지 아니한 것은 저만 혼자 살겠다고 꽁무니를 뺀 그런 행동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조치해야할 일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결사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잘 알다시피 야곱은 그 싸움에서 승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도 적지 않았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위골된 환도뼈로 인하여 절뚝거리며 걷는 야곱의 모습이 상상되십니까? 기왕에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시려거든, 야곱의 얼굴에 밝게 비치는 아침 햇살을 그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만났던 곳을 브니엘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브니엘에 비치는 아침 햇살은 다름 아닌 야곱의 열린 미래였던 것입니다. 브니엘의 아침 햇살과 같은 밝은 미래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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