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42: 마침내 거부가 된 이삭(창 26:1-35)
본문
창세기 042: 마침내 거부가 된 이삭(창 26:1-35)
창세기 26장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구절이 있다면, 13-14절입니다.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다.”는 말씀입니다. 12절의 말씀에도 눈이 번쩍 뜨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삭에게 항상 축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5절의 말씀을 보면, 이삭이 거주하는 지역에 기근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가 많지 아니한 가나안 땅은 기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매우 흔한 일입니다. 흉년은 아브라함에게도 있었고, 이삭의 아들 야곱의 때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2-14절에 언급된 이삭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은 이 기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삭에게 기근이라는 큰 시련이 닥쳤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권고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는 것과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은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을 계승받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인생에도 기근이란 시련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시련에는 믿는 이들의 신앙을 연단시킨 후에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시련은 결코 성도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시련을 만날 때에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신대로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할 줄로 압니다.
기근이 들자 이삭은 기름진 이집트 땅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 곧 약속의 땅에 거주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만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갈 길을 지시하셨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란 성호는 본래 ‘야훼’를 우회적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범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여호와’가 이스라엘과 언약관계를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 가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언약칭호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란 하나님의 성호가 본문에 특별히 계시된 것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그 하나님과 지금 이삭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바로 동일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으로 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이삭이 하나님께로부터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받았듯이, 아브라함이 받아 누렸던 축복을 우리들도 믿음으로 계승받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6-11절을 보면, 이삭은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그랄 땅에 거주하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거짓말은 곧 탈로가 났고, 이 거짓말 사건 이후 이삭은 그랄 거민들에게 큰 핍박과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그랄 주민들이 이삭의 부유함을 시기하여 그의 우물을 메웠고 그를 그 지경에서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삭은 그들과 싸우는 대신에 온유함과 인내로써 이 시련을 극복하고 그랄 족속과 화해했지만, 그랄 거민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이삭의 거짓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랄 거민들은 그의 거짓말로 인해서 더 이상 그를 신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언제 또 그들을 속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재앙을 불러들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불신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유 없이 고난당한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혹시 자신의 부덕함과 잘못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할 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은 아름다우나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19-20).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12-22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삭에게 약속대로 복을 내리셨습니다. 기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그랄 땅에서 지은 농사에 하나님께서 백배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는 반드시 시기가 뒤따릅니다. 우리에게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축복의 근원인 샘을 막아버리는 이방인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불평을 말하지 않고 다른 샘을 팠고, 결국은 ‘르호봇’이라 호칭한 샘을 얻었는데, ‘르호봇’은 넓은 장소란 뜻입니다. 22절에 이르기를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23-25절을 보면, 이삭은 르호봇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복을 받고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하려 듭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과연 올바른 방법이며, 그들이 희생한 만큼의 소중한 가치를 얻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녀에 대한 가장 큰 투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을 유산으로 물리는 것입니다. 25절에서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는 말씀은 이삭이 누린 축복이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받고 있는 믿음의 유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블레셋의 아비멜렉 왕이 이삭의 성공을 시기하여 자기 땅에서 추방하고 맙니다. 그러나 26절 이하에서는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을 대동하고 이삭을 찾아와 오히려 화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결과입니다. 28절에서,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한 아비멜렉의 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뤄지게 하시는 하나님이 적대하던 자들까지도 찾아와 빌게 만드십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이삭은 삶의 위기를 인내와 지혜로 대처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물은 매우 귀중합니다. 이러한 삶의 젖줄인 우물을 메워버리는 이방인들의 적대적 행위에 이삭은 분개하거나 대항하지 않고 세 번이나 참았습니다. 이삭의 우물들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선왕 사이에 맺은 계약으로 인해서 그 소유권이 확보된 것이기 때문에 아비멜렉의 ‘떠나라’는 요구는 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 명령에 대해서 정당하지 않다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그곳을 떠나 자신의 처소를 옮겼습니다. 이삭의 이런 행동은 그의 온유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했다는데 있습니다.
이삭이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행하고, 소망가운데 인내로써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편에 계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큰 어려움에 직면하여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삭은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을 얻게 되었고, 아비멜렉과의 우호조약도 체결하는 윈윈(win-win)의 결과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14절의 축복이 그대로 이삭에게 이뤄진 것입니다.
(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34-35절의 말씀을 보면, 이삭의 아들 에서는 대대에 이르는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축복에서 제외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하나님께서 야곱을 편애한 까닭이 아니라 그 소중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천박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끼치는 자식이었습니다. 에서의 잘못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가업을 외면하고 들판에서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에서는 아브라함 가문의 전통적인 가업인 목축업을 외면하고 사냥을 즐겼습니다. 더군다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가업을 외면하고 집을 비우면서 자기 쾌락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목축과 사냥은 정반대의 성격을 갖습니다. 목축은 동물들을 돌보고 기르는 살림의 일이지만, 사냥은 자유롭게 뛰노는 동물들을 활이나 창이나 올무를 놓아 해하는 죽임의 일입니다. 에서는 살림의 일을 외면하고 죽임의 일에만 몰두했던 것입니다. 그가 축복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에서든지, 교회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살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죽임의 일을 일삼는 사람들은 그 결국이 좋지 않습니다.
둘째로 에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가문의 신앙전통을 경홀히 여기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에서는 가나안 헷 족속의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로몬과 그의 나라가 망한 것도 정략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그들의 종교를 예루살렘에 끌어들인 때문이며, 그 자신도 그들의 종교에 깊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훗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에서 이탈한 민족인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에게는 혈통의 자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혈통이나 가문 또는 민족이나 피부색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잘 간직해왔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창세기 26장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구절이 있다면, 13-14절입니다.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다.”는 말씀입니다. 12절의 말씀에도 눈이 번쩍 뜨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삭에게 항상 축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5절의 말씀을 보면, 이삭이 거주하는 지역에 기근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가 많지 아니한 가나안 땅은 기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매우 흔한 일입니다. 흉년은 아브라함에게도 있었고, 이삭의 아들 야곱의 때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2-14절에 언급된 이삭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은 이 기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삭에게 기근이라는 큰 시련이 닥쳤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권고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는 것과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은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을 계승받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인생에도 기근이란 시련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시련에는 믿는 이들의 신앙을 연단시킨 후에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시련은 결코 성도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시련을 만날 때에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신대로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할 줄로 압니다.
기근이 들자 이삭은 기름진 이집트 땅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 곧 약속의 땅에 거주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만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갈 길을 지시하셨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란 성호는 본래 ‘야훼’를 우회적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범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여호와’가 이스라엘과 언약관계를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 가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언약칭호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란 하나님의 성호가 본문에 특별히 계시된 것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그 하나님과 지금 이삭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바로 동일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으로 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이삭이 하나님께로부터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받았듯이, 아브라함이 받아 누렸던 축복을 우리들도 믿음으로 계승받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6-11절을 보면, 이삭은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그랄 땅에 거주하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거짓말은 곧 탈로가 났고, 이 거짓말 사건 이후 이삭은 그랄 거민들에게 큰 핍박과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그랄 주민들이 이삭의 부유함을 시기하여 그의 우물을 메웠고 그를 그 지경에서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삭은 그들과 싸우는 대신에 온유함과 인내로써 이 시련을 극복하고 그랄 족속과 화해했지만, 그랄 거민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이삭의 거짓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랄 거민들은 그의 거짓말로 인해서 더 이상 그를 신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언제 또 그들을 속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재앙을 불러들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불신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유 없이 고난당한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혹시 자신의 부덕함과 잘못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할 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은 아름다우나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19-20).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12-22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삭에게 약속대로 복을 내리셨습니다. 기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그랄 땅에서 지은 농사에 하나님께서 백배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는 반드시 시기가 뒤따릅니다. 우리에게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축복의 근원인 샘을 막아버리는 이방인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불평을 말하지 않고 다른 샘을 팠고, 결국은 ‘르호봇’이라 호칭한 샘을 얻었는데, ‘르호봇’은 넓은 장소란 뜻입니다. 22절에 이르기를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23-25절을 보면, 이삭은 르호봇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복을 받고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하려 듭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과연 올바른 방법이며, 그들이 희생한 만큼의 소중한 가치를 얻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녀에 대한 가장 큰 투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을 유산으로 물리는 것입니다. 25절에서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는 말씀은 이삭이 누린 축복이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받고 있는 믿음의 유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블레셋의 아비멜렉 왕이 이삭의 성공을 시기하여 자기 땅에서 추방하고 맙니다. 그러나 26절 이하에서는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을 대동하고 이삭을 찾아와 오히려 화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결과입니다. 28절에서,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한 아비멜렉의 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뤄지게 하시는 하나님이 적대하던 자들까지도 찾아와 빌게 만드십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이삭은 삶의 위기를 인내와 지혜로 대처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물은 매우 귀중합니다. 이러한 삶의 젖줄인 우물을 메워버리는 이방인들의 적대적 행위에 이삭은 분개하거나 대항하지 않고 세 번이나 참았습니다. 이삭의 우물들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선왕 사이에 맺은 계약으로 인해서 그 소유권이 확보된 것이기 때문에 아비멜렉의 ‘떠나라’는 요구는 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 명령에 대해서 정당하지 않다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그곳을 떠나 자신의 처소를 옮겼습니다. 이삭의 이런 행동은 그의 온유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했다는데 있습니다.
이삭이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행하고, 소망가운데 인내로써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편에 계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큰 어려움에 직면하여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삭은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을 얻게 되었고, 아비멜렉과의 우호조약도 체결하는 윈윈(win-win)의 결과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14절의 축복이 그대로 이삭에게 이뤄진 것입니다.
(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34-35절의 말씀을 보면, 이삭의 아들 에서는 대대에 이르는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축복에서 제외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하나님께서 야곱을 편애한 까닭이 아니라 그 소중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천박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끼치는 자식이었습니다. 에서의 잘못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가업을 외면하고 들판에서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에서는 아브라함 가문의 전통적인 가업인 목축업을 외면하고 사냥을 즐겼습니다. 더군다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가업을 외면하고 집을 비우면서 자기 쾌락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목축과 사냥은 정반대의 성격을 갖습니다. 목축은 동물들을 돌보고 기르는 살림의 일이지만, 사냥은 자유롭게 뛰노는 동물들을 활이나 창이나 올무를 놓아 해하는 죽임의 일입니다. 에서는 살림의 일을 외면하고 죽임의 일에만 몰두했던 것입니다. 그가 축복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에서든지, 교회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살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죽임의 일을 일삼는 사람들은 그 결국이 좋지 않습니다.
둘째로 에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가문의 신앙전통을 경홀히 여기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에서는 가나안 헷 족속의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로몬과 그의 나라가 망한 것도 정략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그들의 종교를 예루살렘에 끌어들인 때문이며, 그 자신도 그들의 종교에 깊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훗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에서 이탈한 민족인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에게는 혈통의 자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혈통이나 가문 또는 민족이나 피부색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잘 간직해왔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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